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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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새해에는, 자유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자유라는 말 옆에 ‘보편적 가치’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게 붙는 건, 누가 그 보편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살펴보라는 뜻일 거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의식조차 되지 않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희망사항이다. 이들의 부족한 자유를 채우는 게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말이 많아질수록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든지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언제든지 이동했던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 저울에 올라가 몇 명 때문에 수천명의 출근시간이 방해받았다는 기계적 평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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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도어스테핑 특징은 도어스테핑 동기부여 강사는 자신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임을 부단히 강조하더니 급기야 일찍 일어나는 사람 중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당당히 펼친다. 피식 웃음이 났다. 20년 넘게 새벽 3~4시에 기상 중인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일찍 일어난다는 거 하나다. 무엇을 실천했다면, 그건 늦잠을 잔들 낮잠을 잔들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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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안전사고에 취약한 사회 나쁜 문화는 ‘나쁜 걸’ 장려한 결과가 아니다. “여자들은 문제가 많아”라는 성차별적 인식은 기질적으로 여성이 싫은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성성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파생된 편견이다. 남자는 이렇게 해야지 멋있다는 식의 주문이 많으면 “남자가 그것도 못해?”라는 핀잔에 이어 “너 여자야? 그런 것도 못하게”라는 빈정거림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천생 여자’라는 감탄사를 제어하지 않고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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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대통령의 기분이 태도가 될 때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행동과 표정에 자신의 짜증을 기어코 투사하여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인간을 마주했을 때의 황당함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자신은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 방법을 찾는다. 화가 나면 화가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는 이노이트족의 분노 해소법이 공유되는 것도, 기분 나쁜 상태로는 좋은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서다. 산책이나 명상이 현대인에게 치유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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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그런 말 듣고자 한 말이 아니다 집 앞에 새끼 고양이가 왔다. 평생 고양이를 만져본 적도 없지만, 모른 척하기엔 미안해서 급하게 물과 음식을 주니 잘 먹는다. 그 모습만으로도 울적한 기분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사진을 몇 장 찍어, 지친 일상에 고양이가 웃음을 준다는 글과 함께 공유했다. 그러자 밥그릇이 지저분하다, 오래된 물 같다는 등의 차가운 반응이 이어진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대해야지, 위로받기 위한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훈계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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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그 장애인은 왜 그리 친절했나 2016년 출간한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드러낸 책이다. 노량진에서 수십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공직에 대한 열의’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는 식의 말은 당연히 등장하지 않았다. 저마다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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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수포자를 무시하지 마라 수학을 잘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허준이 교수가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류가 명왕성에 착륙하는 느낌이다. 판타지 같다는 말인데, 추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수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의미를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짜증도 나고, 나보단 수백 배 정교하게 수학의 효능을 이해하는 이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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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납작한 논쟁의 나라 최근 <민낯들>을 출간하고 독자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사회의 이슈들을 짚어보는 글쓰기가 업인지라 종종 욕설로 도배된 불만을 접하는 게 익숙한 편이지만 너무 구체적이라 놀랐다. 책의 첫 장인 ‘고 변희수 하사’ 사례를 언급하며 왜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냐, 성소수자 입장만 대변하는 이유가 뭐냐, 학생들이 읽고 동성애자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등의 내용이었다. 누가 읽을까 봐 중고책으로도 안 팔 거다 등의 악담도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친절히 장문의 반론을 보냈다. 하지만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자기만 옳은 줄 아네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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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일정한 경제적·교육적·문화적 수준이 없이는 자유가 불가능하니, 자유가 유린된 이들을 돕기 위해 연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선거운동 당시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초현실적인 말을 뱉은 거에 비하면 약간은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 같다. 다른 논란이었던 최저임금보다 더 최저로 임금을 받고도 일할 자유도, 취임사대로라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찰의 결과물이라기보단, 중학생들이 ‘자유’라는 주제로 작문을 할 때 툭툭 던지는 추임새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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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우물이 깊어질수록 대학 강의를 할 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것들’이란 주제로 에세이 과제를 내곤 했다. ‘사회화’를 입체적으로 느껴보자는 의도였지만, 자기소개서에 익숙한 학생들은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버릇을 감추지 못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내서” “1년 넘게 어학연수를 하면서” “몇 개월간 유럽 배낭여행을 해보았기에” 등을 언급한 후 밑도 끝도 없이 ‘그래서’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증거는 한 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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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혼밥은 죄가 없다 군대 훈련소 시절, 정치인 아무개가 부대 방문을 해서 훈련병과 식사하고 기자들이 사진 찍는 시간이 있었다. 재수 없게도 내가 높으신 분들 앞에 앉게 되었다. 모자에 별이 달린 장군은 격의 없는 소통의 자리이니 편하게 말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전날부터 외우고 연습했던 대로 “괜찮습니다!”, “맛있습니다!”만 외쳤다. 먹지 못하는 오징어가 반찬으로 나왔지만 씩씩하게 먹었다. 24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내 인생 가장 불편했던 식사로 기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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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갈라치기는 누가 하고 있는가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했던 2008년의 일이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새내기들은 ‘잘 몰라요’ 정도로 입장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싫어도, 최소한 대학 강의실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초적인 예의가 존재했던 시절이랄까. 그래서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식의 접근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말을 할 수 있었다. 편견을 앞세워 으르렁거리지 말고, 몇 단계만 순리대로 사고를 넓히면 이 표현이 ‘남자인’ 나, 너, 우리라는 개별적 존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수가 이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