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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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늘꽃도 못 보고 짓는 마늘농사 하루종일 밭을 매고 와서도 꽃에 물을 주는 농촌의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여성농민에게 식물 기르는 일이 지겹지도 않냐 물었더니 “이쁘잖아. 촌에서 꽃을 볼 일이 없어”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건네신다. 기실 농사라는 것은 꽃과의 싸움이다. 굵고 단단한 소출을 내기 위해서 꽃은 적절하게 쳐내거나 아예 꽃 볼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농사다. 과수농사에서 꽃을 솎는 적화작업이 일 년의 농사를 결정하듯, 마늘은 아예 꽃대가 올라오지 못하게 끊어버리는 농사다. 봄 한철 맛있게 볶아먹고 장아찌도 담그는 그 마늘종이 마늘 꽃대다. 영양을 마늘로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꽃을 길러내는 마늘종은 그냥 둘 수가 없다. 마늘종을 그대로 두면 마늘꽃이 피는데 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꽃이 보랏빛으로 피어 퍽 예쁜 꽃이다. 고급 꽃품종인 ‘알리움’이 마늘꽃이지만 꽃 보자고 짓는 농사가 아닌지라 농촌에서 보기 힘든 꽃도 마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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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창의 의로운 닭싸움 부안의 고등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왔다. 1년 전 본지에 ‘고창의 외로운 닭싸움’이라는 글에서 부안에 있는 동우팜테이블 자회사 ‘참프레’ 도계장에서 날아오는 악취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해도 지역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는 인연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2020년 4월, 부안군과 갯벌을 나누고 있는 인근 고창군에도 같은 회사의 닭, 오리 가공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고창군은 발칵 뒤집혔다. 고창일반산업단지에 입주 계획을 밝힌 동우팜테이블 도축장은 부안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하루에 84만 마리의 닭, 오리를 잡을 수 있는 규모였고, 만약에 세워졌다면 아시아 최대의 가금류 도축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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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제철꾸러미, 지역 선순환으로 되살리자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는 연구 논문의 주제도 유행을 탄다. 저 ‘○○’에 들어가려면 연구자의 관심도도 중요하고 사례가 풍부해 현장 접근도 쉬워야 한다. 사회과학 논문에서 활발하게 다뤄지던 사례가 ‘로컬푸드’ 테마였다. 비슷한 연구방식에 지역만 살짝 바꾼 논문들이 수두룩하다. 논문 검색 포털에 검색어로 ‘로컬푸드’를 넣으면 500편이 넘는 논문이 나온다. 로컬푸드 하면 으레 농협 하나로마트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편백나무 매대를 떠올리지만, 10년 전만 해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례는 ‘제철꾸러미’ 방식이었다. 로컬푸드 유형 중에서는 직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식도 있지만, 제철꾸러미는 제철에 나오는 다양한 농산물과 장아찌나 김치와 같은 소박한 가공식품으로 구성해 소비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로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택배로 보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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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더러운 빵’ 거부한 임종린의 굶는 몸 케이크 살 일이 많을 때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처럼 이름 붙은 날도 많아서다. 지인들끼리 케이크와 커피 기프티콘이 유독 5월에는 오고 갈 일도 많다. 기프티콘을 선물로 보낼 경우에는 아무래도 매장이 많은 브랜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파리바게뜨도 그중 하나다. 우리 동네에도 파리바게뜨 매장이 세 군데나 된다. 이제 케이크는 특별한 날 아니어도 디저트로도 먹는 음식이지만 여전히 케이크를 들고 가는 누군가를 보면 축하할 일이 있겠구나 싶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파리바게뜨의 불매운동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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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건희 대표, 사회적기업 대표로 변신할까? 1970년대 ‘영애’로 불렸던 박근혜씨의 본명이 ‘박영애’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영부인’이라는 권위주의적인 호칭 대신 ‘여사’라는 말을 쓰지만, 이 글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의 배우자를 ‘김건희 대표’라 호명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얼마 전 김건희 대표가 일하는 대통령 부인의 상을 제시하며 자신이 운영하던 전시 홍보 회사 ‘코바나컨텐츠’를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여 이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사업체가 사회적기업으로 갈지, 휴업으로 갈지 결정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배우자가 여전히 ‘질 바이든 교수’의 삶을 사는 것처럼 김건희 여사 이전에 ‘김건희 대표’로 호명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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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할머니의 콩농사, 콩과 어른의 시간 어른의 시간은 언제일까.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부모에 대한 연민과 부담감을 동시에 끌어안을 때 어른의 시간을 산다. 