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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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6세기엔 분노, 오늘날엔 공감·혐오…시대별 다른 감정 표출 이순신은 <난중일기> 초입 15개월간 무려 38회 “분노”한다. 숱한 승리에도 ‘기쁨’이라는 감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화가 나는 일엔 분노한다. 슬픈 일엔 슬픔을 표현한다.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일이지만, 시대에 따라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품는 주된 감정은 모두 달랐다. 우리가 ‘감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과거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사학자 김학이는 <감정의 역사>에서 다양한 문헌 등에 드러난 독일 사람들의 16~20세기 감정의 변화를 살펴본다. 그는 감정이란 “도덕 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이며 시대별 ‘대표 감정’이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6세기의 의사 파라켈수스는 폐와 별 등이 모두 분노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누군가가 페스트를 “두려워”하면 페스트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던 16세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면서 점차 개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하지만 다시금 나치 시대에 들어서며 노동자들을 “영혼을 갖춘 모터”처럼 “차분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노동자, 시민들이 ‘무관심’하면 사회 정의 따윈 상관없이 각자의 삶과 생산성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늘날은 가히 ‘감정의 시대’라고 할 만큼 감정 관련 산업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살게 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어떤 감정에 얽매여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대표 감정으로 “공감”과 “혐오”를 꼽은 역사학자 피터 스턴스의 주장을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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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질문 없는 사회’의 해답, 챗GPT에 물어도 될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책이 있는데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와 챗GPT의 ‘대담’집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입니다. 저자인 김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는 질문을 제대로 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챗GPT에 단순한 질문을 집어넣으면 훌륭한 답이 안 나오고, 신경 쓴 질문을 해야 쓸 만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고개를 여러번 갸웃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를 의아함은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의문의 정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체로 책 속 대화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한쪽은 묻고 한쪽은 답하는 구조였으며, 그 질문도 최대한 ‘내가 의도한 대로’ 답변을 받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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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일본 대지진 피해자 돌본 경험으로 쓴 ‘재난 이후’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무려 6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고베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 근무하던 의사 안 가쓰마사가 지진 이후 약 3년간 “재난의 안”에서 직접 이재민들의 상처를 돌본 기록이다. 이 책이 독특한 부분은 재난의 순간보다도 ‘재난 이후’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사람들은 재난의 순간, 무너진 교각과 빌딩의 장면에 주목하곤 하지만, 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집이 무너졌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다만 “지난 3년의 세월을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재난 이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만성화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지진 이후 가정 폭력, 학교 내 괴롭힘 등이 늘어난 장면을 다룬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지진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있던 문제가 지진을 통해 증폭된 것인가. 오히려 재난의 순간엔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이런 현상을 재난심리학에선 ‘재난 허니문’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세상은 이재민들만 두고 돌아가고 이들은 가난하고 이해되지 못한 채 뒤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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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챗GPT ‘복붙’으로 인스피아 쓰기…진짜 사람 같은 글 가능할까요 지난해 11월 말 출시된 오픈AI의 ‘챗GPT’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드디어 특이점(singularity)이 왔다!”고 외치기도 했는데요. 챗GPT는 론칭 후 불과 40일 만에 1000만 사용자를 모았고, 지난 1월 월간 사용자 수 1억명을 넘겼으며, 지난 10일 정식 유료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챗GPT가 ‘텍스트 생성 인공지능(AI)’인 만큼 관련된 분야는 실로 방대합니다만, 저는 주로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어 해찰을 해볼까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인스피아에 챗GPT를 활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응답을 얻기까지의 궤적입니다. 현시점에 국한한 제 나름의 해찰입니다만, 최대한 진심을 쏟아 질문을 던지고 독자분들도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생각해보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얘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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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가깝고도 먼 외딴섬 같은 우리…노크해 볼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최근 ‘외로움 산업’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코로나19로 외로운 사람이 늘면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집에서 낯선 사람들이 모여 단란하게 파티 음식을 나누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저를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멍하니 있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퇴근 시간 지하철에 가득한 직장인들은 사진 속 즐거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달리 이쪽 낯선 사람들은 각자 지치고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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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잔혹한 시대,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과 ‘위법’은 과연 죄일까 지난 9일 프랑스 사진작가 아돌포 카민스키(Adolfo Kaminsky)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프랑스계 유대인인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1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해낸 레지스탕스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고가 실린 신문을 읽다가 문득 눈길이 머문 대목이 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의 제목 두 개 모두 <아돌포 카민스키, 위조꾼의 인생> <위조꾼>이었다는 점이었죠. 