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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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나의 사춘기를 소환한 ‘시인과 촌장’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섰다. 미술학원 가는 게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이른 저녁 무렵의 한적한 화실이 좋았다. 학생은 나 하나였다. 선생님은 아그리파 같은 석고상을 그리게 한 후 책을 읽었다. 나는 석고상 같은 걸 왜 그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4B연필을 깨작거리며 선생님이 틀어 놓은 라디오만 들었다. 주파수는 89.1㎒ 고정이었다. 늘 성우 장유진이 진행하던 <가요산책>이 나왔다. 두 시간이 흐른 후, 스케치북에는 선 몇개만 그어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 딱히 없었고, 선생님도 가르칠 생각이 딱히 없었다. 우리는 몇 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받고 시간을 때우고 때워주는 관계였던 것 같다. 그 시간을 대부분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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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의 의미 새해 첫날 처가 어른들과 식사를 하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야기가 나왔다. 장인은 근 10년 만에 처음 극장에 가신 거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TV에서는 퀸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렀다. 광고, BGM,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퀸이 국민가수로 등극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럴만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국 관객수는 총 936만397명이다. 역대 외화 흥행 6위다. 개봉 10주가 지났음에도 예매 순위가 떨어지지 않는 추세로 봐서는 1000만 관객도 꿈이 아니다. 퀸의 모국인 영국을 상회할 정도로 한국에서 특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흥행세는 세계적이다. 개봉 첫 주에 50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익도 엄청나다. 5200만달러를 들여 7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14배 장사다. 세계 2위 시장인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했음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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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연말의 로맨스 올해 들은 음악들 중 평론가로서 반드시 거론해야 할 곡은 방탄소년단의 ‘Fake Love’겠지만 애호가로서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음반은 김사월의 <로맨스>였다. 나온 지 몇 달이 됐지만 이야기하기에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마음으로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이 음반을 위해 할애하고 싶다. 연말에,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 더욱 그러고 싶어진다. 2014년 김해원과의 듀엣 앨범 <비밀>로 데뷔한 김사월은 2015년 솔로 데뷔 앨범 <수잔>으로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 방구석의 짙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디단 설탕맛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20대의 중후반을 통과하는 시기, 김사월은 포크의 본래 모습을 일깨웠다. 아름답고, 신비하며, 몰입하게 하는 20세기 중후반의 포크를. <비밀>과 <수잔>은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팬층을 형성했다. 베스트셀러는 아닐지언정 스테디셀러로 남을 만한 책과 같은 위상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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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보헤미안 랩소디 퀸은 대중음악 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밴드로 꼽힌다. 1973년 데뷔 이래 15장의 앨범을 남겼다. 숱한 히트곡을 배출했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의 1970년대 밴드들에 음악적 영향력에서 밀렸다. 마이클 잭슨과 U2로 대변되는 1980년대의 음악 사조에서도 뚜렷한 기념비를 세우지 못했다. 다만 이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전통적인 음악 비평이 블루스에서 하드 록으로 이어지는 계보적 측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드 록을 완성시킨 레드 제플린, 프로그레시브 록을 대표하는 핑크 플로이드, 이런 수사가 퀸에는 붙지 않는다. 발라드부터 디스코까지 건드린 장르가 너무 많다. 어떤 계보로도 묶기 힘들다. 그들이 앨범보다는 싱글로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비평의 역사에서 퀸이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다 하여 퀸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것은 아니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타일러, 존 디컨은 모두 훌륭한 작곡가였다. 그들은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했다. 리더의 독재가 아닌 멤버들의 분권으로 돌아가는 밴드였다. 