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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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가사관리사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여성들에게 번듯한 이름은 사치였다. 1960년대 농촌 가정에서는 입 하나라도 덜 요량으로 어린 딸들을 도시 가정의 ‘식모’(食母)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던 식모는 말 그대로 ‘남의 집 일’을 하던 여성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당시 식모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집 안에서 구타와 학대, 성폭행 등이 일어났다. 경제성장 덕에 여성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 식모는 급감했다. 그 호칭도 가정부·파출부를 거쳐 가사도우미로 바뀌었다. 현재는 흔히 ‘아줌마’ ‘이모님’으로 불린다. 주로 중년 이상 여성들이 이 일에 많이 종사해 그렇게 불렸을 테다.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불릴 때 존중이 생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줌마’ ‘이모님’은 여성을 지칭하는 호칭일 뿐, 직업을 나타내는 명칭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엔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덧대어 있다. 막상 현실에선 ‘좋은 이모님 만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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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지구 열대화 1995년 미국 시카고 폭염은 기상 재난 그 이상이었다. 그해 7월13일 시카고 최고기온은 41도까지 치솟았다. 체감온도는 52도. 폭염은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폭염으로 73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취약계층이었다. 2003년 유럽에서는 역대급 폭염으로 7만여명이 사망했다. 프랑스에서만 1만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시카고 때와 비슷했다. 당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과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가?”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한국에 폭염이 덮친 해는 1994년과 2018년이 꼽힌다. 1994년엔 서울의 낮 기온이 38.4도까지 치솟았다. 한강 잠실 선착장에 시민들이 침구류를 들고 나와 노숙을 하기도 했다. 2018년도 푹푹 쪘다. 8월1일 강원 홍천 기온이 41도로 역대 최고 기록을 깼고, 서울은 39.6도를 찍었다. 그해 온열질환 사망자는 48명이었다. 이를 계기로 폭염은 법에 ‘자연 재난’으로 분류됐다. 폭염을 ‘소리 없는 재난’으로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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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휴머니스트 노회찬의 ‘길동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것” 노회찬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흘렀다. 그의 꿈은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출범했을 때 “인생 목표 절반을 이뤘다”고 했다. 나머지 절반은 진보정당이 집권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가 떠난 정의당은 양당 틈에서 당의 진로를 둘러싼 분열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태원 참사’ ‘전세사기’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늘 같은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는데 ‘함께 비’를 맞아줄 정치인은 난망해 보이는 이때 더욱 그리운 이름, 노회찬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로 유명해진 ‘6411 버스’를 기억한다. 2018년 7월23일, 그는 ‘드루킹’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마지막 말처럼 그는 “멈추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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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수상한 소포 주문한 적 없는 대만발 ‘수상한 소포’에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20일 울산에 기체 독극물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배달돼 이를 뜯어본 3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이송됐다. 다음날에는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에서 유해물질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돼 17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수상한 해외 우편물을 받았다는 신고는 23일까지 2000건에 육박한다. 다행히 소포에서 독극물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수사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2001년 10월 ‘탄저균 우편물 테러’ 사건이 미국 전역을 백색가루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해 10월 타블로이드지 ‘선’의 로버트 스티븐스가 사무실로 온 정체불명의 소포를 열어본 후 탄저병 양성반응을 보이다 사망했다. 이어 다른 언론사와 의회에도 치명적인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배달됐다. 이 테러로 모두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사건은 수사를 받던 세균 전문가 브루스 아이빈스가 기소를 앞두고 자살함으로써 어정쩡하게 종결됐다. 우편 테러범으로는 ‘유나바머’라 불린 미국의 수학자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악명이 높다. 