즉 그의 레지스탕스 활동의 핵심은 ‘위조’였습니다. 카민스키는 처음부터 위조꾼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수십 년간 해왔을까? 등이 궁금해져서 조금 해찰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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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15개 도시 그림에 담긴 중세, 근·현대의 풍경 “도시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말이 있다. 정밀한 관측 기술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오랜 노력을 기울여 이런 ‘예술품’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건축·도시학자 손세관은 <도시의 만화경>에서 동서양 도시 15곳을 그려낸 지도를 통해 중세에서 근현대로 이행하던 시기 사람들의 삶을 읽어낸다. 지도엔 당대의 현실과 동경, 지향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의 제목이 <도시의 만화경>인 이유다. 중국 카이펑의 모습을 담은 12세기 장택단의 그림 ‘청명상하도’는 6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 60마리 이상의 가축, 선박 등이 등장해 ‘송대의 백과사전’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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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다른 삶 향한 호기심, 변화의 시작입니다 지난달 25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0년대 서울의 철거촌 ‘행복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도시 빈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도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 문학 작품 최초로 300쇄를 넘기기도 했는데요. 이는 가히 ‘난쏘공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언론은 조 작가의 부고를 전하며 씁쓸한 어조로 “여전히 난쏘공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와 오늘날의 큰 차이가 있다면, ‘2023년 버전의 난쏘공 현상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2023년의 가난에는 ‘얼굴’이 없습니다. 1960년대 소설 속 ‘달걀 지단 든 김밥’을 소풍에 못 싸가서 울상을 짓는 아이가 여전히 가난의 상징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오늘날엔 적당히 달걀 김밥 정도는 싸갈 수 있으니 모두가 가난에서 벗어나 잘살게 된 것일까요? “여전히 난쏘공 세상”이라는데 가난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가난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단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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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취직 때문에 아픈 머리 어디서 치료 받나요 머리가 욱신대서 신경과에, 배가 아파 내과에 간다. 살이 쪄서 비만 클리닉에 간다. 그런데 머리가 아픈 이유가 취직 등 좌절 때문이라면, 폭식의 이유가 우울이라면 과연 전문의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다고 해결이 될까?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는 내과의에서 정신과 의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질병에 정신 문제가 상상 이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저자는 ‘정신 질환’과 ‘육체 질환’의 모호한 경계를 탐색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학과를 찾은 환자 중 전문의가 의학적으로 병세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경우는 34%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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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피아 광장, 사랑방, 놀이터…그것이 도서관 독자님은 도서관에 자주 다니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회사 근처에 커다란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인스피아를 시작하고 나선 한층 더 자주 오가게 되었고요. 최근 서울 마포구청장이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의 예산 삭감, 축소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었는데요. 반발이 커지자 구청 측은 기존 도서관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독서실’로서의 기능을 더하겠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도서관, 지역 시민단체들은 마포구의 작은도서관 축소, 폐관 조치에 맞서 청원을 진행했습니다. 도서관은 ‘독서실’이 될 수 있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도서관을 사랑할까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시대에 도서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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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함께했지만 함께 못할 자연…무심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힘 해가 뉘엿할 즈음 텐트 앞 모닥불을 피워두고 휴식을 취하려던 두 명의 사냥꾼 뒤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보인다. 한 명은 수상한 낌새를 채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필립 굿윈(1881~1935)의 <곰이다!>에서 곰은 ‘불쑥 튀어나와 위협하는’ 타자다. 한편 다케우치 세이호의 <눈속의 곰>(1940) 속 고요한 화폭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곰의 평균수명은 약 26년인데 이 중 짝을 이루고 새끼를 보살피는 2년을 제외하면 줄곧 야생에서 혼자 산다. 무리짓지 않는 고독한 삶이다. 곰을 단순히 ‘사냥감’이라든지 위협하는 ‘맹수’로 인식하는 시선으로는 주목할 수 없을 곰의 자연스러운 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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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로 여는 책 스물네 살·서른네 살·열세 살…마침내 자연스럽게 늙을 자유를 얻은 얼굴들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동물로부터 ‘삶’뿐 아니라 ‘늙음’도 빼앗아간다. ‘치킨’이 되는 닭의 수명은 약 1~2개월이다. 케이지 속 닭은 빠르게 태어나고 빠르게 죽을수록 돈이 된다. 이 때문에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지에 집중한다. 동물들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되어 최악의 삶을 산다. 그마저도 제 수명을 훨씬 못 채운 채 지극히 ‘효율적’인 죽음을 맞는다. 자연상태라면 십수년까지도 살다 늙어 죽을 수 있었던 생명이다. 이샤 레슈코의 <사로잡는 얼굴들>은 공장식 축산 시설 등에서 구출된 뒤 여생을 제 수명대로 늙어가고 이제 죽음을 앞둔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