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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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미 동맹의 대안은 정말로 없는가 한·미 동맹의 운명을 결정하는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도 과거처럼 한국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의 일방적 조치로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이는 한반도 상황이 변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국가이익에 따른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개입하게 된 계기는 일본을 항복시키는 과정에서 소련이 힘의 공백이 생긴 한반도를 메우면서였다. ‘38선’은 미국의 전략적 차원의 한반도 정책 일환이라기보다는 소련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임시로 취해진 조치였으며, 이런 이유로 1945년 9월 미 육군 7만여명이 한반도에 진주하게 됐다. ‘점령군’ 성격이 강했다. 곧이어 주한미군사령부가 서울에 설치되는 등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미군정(美軍政)이 남한 내의 유일한 통치기구로 행정기능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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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왜 비핵화가 실패했는지 알겠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교안보 사가(史家)들에겐 매우 귀중한 선물이 됐다. 특히 트럼프와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볼턴은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다. 570쪽에 이르는 회고록에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미 파경에 이른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까지도 불편하게 만드는 인화성이 높은 내용도 적지 않다. 서울과 워싱턴 모두 볼턴의 회고록을 평가절하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능사는 아닌 듯하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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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제 통일을 지우자 통일이 ‘아편’이자 ‘종교’였던 시절이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통일에 낚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으로 통일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던 때가 그랬다. 그중에서도 1989년은 방북사(史)의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황석영 소설가, 문익환 목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당시 의장이 임종석) 대표로 임수경, 그리고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문규현 신부의 ‘북한 잠입’이 모두 같은 해에 일어났다. 암울했던 시기에 통일운동을 향해 신앙과도 같은 열정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시대와의 불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났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의 소원은 여전히 통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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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정은의 간헐적 은신’ 관전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지난달 11일부터 ‘은신(隱身)’한 이후 20일 만이다.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2일 김 위원장이 노동절(5월1일)에 평안남도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전날 사설에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영도자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열혈충신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실은 지 하루 만에 건재 소식을 내보냈다. 김정은의 잠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1월26일~2월16일 21일간 북한 매체에서 사라진 적도 있었다. 2014년엔 무려 41일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에 무려 51일 동안 잠적했을 때도 북한 매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세계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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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정치의병이여, 정치좀비를 물리쳐라 4·15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들이 벌이는 ‘막장정치’가 가관이다. 최장집 교수의 주장대로 민주화 이후 정치 엘리트들은 마치 주식투자자들처럼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자산의 가치변동에만 관심이 있는 종자가 된 듯하다. 이들이 속한 정당들은 적당한 분화와 재편을 통해 양당 기득권을 유지·확장하고자 하는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유수의 정치학자들이 촛불 이후의 전망을 조금 더 예리하게 간파했었더라면 “촛불집회를 통한 정권교체는 광장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한 결과” “촛불혁명은 참여민주주의의 승리” “촛불혁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명예혁명” 등 촛불시위의 신탁에 올린 상찬(賞讚)의 레토릭은 상당히 절제되고 순화되었으리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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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시 광장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흩어져 있던 민심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언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가라는 질문에 마이클 최 미국 UCLA대학교 교수는 저서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가>에서 “시위대의 수가 충분해서 경찰이 구속하거나 억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참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조정(coordination)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공유지식(shared knowledge)이 창출되는 사회적 과정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실은 내가 알고, 이 사실을 서로 아는 상태”가 공유지식이다. 공유지식의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공식행사, 집회, 미디어 이벤트 그리고 공공 의례(儀禮) 등이 있다. 네트워크가 강할수록 자신들만의 공유지식을 산출하는 능력이 높게 나타난다. 전광훈 목사가 이끌었던 광화문광장 집회와 이만희 목사의 신천지교회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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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문재인 정부의 대외적 자율성 국제정치학에서는 주권국가를 유·무형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의 국경 이동에 대한 통제권과 자국 영토 내에서 최종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총체로 개념화한다. 그러나 국가의 ‘자율성’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다. 