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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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문 대통령의 마지막 ‘한여름밤의 꿈’ 정보분석가라면 새벽에 사이렌 소리가 나면 1차적으로 어디엔가 화재가 발생했거나 응급환자를 싣고 가는 것으로 판단해야 옳다. 그러지 않고 이를 화재예방훈련을 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순간 정보실패의 늪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사전 인지 가능성’과 ‘조치를 취할 만한 정보’가 담겨 있었음에도 정책결정자가 이를 묵살한 나머지 국가안보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면 이야말로 완전한 정보실패이다. 11년 전 천안함 피격 사건이 꼭 그랬다. 당시 기무사가 천안함 피격 이틀 전 북한 어뢰 함정이 서해기지를 빠져나온 징후가 있어 이를 보고했음에도 국방부 장관, 합참 등이 묵살했다는 문건이 최근 공개됐다. 군 수뇌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한 잠수함의 기지이탈 정보를 사전에 탐지하고도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접한 시점에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정보를 인식하는 방식이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정권 말기의 국가안보 정책결정자들은 현재 무엇에 가장 몰두하고 있을까. 북한이 서랍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핵카드를 또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하기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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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드라마 없는 ‘미사일 지침’ 종료 ‘불편한 동맹’에서 ‘화해의 동맹’으로 옮겨간 것일까.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에서 필자의 주목을 끈 대목은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개정 미사일 지침 종료를 발표하고, 양 정상은 이러한 결정을 인정하였다”라는 문구였다. 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일부 언론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외교안보팀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사일 지침 해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구상을 갖고 있었다”며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보도했다. 개봉 박두 미사일 지침 종료를 알리는 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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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통찰력 담긴 국가안보전략서를 기다리며 내년 5월이면 정부가 새롭게 출범한다. 목하 대선 주자들의 ‘캠프’에서는 대선에 나설 채비를 하는 ‘주군’을 위해 각종 정책들을 만들고 다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책들의 대다수가 최소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담긴 의제라기보다는 단타 위주의 현안에 집중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다음 세대를 고려한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대통령의 임기 5년 내에 성과를 내는 것에만 집중된 정책들이 시간에 쫓겨 직조(織造)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각 캠프에서 쏟아내는 정책들을 임기 내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모두 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여태껏 그런 대통령은 없었다. 여기에다 전문가들 다수가 세불리기 차원에서 급조되다 보니 이들 간 화학적 결합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내놓는 정책보고서의 품질이라는 게 기대 이하이기가 일쑤였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캠프에서 경쟁하듯 내놓는 정책들의 휘발성 현상을 일찍이 간파한 고 박세일 교수가 15년 전 ‘국가전략기획원’ 설립을 주창했지만 이마저 유야무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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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미 동맹은 유지해야겠는데… 냉전 시기 한·일관계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를 알리는 전단이었다. 그 결과 한·미·일관계에서 이 빠진 고리를 채우게 됐다. 동시에 미국은 이즈음 ‘두 개의 한국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를 지향했다. 한·일관계는 이처럼 미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의 양자관계에다 한·미·일 삼자관계의 중층적 틀 속에서 늘 움직였다. 50년도 지난 지금 그 관성이 여태껏 유지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한반도 정책 기저(基底)를 흔히 꿰뚫고 있는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임기 말의 문재인 정권과 획기적 관계개선을 꾀할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거침이 없는 시진핑의 ‘중국몽’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전략가들은 중국 견제에 미온적인 한국보다는 ‘기지국가’로서의 일본과 더욱 긴밀한 공조를 취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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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진정 미국이 ‘제대로’ 돌아왔기를 미국은 아직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세계에 강력하게 투사(投射)하는 국가이다. 미국 국민들도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훨씬 우월하다는 선민적 인식을 신앙처럼 섬기고 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역사적 정체성이 오랫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쳐 하나의 세계관으로 형성되어 왔기에 미국의 예외주의가 외교정책에 스며드는 현상을 놀랍게 받아들일 일은 아닐 듯싶다. 가깝게는 스스로 탈(脫)예외주의를 선언한 트럼프 시대를 제외하고, 미국 내에서 형성된 각종 담론 내지 관념들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이를 주입하는 힘과 능력 등을 두루 갖춘 나라가 미국이라는 주장에 이론(異論)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트럼피즘(Trumpism) 광풍이 미국을 한바탕 할퀴고 다소 잠잠해진 지금, 79세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판데믹, 기후변화, 의사당 난입 등 국내외적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도전들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보니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붕괴로 입증된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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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문재인 정부를 위한 변명 북한이 한·미가 동의하는 수준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제공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사안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럼에도 야당 대표는 원자로 제공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이를 이적행위로 단죄했다. 