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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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트랙터의 시간에서 호미의 시간으로 한덕수 권한대행의 첫 행보는 양곡관리법을 위시한 농업4법 거부권이다. 윤석열 정부의 1호 거부권도 양곡관리법이었는데 탄핵정국에서도 1호 거부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농업4법을 날리면 대신 쌍특검과 헌법재판관 임명은 받으라고 민주당이 던진 미끼가 아니었을지 미심쩍다. 결국 농민들은 소똥을 푸고 땅을 다지는 트랙터에 ‘농민헌법 쟁취, 윤석열 체포, 국민의힘 해체’를 써 붙이고 서울로 내달렸다. 경찰 차벽에 막혀 골바람 부는 남태령에 농민이 고립되자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심야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그렇게 이틀 만에 동작대교를 열어젖히고 트랙터 헤드라이트와 응원봉을 반짝거리며 한남동으로 향했다. 농민과 시민들은 ‘남태령대첩’이라며 “이겼다!”를 외쳤다. 명량대첩에서 들어본 ‘대첩’은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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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지역소멸의 ‘위기탈출 넘버원’ 아이들을 기를 때는 예쁜 줄 모르고 키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내내 아쉽다. 그런데 귀여운 아기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며칠 전 국민영양관리계획 우수기관으로 상도 탄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사업의 일환으로 여는 조리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영양플러스 사업은 임신부와 영유아의 취약한 영양 문제를 해소하고 식생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단위 영양프로그램이다. 보충 식품 꾸러미를 제공하고, 영양교육·상담 등이 이루어지는 사업 효능이 매우 좋은 보건복지 프로그램이다. 비수도권에서는 임신부와 영유아 부모는 다문화가족인 경우가 많다. 이날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유아 음식을 만들어보는 특강 대상도 다문화가족이었다. 농촌지역인 읍면 단위 참가자들은 드물고 주로 시내권에 거주하는 주민들 참여가 많았다. 이날의 메뉴는 강원도 특산물인 옥수수를 활용한 옥수수치즈전과 제철인 파래를 활용한 파래새우전, 서리태 콩조림, 아기들 먹기에 좋은 동부묵볶음이었다. 보충식품으로 콩을 받으면 겨우 밥에만 넣어 먹었다던 캄보디아 출신의 젊은 엄마에겐 ‘콩밥 탈출’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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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무기여 농촌으로 오라 텔레비전에 소식이 들려오면 눈과 귀가 저절로 쏠리는 고장이 있다. 경북 상주시, 그중에서도 외서면이다. 외서면 봉강마을은 농활을 갔던 곳으로 혈연과 학연 아닌 아름다운 ‘지연’으로 남았다. 상주에서도 골짜기라 할 수 있는 외서, 내서, 은척, 화서면 일대는 황금 들판에 붉은 감나무가 어우러져 흡사 이발소 그림 같은 풍경을 지녔다. 하지만 요즘 이 마을들은 대구 50사단 군부대 이전 문제로 시끄럽다. 시내와도 떨어져 있고 전형적인 농업지대인 이 마을들은 상주에서도 땅값이 가장 싸고 개발 가능성도 없어 청정농업지대로 남았다. 그 어렵다는 유기농 포도농사를 비롯한 친환경농업을 꿋꿋이 이어가며 로컬푸드 매장에 농산물을 내는 농민들도 많다. 친환경농업에 뜻을 둔 이들의 배움터인 친환경농업학교도 이곳 외서면에 들어서 있어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깨끗하고 조용한 마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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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정부는 ‘벼멸구 피해’ 안 보이나 20대 딸에게 ‘벼멸구’를 아는지 물으니 의외로 알고 있었다. 근래 언론에서 벼멸구 피해 소식을 그나마(!) 다루고 있어서 들어본 것이냐 물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자였던 방송인 박명수의 별명이 벼멸구였기 때문이란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자랐다. 1975년 벼멸구로 큰 피해가 났고, 이후 1978년, 1983년, 1987년, 1990년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병해충은 식량계획에 영향을 주는 국가적 문제로 인식해 전 언론사에서 비중있게 다뤄 도시내기들도 벼멸구나 ‘이화명충’ ‘물바구미’ 정도는 알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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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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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주 5일 경로당 급식, 조리노동의 문제다 가스불 켜기 겁나는 계절, 독거노인인 아버지의 식사도 걱정이다. 그간 경로당에서 점심을 잡쉈지만 얼마 전 급식도우미 여사님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다. 노인 25명의 점심을 책임졌던 여사님이 가져간 임금은 고작 69만원. 59만원은 지자체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경로당 노인들이 보탠 돈이다. 장보기와 조리, 설거지까지 하는 노동의 가치가 저랬다. 여기에 일주일 치 부식비가 15만원 내외. 고물가 시대에 15만원어치 장을 봐서 지지고 볶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선을 선택하면 과일을 빼야 했다. 텃밭 채소나 각자 집의 밑반찬을 추렴하거나 기부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식사를 꾸려왔어도 끝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점심은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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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청년농민 김재영 농민의 순종 지난 3일 한우 생산자들이 소를 싣고 와 한우반납투쟁을 벌였다. 한우값 하락과 생산비 상승으로 키워봤자 소똥만 남을 뿐이라며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다음날인 4일엔 여의도에서 전국농민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상복을 입은 농민들이 트랙터와 이앙기, SS기라 부르는 과수방제기계를 싣고 여의도로 올라왔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러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올라왔다. 