입맛으로 아이 어른을 구분하자면, 보통 ‘초딩입맛’이라 부르는 입맛이 있다.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나물 따위엔 입을 안 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른의 입맛은 무엇일까. 내게 어른의 입맛이란 깨송편이 아니라 콩송편에 손이 가는 일이다. 어릴 때는 송편을 뒤적거리면서 기어이 깨송편을 찾아내려 난리를 피웠건만 지금은 달콤한 깨송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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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4대강의 멈춘 시간 너도나도 쓰다 보면 자리잡는 말들이 있다. 치킨과 맥주를 합쳐 부르는 ‘치맥’과, 4대강의 ‘녹조라떼’라는 말이 그렇다. 두 신조어는 한국적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 치맥은 한류의 자부심이 은근히 밴 말이지만 ‘녹조라떼’는 어디 내놓기엔 부끄러운 말이다. 지난 8일 낙동강과 금강 주변의 노지 재배 농산물에서 녹조가 품고 있는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환경 훼손은 ‘녹조라떼’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고, 라떼는 우유가 들어간 음료로 농도가 진하다. 보로 막힌 4대강은 녹차 수준이 아니라 녹차라떼만큼이나 진하고 묵직하게 강을 뒤덮는다. 한강을 수계로 삼는 수도권에서 콸콸 잘 나오는 수돗물을 먹고 살다 보니 솔직히 남의 일 같았다. 생수 좀 그만 뽑고 수돗물을 식수로 쓰자는 말도 보탰었고, 그때마다 “낙동강 물을 마셔봤느냐?”라는 힐난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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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달픈 가축방역 노동자들의 ‘외침’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같은 문장이 진부하다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막상 현장을 보니 대체할 수 없는 표현임을 깨달았다. 기회가 닿아 털붙이 가축이 고기가 되어 나오는 도축 과정을 보았다. 도축장은 압도적인 소음과 냄새, 습기와 냉기로 가득했다. 작업자들은 날카로운 날붙이를 예민하게 집중을 하며 잘 짜인 동선에 따라 능숙하게 가축을 처리했다. 그들은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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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RCEP 피해, 침묵이 능사일까 낯선 말들이 입에 감길 때가 위험하다. 고령의 아버지가 ‘팬데믹’ ‘피시알(PCR)’ 같은 말을 쓰는 때가 그렇다. 농민들이 ‘UR라운드’, 즉 우루과이라운드나 WTO, FTA 같은 말들을 일상용어처럼 내뱉기 시작하면서 살기 더 어려워졌다. ‘농산물 수입 개방’의 명료함이 원뜻도 가늠하기 어려운 영어 약자로 대체되면서 세계는 좀 더 복잡해졌다. 무역의 규모나 물목들도 광범위해지고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의 상품들도 사고판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도 의무수입이라는 명분으로 받아들인다. 석유를 태워 가며 배를 타고 돌아다니느니, 제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알뜰하게 먹고, 없는 것만 사다 쓰면 될 텐데 무역 질서는 간단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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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전두환을 이야기하자 영생할 줄 알았던 전두환이 사망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되는 1980년대 초부터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사진과 상징물이 넘쳐나 우상숭배의 대상이었으므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전두환은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다. 아버지는 함께 살던 대학생 사촌 오빠에게 전두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이니 데모 판에 기웃거리면 큰일 난다며 단속을 했다. 전두환은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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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과일간식’이 쏘아올린 학교급식 난맥상 2018년 3월15일, 이 지면에 ‘국통에 빠진 딸기라도 먹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철 과일 섭취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차이가 3배 정도 나고, 식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식생활교육 차원에서도 골고루 먹여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시행한 사업이고 WHO에서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이라 권고하기도 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과일 급식은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급식실에서 과일 하나 깎아 주려면 손질 인력이 더 필요하고 인건비와 식재료비가 분리되지 않은 구조에서 여러 조율이 필요하므로 국비 중심의 예산 지원과 인력충원에 대한 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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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사라져갈 개고기의 시간 어릴 때 빈혈기가 조금 있다는 진단을 받자마자 아버지는 마장동에서 물컹하고 이물스러운 고깃덩어리를 사왔다. 그게 ‘지라(소의 비장)’였다. 아버지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숫돌에 칼날을 벼려 지라를 썰어 내게 먹였다. 울고불고 안 먹는다 난리를 피웠지만 아버지는 단호했고 절실했다. 철분제도 먹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싶었던 모양이다. 농촌 출신 1940년대생 아버지의 1980년대풍 처방이었다. 이름만큼 이물스러운 지라의 맛에 비위가 상했지만 아버지의 절대 사랑만큼은 사는 내내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