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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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독립기념관장이란 자리 뉴라이트 역사관과 기관 사유화 논란을 빚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해임 수순을 밟게 됐다. 국가보훈부 감사에서 비위 사실이 확인돼 김 관장이 이의 신청을 했지만, 보훈부는 감사 결과를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확인된 비위는 기관 사유화,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등 14건이다. 보고서를 보면 그가 공직자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예배에 기념관 강당을 내주는가 하면, 수장고 유물을 꺼내 교인들에게 관람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1월 시정 권고를 내린 사안이다. 하지만 김 관장은 같은 내용으로 보훈부 감사 결과(12월5일)를 통보받고도, 다음날 또 예배 행사를 열었다. 자신의 ROTC 동기회 행사에 기념관 컨벤션홀을 무단으로 대여해주기도 했다. 한국의 국가정체성이 담긴 독립기념관을 공사 구분 없이 사적으로 전용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참담할 일인데 법인카드 부정 사용 등 다수의 위법·부당 행위가 확인됐다. -
여적 그린란드와 미네소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농담인 줄 알았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멍청한 소리”, 정치인들은 “만우절 농담이냐”고 비아냥거렸다. 주권 국가를 사겠다는 황당한 발상에 흥분할 만도 했다. 미국은 과거에 땅을 사들인 이력이 있긴 하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지역을 사들였고, 1867년엔 러시아의 알래스카를 샀다. 1917년엔 덴마크에 2500만달러를 주고 버진아일랜드를 샀다. 그린란드 역시 미국이 오래전부터 탐내던 땅이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덴마크에 1억달러를 주고 사려다 퇴짜를 맞은 바 있다. 그린란드에 관심을 보였던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승리 직후에도 매입을 추진했었다. -
여적 위장 미혼 한때 청약통장은 무주택자들의 꿈이었다. 청약통장을 만들어 아파트를 분양받고, 이를 기반으로 넓은 평수로 옮겨가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자산증식 방법이었다. 아파트 청약은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1977년 도입된 주택 청약제도는 시행 초기엔 인구 증가 억제 차원에서 ‘영구불임 시술자’에게 우선적으로 분양권을 줬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불임수술자 우선 적용은 1997년에야 사라졌다. 2006년 8월에는 반대로 다자녀 우대정책이 등장했다. 청약제도는 우대 조항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누더기가 됐다. -
여적 하늘의 별 된 안성기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인간이 밤이면 밤마다 영월 시내에 나타나 미인을 찾아 헤맨다고 합니다. 밤길 조심하시구요.”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가수 최곤(박중훈)이 DJ 박스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를 타박하며 내뱉는 멘트다. 늘 투덜대는 최곤을 살뜰히 챙기는 ‘박민수’는 배우 안성기가 그의 실제 성격과 가장 닮은 인물로 꼽은 캐릭터이다. 2006년 9월 개봉된 이 영화는 비만 오면 생각나는 명작이다. 자신의 어깨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박중훈에게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는 마지막 컷은 지금도 먹먹하다. 이 장면은 안성기의 애드리브로 탄생했다는데, 인간 안성기를 보는 듯해서 더 설득력 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광장 나온 응원봉 ‘빛의 혁명’ 칭송하더니…공론장 요구는 외면” 활동명은 ‘구구’다. 여성단체 활동가이다. 독서 공동체 ‘들불’을 운영하며, 도서 큐레이션 레터 ‘들불레터’를 발행한다. 책 <작업자의 사전>(공저)을 썼다. 온·오프라인에서의 활발한 덕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덕후다. K팝 문화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행사 ‘케이팝 하는 여자들’을 진행했다. K팝 팬인 퐁퐁·일석과 함께 12·3 불법계엄 이후 여기저기 광장에서 만난 ‘응원봉 시민’들과 나눈 인터뷰를 엮어 <케이팝 응원봉 걸스>를 출간했다. 일명 ‘빠순이’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열렬한 여성팬을 일컫는 멸칭이었다. ‘오빠 순이’의 줄임말, 낮잡는 의미의 접미사 ‘-순이’가 붙은 이 말에는 여성과 대중문화를 낮게 보는 시선이 박혀 있다. 이들을 바라보던 부정적 시선이 바뀐 것은 K팝이 ‘수출 효자 상품’이 되면서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팬덤은 K팝을 키워낸 한 축으로 평가된다. -
