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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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익명의 시간 연말 송년회 시즌을 앞두고 이런저런 단기아르바이트를 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술값이라도 좀 벌어볼 요량이었다. 상하차나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는 배제했다. 술값 벌려다가 병원비가 더 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걸 빼도 과연 현대사회, 별의별 아르바이트가 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사용될 목소리 녹음이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에 관련된 일이라니. 돈도 벌고 미래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다음날 아침,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합정동에 있는 오래된 오피스텔의 오래된 방이었다. 오래된 노트북 한 대와 오래된 마이크가 장비의 전부였다. 혼자 기다리던 남자는 말없이 노트북 화면을 켜고 지정된 단어들을 낭독하라고 했다. 약 20분에 걸쳐 몇백개의 단어를 읽었다. ‘교차로’ ‘부장님’ 같은 의미 있는 단어들과 ‘빽봉’ ‘로나가’ 같은 의미 없는 단어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무 감정도 싣지 않고 단어들을 읽었다.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낭독이 끝난 후 남자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급여 지급을 위한 정보를 기입하는 종이였다. 낡은 방에 들어가서 낡은 방을 나올 때까지, 나와 남자가 나눈 대화는 “안녕하세요”와 “수고하셨습니다”가 전부였다. 인공지능처럼 그럴싸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기계처럼 차가운 시간이었다. 20분이 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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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초능력이 생긴다면 스파이더맨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었다. 아이언맨의 끝내주는 장갑을 끼고 싶었다. 헐크처럼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슈퍼맨처럼 알고 보니 부모님이 우주인 같은 상황은 겪어보고 싶었다. 아득한 옛날이다. 그럴 나이는 지나도 한참 전에 지났다. 그래도 갖고 싶은 ‘초능력’이 있다. 공감각이다. 물론 공감각을 능력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아무나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심지어 대단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니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이다. 실제 공감각 능력자인 뮤지션들의 경험을 소개하겠다. 먼저 소리를 색깔로 느낄 수 있는 토리 에이머스의 말이다. “…모든 노래는 마치 빛으로 뭉쳐진 덩어리처럼 보였고, 나는 그것을 건드려 깨트리곤 했다. 35년간 그것을 반복하다보니, 나에게 있어 어렵거나 복잡한 곡은 없었다…곡을 듣는 것은 마치 만화경을 보는 기분이었다.” 로빈 히치콕은 맛을 소리로 느낀다고 한다. “몇년 뒤에 기차를 타고 가면서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는 순간 귀에 브라이언 페리의 솔로곡이 들렸다. 난 그날 이후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빌리 조엘은 심지어 글자와 음악을 색으로 느낀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 따르면 가사에 쓴 글자가 서로 다른 색깔로 보인다고 한다. A, E, I는 선명한 푸른색이나 녹색으로, T, P, S는 붉은색으로, 그밖의 알파벳은 오렌지색으로 보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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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기분과 취향은 다른 것 잠들기 전이면 한참이나 몸을 뒤척거리게 된다. 가까스로 수면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를 자극하는 미묘하고도 불균질한 감촉이 나를 다시 맨정신의 세계에 내팽개친다. 베개, 바로 베개가 범인이다. 최적의 쿠션감과 높이를 찾아 마치 1㎜ 단위로 유물이 묻혀있는 땅을 훑어가듯 머리를 조금씩 움직인 후에야 비로소 잠이 들 수 있다. 혹은 피곤함이 정점에 올라야 베개의 방해를 무릅쓰고 수면의 구덩이에 몸을 담글 수 있다. 평소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어서 타박받는 게 일상인데, 유독 잠들 무렵이 되면 온몸이 예민해진다. 연애 시절, 연인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 누웠다가도 잠들기 전이면 반드시 팔을 그의 머리에서 빼내야만 했다. 아무리 사랑이 충만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잠버릇이 험악한 아내는 종종 다리를 내 몸에 올려 놓고 잠드는데, 내가 곯아떨어졌다 하더라도 슬며시 자기 다리를 밀어낸다는 증언을 하곤 한다. 사지가 그럴진대, 감각을 느끼는 뇌에서 가까운 목과 머리는 어떻겠는가. 베개에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꽤 오랫동안 썼던 할머니 내복색 베개가 제일이었다. 푹 꺼지는 솜베개도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딱딱한 베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라텍스도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그 베개는 머리에 딱 맞았다. 그 베개의 소중함을 그때는 몰랐다. 이사를 하면서 촌스러운 할머니 내복색 베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초록색 체크 무늬 베개가 왔다. 베개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쿠션에 가까웠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었다. 솜은 솜인데 지나치게 많았다. 수면의 적이었다. 음악을 틀고 침대에 누우면 새벽까지 계속 음악을 듣게 된 건 단지 그때의 내가 음악에 미쳐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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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콜드플레이’ 예술과 태도 음악으로 먹고살기는 힘들다. 책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음악책은 어떻겠나. 