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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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창의 외로운 ‘닭싸움’ 25년 전 이맘때, 전북 익산으로 우리집 토마토나 따라는 엄마한테 ‘농학연대’하고 오겠다며 농활을 갔다. 농민들에게 많이 배워 와 우리집 농사를 더 열심히 돕겠다는 핑계를 댔다. 익산시 성당면의 전형적인 수도작 마을이었는데 장마철인 7월 초순엔 일도 없었고, 당시에도 벼는 기계로 짓는 농사가 되어 겸업농가가 많았다. ‘농학연대’를 하자면 사람을 만나야건만 낮에는 사람 구경이 어려웠다. 주민들이 육계회사 ‘하림’의 대형 도계장에 돈을 벌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끼리 일할 때도 많았다. 당시 마을에는 회사에서 기증한 닭튀김기가 있었고 닭도 흔해 마을잔치에 직접 치킨을 튀기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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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소금주먹밥과 군대 급식 살아남았다면 구순인 큰아버지는 6·25전쟁 전사자다. 외삼촌마저 월남전 전사자여서 6월이 되면 삼촌들이 계신 국립묘지에 성묘 가는 일이 집안 큰 행사다. 문득 큰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하여 6·25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쟁 초기에는 민가의 부엌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지게에 지고 전투현장까지 실어나르곤 했다는데 운 좋으면 하루에 주먹밥 한 개를 먹고, 며칠 내내 굶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전문적인 보급부대가 아니라 동원된 민간인에게 맡겼으니 오죽했으랴. 그렇게 배를 곯고 싸우다 큰아버지는 스물셋 청춘을 이 땅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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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원천상회와 쌍봉댁을 위하여 ‘구멍가게’ 열풍이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에 있는 동네 슈퍼 ‘원천상회’에서 유명 배우들이 열흘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겪는 좌충우돌기 예능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덩달아 화천군에는 근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대면으로 하는 산천어축제가 취소되고 여러 어려움을 겪던 차에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일으킨 나비효과다. 지나는 길에 들렀더니 상회 앞이 장사진이다. 가게 주인은 라면을 끓이느라 정신이 없고 인기가 높았던 ‘대게라면’은 품절이다. 점심때도 아니건만 사람들은 라면을 먹으러 줄을 서 있고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마을주민들을 위해 주인이 내주던 무료 자판기는 쉴 새 없이 종이컵을 토해내고 있었다. 검은개 ‘둥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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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제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청첩장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신랑 신부의 어여쁜 사진이 아니라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예식장 주소였다. 신부는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5촌 조카가 졸업한 고등학교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4·16 세월호 참사의 희생 학생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안산을 갈 때마다 마음이 늘 ‘그랬다’. 이번에도 4월에 안산을 오니 “마음이 참 그렇다”라며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경사에 서로 말을 아꼈다. 결혼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괜찮으냐?’라는 메시지가 여기저기에서 날아들었다. 조카들이 동네에 큰불이 났다면서 엄마와 이모는 어디쯤 오는 중이냐며 다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10㎞ 밖인 하남시에서도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보일 정도로 대형화재였다. 정규 방송을 잠시 멈추고 속보까지 전할 정도로 긴박했던 대형화재, 일명 ‘남양주 주상복합 대형화재’가 난 곳이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다.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외출을 했기 때문이다. 상가 안에 있는 단골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사 먹고 있으라 돈을 쥐여주고 나온 것이다. 배달비도 아낄 겸 늘 직접 가서 피자를 사 오곤 해서, 설마 하며 심장이 죄어왔다. 다행히 집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느라 피자 사 먹는 일도 까먹은 모양이다. “엄마 우리 집까지도 냄새가 들어와”라는 아이의 메시지에 일단 문을 닫고 있으라, 집에서 속보 보면서 상황을 보고 있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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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질투는 힘이 없다 아버지는 돈 냄새를 잘 맡았다. 안타깝게도 잘 맡기는 하지만 꼭 대박 직전에 발을 빼는 재주를 가진 것이 문제다. 일명 ‘마이너스의 손’인 아버지의 전설적인 행보는 명절 때마다 집안 단골 안줏거리기도 하다. 부모님은 1970년 충북 산골에서 충주 비료공장의 호황을 따라 충주로 이촌을 하였다. 그러다 1983년 비료공장이 문을 닫고 지역경기가 나빠져 새로운 삶을 고민했다. 선진 농업인 축산을 해보고 싶어 충남 천안에 젖소를 기를 땅을 구하고 가계약까지 진행하였으나 우유 파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 영 마음이 불안하여 결국 포기하였다. 당시 목장 부지로 사려던 천안 땅이 약 3만3000㎡(1만평). 지금 그 위치에는 상전벽해가 일어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고 고속철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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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그 소년들도 우리가 지켜야 할 영혼이다 공분으로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일이 있다. 음주운전에 대해 무거운 죄를 묻는 ‘윤창호법’이나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 같은 법들이 그 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아동에게 가해진 무참한 폭력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고, 조만간 아동폭력에 대한 엄벌을 골자로 한 ‘정인이법’이 나올 것이다. 또한 아동보호와 복지 확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다. 왜 이렇게 꼭 귀한 생명들을 놓쳐야만 그제야 사회는 움직이는 것일까. 지난 1월 뜬금없이 정인이의 학대 피의자가 수감되어 있는 서울 남부구치소의 식단표가 논란이 됐다. 정인이는 죽기 전 우유 한 모금 먹지 못했다는데 살인마에게 세금으로 너무 잘 먹인다는 공분이었다. 한 누리꾼의 개인 포스팅을 언론사마다 퍼가고 살을 붙이면서 일파만파로 퍼졌다. 구치소의 수감자 1인당 급양비는 한 끼에 1540원이다. 1540원에 주식, 부식, 연료비가 포함되어 있으니 화려한 식단이랄 수는 없다. 