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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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더 힘들게 일할 자유 주겠다? 202×년, 대한민국 최저임금 패러다임이 교체된다. 최저라 할지라도 삶의 존엄성이 무너져선 안 된다는 헌법정신은, “150만원으로도 일하겠다는 걸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냐”는 대통령의 선거 전 주장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도입된 건, 더 힘들게 살 자유를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최저가 경쟁입찰’이었으니 풍경 몇 조각을 보자. 이른 새벽, 인력사무소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오늘만이라도 일용직 노동자가 되길 희망하는 이들이다. 잠시 후 건설현장의 관리자라는 사람이 방문하여 단순직 희망자를 찾는다며 말한다. “자, 최저임금 9160원부터 시작하죠. 네, 9100원 나왔네요. 아, 8500원 손 드셨습니다. 이제 없습니까? 하나, 둘, 아! 7900원? 어? 6900원 나왔습니다. 대박입니다. 마감합니다! 낙찰자는 봉고차에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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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차별금지법이 가져올 천국 청소년들과 이들의 보호자를 상대로 비대면 강연 중이었다. 흐름상 질의응답은 강연 끝에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주제는 인권, 평등 등 꽤나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누군가는 이를 낯설게 받아들이면서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불쑥 들어오는 아무개의 이야기를 막을 순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왜 학생들 앞에서 동성애를 선동해요?” 나는 동성혼이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결혼의 기본값을 이성끼리의 결합‘만’으로 고정시킬 수 없다는 신호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성애자들은 이성애자 만나서 이러쿵저러쿵 원래대로 살면 된다. 선동은, “소수자의 인권이 국민 다수의 인권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는 궤변과 괴담 속에 있다. 누군가가 차별받지 않을 변화가, 누군가를 예전처럼 차별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저울추에 올라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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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윤석열의 ‘이상한 경청’ 나는 안락사에 찬성한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나와 몇 마디 나눠보고 안락사를 허용하겠다고 하면 정말 황당할 것이다. ‘왜’를 물으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게 정치다. 고령화, 끝없는 경쟁, 의료비 부담, 가족주의 등 안락사 희망에는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실타래를 풀지 않고 안락사‘만’ 별다른 제약 없이 허용하면 공동체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윤석열의 공약은 놀랍다. 120시간을 일해야 하느니, 대학에서 무슨 인문학이니 등 그의 말이 어디서 들은 대로 뱉어지는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하겠다는 다짐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의견을 취합했다는데, 그걸 어떤 심의도 숙성도 가공도 없이 날것 그대로 정책화한다. 이를 공정이라고 포장하는 나쁜 버릇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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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골목은 백종원도 구원 못한다 바이러스 대처법이 나라마다 다를 리 없지만 같은 것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문화의 힘은 엄청나다. 마스크 착용을 개인 자유의 억압으로 받아들이고, 백신 접종 권고를 국가의 폭력으로 이해하면 방역정책이 옳은들 효과는 미진하다. 그런데 이게 수백년을 거쳐서 형성된 정서인지라 논리적으로 설명한들 고정관념은 견고하다. 거리 두기는 자영업자들이 영업제한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서 볼 땐 파격적인’ 지원금을, 그것도 여러 번 지급하면서 불씨의 번짐을 막았다. 파격을 파격이 아니라고 해석하니까 소모적인 논쟁도 없었다.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일할 자유를 빼앗겼으니 저들을 더 지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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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아프간 난민, 한국 오지 마라 조국을 떠나 절박한 심정으로 다른 나라의 문을 두드리며 하소연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여. 아무리 조급해도 대한민국으로는 오지 마세요. 사는 게 먼저이니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싶겠지만,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 수 있어요. 동방예의지국, 글로벌 선진국 등의 수식어에 희망의 끈을 걸어둔 것이라면 당장 끊으세요. 한국에서는요, 난민 수용에 인도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논의에 반론이 언제나 이 수준이죠. “너희 집에서 받아주면 되겠네.” 당신들은 근본주의자의 피해자이지만, 한국인들은 철조망에 매달리며 필사의 탈출을 하는 장면을 뉴스로 볼 때만 동정해요. 여기로 오겠다는 순간, 당신들은 ‘어찌 되었든 탈레반하고 종교가 같은 사람들’에 불과하죠. 저들처럼 테러를 저지를 것이고, 저들처럼 여성을 노예처럼 대한다면서 수군거리겠죠. 그런데 핵심은요, 저들처럼 행동하지 않은들 소용없다는 거죠. 한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이슬람은 기본값이 아니랍니다. 낯섦은 공포로 이어지고 혐오를 정당화하죠. 이슬람의 ‘이’ 자만 들어도 막말을 뱉는 사람 정말 많아요. 난민을 받으면 한국이 이슬람‘화’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부유하는 곳에서 사람 취급받길 기대하지 마세요. 인간의 존엄성조차 버릴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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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빈약한 사고의 시대 나는 첫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개인을 구원한다는 능력주의가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조명했다. 관련 강연도 수백번 했다.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일상에서 찾아보자는 내용이다. 시험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빈약한 사고가 누군가의 삶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리는 무례한 상상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면 꼭 이런 반응이 등장한다. “그럼 대안이 뭐죠?” 대안을 찾자는 게 아니라, 현 상황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친절히 말해도 반응은 차갑다. “학교라도 그만두라는 건가요?” 고정관념을 지지하는 중심부로 갈수록 빈정거림은 커진다. “선동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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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시험 공화국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논문 통과만이 아니라 학술지 논문 게재 실적이 있고 영어와 제2외국어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성가시게 했던 건 제2외국어였다. 