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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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깃털처럼 가벼운 오른쪽 어금니가 아팠다. 석사 논문을 쓰던 무렵이었다. 시간 여유가 없고 치료비를 부담할 여력도 안 되어 치과 가길 미뤘다. 통증은 점차 심해지다가 어느 시점엔가 뚝 멎었다. 그러더니 몇달 후 겨울밤, 초코바를 베어 물다 이가 과자처럼 바사삭 부서졌다. 합동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이 당장 병원에 가라고 성화였다. “너, 충치를 오래 방치하면 치아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눈동자로 간단다.” “에이, 뻥이죠?” 깔깔 웃어놓고도 내심 겁이 났다. 그러고서 얼마 안 지난 토요일 저녁,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 깜짝 놀랐다. 거울 안의 내 오른쪽 눈이 토끼처럼 빨갛게 되어 있었다. ‘핏발 서다’의 비유를 넘어 핏빛이 선연했다. 순간 선배들의 엄포가 떠올랐다. 아, 급기야 그 일이 일어났구나. 이러다 오른쪽 눈이 멀면 어쩌나. 별의별 무서운 상상이 스쳤다. 일반병원에 가려면 이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시간을 끌다간 치아 바이러스가 눈의 핵심영역으로 침투할 것만 같았다. 급한 대로 학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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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폭 안길 수 있기를 장기 국외연수로 독일에 한 학기 머물 동안 며칠 말미를 얻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다녀온 적 있다. 여행의 목적은 하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보는 것이었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설계로 초석이 놓인 후 140년 넘도록 축조 중인 가톨릭 성당. 내가 가톨릭 신자임을 아는 선배 선생님이 연구학기 중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가보라 권하며, ‘형언할 수 없음’이 어떤 감정인지 거기 가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방문의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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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서로를 위하여 청하다 출장 다녀올 일이 있어 참새보다 일찍 일어난 금요일이었다. 공항 가는 첫 버스를 놓치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드는데 기사님이 백미러로 보며 듣고 싶은 음악 있으면 말하라고, 틀어주겠다 하셨다. 마침 앱으로 클래식 FM을 열려던 차여서 그 채널을 켜주실 수 있을지 여쭈었다. 기사님은 시계를 보시더니 <출발 FM과 함께>가 시작될 시각 아니냐 하셨다. “(진행자가) 사람 참 재밌고 좋은데 좀 시끌벅적해서. 맨날 청취자 퀴즈를 내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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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날린 시간이 만들어준 것 과제 제출일에 “쓰던 글을 날렸어요”라 말하는 학생을 가끔 마주할 때면 겉으론 고개 끄덕이면서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문서 프로그램상 자동저장 기능이 내장된 데다 작업 도중 수시로 저장할 텐데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저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그간 난 시간대별로 일련번호 붙인 문서를 몇십분 간격으로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내게 보내는 메일’로도 발송하는 고전적 방법을 사용해왔다. 실수로 몇문장 삭제될 순 있더라도 몇시간 동안 작업한 분량이 통째로 사라질 순 없다고 여겨왔다. 직접 겪기 전까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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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긴장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김유정의 단편을 읽다 말고 난데없이 선생님께 연애담 좀 들려달라 조르기 시작했다. 초가을의 나른한 오후, 문학 수업 시간이었다. “이 녀석들 이거” 손사래 치던 그분은 결국 교과서를 덮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열일곱의 여고생들은 또랑또랑해진 눈빛으로 침 넘기는 소리도 안 내며 경청했다. 수업 마침 벨이 울려 교실을 나서던 선생님이 덧붙였다. 지나간 연애사를 복기해보니 사랑이 시작된 계기는 저마다 달랐으나 식어간 지점은 매번 같았더란다. 이제 저 사람은 내가 긴장하며 살피지 않더라도 곁에 남아주겠구나, 확신이 서면 그만 헤어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나중에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아 두려거든 상대를 계속 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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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싸구려 커피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갓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가까운 후배가 이 노래 한번 들어보라며 동영상 링크를 보내줬다. 제목이 ‘싸구려 커피’라 했다. 후배와 달리 당대 국내 인디 음악계를 거의 알지 못했던 난,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저편에 앉아 책을 펼쳤다. 몇 소절 지나지 않아 책에서 눈을 뗀 채 노랫말에만 귀를 쫑긋했다. 이제껏 경험 못한 독특한 감각이면서도 정서적으론 친숙했다. 몇번씩 반복해 들으며 이 ‘화상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랩인지 타령인지 모를 톤으로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라 읊조리는 대목에 이르면 매번 웃음이 터졌다. 그게 어떤 상황일지 그려져서였다. 