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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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봉인된 한국 핵무장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때가 2006년 10월9일이었으니 햇수로 16년이 됐다. 이후 다섯 차례 더 핵실험을 했으니 이젠 누가 보더라도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일본 나가사키대 핵무기폐기연구센터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40기 핵탄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부르는 것은 마치 달 탐사를 달 정복이라 부르는 것처럼 과장된 것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핵무기 거인들인 러시아(약 6000기)와 미국(약 5500기)과 비교하면 북한은 난쟁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가 ‘납골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억견(臆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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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핵보유 국가들끼리 재래식 무기로 싸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채 전쟁을 끝까지 치를 수 있을 것인가는 국제정치학계의 오랜 연구주제 중 하나이다. 이제는 핵보유국이 핵비보유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로 논쟁이 옮겨가고 있다. ‘21세기 히틀러’ 블라디미르 푸틴이 보여주듯 근본적 국가이익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당했거나 훼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핵무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가설이다. 미국 역시 6·25 전쟁을 포함해서 국지적 분쟁에서는 핵을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1975년 4월30일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그해 6월 제임스 슐레진저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도 한반도를 비롯해 분쟁지역에서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던 시기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 주도 데탕트 조류의 영향으로 남북한 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됐다. 자연히 한국에 배치됐던 수백기의 전술핵들도 순차적으로 빠져나갔다. 드디어 한반도에 핵 없는 봄이 오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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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비핵화 가면 벗은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나는 ‘북한비핵화는 사망했다’는 선고에는 관심이 없다. 김정은 정권이 북한비핵화 프로그램 ‘설치’를 거부하고, 기존에 깔려 있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같은 비핵화 관련 프로그램마저 일찌감치 삭제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도, 놀랄 일도 아니다. 북한 핵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능히 예상할 수 있는 북한의 선택지였다. 북한은 작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한 이후 핵잠수함 설계연구,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활공체) 개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명중률 제고,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 다양한 전술핵무기 개발, 군사정찰 위성 운용, 무인정찰기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는 김정은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 되었으며, 경제·외교적 유폐로 아사 위기에 몰린 젊은 독재자가 맞닥뜨리게 될 미래를 암울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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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푸틴은 ‘21세기 히틀러’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20년 기간을 전간기(戰間期)라 부른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각성에서 국제관계를 진단했다. 이때 나온 처방전이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였다. 처방전 속에 앵글로 색슨 중심의 집단안보체제인 국제연맹과 부전(不戰)을 선언한 ‘켈로그-브리앙 협정’이 들어 있었다. 1차 대전이 종료되고 미국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패전국 독일이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독일이 패전국 법적 지위에서 탈피하는 순간이었다. 평화를 향한 각종 군축회의도 개최됐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서유럽에만 국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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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 핵무장 경우의 수는 생각보다 적다 지난 칼럼에 이어 다시 핵무장 이야기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비핀 나랑 교수가 신년 벽두에 29개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과 포기 경로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을 출간했다.4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신간에서 나랑은 핵무기 개발 경로를 ‘헤징’(hedging) ‘속전속결’(sprinting) ‘강대국 지원’(sheltered pursuit) ‘숨기기’(hiding)로 분류했다. 헤징은 여차하면 핵무기 개발을 할 수도 있지만 이를 자제하고 있음을 희미하게 내보이는 책략이다. 농축 또는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급 물질은 아닌 핵분열성물질만 확보하고 핵무기화, 발사시스템, 핵무기 운용 체제 등은 갖추지 않은 상태가 헤징이다. 여기에다 헤징에는 핵무기 개발의 이론 작업, 핵주기의 자체적 통제, 핵무기급 물질 생산능력 확보, 이중용도 발사시스템 작업 등도 포함한다. 헤징은 따라서 핵무기 레이스에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워밍업이자, 적대국 또는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동맹국에 나를 더 이상 건들지 말라는 최후통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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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과 ‘저농축 깐부’ 할 때가 됐다 국제정치학자들 중 다수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색채가 점차 짙게 드러나는 것으로 인식한다. 