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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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할머니의 콩농사, 콩과 어른의 시간 어른의 시간은 언제일까.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부모에 대한 연민과 부담감을 동시에 끌어안을 때 어른의 시간을 산다. 입맛으로 아이 어른을 구분하자면, 보통 ‘초딩입맛’이라 부르는 입맛이 있다.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나물 따위엔 입을 안 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른의 입맛은 무엇일까. 내게 어른의 입맛이란 깨송편이 아니라 콩송편에 손이 가는 일이다. 어릴 때는 송편을 뒤적거리면서 기어이 깨송편을 찾아내려 난리를 피웠건만 지금은 달콤한 깨송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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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대강의 멈춘 시간 너도나도 쓰다 보면 자리잡는 말들이 있다. 치킨과 맥주를 합쳐 부르는 ‘치맥’과, 4대강의 ‘녹조라떼’라는 말이 그렇다. 두 신조어는 한국적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치맥은 한류의 자부심이 은근히 밴 말이지만 ‘녹조라떼’는 어디 내놓기엔 부끄러운 말이다. 지난 8일 낙동강과 금강 주변의 노지 재배 농산물에서 녹조가 품고 있는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환경 훼손은 ‘녹조라떼’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고, 라떼는 우유가 들어간 음료로 농도가 진하다. 보로 막힌 4대강은 녹차 수준이 아니라 녹차라떼만큼이나 진하고 묵직하게 강을 뒤덮는다. 한강을 수계로 삼는 수도권에서 콸콸 잘 나오는 수돗물을 먹고 살다 보니 솔직히 남의 일 같았다. 생수 좀 그만 뽑고 수돗물을 식수로 쓰자는 말도 보탰었고, 그때마다 “낙동강 물을 마셔봤느냐?”라는 힐난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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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달픈 가축방역 노동자들의 ‘외침’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같은 문장이 진부하다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대체할 수 없는 표현임을 깨달았다. 기회가 닿아 털붙이 가축이 고기가 되어 나오는 도축 과정을 보았다. 도축장은 압도적인 소음과 냄새, 습기와 냉기로 가득했다. 작업자들은 날카로운 날붙이를 예민하게 집중을 하며 잘 짜인 동선에 따라 능숙하게 가축을 처리했다. 그들은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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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RCEP 피해, 침묵이 능사일까 낯선 말들이 입에 감길 때가 위험하다. 고령의 아버지가 ‘팬데믹’ ‘피시알(PCR)’ 같은 말을 쓰는 때가 그렇다. 농민들이 ‘UR라운드’, 즉 우루과이라운드나 WTO, FTA 같은 말들을 일상용어처럼 내뱉기 시작하면서 살기 더 어려워졌다. ‘농산물 수입 개방’의 명료함이 원뜻도 가늠하기 어려운 영어 약자로 대체되면서 세계는 좀 더 복잡해졌다. 무역의 규모나 물목들도 광범위해지고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의 상품들도 사고판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도 의무수입이라는 명분으로 받아들인다. 석유를 태워 가며 배를 타고 돌아다니느니, 제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알뜰하게 먹고, 없는 것만 사다 쓰면 될 텐데 무역 질서는 간단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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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두환을 이야기하자 영생할 줄 알았던 전두환이 사망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되는 1980년대 초부터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사진과 상징물이 넘쳐나 우상숭배의 대상이었으므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전두환은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다. 아버지는 함께 살던 대학생 사촌 오빠에게 전두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이니 데모 판에 기웃거리면 큰일 난다며 단속을 했다. 전두환은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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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과일간식’이 쏘아올린 학교급식 난맥상 2018년 3월15일, 이 지면에 ‘국통에 빠진 딸기라도 먹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철 과일 섭취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차이가 3배 정도 나고, 식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식생활교육 차원에서도 골고루 먹여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행한 사업이고 WHO에서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이라 권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과일 급식은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급식실에서 과일 하나 깎아 주려면 손질 인력이 더 필요하고 인건비와 식재료비가 분리되지 않은 구조에서 여러 조율이 필요하므로 국비 중심의 예산 지원과 인력충원에 대한 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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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라져갈 개고기의 시간 어릴 때 빈혈기가 조금 있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아버지는 마장동에서 물컹하고 이물스러운 고깃덩어리를 사왔다. 