한국에서 음악책이 귀한 이유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인기를 얻은 음악가의 전기는 더욱 귀하다. 이런 와중에 책 한 권을 읽었다. 콜드플레이의 전기다. 국내에서는 처음 출간된 그들의 전기다. 199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만난 네 친구들이 밴드를 결성한 이후 2015년 <A Head Full of Dreams>까지 총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세계 정상의 팀으로 군림하는 과정을 풍부하게 묘사한 책이다. 보통 뮤지션의 전기는 평전의 형태를 띠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평가보다는 묘사에 치중한다. 멤버들을 포함해 그들의 역사에 발을 디뎠던 사람들의 코멘트를 빼곡히 인용한다.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찍었던 사진은 물론이고 첫 공연의 포스터 같은 희귀자료에서 색채 미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최근 공연 사진까지, 풍성한 시각 자료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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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비틀스의 ‘그 노래’를 극장에서 영화 <예스터데이>는 “만약 이 세상에서 비틀스의 노래를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이른바 이세계물 판타지, 즉 현대의 기술과 지식을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그 기술과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영웅이 된다는 클리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줄거리는 대체로 뻔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와 마찬가지로, 비틀스의 팬이라면 충분히 즐기고도 남을 영화다. 아니, 역시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랬듯이 비틀스의 음악을 몰라도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진가를 새롭게 깨닫는 세대들도 많을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들의 시대’를 고스란히 재현했다면, <예스터데이>는 만약 지금 이 시대에 비틀스의 음악이 등장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인기를 끌게 될지를 보여준다. <아이 앰 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마찬가지로 비틀스의 원곡이 그대로 나오지 않고 주인공의 리메이크로 나오지만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르는 음악은 모든 비틀스 팬을 충격에 빠뜨릴 만하다. ‘과연 저 곡 사용을 비틀스 측에서 허락했다고?’란 의문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그 노래’가 뭔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하지 않겠다.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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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유서 같은 글 20년 가까이 음악인들을 지켜봐왔다. 대부분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친구들이었다. 모두 시작은 미약했다. 끝은 각기 달랐다. 입소문을 타고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친구들이 있었다. 어쩌다 출연하게 된 방송을 통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친구들이 있었다. 차곡차곡 한 단계씩 스스로를 알리며 대기만성을 이룬 친구들이 있었다. 재능이 있다 하여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나는 안타깝고 괴로웠다. 운이 따르지 않아 결정적 고비에 기회를 놓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잠시 반짝했던 영광의 순간을 잊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세월과 정비례로 증가하는 현실의 무게에 눌려 빛나던 총기를 잃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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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파도여 말해다오 강원도 양양은 서핑의 새로운 성지다. 수도권에서의 접근이 용이하고, 초보자와 고수 모두에게 적합한 파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니아의 문화였던 서핑이 양양이 발견된 후 새로운 해양문화가 됐다. 양양 서핑의 중심지는 죽도해변이다. 한적한 어촌이었던 이곳은 몇 년 사이 렌털숍과 스쿨, 아기자기한 카페와 펍으로 가득한 ‘힙 플레이스’가 됐다. 맛집이나 술집 같은 유흥업에 의해 뜬 동네와 문화나 예술로 인해 발전하는 동네의 차이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기록하려는 자의 유무다. 양양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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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K팝의 가치 훼손한 YG 끝내 불똥이 양현석에게 옮겨 갔다. 클럽 버닝썬과 승리에서 시작되어 아이콘 멤버였던 비아이가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종지부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니까. YG소속 아이돌들은 일반적인 한국 아이돌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빅뱅이 ‘거짓말’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 그들의 별명은 ‘다크 아이돌’이었다. 한국 아이돌 역사에서 그들은 ‘거리’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첫 사례였다. 틀에 박힌 모범생이 아니었다. 패션과 이미지, 모든 면에서 빅뱅은 무척이나 자유분방해 보였다. 지드래곤을 중심으로 음악을 직접 만들고 해외의 셀렙들과 교류하며 ‘록스타’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쌓아나갔다. 그래서일까. 연예인, 특히 아이돌에게 따라 붙기 마련인 이런저런 구설과 스캔들도 차원이 달랐다. 승리까지 포함해서 셋이 대마초와 마약에 연루되었으니 말이다. 빅뱅뿐 아니라 투애니원의 박봄은 암페타민을 밀수하다가 적발됐다. 