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에너지 전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교토의정서가 타결되던 1997년 무렵, 독일, 영국 등 많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독일과 영국의 경우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이 2020년 기준 40%대에 이르는 성과를 거뒀다.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가 성장해도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지 않는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오래전에 달성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1970년대에, 독일은 1991년, 그리고 미국과 일본도 2000년대 중반에 탈동조화를 이뤘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비율이 8%대로 세계 최하위권이고 탈동조화도 달성하지 못한 열악한 상황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0년에서 2019년까지 주요국의 재생에너지 설비투자 총액을 비교한 최근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투자 총액은 독일과 일본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인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발전량 단위당 평균발전비용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석탄이나 가스를 이용한 발전보다 저렴한 지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북미와 남미, 유럽, 호주, 그리고 인도와 중국까지 화석연료가 아니라 태양광이나 풍력이 가장 저렴한 발전원이 됐다. 한국은 아직도 석탄 화력이 가장 저렴하다. 이런 자료들이 보여주는 명백한 사실은 한국이 에너지전환에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보다 적어도 10년 이상이나 늦다. 근시안적이고 비전 없는 정치, 그리고 낮은 국민의식이 초래한 결과다.

국제사회가 교토의정서의 뒤를 잇는 후속 기후체제에 대한 논의를 본격 진행한 것은 2000대 중반이 지나서부터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대선공약에서도 안 보이던 ‘녹색성장’이라는 전략을 불쑥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건 이름뿐이었다. 오히려 실제 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무려 31조원에 이르는 국가와 공공 부문의 자금을 해외 자원개발에 쏟아부었다. 줄여야 할 화석연료 의존도를 오히려 더 높이는 황당한 결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투자금 회수도 어려운 부실사업으로 드러났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물 그리고 낙하산인사로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이 저지른 일이다. 설사가상으로 2012년 정부는 12개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계획까지 추진했다. 이 계획은 아직도 에너지전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시대착오적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속됐다. 촛불혁명 이후에야 변화가 시작됐지만 성과는 더디기만 했다.

그사이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엄중해졌다. EU, 미국, 일본 등이 2050년까지 경제활동에 따른 순탄소배출을 0이 되도록 하겠다는 탄소중립 선언에 나섰고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대형 해외투자회사는 탄소배출이 과다한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EU 집행부와 미국 정부는 탄소국경조정을 통해 탄소배출 저감이 불량한 나라와 기업의 수입품에 관세와 같은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4일 EU 집행부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 5개 분야에서 시행되고 2026년 전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수출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구체적 실행목표와 연도별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단계다.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의 멀고도 험한 여정은 피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한국의 자연적·지정학적 여건은 모두 좋지 않다. 다른 선진국들의 지난 10년의 노력과 성과를 단기간에 따라 잡으려면 치밀한 계획 못지않게 전 국민의 연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에너지 전환의 비용과 편익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나눠 가지는 포용적 전환으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환 과정에서 특정 지역, 산업과 노동자, 혹은 특정 계층에 피해가 집중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산과 녹색산업 육성이 중소기업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수요관리를 위해 전력 도소매 가격의 신호기능은 정상화돼야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가격 변동성과 전력공급 불안정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전력산업의 공공성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력 및 에너지 공기업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들이 민간 사업자와 협력하여 재생에너지 확산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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