그게 ‘지라(소의 비장)’였다. 아버지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숫돌에 칼날을 벼려 지라를 썰어 내게 먹였다. 울고불고 안 먹는다 난리를 피웠지만 아버지는 단호했고 절실했다. 철분제도 먹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싶었던 모양이다. 농촌 출신 1940년대생 아버지의 1980년대풍 처방이었다. 이름만큼 이물스러운 지라의 맛에 비위가 상했지만 아버지의 절대 사랑만큼은 사는 내내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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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가축방역도 K방역이다 드디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고령의 아버지도 계시고, 노인이 많은 농촌을 돌아다녀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국가공인 가장 건강하다는 40대인 데다 필수인력도 아니니 조심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막급한 상황에서 의료와 방역 종사자들이 우선인 것은 당연하여 불만제로다. 그런데 필수 방역업무를 맡고 있는데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못한 이들이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가축 방역 최일선에서 소, 닭, 돼지를 비롯해 사슴, 염소, 양의 채혈과 시료 채취, 축산물 위생검사와 예찰까지 축산업 전후방을 지원한다. 특히 육중한 소와 돼지를 다루는 일 자체가 위험한 데다, 날쌘 염소 같은 동물을 잡아다 피를 뽑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채혈을 하려고 가축을 붙잡아두려다 보니 근골격 질환은 기본으로 달고 산다. 축산물 검사를 하는 위생사들은 예리한 칼을 다루다 종종 피를 흘리기도 한다. 방역과 위생 업무의 특성상 근력이 있는 20대에서 50대 노동자들이 다수인데, 하필 백신접종 대상 후순위에 해당한다. 이들의 현장은 고령의 주민이 사는 농촌인 데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접촉이 빈번한데도 왜 필수예방접종 대상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원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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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여성농민이 외치는 ‘보통의 요구’ 농촌에 가서 시간이 뜨면 한의원에 간다. 중년인 나도 언제나 환자 상태여서 잠시 허리라도 펼 겸 들른다. 얼마 전 충청도 한의원에서 만난 옆 침상의 할머니는 등이 곡선으로 휘어 모로 누운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년을 모로 누워 지냈으니 어깨도 굽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시골 한의사는 단골 환자에게 일을 줄이라 말하지만 의사도 환자도 지키지 못할 공허한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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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창의 외로운 ‘닭싸움’ 25년 전 이맘때, 전북 익산으로 우리집 토마토나 따라는 엄마한테 ‘농학연대’하고 오겠다며 농활을 갔다. 농민들에게 많이 배워 와 우리집 농사를 더 열심히 돕겠다는 핑계를 댔다. 익산시 성당면의 전형적인 수도작 마을이었는데 장마철인 7월 초순엔 일도 없었고, 당시에도 벼는 기계로 짓는 농사가 되어 겸업농가가 많았다. ‘농학연대’를 하자면 사람을 만나야건만 낮에는 사람 구경이 어려웠다. 주민들이 육계회사 ‘하림’의 대형 도계장에 돈을 벌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끼리 일할 때도 많았다. 당시 마을에는 회사에서 기증한 닭튀김기가 있었고 닭도 흔해 마을잔치에 직접 치킨을 튀기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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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소금주먹밥과 군대 급식 살아남았다면 구순인 큰아버지는 6·25전쟁 전사자다. 외삼촌마저 월남전 전사자여서 6월이 되면 삼촌들이 계신 국립묘지에 성묘 가는 일이 집안 큰 행사다. 문득 큰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하여 6·25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 초기에는 민가의 부엌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지게에 지고 전투현장까지 실어나르곤 했다는데 운 좋으면 하루에 주먹밥 한 개를 먹고, 며칠 내내 굶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전문적인 보급부대가 아니라 동원된 민간인에게 맡겼으니 오죽했으랴. 그렇게 배를 곯고 싸우다 큰아버지는 스물셋 청춘을 이 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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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원천상회와 쌍봉댁을 위하여 ‘구멍가게’ 열풍이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에 있는 동네 슈퍼 ‘원천상회’에서 유명 배우들이 열흘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겪는 좌충우돌기 예능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덩달아 화천군에는 근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대면으로 하는 산천어축제가 취소되고 여러 어려움을 겪던 차에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일으킨 나비효과다. 지나는 길에 들렀더니 상회 앞이 장사진이다. 가게 주인은 라면을 끓이느라 정신이 없고 인기가 높았던 ‘대게라면’은 품절이다. 점심때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라면을 먹으러 줄을 서 있고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마을주민들을 위해 주인이 내주던 무료 자판기는 쉴 새 없이 종이컵을 토해내고 있었다. 검은개 ‘둥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