그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망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1978년부터 17년간 수십명에게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죽이고 29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카진스키는 1996년 동생의 신고로 붙잡혀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이던 지난 6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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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다부동전적기념관 1989년 2월3일 노태우 대통령은 군 원로와 참전용사 등으로 구성된 ‘전쟁기념사업회’ 창립 멤버 159명과 만찬을 했다. 2월4일자 ‘대선배님 깍듯이 예우’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노 대통령은 만찬에서 전쟁기념관 건립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에는 이형근, 정일권, 백선엽 장군 등이 참석했다. 이듬해 9월28일 노 대통령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기공식에 참석했다. 1994년 6월 개관한 전쟁기념관은 조성 단계부터 전쟁을 미화하는 ‘공간’이라는 논란을 불렀다. 서울 한복판 전쟁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낄까? 전쟁을 ‘기념’하는 것은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역설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곳 전시물들 중에는 이런 취지와 동떨어진 것들이 다수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전시물들도 적지 않다. 1950년 6월28일 국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을 ‘북한군을 방어한 성공적인 전술’로 평가한다. 제주 4·3사건도 ‘공산좌익들의 선거 방해 책동’으로 설명한다. 군인 전사자의 추모 공간은 있지만 희생된 민간인을 기리는 추모공간은 없는 것도 빠지지 않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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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구단선(九段線) 중국에는 1900년도에 제작한 ‘중화국치지도’(中華國恥地圖)가 있다. ‘나라의 치욕을 보여 주는 지도’라는 이름의 이 지도는 중국 입장에선 청나라가 멸망한 교훈을 새겨 와신상담 끝에 만든 지도라고 하겠다. 그 이후에도 중국은 ‘국치 지도’를 만들어 반외세 투쟁에 활용했다. 1929년 국민당 정부도 중화국치지도를 제작했다. 지도에는 그때까지 상실한 중국의 실지(失地)를 표시했다. 당시 장제스 주석은 집무실에 이 지도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현재 이 지도는 미국 국회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947년 국민당 정부는 남중국해에 가상경계선인 11단선(11段線)을 그었다. 11단선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해안선을 따라 U자형으로 그어져 있다. 이것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중심에 있는 ‘구단선’으로 바뀐 것은 중국 공산당 정권 때다. 1953년 11개의 선을 9개로 줄여 새 지도를 만들었다. 구단선을 적용하면, 남중국해의 90%가 중국 영해에 속한다. 주변국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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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내셔널지오그래픽 미국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구의 일기장’이라고 불린다. 그 시작은 1888년으로 올라간다. 그해 1월27일 초대 발행인이던 가드너 허버드(1822~1897)가 지리학자와 생물학자, 은행가들을 모아 ‘내셔널지오그래픽 협회(NGS)를 만들었다. 협회는 그해 10월 첫 호를 발간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는 갈색 표지에 기사만 가득한 밋밋한 잡지였다. 지금 잡지의 위상을 개척한 것은 길버트 그로스버너이다. 그가 1899년 편집인이 되면서 잡지를 사진 중심으로 개편했다. 그 후 사람들은 상상만 했던 극지·오지의 생생한 풍경을 잡지를 통해 보게 됐다. 탐험가인 조셉 록은 중국 티베트의 고산지역을 20년 이상 누비며 소수민족 생활상을 취재해 잡지에 소개했다. 그의 답사보고서는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작품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의 낙원을 이르는 곳으로 영어사전에도 등재됐다. 잡지는 1985년 침몰한 타이태닉호를 사진에 담아 최초로 발표했고,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등 많은 탐험 현장에 함께했다. 탐험가들의 이런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잡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프랑스 작가 르클레지오가 제주 해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이 잡지를 보고 나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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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집회·결사의 자유 옥죄려는 윤 정부, 국민의 말 겸허하게 들어야” 정보라 작가는 소설을 쓰고 번역하고, 데모를 한다. 지난해 소설집 <저주토끼>가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시민 정보라’의 행보는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시위 현장 어디선가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정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경향신문사에서 했다. 