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원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책과 삶 베끼기와 창조 차이…편집 차원에 있었다 창조적 시선김정운 지음아르테 | 1028쪽 | 10만8000원 ‘천재’이자 ‘혁신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스티브 잡스는 과연 무엇을 ‘창조’했는가? 실상 그가 바닥에서부터 직접 만들어낸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초기 애플은 소니를 베끼기로 유명했다. 스티브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목 폴라도 소니의 유니폼을 만든 이세이 미야케의 제품이다. 대신 그는 편집을 통해 새로운 맥락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대가였다.
-
그림책 잠자는 공주를 깨운 이는 없다, 스스로 일어났을 뿐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리베카 솔닛 글·아서 래컴 그림·홍한별 옮김반비 | 64쪽 | 1만7000원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작중 ‘잠자는 숲속의 공주(아이다)’에겐 사실 ‘마야’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오랜 세월 저주를 받아 잠든 동안 ‘깨어 있는 공주’는 무엇을 했을까? 리베카 솔닛은 ‘다시 쓰는 동화’ 시리즈 전작인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가 왕자와의 결혼 대신 주변인들을 해방시키는 식으로 플롯을 뒤집었던 것처럼,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에서도 원작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상을 펼쳐낸다.
-
책과 삶 매혹당하라, 허전함을 채워줄지니 인챈트먼트캐서린 메이 지음·이유진 옮김디플롯 | 300쪽 | 1만7800원 오늘날은 지루할 틈이 없는 시대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감정을 마주할 틈이 없다. 휴대폰만 잠깐 만져봐도 수많은 뉴스와 사건·사고, 유머, 영화, 만화 등이 쏟아진다. 수많은 볼거리에 노출돼 있음에도 우리는 왜 문득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까? 에세이스트 캐서린 메이가 쓴 책 제목인 ‘인챈트먼트’는 우리말로 ‘매혹’이란 뜻이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과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 거기서 얻는 충만함이 매혹이다. 우리 선조들이 숭배했던 나무와 돌, 샘과 같은 자연의 사물들이 드러내는 성스러움의 시현, 절대적 진실인 ‘히에로파니’에 접하는 것이다.
-
책과 삶 신의 저주 ‘합스부르크 턱’, 딸의 병을 숨긴 펄벅…명암 가득한 유전학의 역사 웃음이 닮았다칼 짐머 지음·이민아 옮김사이언스북스 | 880쪽|5만원 16~17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징이었던 ‘주걱턱(합스부르크 턱)’은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자 이상이 이유로 지적된다. 이 밖에도 왕가의 인물들은 건강상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당시 펠리페 4세(1605~1665)는 자녀들 다수가 잇달아 요절하자 “자기가 여배우들에게 탐닉한 탓에 자식들이 이른 나이에 죽는 것”이라며 자책했다. 오늘날 같은 ‘유전’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책과 삶 ‘여성’ 보디빌더라는 이유로 나의 친구, 스미스이시다 가호 지음·이영미 옮김문학동네 | 170쪽 | 1만4000원 전설적인 보디빌더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딩에서의 수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강함은 승리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강함을 위한 당신의 분투에서 온다. 만약 당신이 지옥 같은 수련을 버텨낼 각오가 되어있다면 그것이 바로 강함이다.” 꼭 선문답같지만 본래 보디빌딩 수련은 ‘보이는 것’만큼이나 ‘내적 극기’를 중시한다. 끊임없는 반복만이 강인하고 균형잡힌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수한 담금질 끝에 빚어진 완벽한 근육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인간 승리’의 서사로 칭송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바라보는 대외적인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 출연한 한 여성 보디빌더는 외모 악플에 시달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남들이 나를 뭐라고 하건 나는 내 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말을 하게 된 데는 복잡한 맥락이 있지만, 분명한 점은 이는 남성 보디빌더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말이라는 것이다.
