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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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총체적 난국, 길 잃은 한국경제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정도로 한국경제는 견실히 버텼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를 벗어나고 작년 하반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작년 경제성장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못 미치는 이례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추세는 올 1분기까지 지속돼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최근 한국은행도 1.6%에서 1.4%로 낮춰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성장률 전망이 낮은 것만으로 경제가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침체국면에는 엄중한 문제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인다. 한국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내부적·외부적 요인들의 원인이자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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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상생의 길 넓히는 협력이익공유제 경제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구성원들이 협력하고 협력의 성과를 공유하는 총체적 활동과 구조로 이루어진다. 분업과 경쟁도 이런 협력과 성과공유의 방편이다. 어떤 나라는 못사는 사람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과를 공유하고 또 어떤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양극화와 빈곤으로 고통받도록 성과를 공유한다. 경제발전의 진보는 후자에서 전자로 향한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경제주체들 간에 힘의 불균형은 이런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노동과 자본 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았다면 노동착취, 양극화와 빈곤은 해결될 수 없었다. 노동권의 강화로 얻어진 노동과 자본 간 힘의 균형이 진보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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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토지 공개념과 개발이익 공공환원 존 로크는 <통치론>에서 ‘개인의 자기소유권은 천부적 권리이고 자신의 몸을 이용한 노동 또한 개인의 정당한 소유일 수밖에 없으며 모든 소유권은 노동과 신의 선물인 자연의 결합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과 공유자원인 자연을 결합하여 정당한 소유권을 획득하려면 타인에게도 충분한 공유자원이 보장돼야 한다. 이것이 로크의 단서조항이다. 분업과 거래로 뒤얽혀 사는 현대사회에서 이 조항을 충족하면서 토지를 획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엄격히 적용하면 헨리 조지가 말한 것처럼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는 토지에서 얻는 모든 지대를 공공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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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복지가 경제다 국민의 세금을 복지지출에 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건설·토목·기업에 쓰는 것은 개발과 투자. 이런 고정관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재정을 관장하는 관료와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지식인, 서민, 노동자 모두 마찬가지다. 암울했던 독재와 험난한 경제개발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편견이지만 아직도 21세기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취약계층, 노인, 청년을 위한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재정지출은 퍼주기라고 폄하하지만 공항건설 같은 토목사업에 수십조원의 예산을 퍼붓거나 위기에 몰린 부실기업을 국고로 회생시키는 재정지출은 투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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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사회적 가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작년 9월 국회에서 발의돼 심의 중인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고 정의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는 인권 보호, 안전, 건강증진, 노동자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참여와 사회통합,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활성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의 지속 가능성, 공공성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지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한다는 취지로 제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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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포용적 에너지 전환 교토의정서가 타결되던 1997년 무렵, 독일, 영국 등 많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독일과 영국의 경우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이 2020년 기준 40%대에 이르는 성과를 거뒀다.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가 성장해도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지 않는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오래전에 달성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70년대에, 독일은 1991년, 그리고 미국과 일본도 2000년대 중반에 탈동조화를 이뤘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비율이 8%대로 세계 최하위권이고 탈동조화도 달성하지 못한 열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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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이 시대의 공정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불공정한 자본주의와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지난 4월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는 불공정을 줄이는 방법으로 부자 증세, 법인세와 자본이득세 인상을 제안했다. 