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자살을 준비해온 남자가 있다. 인터넷 동반자살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모여 약을 나누어 먹고, 왜인지 그 혼자만 다시 깨어난다. 희귀한 체질이거나 재수가 없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남자는 짐작한다. 방 안에서 세 구의 시신이 굳어가는 동안 실패한 일을 마저 하고자 난간에 줄을 매단다. 둥그런 죽음의 매듭 안으로 목을 밀어 넣으려던 순간, 뜻밖에 그의 시선은 맞은편 상가 옥상에서 동그란 생명의 방을 막 빠져나오던 아기의 자그만 머리에 가닿는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원치 않던 임신 후 낙태 시기를 놓쳐 붕대로 배를 동여맨 채 일하던 편의점 알바생. 급작스럽게 산통이 찾아오자 그녀는 옥상으로 올라가 붕대를 끌러 바닥에 펴놓고 몸을 푼다. 출산 직후, 혼자선 도저히 감당 못할 그 존재의 숨을 끊고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아기의 목덜미로 가져가려던 참이었다. 매듭에 머리를 밀어 넣은 상태로 건너편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저도 모르게 낯선 상대방을 향해 “야!” 소리 지른다. “뭐어!” 여자 쪽에서 울부짖는다. 그리고 신생아를 거기 둔 채 흐느끼며 자리를 뜬다. 그는 맞은편 건물로 넘어간다. 그때,

“아이가 운다. 울고, 숨을 쉰다. 주섬주섬 붕대를 모아 그는 일단 아이의 몸을 덮어준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는 잠시 아이를 안아본다.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가, 매달린 태반을 어쩌지 못해 통째로 안아 올린다. 그의 품에서 아이는 운다. 훌쩍인다. 바닥의 콘크리트보다도 무뚝뚝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씨발, 하고 그는 중얼거린다. 그 외의 다른 말은 딱히 떠오르지도 않는 아침이다. 그는 계속 그러고 있을 뿐이다. 다른 아무것도 해줄 생각이 없으면서 하물며 그 인간은 울지 말라고 속삭인다. 잠시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박민규, ‘아침의 문’)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사내가 어쩌다 양육을 맡고, 그 과정에서 생의 의지를 되찾고, 아이의 생모와 달달한 로맨스를 이어가는 전개는 설령 이 단편이 연작소설이나 장편소설로 개작되더라도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문화연구자 천정환이 이야기했듯 대다수의 자살 시도에서 원인은 생명존중 여부나 건강한 가치관의 유무가 아니라 ‘생 자체를 포함한 제대로 된 삶’의 결여다.

서로를 괴물이라고 부르긴 좀 그래서 만든 단어가 ‘가족’ 아닐까 싶고 서로를 괴물이라고 부르긴 좀 그래서 만든 단어가 ‘인간’ 아닐까 싶은 제반 조건들 아래 남자는 다른 무얼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더는 해줄 의지를 갖지 못할 것이며, 여자 역시 자기 앞의 생을 가까스로 견뎌내어야 할 것이다. 어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며 세상으로 온 아기 또한 그저 잠시 울음을 그칠 뿐 성장과정에서 다시 울게 될 테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 죽으려던 순간에조차 갓 난 다른 존재의 죽음은 일단 막아보려는 작중인물의 본능적 충동이 깊이 와닿았다. 그 장면에서 ‘본능적’이란 어휘를 먼저 떠올릴 수 있어 고마웠다.

솔직히 난 박민규의 작품세계를 각별히 애정해온 독자는 아니며, ‘아침의 문’이 그의 최고작이거나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단편이란 생각도 안 한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으며 뭐랄까, 헤비메탈 밴드의 음반에 단 한 트랙 수록된 감미로운 연주곡을 들은 기분이었다. 이 소설로 당대의 권위 있던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작가는 작품집에 실릴 문학적 자서전을 부탁받고 “문학적 자서전: 자서전은 얼어죽을”이란 글로 응답한다. ‘변하지 않을 인간의 고통, 아무리 글을 써도 변하지 않는 세계의 고통,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고통’을 두고 그는 이렇게 썼다.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그래서 꼭 거듭,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에게 내가 건네고픈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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