-
책과 삶 16세기엔 분노, 오늘날엔 공감·혐오…시대별 다른 감정 표출 감정의 역사김학이 지음푸른역사 | 528쪽 | 2만9500원 이순신은 <난중일기> 초입 15개월간 무려 38회 “분노”한다. 숱한 승리에도 ‘기쁨’이라는 감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화가 나는 일엔 분노한다. 슬픈 일엔 슬픔을 표현한다.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일이지만, 시대에 따라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품는 주된 감정은 모두 달랐다. 우리가 ‘감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과거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
인스피아 ‘질문 없는 사회’의 해답, 챗GPT에 물어도 될까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챗GPT의 대담집최대한 ‘의도한 대로’ 답변 유도한 듯한 질문들에 고개 갸웃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불확실한 세계에 나를 열어두고다른 이와 ‘함께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순간 아닐까 ‘모른다’는 말 하지 않는 챗GPT모든 질문에 정답 있을 거란 착각 줄 뿐‘좋은 질문’ 하는 법 배우긴 어려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책이 있는데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챗GPT의 ‘대담’집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입니다. 저자인 김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질문을 제대로 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챗GPT에 단순한 질문을 집어넣으면 훌륭한 답이 안 나오고, 신경 쓴 질문을 해야 쓸 만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고개를 여러번 갸웃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를 의아함은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의문의 정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체로 책 속 대화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한쪽은 묻고 한쪽은 답하는 구조였으며, 그 질문도 최대한 ‘내가 의도한 대로’ 답변을 받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
책과 삶 일본 대지진 피해자 돌본 경험으로 쓴 ‘재난 이후’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안 가쓰마사 지음·박소영 옮김후마니타스|320쪽|1만8000원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무려 6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고베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 근무하던 의사 안 가쓰마사가 지진 이후 약 3년간 “재난의 안”에서 직접 이재민들의 상처를 돌본 기록이다.
-
인스피아 챗GPT ‘복붙’으로 인스피아 쓰기…진짜 사람 같은 글 가능할까요 지난해 11월 말 출시된 오픈AI의 ‘챗GPT’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드디어 특이점(singularity)이 왔다!”고 외치기도 했는데요. 챗GPT는 론칭 후 불과 40일 만에 1000만 사용자를 모았고, 지난 1월 월간 사용자 수 1억명을 넘겼으며, 지난 10일 정식 유료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챗GPT가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AI)’인 만큼 관련된 분야는 실로 방대합니다만, 저는 주로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해찰을 해볼까 합니다.
-
인스피아 가깝고도 먼 외딴섬 같은 우리…노크해 볼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낯선 이와 대화해 본 적 있나요?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교류 기회를 놓치고 있진 않나요? 최근 ‘외로움 산업’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코로나19로 외로운 사람이 늘면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집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단란하게 파티 음식을 나누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저를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
인스피아 잔혹한 시대,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과 ‘위법’은 과연 죄일까 프랑스계 유대인 카민스키는 1만여명의 목숨을 구한 레지스탕스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나치 치하 유대인을 위해 여권·문서를 위조했다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부당 징집·반전 운동가를 위한 위조 계속“위조자로서 나의 삶은 불평등, 인종 차별, 독재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지난 9일 프랑스 사진작가 아돌포 카민스키(Adolfo Kaminsky)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프랑스계 유대인인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1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해낸 레지스탕스입니다.
-
책과 삶 15개 도시 그림에 담긴 중세, 근·현대의 풍경 도시의 만화경손세관 지음도서출판 집 | 608쪽 | 3만2000원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밀한 관측 기술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오랜 노력을 기울여 이런 ‘예술품’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건축·도시학자 손세관은 <도시의 만화경>에서 동서양 도시 15곳을 그려낸 지도를 통해 중세에서 근현대로 이행하던 시기 사람들의 삶을 읽어낸다. 지도엔 당대의 현실과 동경, 지향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의 제목이 <도시의 만화경>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