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제 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분석심리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카를 융(1875~1961)의 결별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프로이트가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빈의 정신과 의사로만 갇혀 살던 시절, 융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 빈 바깥의 넓은 세상에서 찾아온 고마운 후학이자 동지였다. 둘은 서로를 아끼고 따르면서 공공연히 학문적 부자 관계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둘의 학문적 견해가 화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하던 1909년, 융은 빈에 있는 프로이트의 집을 찾아 논쟁을 벌였다. 격렬한 논쟁 끝에 융은 호흡기에 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서재에 있던 책꽂이에서 나는 커다란 굉음을 들었다. 융은 프로이트에게 말했지만 프로이트는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융은 이제 곧 다시 한번 소리가 날 것이라고 예언했고 또다시 굉음이 났다. 이날 이후 프로이트와 융은 다시는 화해할 수 없었다.

융이 들었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였을까. 치밀한 얼음 조직처럼 서로를 붙잡고 있던 두 사상가의 치열한 정신이 어떤 이유 때문에 결별을 고하는 소리였을까. 마치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이 쩌억쩌억 소리를 내며 녹을 준비를 하듯이 말이다.

아침 뉴스는 온통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들로 어지럽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헤어질 결심을 마쳤다 하고 그 당 의원 100여명은 말리지는 않았지만 연판장에 서명했다고 한다. 재산분할하기 싫으니 이혼은 하지 말고 졸혼하자는 얘기일까. 같은 당의 송영길 전 대표는 영장심사에 출석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고 이미 복수의 관련자가 구속된 사건에 대해 소명을 하기보다는 검찰독재를 타도하고 윤석열 퇴진당을 만들겠다는 전직 학생운동 지도자의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헤어질 결심을 부추긴다. 조국 전 장관은 이낙연 신당에 합류할 일 없다고 하면서 시대적 과제는 무능하고 무도한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고 했다 한다. 심판이 시대적 과제라니. 진짜 헤쳐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에 치인 사람들은 답답하다. 정치적 심판 중 최후의 형태라고 할 탄핵 이후에 문재인 정부가 과연 무엇을 했던가 생각하면 정책적 반성도 성찰도 없이 또다시 심판만을 내세우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아득하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유례없이 빠르게 의원 신분을 획득하고 강성 지지층과 결합하며 여러 겹의 보호막을 마련해온 이재명 대표는 지난주 중앙위원회에서 공천 룰을 바꾸고 권리당원 투표 비중을 늘리는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또 한 겹의 갑옷을 두르게 됐다. 틀린 것을 맞다고 말하기 위해 어떻게든 논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그만큼 황폐해졌을 그들의 가슴을 걱정한 적도 많다. 각 당에서 헤어질 결심을 다져온 금태섭, 양향자, 이준석, 류호정, 이상민 전·현직 의원 등이 ‘새로운 선택’ 창당대회장에 모였다고도 한다. 그들은 지나간 시대의 정치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국민들에게 대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류호정 의원의 행보에 동의하지 않은 적이 많지만,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은 ‘절제와 공존’이라는 그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그가 이 신념을 계속해서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헤어질 결심을 하고 누군가는 헤어짐을 부추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타도의 대상은 사라지고 경쟁과 견제의 대상만 남아 있는데, 민주주의를 타도로 배운 사람들은 아직도 타도만을 외친다. 시대와 인식이 서로 겉돈다. 민생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 겉돎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짐짓 모른 척하고, 지나간 시대의 소중했던 가치는 정치적 수익모델로 남았다. 그 의미 없음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 수가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음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화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출발점이었던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영국군 병사 무덤에 주민들은 제임스 로웰의 시를 새겨넣었다. “그들은 수천 마일을 달려와서 목숨을 잃었네/ 지나가버린 과거의 왕좌를 지키겠노라고/ 그들은 들을 수 없었지만/ 파도 저편 고국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네.” 과거의 영광에 왕관을 씌우려다가 어머니의 가슴에 한을 남길 뿐이다.

경향신문과 인연을 맺은 지 십수년이 되었다. 오랜 세월 지면을 내준 경향신문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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