주권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서로에 대해 독립적이긴 해도 전략적, 군사적, 경제적 의존이나 종속 등 여러 이유로 상대국가의 주권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국제정치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위계적 관계에서 하부국가가 보여주는 순응적 외교정책 행태는 외부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자율성을 확보했더라도 현저히 작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래전 한국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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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정은에게 두 개의 다른 ‘봄’ 하노이 회담(2019·2·27~28) 굴욕으로 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국을 향한 분노와 불신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노동당 전원회의(7기 5차) 보고를 무려 나흘씩이나(12·28~31) 할 이유가 없었다. 신년사마저 생략하고 전원회의 발언문 공개 형식을 통해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상을 엎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개최된 7기 4차 전원회의(2019·4·11) 이후 8개월여 기간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으로 간주했다. 김정은에게 이 기간은 분명 자득의 시간이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지점을 끝까지 찾아보려는 간절한 모색의 시간이었다. 자력갱생과 미국과의 불화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는 공개적 다짐의 배경에는 더는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려있었다.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정면돌파전이 시대적 과제임을 투쟁적으로 강조했다. 새로운 전략무기체계를 확보했음도 시사했다. 이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말하자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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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굿바이, 미스터 트럼프 내년 이맘때면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사실상 전(前)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미국·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과는 달리 한·미동맹이 위계적 방식으로 구축된 것이긴 해도 트럼프가 보여주는 일방적이고 무도한 행태는 반(反)동맹적이다. 7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선순환적으로 발전해온 한·미동맹의 본원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서울과 워싱턴의 외교안보 전문가 중 상당수는 사실과 동떨어진 트럼프의 위협적이고 과장된 언사가 한·미동맹의 건전성에 도움이 안된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트럼프를 목전의 이익에만 혈안이 된 근시안적 ‘동맹 파괴자’로 여긴다. 또한 극소수이긴 해도 트럼프의 저돌적 해결방식을 한·미동맹의 와해 내지 해체로 가는 전조(前兆)로 과잉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동맹에 대한 트럼프의 협량과 편견은 깊고, 오래갈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동맹의 침식(侵蝕)이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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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 비핵화와 그 적들 북한 비핵화 꿈이 2년도 채 되지 않아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날 듯하다. 지나치게 낙관했거나 성급했던 까닭에 남·북·미 모두 비핵화 길(로드맵)에서 어긋났다. 북한 비핵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작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야기하는 (조선인민군이 오래전 한반도에서의 다음 전쟁은 재래식전쟁이 아닌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처럼) 위협과 불확실성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빠르게 순항했다. 남북 정상 간 직통전화까지 개설되자(2018·4·20) 장삼이사들은 남북한 두 정상이 언제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 후 판문점(4·27)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천명했다.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거듭 확인됐다. 신(新)한반도 여정의 서막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장기 뇌사상태다. 비핵화를 통해 북한에 궁핍과 절망으로부터 탈주(脫走)의 길을 터주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난망한 처지다. 세간의 지적처럼 비핵화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서로의 계산법이 맞지 않아 사달이 난 것일까. 트럼프와 김정은은 정말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일까. 서로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만책이 아니라면 비핵화 발목을 잡는 세력이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비핵화에 재를 뿌리려는 세력들이 비핵화 길목 곳곳에 잠복해 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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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 비핵화, ‘비바치시모’에서 ‘렌티시모’까지 파장(罷場) 분위기가 역력하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한적한 리조트로 집결한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 실무자들은 각자 준비한 카드를 내보이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거래가 성사되기가 어렵다고 판단, 본국의 훈령에 따라 보따리를 싸고 기약도 없이 떠났다. 중재국 스웨덴이 다시 회동할 것을 제안했지만 회담 결렬 후 보여준 북한의 격렬한 반응으로 볼 때 성사되더라도 결과는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년 내에 다시 회동할 가능성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한때 ‘비바치시모’(매우 빠르고 활기차게)로 타오르던 비핵화 불꽃이 돌연 꺼지게 될 운명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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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가 불안해진 이유 북·미관계가 몇 년 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 주도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례가 언제 있었나 싶다. 싱가포르(2018·6·12)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2019·2·27~28),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회동(2019·6·3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케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다 사이사이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은 서신은 북·미관계의 청신호들로 해석되기에 충분하고도 강력한 증거였다. 46년생 대 84년생이라는 연령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정치지도자가 어떤 동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