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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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베끼기와 창조 차이…편집 차원에 있었다 ‘천재’이자 ‘혁신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스티브 잡스는 과연 무엇을 ‘창조’했는가? 실상 그가 바닥에서부터 직접 만들어낸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초기 애플은 소니를 베끼기로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목 폴라도 소니의 유니폼을 만든 이세이 미야케의 제품이다. 대신 그는 편집을 통해 새로운 맥락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대가였다. ‘창조의 핵심은 편집’이라는 내용을 담은 <에디톨로지>를 쓴 김정운 문화심리학자가 10년 만에 내놓은 1000쪽이 넘는 후속작 성격의 책이다. <창조적 시선>의 주된 테마는 <에디톨로지>와 마찬가지로 창조와 편집이다. 1919년부터 33년까지 운영된 독일의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를 주축으로 20세기 ‘창조’의 역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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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잠자는 공주를 깨운 이는 없다, 스스로 일어났을 뿐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작중 ‘잠자는 숲속의 공주(아이다)’에겐 사실 ‘마야’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오랜 세월 저주를 받아 잠든 동안 ‘깨어 있는 공주’는 무엇을 했을까? 리베카 솔닛은 ‘다시 쓰는 동화’ 시리즈 전작인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결혼 대신 주변인들을 해방시키는 식으로 플롯을 뒤집었던 것처럼,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원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상을 펼쳐낸다.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이다는 저주에 빠져 100년 동안 깊은 잠에 드는데,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에선 원작과는 달리 세 명의 주요 인물의 이야기 세 가닥이 타래로 엮인다. 잠든 공주 아이다와 여동생 마야, 그리고 러시아 민담 ‘불새’에서 착안한 아틀라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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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매혹당하라, 허전함을 채워줄지니 오늘날은 지루할 틈이 없는 시대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감정을 마주할 틈이 없다. 휴대폰만 잠깐 만져봐도 수많은 뉴스와 사건·사고, 유머, 영화, 만화 등이 쏟아진다. 수많은 볼거리에 노출돼 있음에도 우리는 왜 문득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까? 에세이스트 캐서린 메이가 쓴 책 제목인 ‘인챈트먼트’는 우리말로 ‘매혹’이란 뜻이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과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 거기서 얻는 충만함이 매혹이다. 우리 선조들이 숭배했던 나무와 돌, 샘과 같은 자연의 사물들이 드러내는 성스러움의 시현, 절대적 진실인 ‘히에로파니’에 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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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신의 저주 ‘합스부르크 턱’, 딸의 병을 숨긴 펄벅…명암 가득한 유전학의 역사 16~17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징이었던 ‘주걱턱(합스부르크 턱)’은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자 이상이 이유로 지적된다. 이 밖에도 왕가의 인물들은 건강상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당시 펠리페 4세(1605~1665)는 자녀들 다수가 잇달아 요절하자 “자기가 여배우들에게 탐닉한 탓에 자식들이 이른 나이에 죽는 것”이라며 자책했다. 오늘날 같은 ‘유전’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에 따르면 18~19세기 이전까지만해도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과학적 ‘유전학’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전(heredity)’이란 단어는 상속받는 ‘유산’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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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여성’ 보디빌더라는 이유로 전설적인 보디빌더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딩에서의 수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함은 승리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강함을 위한 당신의 분투에서 온다. 만약 당신이 지옥 같은 수련을 버텨낼 각오가 되어있다면 그것이 바로 강함이다.” 꼭 선문답같지만 본래 보디빌딩 수련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내적 극기’를 중시한다. 끊임없는 반복만이 강인하고 균형잡힌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수한 담금질 끝에 빚어진 완벽한 근육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인간 승리’의 서사로 칭송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바라보는 대외적인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 출연한 한 여성 보디빌더는 외모 악플에 시달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남들이 나를 뭐라고 하건 나는 내 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말을 하게 된 데는 복잡한 맥락이 있지만, 분명한 점은 이는 남성 보디빌더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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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6세기엔 분노, 오늘날엔 공감·혐오…시대별 다른 감정 표출 이순신은 <난중일기> 초입 15개월간 무려 38회 “분노”한다. 숱한 승리에도 ‘기쁨’이라는 감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화가 나는 일엔 분노한다. 슬픈 일엔 슬픔을 표현한다.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일이지만, 시대에 따라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품는 주된 감정은 모두 달랐다. 우리가 ‘감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과거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사학자 김학이는 <감정의 역사>에서 다양한 문헌 등에 드러난 독일 사람들의 16~20세기 감정의 변화를 살펴본다. 그는 감정이란 “도덕 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이며 시대별 ‘대표 감정’이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6세기의 의사 파라켈수스는 폐와 별 등이 모두 분노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누군가가 페스트를 “두려워”하면 페스트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던 16세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면서 점차 개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하지만 다시금 나치 시대에 들어서며 노동자들을 “영혼을 갖춘 모터”처럼 “차분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노동자, 시민들이 ‘무관심’하면 사회 정의 따윈 상관없이 각자의 삶과 생산성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늘날은 가히 ‘감정의 시대’라고 할 만큼 감정 관련 산업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살게 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어떤 감정에 얽매여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대표 감정으로 “공감”과 “혐오”를 꼽은 역사학자 피터 스턴스의 주장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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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질문 없는 사회’의 해답, 챗GPT에 물어도 될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책이 있는데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챗GPT의 ‘대담’집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입니다. 