음악적 다양성은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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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잔다리 페스타 10월은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비도 별로 오지 않으며 미세먼지까지 없는 축복의 달을 맞이하여 매주말 어디선가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처럼 전통의 가을축제로 자리 잡은 행사들이 보다 많은 이들의 구미를 당길 테지만 나는 10월이 되면 만사를 제치고 잔다리 페스타를 택한다. 10여개의 홍대앞 라이브클럽에서 4일간 펼치는 쇼케이스 페스티벌이다. 잔다리는 홍대앞의 큰 구획인 서교동의 옛 지명이다. 홍대앞이라는 지역성이 이름에 새겨져있다.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올해로 7회째 행사를 끝낸 이 페스티벌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 온 100여팀의 공연이 펼쳐진다. 국내팀을 제외하면 이름만으로 관객을 끌어올 팀은 없다. 그럼에도 이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는 잔다리가 아니었으면 평생 이름조차 몰랐을 각국의 음악가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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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계절로 피어나는 음악 어떤 음악은 세상의 변화 속도와 유행에 상관없이, 수도자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음악을 알리는 데 발매일은 중요하지 않다. 바람의 변화가 그 음악을 품을 때 소개하는 자는 듣는 자에게 이어폰 한쪽을 건네고 싶어진다. 뇌수까지 끓이는 듯했던 더위가 농담이었던 양 사라지고 아침저녁마다 거짓말처럼 선선함을 느끼는 계절이 불쑥 찾아왔다. 약 한 달 전에 발매된 음반 한 장을 꺼내려고 한다. 이때를 기다려 꺼냈다. 장필순의 여덟 번째 작품 <소길花>다. 몇 해 전 이맘때였다. 이제는 <효리네 민박> 덕에 누구나 아는 동네가 된 제주도 소길리, 제주도 중산간에 위치한 그 마을은 개발이나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가까이엔 숲이 아무렇게나 우거졌다. 한 시간에 한 번 농어촌 버스가 다니는 외진 곳이었다. 거기서 하루를 머물렀다. 좋은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신 후 늦도록 잤다.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텃밭이라고 하기엔, 꽤 많은 작물이 가꿔진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시간을 흘려 보냈다. 저녁이 될 때쯤 길을 나섰다. 차가 없었기에 애월 큰 도로까지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소길리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상가리, 하가리 같은 이름이 쓰인 이정표가 보였다. 눈앞에 숲이, 그 앞에는 바다가 들어왔다. 아름답게 푸르던 하늘이 더 아름답게 물들 무렵이었다. 말 그대로 한 줄기 바람이 바다에서 산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음의 바닥으로부터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가을이구나. 계절의 스위치가 켜졌다. 장필순과 조동익이 사는 소길리에서 보낸 하루가 영원히 새겨지는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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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펜타포트의 티셔츠들 지난 10일부터 3일간 개최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한국 최초의 대형 록 페스티벌이자 이제는 마지막 여름 록 페스티벌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여름의 송도에 갔다. 늘 그렇듯 밴드티를 입고 갔다. 지나가던 한 록 팬이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티셔츠 이뻐요!” 얼마전 일본 출장길에서 사온 오아시스 티셔츠. 페스티벌 현장이 아니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일 것이다. 현장까지 가는 지하철 옆자리에는 한 여성이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인 나인 인치 네일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사람도 거기 가는구나, 딱 알 수 있었다. 록 팬이자 밴드티 마니아만의 즐거움이, 이럴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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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1963년의 거울 “1963년이 어떤 ‘기준’이 되는 해였다고, 당시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어요. 분명히 그해의 공기는 달랐고, 어떤 기운과 조짐이 있었어요.”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그해를 이렇게 회상한다. 연대란 10년 단위로 흘러가지만, 실제 세상은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해에 시침처럼 바뀌지는 않는 법이다. 미국 음악의 1990년대가 너바나가 ‘Smells Like Teen Spirit’를 히트시킨 1991년에, 한국의 그것은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에 1980년대와의 완전한 이별을 선언했듯이. 대중문화의 역사, 특히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1960년대의 시작은 언제일까. 1월13일, 음악인 두 팀이 나란히 영국 방송에 출연한다. 그날, 리버풀 출신의 더벅머리 네 명은 처음으로 영국 공영 방송 무대에서 ‘Please Please Me’라는 곡을 불렀으며 뉴욕에서 날아온 젊은 포크 가수가 BBC에서 ‘Blowin’ In The Wind’로 미국에서보다 먼저 TV 데뷔를 했다. 1963년의 일이었다. 비틀스와 밥 딜런이 주인공이었다. 그날 이후, 세계는 달려갔다. 혁명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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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인디의 변천사 1980년대까지,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본산은 신촌과 이태원이었다. 