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길 넓히는 협력이익공유제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는 생산과 소비를 위해 구성원들이 협력하고 협력의 성과를 공유하는 총체적 활동과 구조로 이루어진다. 분업과 경쟁도 이런 협력과 성과공유의 방편이다. 어떤 나라는 못사는 사람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과를 공유하고 또 어떤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양극화와 빈곤으로 고통받도록 성과를 공유한다. 경제발전의 진보는 후자에서 전자로 향한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경제주체들 간에 힘의 불균형은 이런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노동과 자본 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았다면 노동착취, 양극화와 빈곤은 해결될 수 없었다. 노동권의 강화로 얻어진 노동과 자본 간 힘의 균형이 진보의 길을 열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기업 간 협력도 마찬가지다. 기업 간의 힘의 불균형이 강자의 약탈과 기업양극화 그리고 노동양극화라는 퇴보를 만든다. 이런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제도혁신이 반독점과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런 규제만으로 부족하다.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면 혁신과 성장의 잠재력을 키워 모두에게 이롭지만 대기업은 단기적 이익을 좇는 약탈적 행동으로 힘의 불균형을 재생산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런 딜레마를 탈출하려면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이익과 상생협력을 신뢰하는 관행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느 한 기업이 이런 전환을 이룰 수는 없다. 시장 전체가 합심해 나쁜 행동은 경계하고 협력을 지원하는 지난한 역사의 축적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말 독점자본의 폐해와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기업의 약탈적 행동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커졌고 ‘중소기업법’이 도입됐다. 일본에서도 전후 불공정한 하도급 시장의 문제가 대두됐다. 미군정에 의해 재벌은 해체됐지만 국민 다수의 일터였던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커졌고 1950년대 하도급 관련 법제가 도입됐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된 협력의 진화가 상생의 기업생태계를 만들었다.

한국경제는 이런 기업 간 상생협력이 숙성할 충분한 시간도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소수의 재벌 대기업에 국가의 자원과 특권을 집중시킨 성장전략 때문에 경제력 집중도 심해졌다. 상생협력의 질서가 자리 잡기 매우 열악한 힘의 불균형이 지배하고 있다. 극소수의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대다수의 소기업으로 구성된 뾰족한 압정 모양의 기형적 기업생태계, 이것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약점이다. 냉혹한 국가 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단기간에 이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명 상생협력법이다. 15년이나 지났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높은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평균임금과 (종업원 500인 이상의) 대기업 임금을 비교하면 2017년 평균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54.2%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프랑스의 경우 이 비율이 각각 88.7%, 88.1%, 72.8%로 월등히 높다. 열악한 임금을 받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비중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글로벌 협업망 의존도가 높아지고 중후장대산업 경쟁력이 약해지는 등 무역과 기술환경 변화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 상생협력법의 역할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기업 간 자율적 협력을 촉진하고 확산하기 위해 상생협력법이 제시하는 성과공유제는 위·수탁관계에 있는 기업에 적용되고 수탁기업의 원가절감 성과를 공유하기에 적합하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 유통업,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분야의 기업 간 협업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변화에 맞춰 다양한 방식의 기업 간 협력을 폭넓게 지원하기에 제약이 크다. 수탁기업의 원가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것도 성과공유제의 문제다. 명칭을 달리하며 지난 10여년간 논의된 협력이익공유제는 성과공유제의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위·수탁 관계가 아니라도 기업 간 협력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 있다면 사전에 약정된 기준에 따라 성과를 나누는 계약 형태로 실행할 수 있다. 성과공유제와 마찬가지로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상생협력의 인센티브를 만든다. 협력이익을 정하는 문제와 이익을 나누는 방식은 기업 간 자율적 의사결정에 따라 협의되어 시장질서에 반하지도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널리 사용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법제화되면 정부의 세제특례, 정책자금 지원, 평가 우대 등을 통해 협력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다양한 방식의 기업 간 상생협력을 보다 빠르게 확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라는 입법 취지를 살리려면 시대의 변화에 맞게 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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