나 역시 닥쳐올 미·중 격돌이 이전의 모든 격돌과 차원이 다른 격돌이 될 것 같아 두렵다. 1980년대 초 중국은 하나의 극(極)일 수밖에 없다고 했던 덩샤오핑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해 11월 ‘역사 결의’로 영구집권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은 2주 전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1호에 서명하고 모든 중국군에 훈련 개시 동원령을 내렸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는 핵무기 현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200기 초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이 미국(5550개) 수준에 질과 양적으로 빠르게 근접해야 한다는 국가방침을 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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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초라해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원’ 외교란 아름다운 정원과도 같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이 서로 자태를 뽐내며 벌과 새들을 유혹하듯, 외교 역시 실은 주변국들로 하여금 한국을 매력적인 곳으로 여기도록 가꾸고 알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임기 5개월 남겨놓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원은 초라하다. 결실은 찾기 어렵고, 잡초(레토릭)만 무성하다. 4년8개월 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국회에서 “우리가 주도하여 ‘북한의 선 행동론’ 대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동시 행동을 이끌어내겠다. ‘중국 역할론’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 역할론’을 실천적 전략으로 삼아 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한다. 우리의 주도로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한반도 비핵평화구상’을 호기스럽게 발표했다. 그러나 취임 4개월 만에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김정은 집권 기간에만 이뤄진 네 차례 핵실험 중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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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자리 사냥꾼’과 곡돌사신 관록의 힘은 강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야기다. 대선 판세를 읽는 김종인씨는 정교했다. 우선 김씨는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후보 주변으로 ‘파리’들이 모인다고 한 자락을 펼쳤다. 이어 윤석열 후보 캠프에 몰려든 인사들 중 ‘자리 사냥꾼’이 있다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복선을 깔았다. 캠프에 일찌감치 터를 잡은 인사들이 졸지에 ‘파리떼’이거나 ‘자리 사냥꾼’이 됐다.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막판 예상을 깨는 정치적 숨고르기로 윤석열 캠프를 긴장케 하는 김종인씨가 등장할 경우 누군가의 퇴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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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대장동 게이트’ 국제정치학에서 게임이론은 국가 간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분석하는 데 곧잘 차용된다. 상대 국가가 하나든 여럿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자국에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분석틀 중의 하나가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을 소개할 때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대장동 비리 사건에 적용할 경우, 대장동 사건에 가담한 일당 중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검찰은 이들이 사전에 입을 맞출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분리한 후 각자에게 자신들의 협조 여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조건부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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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커스, 비핵화, 핵무장 #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주 전 영국·호주와 새로운 삼각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체결을 깜짝 발표했다. ‘쿼드’ ‘파이브아이즈’에 이어 원자력추진 잠수함(‘원잠’) 삼각동맹 결성으로 안보협력 블록을 강화했다. 누가 봐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오커스의 등장이 멀리는 브레턴우즈체제의 종언(1971년 8월)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부터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미국 대외정책 위기의 변화를 예고하는 변곡점이 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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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한 비핵화의 ‘유레카’ ‘국가이익’만큼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가 있을까. 아프가니스탄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가 재정과 병력의 손실을 막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78세의 바이든은 “국가이익이 없는 전쟁에 계속 머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노(老)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다 이미 2조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2448명의 미군을 잃은 상황이 내년 중간선거에 불리할 것으로 판단, 전면 퇴각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한 군 지휘부의 의견을 묵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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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화전민 정치’는 어떤가 2016년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졌는가? 코로나19로 계층 간 불평등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육 사다리’를 통해서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던, 소위 개천에 용이 나던 시절은 끝났다. 개천 자체가 말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간 계층은 얇아지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촛불 이후의 민주제 정치 역시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문재인 정부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협치마저 초반부터 실종됐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실망과 분노는 일찌감치 예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