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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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납세자 정치가 온다 그동안 한국에서 세금은 내라는 대로 내는 것이었다. 경제학적으로는 세금은 개인의 사적 부를 국가에 이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개인이 가진 돈 중 일부를 국가가 자기 것이라고 가져간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원칙 위에서 만들어졌다. 식민 본국인 영국 의회가 식민지 개척자들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표해주지 않는다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주장이고, 이것은 미국 독립전쟁의 첫 번째 슬로건이 되었다. 즉 미국은 동의할 수 없는 세금에 반발해서 만들어진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예들도 많다. 1992년 미국 콜로라도주 주민들은 주헌법 10조를 개정하고 ‘납세자권리장전’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유권자 동의 없이 세율을 올릴 수 없고, 현재 세율하에서도 물가상승과 인구증가 몫을 초과하는 지출을 할 수 없다. 2005년 또 한 번의 주민투표를 통해 납세자권리장전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지출에 있어서 물가상승과 인구증가 몫을 초과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고 이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교육, 소방관 및 경찰관 연금 등 공공성이 매우 높은 영역에 한해서만 투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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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포퓰리즘의 변주를 멈추자 포퓰리즘이란 단어는 종종 ‘대중주의’라고 번역되는데, 그래서인지 그 실체가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령 아니냐는 착각이다. 2018년 이재명 경기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포퓰리스트라고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포퓰리즘의 반대말은 엘리트주의이고, 촛불혁명이 보여주었듯이 국민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며, 따라서 본인은 주체를 대변하는 포퓰리스트라고 설명했다. 틀렸다. 포퓰리즘은 엘리트주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선한 대다수 국민과 나쁜 소수 엘리트(혹은 기득권)를 구분해서 정치에 이용하는 모든 방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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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공멸의 시대, 유능한 국가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다. 1995년 일본 옴진리교의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출퇴근 시간의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 가스를 살포해 12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중태에 빠지는 테러를 저질렀다. 눈앞에 다가온 종말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질 텐데, 자신들이 죽여주는 사람들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이비 믿음에 빠진 그들은 죄책감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다행히 그들의 테러행위는 세 번의 범행 끝에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종식되었는데, 만약 길게 이어졌다면 일본 사회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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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부동산정책의 정치적 결과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압승의 일등 공신은 코로나19였다. 대통령 지지율은 2월 말 42%에서 총선이 있던 4월 중순 59%로 17%포인트나 올랐고,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5월 첫 주에는 무려 71%를 기록했다(이하 갤럽자료). 두 달 새 29%포인트 상승이다. 그러던 대통령 지지율이 8월 첫 주엔 44%로 내려앉았다. 27%포인트 폭락이다. 올라가는 데 두 달, 내려오는 데 두 달이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보통 두 가지를 꼽는다. 부동산정책과 고(故) 박원순 시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부적절한 대처이다. 여기선 첫 번째에 집중해보자.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부동산정책의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는 여기서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 그것의 정치적 결과가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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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데이터 사용, 정치가 길을 열어야 “그래요, 지금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있는 것 맞아요.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집에 가시는 게 좋겠어요. 손 씻는 것 잊지 마세요.” 지난 2월 중국 관영 CCTV가 공개한 비디오 클립의 한 장면이다. 네이멍구에서 마스크 없이 외출한 할머니를 발견한 드론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 집에 들어가라고 종용한다. 놀란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중국에서 이런 유의 감시 드론 관련 영상은 차고 넘친다. 한 영상에서는 어느 집 마당에 모여 마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바깥에서 마작을 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들 딱 걸렸어요. 지금 당장 흩어지세요.”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나라들은 중국의 감시 드론을 비판했다. 중국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얼마 후 벨기에 브뤼셀에도 드론이 떴다. 어쩔 수 없어서 띄웠고 비판도 별로 없었다. 곧 이어 스페인의 마드리드에도, 프랑스의 니스에도 드론이 떴다. 이제 세상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감시 드론의 사용을 양해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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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진보의 정부, 보수의 의제 큰 정부가 돌아오고 있다. 그냥 큰 정부가 아니다. 대공황 때 미국 정부가 쓴 돈은 약 417억달러로 추산된다. 요즘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6530억달러쯤 된다. 미국 의회가 지금까지 승인한 코로나19 예산은 이미 3조달러에 육박한다. 6년간 지속된 뉴딜에 쓴 돈의 다섯 배 가까운 돈을 6개월밖에 안 된 코로나19에 쓰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세 차례 추경에 편성된 예산만 해도 30조원에 가깝다. 앞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향후 몇 년에 걸쳐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큰 정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이미 여러 나라의 정부들은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동선과 신용카드 정보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고 주거·이동에서 집회·결사까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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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과학 기반 복지국가로 나아가자 대전환의 갈림길에 서있다. 세 가지가 겹쳐서 그렇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했고, 사상 최고의 지지율 및 사상 최대의 슈퍼 여당과 함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집권 후반기를 열어나갈 것이다. 