요컨대 이런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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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너무 잘 토라지는 몹시 갖고 싶던 책을 선배가 내 생일에 선물해주겠다 했다. 박사과정 초반 무렵, 우리가 함께 준비하던 대학원총학생회 학술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정말요?” 기뻐하며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여러 날 지나 생일이 되었으나 선배한테선 종일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을 참지 못한 난 늦은 시각 “약속을 지킨다고요?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겠어요”라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후 만난 그는 당일 심한 몸살로 학교에도 못 나왔었다며, 이걸로 그 책을 사보라고 도서상품권을 건넸다. 난 토라져 말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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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음이 기억을 마시고 먹었다 정서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경험적으로 와닿지 않던 말 중 하나가 ‘집밥이 그립다’였다. 난 어디서 무얼 먹든 집에서 먹어온 것에 비하면 대체로 맛있다며 감탄했으니까.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전에 친구들과 요기하러 갔다 순두부의 보드라운 식감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고소한 가지무침이나 꼬들꼬들한 미역줄기볶음은 대학 후문의 백반집에서 처음 접했다. 나중에 직장을 얻고 부엌과 침실이 분리된 주거공간을 갖게 된 후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하며 알았다. 배달음식이든 학식이든 내가 만든 것보다는 맛이 좋다는 사실을. 손맛뿐 아니라 ‘손맛 없음’도 전승되나 싶었다. 집밥과 관련해 이렇다 할 추억이나 기술은 없지만 그렇다고 영혼의 안식을 얻을 음료나 음식마저 갖지 못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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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일렁임은 그대로 남았다 중견 배우 훌리오는 친구이자 감독인 미겔의 신작 ‘작별의 눈빛’을 촬영하던 중 사라진다. 바닷가에 신발만 남기고 그야말로 자취를 감췄다. 혹자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을 끊었을 거라고, 다른 누구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해져 취중에 낙상했을 거라고 한다. 배우의 실종으로 인해 제작은 중단되고 영화는 미완으로 남는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러 사건을 다룬 탐사보도가 방영된 후 제보가 들어온다. 미겔은 제보자가 알려준 대로 수녀원 부속 요양원에 찾아가, 이름과 과거를 잃어버린 채 요양원 잡부로 살아가는 옛 동료를 마주한다. 그는 훌리오의 기억을 찾아주고자 해군 복무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그때 배운 매듭 묶기를 시연한다. 사실상 의절한 딸과 만남도 주선한다. 훌리오는 그중 무엇도, 딸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꼭 한번, 자신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미겔이 이어 부르며 둘의 노랫소리가 포개지자 무언가 건드려진 듯한 눈빛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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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열 살 되던 해 열 살 되던 해,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다. 변두리 시장통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도 선진교육을 들여와 학부모들이 빚내어 더 나은 학군으로 이주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훈화하시던 그분은 높은 이상을 품은 열정적인 교육자셨다. 다만 그 이상이 때론 학교 현장에서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던 듯하다. 그분이 야심 차게 도입한 ‘구라파식 체력단련’이 특히 그러했다. 월요일에 조회를 마친 후 교무실로 심부름 갔더니 몇몇 선생님들이 밀크커피를 타 마시며 “구라파 좋아하시네” 쿡쿡 웃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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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내 학생’이어서가 아니라 두 번째 학기를 마칠 무렵이었다. 3학년 학생 셋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타 대학 학점교류를 신청했는데, 그 학교에 개설된 교과목 가운데 무엇이 유사 교과로 인정될지 상의하러 온 것이었다. 동일 전공 학과인 데다 과목명도 비슷해서 당시 경험 없던 내가 보기에도 유사 교과 승인엔 문제없을 듯했다. 다만 수강 인원이 많아봐야 15명 남짓한 수업에서 가장 반짝거리던 그 세 명이 다음 학기엔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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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양보의 대갚음 “이쪽 자리에 앉으세요.” 금요일 오후 10시쯤, 4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상경해 공부 모임에 참여한 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부근의 숙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열차 칸 모퉁이에 서 있는데 대각선 방향에서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분이 일어나더니 조심스레 다가와 어깨를 톡톡 쳤다. 그리고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네? 어… 고맙습니다.” 엉겁결에 꾸벅하고 앉긴 했으나 기분이 묘했다. 생물학적으로 이제 청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하철에 서 있기 힘들 나이는 결단코 아닌데. 소속된 연구자 집단이나 직장 공동체에서 이른바 ‘막내라인’은 벗어났으나 여전히 주니어급으로 분류되는데. 구태여 다가와 자리를 양보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