여적 73년 만의 해외입양 중단 한국전쟁 직후 가난한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다른 나라로 입양 보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혼혈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는 명목하에 해외입양을 추진했다. 휴전 첫해인 1953년 혼혈아동 4명을 미국으로 보낸 게 시작이었다. 이듬해 ‘한국아동양호회’(대한사회복지회 전신)라는 입양기관이 만들어졌고, 미국 농부였던 해리 홀트가 1956년 ‘홀트양자회’를 설립해 해외입양을 이끌었다. -
여적 극장 구독권 집집마다 배달돼 소비되는 구독 서비스의 원조는 신문과 우유다. 매달 꼬박꼬박 돈 내고 유·무형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는 구독 서비스는 이제 생활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넘어 음식이나 생필품뿐 아니라 택시·가전제품, 심지어 가구나 자동차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바야흐로 돈만 내면 뭐든지 구독할 수 있는 세상이다. -
여적 국민 노래 된 ‘나는 반딧불’ 노래의 힘은 막강하다. 한 소절이면 그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문득 옛 연인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 노래를 들었던 특정한 장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 그땐 그랬지.” 그렇게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간다. 한국인은 듣는 것만큼 부르기도 좋아한다. 덕분에 골목마다 노래방이 넘쳐났었다. 한때 회식 2차는 노래방이 필수이던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노래방 문화는 쇠퇴했지만, 눈치 안 보고 노래 부르기엔 노래방이 제격이다. 누구나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 한두 곡은 있기 마련이다. 직장에선 곡명만 봐도 누가 부를지 다들 알았다. 트로트나 철 지난 발라드는 임원급이나 중간 간부 차지였다. 젊은 사원들이 부르는 최신곡이나 리메이크곡은 새로움·변화·재발견 같은 거였다. 잘은 못 불러도 서로 따라 부르다 보면 세대가 연결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목청껏 내지르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는 덤이었다. -
여적 좁고 화나는 ‘미국 가는 길’ 십수년 전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는 비자를 받으려는 줄이 담장을 두르고 길게 늘어섰다. 약속을 잡아도 몇시간씩 기다리기가 예사였다. 내라는 서류는 왜 그렇게 많은지… 절차도 번거로웠다. 한참을 기다리다 마주한 영사의 질문에 조심스레 답하고 나서야 비자가 나왔다. 한국이 2008년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에 가입하기 전까진 그랬다. -
여적 쿠팡, 탈팡, 갈팡 정말 화가 난다. 이번에야말로 쿠팡을 끊으려 했건만, 절차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소셜미디어 약자로 ‘탈팡’, 즉 쿠팡 탈퇴는 PC에서만 가능하다. 모바일 앱에선 ‘마이쿠팡’의 ‘회원정보 수정’을 눌러 PC 버전을 선택한 뒤 ‘본인 인증’ ‘이용내역 확인’ ‘설문조사’ 등 총 6단계 과정을 거친다. 설문은 ‘쿠팡에 바라는 점’을 주관식으로 적어야 한다. 여기까지 왔어도, 다시 마우스를 위아래로 여러 번 이동하다, 페이지 맨 아래에 있는 ‘탈퇴’ 버튼을 찾아내야 끝이다. 이 정도면 미로찾기에 가깝다. 오죽하면 온갖 커뮤니티에서 ‘쿠팡 탈퇴’ 방법을 공유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까지 긴급 사실조사에 착수했을까. -
여적 홍콩의 애도 홍콩은 마천루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도시다. 그 독특함에 한몫 톡톡히 하는 게 건물 외관을 에워싼 ‘대나무 비계’(작업용 발판), 곧 ‘죽팡(竹棚·광둥어 발음)’이다. 홍콩영화에서도 아슬아슬한 대결을 펼치는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그 죽팡이 이번 홍콩 아파트 화재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걸로 전해진다. 지난 26일 화재가 발생한 홍콩 타이포의 32층짜리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는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와 공사용 안전망이 불길을 키웠다고 한다. 30일 기준 146명이 사망했다. 실종자도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
여적 학교 급식실의 ‘건강권’ 학교에는 학생과 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다. 강사·여사님으로 불리는 ‘선생님 아닌 선생님’들이 일하는 또 다른 교실이 있다. 이들이 없다면 학교는 금세 멈춰 설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이라 불리지 못하는 이들의 처우는 늘 뒷전이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낮은 보수와 강도 높은 노동에 건강까지 위협받고 있다. ‘죽음의 급식실’이란 원성이 자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