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작년 9월 국회에서 발의돼 심의 중인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경제·환경·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라고 정의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는 인권 보호, 안전, 건강증진, 노동자의 권리, 사회적 약자의 참여와 사회통합,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활성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환경의 지속 가능성, 공공성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지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한다는 취지로 제안됐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같은 취지에서 2018년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 항목이 추가됐고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배점도 두 배 이상 상향 조정됐다. 반면 재무성과와 업무효율성의 비중은 절반 이하로 하향 조정됐다. 이런 변화가 지난 3년간 공공기관의 성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의 내용이 얼마 전 공개됐다(‘조세재정브리프’ 제111호, 허경선박사의 글). 이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가 재무성과에 미치는 유의미한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영향을 예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노사관계가 계량경영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산업재해도 낮추는 역할을 했다는 점과 삶의 질이 영업이익률을 높였다는 점은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기간이 짧은 점, 그리고 이 기간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이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감소했으며 상장공기업의 주가가 감소했다는 점 등은 사회적 가치 중심의 평가가 갖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시기상조임을 말해준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평가의 모호성과 하향식 평가체계 때문에 공공기관의 특성이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거나 도덕적 해이에 의한 방만한 사업 확장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기관별 사업특성을 반영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준과 평가방식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유의 사회적 가치 평가체계를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사회적 가치를 쉽게 이해하고 단순화하는 데 공리주의적 접근이 편리하다. 사회적 성과의 효용(복지)을 화폐단위로 측정하여 합산하는 방식이다. 가령 사회적 성과로 얻어진, 취약계층의 10만원어치 쌀의 효용이 일반인의 100만원의 효용과 같다면 사회적 가치는 100만원이다. 같은 이유로 공기업이 취약지역에 지원하는 전력의 사회적 가치는 실제 전력가격보다 더 크다. 영업손실이 있어도 이런 사회적 가치가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공기업은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가치 창출과 영리활동을 병행하는 기업이다. 정부는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시행령에 따라 2015년부터 사회적기업을 인증하고 인증 사회적기업에 대해 지원정책을 시행해왔다. 자율경영 공시자료를 이용해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 지원이 사회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 어느 것에도 유의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준이 불완전하고, 사회적 가치에 반응하지 않는 지원방식 때문이다. 가령, 인건비 지원이 사회적 가치와 무관한 고용에 대해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부의 사회적기업 지원과 달리 SK그룹이 지원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지원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이용하여 사회적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에 비례해서 지원금을 배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자료를 이용한 필자의 분석에서는 지원금이 참여기업들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동기를 강화한다는 결과가 얻어진다. 사회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지원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에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아동노동, 환경파괴 등 다국적기업의 비윤리적 기업 활동이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서 영리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관리하는 사회적 책임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최근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런 경향이 가속화됐고 기업의 ESG성과는 글로벌 투자의 표준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하고 공론화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표준이 제시되게 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표준은 유일하지 않다. 다양한 표준들이 제안되고 가장 주목받는 표준이 선별되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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