정치 편작(扁鵲)의 명백한 오진이었다. 마찬가지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법적 조치 운운은 하수(下手)였다.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야당의 기를 꺾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일이 편할 수 없으리라는 정치적 계산이 한몫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치력 부재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여야 간 지루한 정치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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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카산드라’를 위한 변명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는 아폴로 신의 저주를 받아 불길한 일들을 정확하게 예언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예언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는 인물을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수시로 호명되곤 한다. 카산드라는 정치권을 오가는 ‘폴리페서’보다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꾸준히 내면서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는 ‘공공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뉴욕시립대 폴 크루그먼 교수가 대표적 ‘21세기 카산드라’이자 공공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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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핵무장은 자부심이 될 수 없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홈페이지에서 김진명을 검색하면 미국의 반대로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남한이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핵무기로 굴복시킨다는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12년 전에 작성해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소개글을 읽다 김진명이 당시 북한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남한의 소설가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하지만 북한에서만 김 작가의 명성이 자자한 것은 아니었다. 1993년 3권으로 출간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실제 그 한 해에만 한국에서 무려 300만부 이상 판매된, 말하자면 핵무장 인식 관련 ‘한국학’ 교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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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국 민주주의 위기와 한반도 평화 200년 가까이 예외 없이 4년 주기 ‘제사(祭祀)처럼’ 치러온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78세 노익장을 과시한 조 바이든이 당선자가 되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파시즘적 폭정도 함께 멈췄다. 시나브로 트럼프 이야기는 과거시제(過去時制)가 됐다. 4년 전 이맘때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다는 선거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워싱턴 비주류의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계층별로, 세대별로, 젠더(gender)에 따라 양분됐다. 부패 과두정(寡頭政)의 정점에 있던 트럼프가 주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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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얼리어답터 북한과 ‘원잠’ 풍각쟁이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은 물론 잠수함 도입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무려 30년이나 빨랐다. 김씨 왕조는 1963년 소련으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를 연구하고 실전에 응용한 호전적 얼리어답터다. 1996년 9월18일 오전 1시, 북한의 상어급(300t 규모) 잠수함이 정찰요원들을 남한에 침투시킬 목적으로 강원도 강릉으로 들어오다 50m 앞 해상에서 기관 고장으로 좌초됐다. 1998년에는 속초 근해에서 100t급 북한 잠수정이 꽁치잡이 그물에 걸려 우리 해군에 의해 인양되는 코미디 같은 사건도 있었다. 그러고선 10년 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격침을 당하고 장병 46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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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가 말한 신형무기의 실체 국가기밀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의 이단아(異端兒)이다. 밥 우드워드는 <격노>에서 트럼프의 전 국가안보책임자들조차 트럼프를 미국의 위험요소로 여겼다고 썼다. 트럼프는 2017년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됐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무도 갖지 못한 핵무기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과시하듯 털어놓았다. 새 핵무기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우드워드는 “나중에 익명의 관계자들로부터 미군이 보유한 새로운 기밀 무기 시스템에 대해 확인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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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 이후를 생각할 때다 트럼프 집권 시기는 미국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캘빈주의 등이 학살된 ‘미국 역사의 홀로코스트’이다. 트럼프는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 벨트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자 유권자들을 의식한 반(反)국제주의자에다 거친 언사와 거짓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해온 ‘아웃라이어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에서 당선되지 않았으면 북한과 “매우 심한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자신만이 한반도 평화의 해결사인 양 너스레를 부린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전쟁 후과(後果) 발언을 허투루 여길 수만도 없다. 트럼프가 재선에 안착한다면 초미의 관심사는 한반도정책이 어떻게 짜일 것인가이다. 나은 수를 두기 위해 복기(復碁)는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