헤비메탈과 블루스 등이 주요 장르였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하여 신촌이 과밀화되면서 임대료는 치솟고 거리는 번잡해졌다. 과거 신촌 문화에 향수를 가진 이들이 홍대앞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하드록과 헤비메탈 대신 얼터너티브와 펑크 등 당시로서는 최신 음악이 흐르는 그곳에 역시 그런 음악을 좇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그 음악을 하고 싶은 법. 원래 음악 술집이었던 ‘드럭’ ‘스팽글’ 같은 곳에서 공연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곳의 ‘죽돌이’들이 밴드를 만들고 역시 단골 손님들을 상대로 무대에 섰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등 이른바 ‘인디 1세대’의 탄생이었다. 홍대앞 밴드들은 그전의 헤비메탈 밴드들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단지 장르뿐만 아니라 활동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그들은 유명곡을 카피하는 대신 처음부터 자작곡 위주로 공연했다. 관객들 역시 카피곡보다 자작곡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같은 노래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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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방탄소년단, 밀레니얼 세대의 히어로 5월18일 오후 6시에 공개된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轉 ‘Tear’>는 ‘학교 3부작’에 이은 ‘기승전결 4부작’의 정점에 걸맞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웬만한 A급 아이돌 컴백의 꼬리표처럼 돼버린 ‘음원차트 올킬’을 빼고도 그렇다. 발매 한 시간 만에 멜론 진입 이용자 수 역대 1위를 달성했다. 10만7885명이 한 사이트에서 그들의 새 앨범을 들었다. 나흘 후인 21일, 85만장의 음반이 팔려 나갔다. 역대 보이그룹 음반 초동 판매량 순위 경신이다. 해외 기록은 더욱 놀랍다. 아마존 예약이 시작된 이후 판매량 1위와 2위를 넘나들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19일,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 65개국 1위, ‘톱 송’ 차트에서는 52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사이트인, 하지만 국내 서비스는 되지 않는 스포티파이에 전곡이 ‘글로벌 톱 200’ 차트에 진입했다. 뮤직비디오 공개 4시간55분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뷰를 달성했다. 24시간 달성 뷰는 3590만, 2018년 유튜브 최고 기록이자 역대 3위 기록이다. 화룡점정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였다. 새 앨범 컴백 무대를 이 행사에서 가진 데 이어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들은 지난해에도 이 상을 받았다. 2연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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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악인의 설득력 언론 시사회가 끝난 후, 극장은 무거웠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어떻게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 놀라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개봉 전날인 24일에야 열린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시사회의 풍경이었다. 이 영화는 거대한 불꽃놀이와 같다. 10년간 쌓아올린 폭약을 2시간40분 동안 쉴 새 없이 터뜨린다. 물론 후속작이 내년에 개봉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희망도 없는 배드 엔딩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쌓아올린 폭약들에 대한 자신감이다. 어느 하나의 시퀀스도 지루할 틈이 없다. 히어로들은 싸우고 또 싸우며 빈틈없는 액션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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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낯선 이들의 도시 낯선 사람 35인이 모였다. 몇몇을 빼면 서로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사람이 모일 때는 대개 이유가 있다.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거나, 나눌 이익이 있거나, 짝이 필요하거나,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떠한 공통점도 없고, 나눌 만한 이익도 없으며, 신상 정보 또한 모르는 35인은 제주도 성산에 모여 2박3일을 보내게 됐다. 이 시간의 이름은 ‘낯선 컨퍼런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열렸다. <낯선 사람 효과>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강한 연결’과 ‘약한 연결’로 나눈다. 전자가 가족, 친구, 동료라면 후자는 낯선 사람, 뜸하게 아는 사람 등 ‘지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그룹이다. 이 책은 강한 연결보다 약한 연결을 통해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한다. ‘낯선 컨퍼런스’는 이 책의 제목과 내용에서 이름을 빌려 온 행사다.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것도 아니고 이 책의 저자들이 진행하는 것도 아니니, 말하자면 그 이론을 검증해보려는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스태프로 참여, 초기 기획부터 진행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