둘째, 21대 국회의 출범이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조차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위험할 정도의 거대 여당이 되었고, 야당은 지리멸렬이다. 셋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막이다. 코로나19는 게임체인저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까지 통용되었던 성장, 무역, 안보, 복지, 정치, 인간관계, 정부운용 원리, 민주주의의 전망까지 모두 리셋이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오늘의 선택은 향후 수십 년, 한 시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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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코로나 이후의 세계와 국가의 귀환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추이 그래프를 펼쳐놓고 보면 지금 이 순간 세계에는 세 가지 국가 모델이 있다. 한국형, 중국형, 그리고 나머지. 중국은 확산 추이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권위주의적 방식을 따라하고 싶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확산 추이를 잡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슈퍼 강대국 미국, 선진국 연합이라 해도 좋을 유럽연합(EU), 그리고 일본 같은 나라들이 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인도 등과 더불어 ‘나머지’에 속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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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원 플러스 원 정당들의 대결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꼼수에 대해 민주당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갖고 있었다. 최선은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고 미래통합당만 꼼수정당이라는 주홍글씨를 도드라지게 하고, 그럼으로써 집중적 응징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개정선거법의 가치와 집권여당의 명분을 챙기고, 동시에 선거에도 이길 수 있는 상책이다. 물론 위험이 따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래한국당이 훨씬 많은 비례의석을 가져갈 것처럼 나타나니 입이 마를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대세 물결을 타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돌이켜보라.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선 투철한 신념이나 담대한 전략 중 최소한 하나는 갖고 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그렇지 못함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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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생명 가치 넘어선 ‘위험의 정치화’ 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험에 맞서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인데, 이를 둘러싼 논의와 정책을 정치화시켜 버리는 일 말이다. 사태 초기부터 그들은 2008년 광우병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런저런 시그널들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위험을 정치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선거운동이다. 총선이 두 달밖에 안 남지 않았는가. 그러나 코로나19를 광우병으로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수입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 계층과 한우를 먹는 계층을 뚜렷하게 갈라놓았던 광우병과 달리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민주적인’ 위험이어서 전선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을 시장에 맡기려 했던 보수정부와는 달리 공공의 영역에 적극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향은 위험이라는 상황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매우 높았고, 초기에 비판적이었던 국민들 중 상당수도 정부의 역량을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었다. 그러던 것이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을 중심으로 한 확진자 폭증 이후 패닉 모드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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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비례정당과 갈등의 전략 정치는 제도화된 갈등이다. 그리고 갈등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 없는 갈등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우왕좌왕하다가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갈등 전략이 필요한 영역 중 하나가 비례정당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언했던 대로 비례정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이루어진 조사들에 따르면 기존의 정당 지지율을 적용해서 한국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한국당 후보를 찍고 정당투표에서는 비례정당을 찍는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당의 실질적 의석은 지금보다 10석 이상 늘어나고 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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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정치시평 선거법 개정과 자유한국당의 무능 마침내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무능, 그리고 그 무능이 어떻게 스스로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이다. 우선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따져보자. 알다시피 정치의 영역에서 합의를 찾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합의를 이루고 있었던 아주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는 많게는 50%에 가까운 투표가 사표가 되어 사라진다. 특정 지역에서 A 정당이 전체 투표의 51%를 얻었는데 의석은 100% 가져가는 일이 흔히 벌어졌다. 다른 정당과 정책을 원했던 49%의 뜻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선거법 개정의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유권자의 뜻은 조금이나마 더 골고루 반영되게 되었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으로 내 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 선동이다. 둘째, 소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의 자리까지 차지한 거대 정당이 과잉대표된다는 뜻이다. 실제 이상으로 몸집을 부풀린 거대 정당들은 정권을 차지하면 독주하고, 정권을 빼앗기면 무조건 비토한다. 일이 되도록 할 수는 없지만,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빠져드는 것이다. 비토크라시하에서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 정권만 바뀌면 무조건 정반대로 가니까 정책의 장기적인 일관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뜻이 반영되고 거대 정당이 원래 자기 몫의 몸집으로 돌아가면 절대 강자가 없으니 정당 간 협력이나 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의 일관성을 되찾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 ‘4+1 협의체’가 민주당 2중대들과의 야합이라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생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