그리고 구치소에는 정인이 가해 피의자만 수감된 것이 아니다. 법의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미결수들이고, 개중에는 ‘장발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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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멈춰선 농촌의 작은 목욕탕 몰아친 한파에 아파트니까 괜찮지 않을까 방심을 한 것이 패착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방학이고, 사람 만나지 말라가 국시가 된 마당에 며칠 씻지 않는다고 큰 불편이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양치를 해도 이가 시리고 고무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았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겨울에 온수 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다가 이번 한파에 된통 당했다. 연탄보일러를 때던 시절에는 겨울에 씻는 일은 늘 고역이었다. 엄마가 아침마다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세숫대야에 부어주면 고양이 세수를 했고 머리는 일주일에 한 번 감을까 말까였다. 그러다 연탄불을 갈지 않아도 되는 기름보일러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기름값이 무서워 겨울에는 온 식구가 한 방에 몰아서 지냈다. 온수는 아침에 잠깐 틀어 식구들 한꺼번에 씻고 나면 엄마는 매정하게 바로 보일러를 끄곤 했다. 이제 내겐 ‘그때를 아십니까?’ 정도의 추억담이지만 여전히 연탄과 기름보일러의 시절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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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컵라면의 온기라도 쥐여주려면 컵라면은 바쁘고 입맛 없을 때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언제 어디서든 한 끼의 식사로 변신하는 요긴한 패스트푸드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종종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장치로 쓴다. 특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면 대사가 없어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삶의 비극성을 드러낼 때도 라면이 동원된다. 비근한 사례로 인천의 주택 화재를 ‘라면형제’ 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이다. 화재 조사 결과 라면을 끓이다 불이 난 것은 아니라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도 ‘라면형제’ 사건으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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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비료와 잡힌 물고기 21(n)-17(p)-17(k). 금고의 비밀번호 같은 이 번호를 보고 딱 어떤 뜻인지 단박에 맞힐 수 있으면 농사짓는 사람일 것이다. 저 숫자는 20㎏ 비료 한 포대에 질소 21%, 인산 17%, 칼륨 17%가 들어간 ‘복비’, 즉 복합비료의 함량 표시다. 여전히 칼륨이 아닌 ‘가리’라 부르는 농민들도 많다. 21-17-17 비료는 물에 잘 녹아 농업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1종 복합비료다. 이외에도 많이 쓰이는 nk비료는 질소와 칼륨이 함유된 비료이고, 질소가 46% 정도 들어간 요소비료도 농민들이 많이 쓴다. 보통 화학비료라 부르는 이 무기질 비료는 현대 농업의 필수적인 농자재다. 과거에는 비닐로 된 비료부대도 농촌 생활에 유용했다. 고추 같은 작물을 따서 담기도 하고, 겨울에는 흙을 담아 움파를 길러 먹거나 겨울 채소를 보관하기도 했다. 동네 조무래기들에게는 최고의 눈썰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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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채식 선택 급식’ 도입 방역수칙 1단계 조정으로 일상이 어느 정도 굴러가는 느낌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학교급식법은 1981년에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시행된 것은 1998년이다.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그리고 친환경무상급식의 단계로 지난 20여년 동안 꿋꿋하게 걸어왔다. 이제 학교에서는 급식세대 교사가 급식세대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급식은 의무교육이 아닌 고등학교까지도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도입하면서 명실상부한 보편적 의무급식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면서 질적 전환도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경남처럼 갑자기 유상급식으로 후진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차별 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점심 한 끼를 먹여야 한다는 것에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지지한 결과가 지금의 학교급식이다. 그리고 채식급식 선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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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늘어나는 ‘깔세’ 매장 신도시 상가 건물에는 무엇이 들어오나 궁금해서 종종 간판 구경을 위해 나서곤 한다. 컨테이너 박스에 차려진 부동산중개소들은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에 이 상가에는 병원과 약국,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설 예정이라면서 설레발을 치며 투자를 권유하곤 한다. 지금 집에서 쓰고 있는 행주가 다 이런 ‘컨테이너 부동산’에서 얻어온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그 건물엔 들어오기로 했다는 유명 커피점이 아니라 저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한철 뜨다 지고 말 복고풍 고깃집들이 자리를 잡곤 한다. 결국 병원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 임차인을 들이고 싶은 것은 건물주의 ‘빅피처’이자 ‘로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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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김장철은 아직 멀었다 살림살이하기 참 힘든 한 해다. 농촌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안정적인 판로라 여겼던 학교급식도 전염병 상황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산 김치를 많이 쓴다 해도 그나마 국산 농수산물을 많이 소비하는 외식업이 정지 상태가 돼버렸다. 올해는 하늘마저도 가혹하게 굴었다. 최장 기간의 장마와 태풍으로 작물들이 햇빛 볼 날이 적었다. 하나 기특하게도 잘 자라서 과일 좌판에는 여름 사과인 ‘아오리’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조생종 사과 ‘홍로’가 배턴터치를 무사히 하고 있다. 때마침 여러 언론에서는 ‘금채소’ ‘금과일’ 보도를 쏟아낸다. 배추와 무, 고추, 호박과 당근, 사과와 포도 등 농산물 가격이 금값으로 치솟아 밥상물가에 이어 추석물가도 위협한다는 논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