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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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길원옥 할머니의 ‘희망’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열세 살에 중국 만주 위안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해방을 맞은 후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강제로 불임 시술을 당해 아기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누구에게도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던 길 할머니는 일흔한 살이 돼서야 용기를 냈다. 과거 자신이 겪은 참혹한 실상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그는 1998년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힘을 쏟았다. 수요시위와 일본 순회 집회에서 수차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에는 김복동 할머니 등과 함께 세계 전쟁피해 여성을 돕기 위한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길 할머니가 어렵게 꺼내놓은 증언들은 음악과 책이 됐다. 2017년 ‘길원옥의 평화’라는 음반이 나왔고, 이듬해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라는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요시모토 하나코, 군인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어”라며 그 이름이 안 잊힌다고 했다. -
여적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지난해 9월 세상을 등지면서 남긴 말이다. 오씨는 휴대전화에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유족이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유서를 발견하고, 동료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보도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오씨는 2021년 5월 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기상캐스터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즈음 오씨와 그의 동기를 뺀 ‘MBC 기상캐스터 4인 단톡방’이 생겼고,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
여적 복종과 불복종 #“증언하지 않겠다.”(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시키는 거 다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선포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이 전 장관은 증인선서도 거부하고, 대부분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고도의 통치행위”라면서 국민 억장을 무너지게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계엄에 반기를 들었던 홍 전 차장은 달랐다. 그의 증언에 다들 속이 뚫리지 않았을까 싶다. -
여적 도둑맞은 ‘저항권’ 대통령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때 ‘국민 저항권’이란 말이 돌았다. 이들은 저항권이랍시고 법원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지난 19일 이들이 “이젠 전쟁이야. 국민 저항권이야”라고 소리치는 모습도 유튜브에 생중계됐다. 극우세력 집회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전광훈 목사는 “국민 저항권이 발동됐기 때문에 우리가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여적 기술산업복합체 한국전쟁을 정전으로 이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1961년 1월17일 고별 연설을 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거대하고 음험한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그 위협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지적했다. 군산복합체란 정부와 군, 군수업체, 학계의 상호의존 체계를 말한다. 그는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에 맞서려면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 평화에만 쓰이도록 국민이 감시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광장 밝힌 2030 여성들…그들은 말합니다, 우린 늘 여기 있었다고”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첫발을 들였다. 특정 후보자의 낙선을 촉구하는 이 운동은 당시 ‘바꿔!’ 열풍을 불러오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듬해 참여연대에 들어가 정치개혁·국회감시·검찰감시·사법개혁 등 권력감시 활동을 했고, 2022년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전까지는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위원장으로, 매주 탄핵 촉구 집회 기획·준비에 힘을 보태고 있다. -
여적 김건희 논문 표절 “돋보이려 한 욕심.” “그것도 죄라면 죄.” 2021년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허위 이력’ 의혹을 인정했지만, 결혼 전 일까지 검증받아야 하느냐고 했다. 가짜 이력으로 대학 겸임교수를 한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그런데도 윤 후보는 “부분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허위 경력은 아니다”라는 말로 부인을 감쌌다.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듯, 해명은 황당했고 의혹은 커졌다. -
여적 건강수명 9년 격차 조선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 ‘노인십요’(老人十拗)라는 글을 썼다. 그가 묘사한 노인이 겪는 열 가지 좌절은 이렇다. 대낮에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울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30년 전 일은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없어도 모두 이 사이에 낀다.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진다. -
여적 탄핵 크리스마스 ‘딸랑딸랑~’ 자선냄비에 돈도 넣었고, 송년 모임도 해치웠겠다, 지금쯤은 크리스마스에 눈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게다. 계엄의 밤이 없었다면 한 해를 이렇게 마무리했을 게다. 그 무도한 일이 있기 전까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한껏 들떠 그 순간을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계엄은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삼켜버렸다. 기부할 마음도 쪼그라들어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달성하지 못할 거라고 한다. 송년회는 줄줄이 취소됐다. -
여적 모두의 1층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1984년 9월19일, 장애인 김순석씨가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났지만 턱은 없어지지 않았다. 1998년 4월 만들어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식당, 카페, 편의점에 경사로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 시행령은 편의점 등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300㎡(90평) 이상에만 의무화했다. 2019년 기준으로는 전국 편의점의 3%만 법 적용 대상인 것이다. 정부는 2022년 4월에야 바닥면적 조건을 50㎡로 강화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윤석열, 환경 정책도 돌관 공사하듯 밀어붙여…누가 믿고 투자하겠나”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환경대학원에서 폐기물을 공부했다. 쓰레기에 관한 이론과 제도, 정책, 현장에 정통해 ‘쓰레기 박사’로 불린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현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11년간 활동했고, 2014년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를 세웠다. 서울환경연합 쓰레기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 단체와 동영상 채널 ‘도와줘요 쓰레기박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쓰레기 상식, 쓰레기와 어떻게 공존할지를 연구·강의한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 등을 썼다. -
여적 광화문 집회 VS 여의도 집회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1953년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퇴임하며 국민에게 전한 고별 연설 내용 중 일부다. 트루먼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항상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를 뒀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이 명패를 윤석열에게 선물했다. 이 명패를 자랑하던 윤석열은 명패에 쓰인 경구는 새기지 않았다. 취임 후 국정혼란에 ‘나 몰라라’ 했던 사례는 열거하기에 입이 아플 만큼 많다. 그러나 계엄 선포로 혼란을 자초하고도 ‘야당의 폭거’ 때문이라는 지난 12일의 담화문은 한계를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