다른 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였지만 고등학교 이후 작별했던 생소한 언어를, 그것도 ‘시험용’으로 공부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어마했다. 나는 독일어를 선택했는데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서야 턱걸이로 통과했다. 간절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합격이란 문자를 보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비생산적인 과정은 4~5년이 지나서 사라졌는데 내가 장난스럽게 으쓱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논문을 작성 중인 사람을 만나거나 대학원 후배들을 볼 때면 매번 “나는 독일어 시험도 쳤어!”라면서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한심한데, 시험이란 그렇다. 도대체 이게 왜 필요한지는 납득이 되지 않아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해야 한다. 그래서 공부가 아니라 답을 골라내는 직관과 오답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요령만을 체득한다. 이 효율성에 적응할수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합격의 순간 모든 건 긍정적으로 승화된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는 우쭐함과 관문을 정의롭게 통과했다는 오만함까지, 이 엄청난 감정들을 단지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 하나가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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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 첫 책이 나왔을 때는 이웃들에게 많이 나눠줬다. 나는 사회 비판서를 사람들이 얼마나 낯설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예의가 바르면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가 안 되네요’ 정도로 말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죠?’라면서 빈정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무례를 타고났겠는가. 익숙했던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구조 어쩌고저쩌고를 언급하는 주장은 무시해도 된다고 길들여졌기 때문일 거다. 불평등의 문제를 짚는 걸 지나치게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망상이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벽을 체험하고는 읽지도 않을 사람에게 책을 주는 일은 없었는데, 청소년용 도서가 나왔을 때 애들 친구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다.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가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사회 관련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요? 수능시험에 관련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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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고통의 평준화에 반대한다 “여자도 군대를 가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말을 대학 강의실에서 접할 때마다 친절하게 물어보곤 했다.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 그리고 남성 중심 사고가 만연한 사회임이 분명한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냐고 말이다. 물론 반론은 기계적이다. ‘왜 남자만 차별받는 것에는 모른 척하냐’는 논리만 반복된다. 이 수준이 유의미한 여론이라면서 정치권 이슈가 되더니 제도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등장한다. 남자가 국가로부터 차별받는다는 핵심이 사라진, ‘여자는 차별 안 받는다’는 좌표가 틀린 불만을 원초적으로 만족시키고자 하는 고통의 평준화 정책에 어떤 사회적 이익이 있단 말인가. 나는 26개월을 복무했고 이후 만 40세가 될 때까지 예비군, 민방위, 비상소집 고지서를 받았다. 이를 내 아내도 경험하면, 나의 짜증은 별거 아닌가? 내 딸이 ‘군대에 끌려가면’ 아들의 입대 전 불안, 복무 중 고충, 제대 후 불만이 감쪽같이 사라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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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댓글처럼 세상이 변한다면 인터넷의 댓글이 여론이 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당장 사형이 집행되겠지. 공권력에게 개인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냐는 말은 인면수심의 흉악범들을 옹호하는 것과 무관함에도 사람들은 ‘그게 그거라면서’ 빈정거리겠지. 강한 형벌이 좋은 사회를 보장한 역사가 없었다고 해도 ‘왜 저런 인간을 공짜로 밥 먹여 주냐’는 무적의 논리만 떠돌겠지. ‘잘못하면 죽어도 싸다’는 말이 어린이의 입에서도 등장하면 개인들끼리의 응징도 일상이 되겠지. 그곳에선 사형도 더 잔인한 등급으로 나눠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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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차라리 의사에게 파격 혜택을 병원의 대기실에는 전공의 진료거부 당시의 유인물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서울에 와서 진료가 가능한데, 지역에 근무할 의사를 배출할 공공의대가 왜 필요하냐는 내용을 보면서 작년의 불쾌감이 다시 떠올랐다. 오죽했으면 마음까지 먹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회현상을 이토록 오만하게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대형병원에서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를 마주할 때 들어야 하는 생각은 ‘여기로 오지 못하는 사람은 괜찮을까?’가 상식인데, 그 똑똑한 사람들의 눈에 세상의 불평등 따윈 보이진 않나 보다. 그러니 ‘아플 때 치료 못 받은 적 있나요?’라는 거만한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었던 것 아니겠는가. 의사를 만나면 절부터 하라는 메시지로 대중의 호응을 바라다니, 이렇게 똑똑하지 못한 투쟁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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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위기를 기회 삼으라는 기만 지인이 시골에서 칼국수 가게를 열었다. 코로나19 시국에 먹는장사를 결심한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걱정 반, 응원 반의 심정으로 방문했다. 주방은 아내가, 홀은 아들이, 카운터는 지인이 담당했다. 가족 종사자의 노동이 결합된 대한민국 자영업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점심때만 돕는 딸까지 포함하면 가족 회사나 다름없었다. 직원 채용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들은 가진 것을 다 털었지만 겨우 살얼음판 위에서 버티고 있다. 절규하는 자영업자들이 뉴스에 연일 등장하는데, 잘못되면 가족 전부가 어그러질 수 있는 무모한 결정을 왜 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절벽 앞까지 내밀렸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수년 전에 퇴직한 지인은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고 공연장 무대 및 조명을 설치하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던 아들은 1년간 일감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