유럽연합(EU)도 뜻을 같이해 전례 없는 미국과 EU의 공평과세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납세 의무를 다하지 않고, 국가 간 자본 유치 경쟁이 공평과세를 제약하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바이든의 증세 제안에 대한 미국 보수진영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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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정의로운 혁신의 시대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자원이 무분별한 남용으로 훼손되는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이라 부른다. 무분별한 어획으로 물고기의 씨가 마르는 현상, 공장 폐수로 강과 호수가 오염되는 현상, 남벌로 숲이 파괴되는 현상 등 무수히 많은 사례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행동들이 모여, 자신은 물론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20세기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구라는 공유지를 무대로 국가 간, 기업 간, 개인 간의 이기적 경쟁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지구 구석구석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단기적 이윤극대화에 눈먼 기업과 눈앞의 욕망 충족을 위해 폭식하는 소비자가 대량생산과 과잉소비의 악순환을 이어가는 위험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공유지의 비극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끝을 말해준다. 실제로 오존층 파괴, 생물다양성 훼손, 기근으로 인한 식량 난민 등 수많은 환경과 생명 지속 가능성의 위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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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고통분담’ 증세가 상생의 길 신자유주의는 막을 내리고 정부나 공적 관리기구의 책무가 막중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한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안에서도 그렇다. 기후위기로부터 하나의 지구를 책임질, 하나의 관리기구의 막중한 책무에도 합의해야 할 때다. 국가 간의 경쟁적 법인세 인하와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같은 무책임한 이기주의는 위기에 취약한 글로벌 경제로 치닫는 길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닫게 된 것은 다행이다. 국가 간의 경쟁적 탄소배출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재정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자산시장이 과열되었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는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주택가격이 사상 최대로 치솟았다. 자산 불평등 역시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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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부패와 불평등 함정 부패는 사적 이익을 좇아 공적 권한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가 자원을 다수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 집단으로 그리고 빈자들로부터 부자들에게로 이전하여 불평등을 부추긴다. 역으로 부와 자본이 소수에 집중될 때 민간경제뿐만 아니라 공권력과 언론이 돈에 의해 지배되기 쉽다. 이렇게 부패는 불평등을 낳고 불평등은 부패를 낳는 악순환, 불평등 함정이 만들어진다. 자잘한 부패도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패는 상위 엘리트들에 의한 중대부패다. 브라질은 가장 불평등하고 가장 부패한 나라로 손꼽힌다. 정치, 사법, 검찰, 언론, 기업집단이 부패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지대추구로 획득한 부와 기득권을 누리고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구조다. 2003년 노동당의 룰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사회개혁이 시작됐다. 빈곤퇴치 정책으로 2000만명의 극빈층을 구했다. 빈곤율은 급감했고 불평등도 개선됐다. 경제에도 활력이 붙었고 경제규모가 세계 8위로 부상했다. 불평등과 빈곤 해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10년 남짓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부패의 카르텔을 깰 정도로 개혁이 진행될 수 없었고 결국 이 카르텔이 개혁을 중단시켰다. 부패 혐의를 씌워 룰라는 수감된다. 부패한 언론은 대중을 선동했고, 2018년 부패권력이 재집권하면서 불평등은 다시 상승한다. 불평등 함정에서 탈출하려면 반드시 부패 카르텔이 깨져야 한다. 지난주 브라질 대법원은 하급심의 룰라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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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학술적 기만과 혐오의 정치 성노예 문제와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에 대한 문서화된 증거는 이미 한국을 비롯한 피해 당사국뿐만 아니라 유엔인권위원회, 미국, 일본 정부에 의해 발간된 보고서들에서 확인되었고 일본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수많은 공문서 속에 아직도 묻혀 있다. 일본군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를 계획하고 실행했음이 명백히 드러났고, 무엇보다도 피해 당사자들의 일관된 증언과 일본군 관련자들의 자백이 전쟁범죄의 참상을 생생히 말해주고 있다. 이런 모든 자료들이 일본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증거로 충분하다는 것이 국제인권 규범이 담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상식이다. 1996년 유엔인권위 보고서가 내린 판단이다.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일본 정부도 수차례 도덕적 책임을 인정했으나 법적 책임은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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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위기의 양극화, 방관은 독이다 선진국들이 한 세기 이상에 걸쳐 이룬 경제발전을 한국은 갓 50여년에 이뤘다. 그런데 이런 발전만큼 소득분배도 빠르게 악화됐다. 선진국 중 1990년 이후 불평등도가 가장 빠르게 상승했다. 과거 가난했지만 다른 선진국보다 평등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부유해졌지만 매우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는 어려운 경제지표가 아니더라도 일상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과로사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노동자 2000여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이 정도로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임금 양극화가 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 임금격차 등 노동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표가 지난 20여년간 OECD 회원국 최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다.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 임금수준이 매우 낮고 대기업의 경우는 오히려 다른 선진국보다 국민소득 대비 더 높은 수준이다. 기업 규모별로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그만큼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