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한국 핵무장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때가 2006년 10월9일이었으니 햇수로 16년이 됐다. 이후 다섯 차례 더 핵실험을 했으니 이젠 누가 보더라도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일본 나가사키대 핵무기폐기연구센터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40기 핵탄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부르는 것은 마치 달 탐사를 달 정복이라 부르는 것처럼 과장된 것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핵무기 거인들인 러시아(약 6000기)와 미국(약 5500기)과 비교하면 북한은 난쟁이라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가 ‘납골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억견(臆見)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든 안 하든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재앙인 까닭이다. 여기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차하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음을 이미 내비쳤다.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6·25 전쟁 때 미국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북한은 핵무기야말로 오만한 미 제국주의로부터 주체조선을 보위하는 유일한 보검(寶劍)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할 의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고 했다.

사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일반에 알려진 계기는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 핵시설 사진을 공개하면서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 북한이 영변 구룡강 부근에서 고폭 핵실험한 것을 포함해서 각종 증거사진들을 확보하고서도 이를 한국 정부에 알려주지 않았다. 위성사진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을 모처로 불러 갖고 있던 비밀정보들을 뒤늦게 공유했다. 시나브로 북핵 정보는 미국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모자에서 꺼낼 수 있는 ‘토끼’가 됐다.

북핵문제를 오랫동안 들여다본 전문가라면 ‘한국은 어떻게 핵무장을 할 수 있을까?’라는 민감한 질문을 한 번쯤 받았을 법하다. 이 질문에 선뜻 자신 있게 해답을 내놓기란 쉽지 않지만 한국 핵무장이 구체화되는 여건을 간추려보자면, 무엇보다 북핵 위협이 급박해지고, 이에 따른 (제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핵무장 여론이 높게 형성되면서, 국가안보 엘리트들조차 역내 안보 환경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일 때이다. 여기에다 한·미동맹을 예전처럼 ‘혈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국가안보를 미국으로부터 외주할 동기가 사라질 때, 농축 또는 재처리 관련 기술을 확보한 상태에서 연관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 시점이다.

관건은 비핵화에서 핵무장으로 고민의 축이 실제 옮겨질 것인가 여부이다. 때마침 아산정책연구원이 핵무장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자체 핵무장 지지도가 연구원 조사 역대 최고인 70.2%로 집계됐다. 가장 낮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2018년의 54.8%에 비해 무려 1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제재 가능성을 제시했을 때 핵무장 지지도는 65%로 조사.) 미국산 전술핵 재배치에도 59%가 찬성을 했다.

하지만 한반도비핵화는 정확히 30년 전 봉인됐다. 남북한 모두의 핵무기 욕망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남한만 욕망이 봉인된 상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핵무장 시도의 기억은 소멸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끊임없이 기억을 봉인해야 하는 운명은 그래서 힘들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 핵무장 전략은 ‘계산된 모호성과 느림’이라는 유연한 전술을 동반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핵무장은 아나키 상태인 국제질서에서 무심한 기다림으로 짓는 국가안보의 정수(精髓)이다. ‘기술적 억제력’ 확보는 그 첫 단계이다. 노골적 드러냄과 서두르는 것이야말로 하책 중의 하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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