그는 전날에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는 시민대책위 기자회견에 갔다 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엔 시간강사로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수당 청구 재판이 있었다. 2021년 강의를 그만둔 정 작가는 연세대와 11년치 퇴직금·수당 청구 소송 중인데, “대법원까지 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박근혜 정부 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간여’ 의혹을 받는 오정희 소설가의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다 문화예술인들이 끌려 나가는 일이 벌어지자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정 작가는 분개했다. 그는 “도서전에서 시인을 끌고 나가 내동댕이치는 것이 공권력이 할 짓이냐”며 대통령경호실의 위법 문제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와 도서전을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옥죄려는 이 나라가 문제”라면서 “국민이 할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고, 정부가 잘못했으면 겸허하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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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용병 쿠데타 2022년 2월24일, 러시아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폭탄이 날아들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하르키우에 살던 12세 소녀 예바 스칼레츠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바는 그날부터 일기를 썼다. “손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두려움에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예바가 쓴 일기는 영국의 방송사 전파를 타면서 책으로도 출판됐다. 우크라이나판 ‘안네의 일기’인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은 해를 넘기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황은 교착 상태다. 전 세계가 러시아가 자행한 대학살을 목격했다. 이 살육 전쟁에서 러시아 측 주요 작전을 수행한 이들은 군인이 아닌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에 속한 용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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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50일 만의 분신노동자 영결식 벌써 50일이 지났다. 지난달 1일 정부의 ‘건폭몰이’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진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영결식이 21일 서울 도심에서 빗속에 치러졌다. 노동시민사회장은 서울대병원을 출발해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광화문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경찰은 펜스를 설치하고 교통 방해를 이유로 행렬을 막아섰다. “가세, 가세. 노동존중 참세상으로 가세.” 거리엔 양씨를 떠나보내는 만장 행렬과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양씨 분신 후 건설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과는커녕 대통령이 시작한 ‘노조 때리기’는 보수언론·여당까지 이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조선일보의 ‘자살을 방관했다’는 왜곡 보도에 의혹을 부추기더니 국회에선 “석연치 않은 마음에 변함이 없다”는 말로 2차 가해를 했다. 끝내 영결식까지, 양씨는 정부·공권력·언론 어디로부터도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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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남산 곤돌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25년 남산 꼭대기에 조선신궁을 세웠다. 한국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1918년부터 남산 중턱의 수목을 베어내고 경성의 랜드마크로 신궁을 지은 것이다. 당시 경성 유람이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기차 타고 경성역(서울역)에 도착해 남대문을 구경한 후 신궁이 있는 남산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곤 했다.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남산은 명소가 됐다. <봄, 봄>을 쓴 작가 김유정(1908~1937)도 휘문고보 시절, 같은 반 친구인 월북 작가 안회남(1909~?)과 죽이 맞아 학교 수업을 종종 빼먹고 남산에 올라가 놀았다고 했다.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한국통감부와 통감관저가 들어선 곳도 남산(예장동)이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통감부가 있었던 자리에 중앙정보부를 둬 장기 집권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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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AI가 만드는 비틀스 신곡 지난해 6월25일 밤 영국 서머싯 글래스턴베리 축제에서 폴 매카트니가 부르는 ‘아이브 갓 어 필링’이 울려 퍼졌다. 곡이 후렴구로 치닫던 순간 객석에서 갑자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존 레넌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재생됐고, 이에 맞춰 매카트니가 듀엣처럼 노래를 한 것이다. 1970년 4월 비틀스 해체 후 52년 만에 성사된 두 사람의 합동 공연이었다. 매카트니는 레넌과의 합동공연을 위해 다큐멘터리 <비틀스: 겟 백>을 연출한 피터 잭슨 감독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1980년 사망한 레넌의 목소리를 음반에서 추출해 무대를 꾸몄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잭슨 감독은 비틀스 팬으로 알려져 있다. <비틀스: 겟 백>은 그가 미공개 영상과 오디오 자료를 토대로 완성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