저자인 김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질문을 제대로 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챗GPT에 단순한 질문을 집어넣으면 훌륭한 답이 안 나오고, 신경 쓴 질문을 해야 쓸 만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고개를 여러번 갸웃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를 의아함은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의문의 정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체로 책 속 대화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한쪽은 묻고 한쪽은 답하는 구조였으며, 그 질문도 최대한 ‘내가 의도한 대로’ 답변을 받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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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일본 대지진 피해자 돌본 경험으로 쓴 ‘재난 이후’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무려 6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고베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 근무하던 의사 안 가쓰마사가 지진 이후 약 3년간 “재난의 안”에서 직접 이재민들의 상처를 돌본 기록이다. 이 책이 독특한 부분은 재난의 순간보다도 ‘재난 이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사람들은 재난의 순간, 무너진 교각과 빌딩의 장면에 주목하곤 하지만, 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집이 무너졌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다만 “지난 3년의 세월을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재난 이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만성화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지진 이후 가정 폭력, 학교 내 괴롭힘 등이 늘어난 장면을 다룬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지진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있던 문제가 지진을 통해 증폭된 것인가. 오히려 재난의 순간엔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이런 현상을 재난심리학에선 ‘재난 허니문’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세상은 이재민들만 두고 돌아가고 이들은 가난하고 이해되지 못한 채 뒤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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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챗GPT ‘복붙’으로 인스피아 쓰기…진짜 사람 같은 글 가능할까요 지난해 11월 말 출시된 오픈AI의 ‘챗GPT’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드디어 특이점(singularity)이 왔다!”고 외치기도 했는데요. 챗GPT는 론칭 후 불과 40일 만에 1000만 사용자를 모았고, 지난 1월 월간 사용자 수 1억명을 넘겼으며, 지난 10일 정식 유료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챗GPT가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AI)’인 만큼 관련된 분야는 실로 방대합니다만, 저는 주로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해찰을 해볼까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스피아에 챗GPT를 활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응답을 얻기까지의 궤적입니다. 현시점에 국한한 제 나름의 해찰입니다만, 최대한 진심을 쏟아 질문을 던지고 독자분들도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해보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얘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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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가깝고도 먼 외딴섬 같은 우리…노크해 볼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최근 ‘외로움 산업’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코로나19로 외로운 사람이 늘면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집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단란하게 파티 음식을 나누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저를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멍하니 있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퇴근 시간 지하철에 가득한 직장인들은 사진 속 즐거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달리 이쪽 낯선 사람들은 각자 지치고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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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잔혹한 시대,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과 ‘위법’은 과연 죄일까 지난 9일 프랑스 사진작가 아돌포 카민스키(Adolfo Kaminsky)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프랑스계 유대인인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1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해낸 레지스탕스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고가 실린 신문을 읽다가 문득 눈길이 머문 대목이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의 제목 두 개 모두 <아돌포 카민스키, 위조꾼의 인생> <위조꾼>이었다는 점이었죠. 즉 그의 레지스탕스 활동의 핵심은 ‘위조’였습니다. 카민스키는 처음부터 위조꾼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수십 년간 해왔을까? 등이 궁금해져서 조금 해찰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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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5개 도시 그림에 담긴 중세, 근·현대의 풍경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밀한 관측 기술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오랜 노력을 기울여 이런 ‘예술품’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건축·도시학자 손세관은 <도시의 만화경>에서 동서양 도시 15곳을 그려낸 지도를 통해 중세에서 근현대로 이행하던 시기 사람들의 삶을 읽어낸다. 지도엔 당대의 현실과 동경, 지향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의 제목이 <도시의 만화경>인 이유다. 중국 카이펑의 모습을 담은 12세기 장택단의 그림 ‘청명상하도’는 6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 60마리 이상의 가축, 선박 등이 등장해 ‘송대의 백과사전’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