마침내 버닝썬 스캔들이 터지고 비아이까지 의혹이 불거지면서 양현석이 회사를 떠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일련의 과정은 K팝이 추구해온, 혹은 생존을 위해 선택해온 가치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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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럼에도 나는 왜 야구를 볼까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TV에서는 저녁 일일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보려고 보는 건 아닌데도 잠깐잠깐 눈을 돌릴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볼 때마다 ‘막장’의 요소가 기다렸다는 듯 나왔기 때문이다. 회상장면에서 스카프를 두른 여인이 아이를 잘사는 집 앞에 놓는다든가, 세월이 흐른 후 그 여인의 시어머니가 졸도한다든가, 그 여인과 또 다른 여인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우고 있다든가 하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려고 보는 게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온통 그랬다.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기에 말로만 들었던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무엇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욕하면서 시간을 소비하는가, 직관적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야구를 그렇게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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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성수동의 재발견 어떤 동네가 뜨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는다. 그들이 공연이나 전시 등을 통해 어떤 움직임을 만든다. 주변에 그 움직임을 동경하는 카페나 술집, 식당들이 생겨난다. 입소문이 나고 새로운 걸 찾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진다. 1980년대의 신촌, 1990년대의 홍대 앞, 2000년대의 가로수길이 거쳐온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전통적 주거지나 낙후되어 있던 과거 도심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아파트가 주거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1990년대 이후, 아이들의 성장 배경은 그전에 비해 규격화됐다. 똑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똑같은 극장 체인점에서 영화를 봤다. 전국 어디나 있는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와 커피를 먹었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히 들어찬 하늘에 익숙한 이 세대에 붉은 벽돌 단독주택과 저층 건물이 주가 된 풍경은 ‘낡은 새로운’ 것이다. SNS의 등장 이후 이런 동네는 이 세대에 가장 각광받는 곳이 됐다. 그들이 사는 일상과는 다른 배경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붉은 벽돌의 질감과 색감은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그림을 만들어냈다. 경리단길, 해방촌, 망원동, 을지로 등이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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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평화의 여름이 온다 페스티벌의 여름은 끝나고 있는 걸까? 여름을 대표했던 두 록 페스티벌이 모두 전망이 좋지 않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는다. 대신 이 행사를 공동주관했던 지산리조트가 자체적으로 7월26일부터 3일간 ‘지산록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공표했다. 긍정적인 예상이 힘들다. 록 페스티벌 같은 초대형 행사는 꽤 많은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는다. 섭외와 제작, 운영 모두 그렇다. 초기 밸리록페스티벌도 운영 미숙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13년 지산리조트가 다른 회사와 손잡고 열었던 ‘지산월드록페스티벌’은 후기조차 거의 없을 만큼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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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신화와 과학 오래된 CD 한 장을 꺼내 오디오에 올려 놓았다. 아마 21세기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틀었을 거다. 1970년대 이탈리아 밴드 메타모르포시(Metamorfosi)의 2번째 앨범인 <인페르노(Inferno)>였다.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이 앨범은 근 20년 만에 들어도 생생했다.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웅혼하고 장중한 키보드 라인까지 흥얼거릴 수 있었다. 메타모르포시를 비롯한 1970년대 이탈리아 음악이 국내에서 흥한 적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중반의 이야기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했던 KBS 2FM의 심야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통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아트 록 앨범들이 소개됐던 것이다. 라이선스는커녕 수입도 되지 않던 음반을 구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설령 구할 수 있다 해도 몇 만원은 우습게 뛰어넘는 ‘원판’을 살 수 있는 돈이 고등학생에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니 오직 밤잠을 참아가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라테 에 밀레(Latte E Miele), 뉴 트롤즈(New Trolls), 일 로베키오 델라 메달랴(Il Rovecchaio De La Medalia), 퀘벤다 베키아 로칸다(Quevenda Vecchia Locanda) 등 외우기가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수준인 이탈리아 밴드들의 이름을 그때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둘씩 생겨난 유럽 아트 록 팬들을 위해 ‘아트 록 매거진’이 창간되고, 급기야 이 앨범들이 라이선스로 발매되기 시작한 게 1992년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는 음반뿐만 아니라 밴드 및 음악에 대한 정보조차 획득하기가 어려웠다. 방송에 나오는 지극히 단편적인 소개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