농민대회 날에 부러 때를 맞춘 듯 여의도 일대는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고, 폭염까지 겹쳐 신발이 쩍쩍 달라붙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상복까지 겹쳐 입은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가 팥죽처럼 뜨겁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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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로열의 시대는 끝났다 사과값으로 몇 계절 들썩댔지만 참외, 토마토가 쏟아져 나오자 조금 잠잠하다. 소비자도 손 떨리지만 건질 것이 없던 생산자와 사과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영세 유통상인들도 손이 떨렸다. 사과값 폭등의 주요 원인인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도 반복될 테니 답답할 뿐이다. 다만 ‘금사과’ 사태를 통해 배운 것은 농산물 외모지상주의의 무용함이다. ‘못난이’ ‘비(B)품’ ‘흠과’로 부르던 과일을 ‘보조개사과’ ‘가정용사과’로 부르며 알뜰 소비를 하였다는 점에서 큰 배움이었다. 예쁘고 흠도 없는 ‘로열과’는 왕족급의 품위를 뜻하지만 농산물에서 로열과 건지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기존의 ‘하급’ 취급을 받던 농산물이 ‘상급’으로 대접받을 날이 올 것이다. 하물며 농약과 비료 사용이 어려운 친환경농산물은 농산물 품위 기준을 맞추기가 더욱 어렵다. 유기농 농가가 상품성 있는 수확물이 너무 적어 비료라도 써야겠다며 무농약재배로 돌아서고, 무농약재배를 하던 농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병해충이 창궐해 농약을 쓰는 일반농업으로 전환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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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화장장과 마을민주주의 실험 파묘의 시절이다. 영화 <파묘>도 성공했고, 올해 2월이 29일까지 있던 윤일이었으므로 지자체마다 개장 유골에 대한 화장장 운영 연장 공고가 많았다. 여전히 농어촌엔 윤달 따져 묘지 이장이나 수의를 장만하는 문화가 있어 이런 공고를 보곤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례 방식으로 화장보다 매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극적으로 화장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져 2022년 말 화장률이 91.7%에 이를 정도로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장장은 ‘혐오유형’으로 분류되는 기피시설로 화장장이 들어서려는 지역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는 화장장이 모자란 데다 코로나19로 화장 대란을 겪었던 터라 지자체마다 장지시설 마련에 고심이 깊다. 그런데 변화는 농촌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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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설날이 지나자마자 농촌의 청년 활동가에게서 무거운 연락을 받았다.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의성군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지으며 ‘자두청년’이자 ‘로컬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청년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뇌사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농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청년단체의 수장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당한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실무근이라 반발하지만 조만간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러 들어간 청년들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쉬쉬하며 넘어간 일도 적지 않았노라며. 그렇게 자두청년은 지난 3월8일 끝내 생을 놓고 말았다. 향년 2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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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국민 동요 ‘비행기’에 맞춰 “수헬리베붕탄질”로 시작해 “칼륨, 칼슘”으로 끝맺는 화학주기율표 노래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 이 노래는 ‘칼슘’에서 끝나지만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들은 화학기호가 라돈(Rn)이다. 라돈침대로 워낙 많이 알려졌고, 흡연 다음으로 폐암 원인 물질이란 얘길 익히 들어서 두렵다. 환경부는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환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라돈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준다. 비록 문 열면 미세먼지가 그득하지만.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지하수에서 유입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로 화강암 지대에 많이 발생하여 한반도도 취약한 편이다. 건축자재나 건물의 틈새로 유입되어 정부도 국제기준에 준해 ‘실내공기질관리법’으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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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농할쿠폰’으로 사과값이 잡힐까 비 그치자 눈이 내린다. 추워도 볕 좋은 겨울 날씨를 만나기가 어렵다. 농가는 일조량이 너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른다. 딸기가 한창 쏟아져 나올 때인데 모종 농사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습해로 딸기에 곰팡이가 슬고 아주심기가 끝난 브로콜리는 햇빛을 못 봐 누렇게 떠버렸다. 농사는 햇빛, 바람, 흙, 물, 사람 손길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건만 거저 주어지던 햇빛이 속을 썩인다. 이런 기후재난 시대에 고물가까지 겹쳐 사과 한 알 먹기가 어렵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농식품 물가 이슈, 진단과 과제’를 보면 물가 중에 농축산물이 차지하는 가중치는 낮은 편이다. 다만 외식비와 해외 원재료 수급에 영향을 받는 가공식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통계보다는 체감이 즉각적이어서 농산물이 물가가중치가 낮다는 말은 거짓말 같다. 다만 농축산물은 자주 사고, 가격 정보가 많아 체감도가 높으며 사과는 대표적인 민감품목이다. 10년에 한 번 들이는 세탁기로는 물가 가늠이 어려워도 사과값에는 촉이 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