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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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정부는 ‘벼멸구 피해’ 안 보이나 20대 딸에게 ‘벼멸구’를 아는지 물으니 의외로 알고 있었다. 근래 언론에서 벼멸구 피해 소식을 그나마(!) 다루고 있어서 들어본 것이냐 물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자였던 방송인 박명수의 별명이 벼멸구였기 때문이란다. 나는 당연히 알고 자랐다. 1975년 벼멸구로 큰 피해가 났고, 이후 1978년, 1983년, 1987년, 1990년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병해충은 식량계획에 영향을 주는 국가적 문제로 인식해 전 언론사에서 비중있게 다뤄 도시내기들도 벼멸구나 ‘이화명충’ ‘물바구미’ 정도는 알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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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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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주 5일 경로당 급식, 조리노동의 문제다 가스불 켜기 겁나는 계절, 독거노인인 아버지의 식사도 걱정이다. 그간 경로당에서 점심을 잡쉈지만 얼마 전 급식도우미 여사님이 힘들다며 그만두었다. 노인 25명의 점심을 책임졌던 여사님이 가져간 임금은 고작 69만원. 59만원은 지자체가 지원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경로당 노인들이 보탠 돈이다. 장보기와 조리, 설거지까지 하는 노동의 가치가 저랬다. 여기에 일주일 치 부식비가 15만원 내외. 고물가 시대에 15만원어치 장을 봐서 지지고 볶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생선을 선택하면 과일을 빼야 했다. 텃밭 채소나 각자 집의 밑반찬을 추렴하거나 기부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식사를 꾸려왔어도 끝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점심은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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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청년농민 김재영 농민의 순종 지난 3일 한우 생산자들이 소를 싣고 와 한우반납투쟁을 벌였다. 한우값 하락과 생산비 상승으로 키워봤자 소똥만 남을 뿐이라며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다음날인 4일엔 여의도에서 전국농민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상복을 입은 농민들이 트랙터와 이앙기, SS기라 부르는 과수방제기계를 싣고 여의도로 올라왔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러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올라왔다. 농민대회 날에 부러 때를 맞춘 듯 여의도 일대는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고, 폭염까지 겹쳐 신발이 쩍쩍 달라붙었다. 나일론으로 만든 상복까지 겹쳐 입은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가 팥죽처럼 뜨겁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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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로열의 시대는 끝났다 사과값으로 몇 계절 들썩댔지만 참외, 토마토가 쏟아져 나오자 조금 잠잠하다. 소비자도 손 떨리지만 건질 것이 없던 생산자와 사과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영세 유통상인들도 손이 떨렸다. 사과값 폭등의 주요 원인인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도 반복될 테니 답답할 뿐이다. 다만 ‘금사과’ 사태를 통해 배운 것은 농산물 외모지상주의의 무용함이다. ‘못난이’ ‘비(B)품’ ‘흠과’로 부르던 과일을 ‘보조개사과’ ‘가정용사과’로 부르며 알뜰 소비를 하였다는 점에서 큰 배움이었다. 예쁘고 흠도 없는 ‘로열과’는 왕족급의 품위를 뜻하지만 농산물에서 로열과 건지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질 것이다. 기존의 ‘하급’ 취급을 받던 농산물이 ‘상급’으로 대접받을 날이 올 것이다. 하물며 농약과 비료 사용이 어려운 친환경농산물은 농산물 품위 기준을 맞추기가 더욱 어렵다. 유기농 농가가 상품성 있는 수확물이 너무 적어 비료라도 써야겠다며 무농약재배로 돌아서고, 무농약재배를 하던 농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병해충이 창궐해 농약을 쓰는 일반농업으로 전환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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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화장장과 마을민주주의 실험 파묘의 시절이다. 영화 <파묘>도 성공했고, 올해 2월이 29일까지 있던 윤일이었으므로 지자체마다 개장 유골에 대한 화장장 운영 연장 공고가 많았다. 여전히 농어촌엔 윤달 따져 묘지 이장이나 수의를 장만하는 문화가 있어 이런 공고를 보곤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례 방식으로 화장보다 매장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극적으로 화장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져 2022년 말 화장률이 91.7%에 이를 정도로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장장은 ‘혐오유형’으로 분류되는 기피시설로 화장장이 들어서려는 지역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는 화장장이 모자란 데다 코로나19로 화장 대란을 겪었던 터라 지자체마다 장지시설 마련에 고심이 깊다. 그런데 변화는 농촌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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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설날이 지나자마자 농촌의 청년 활동가에게서 무거운 연락을 받았다.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의성군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지으며 ‘자두청년’이자 ‘로컬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청년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뇌사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농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청년단체의 수장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당한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실무근이라 반발하지만 조만간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러 들어간 청년들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쉬쉬하며 넘어간 일도 적지 않았노라며. 그렇게 자두청년은 지난 3월8일 끝내 생을 놓고 말았다. 향년 2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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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비닐하우스 라돈, 농민이 위험하다 국민 동요 ‘비행기’에 맞춰 “수헬리베붕탄질”로 시작해 “칼륨, 칼슘”으로 끝맺는 화학주기율표 노래는 지금도 부를 수 있다. 이 노래는 ‘칼슘’에서 끝나지만 지난 몇년간 가장 많이 들은 화학기호가 라돈(Rn)이다. 라돈침대로 워낙 많이 알려졌고, 흡연 다음으로 폐암 원인 물질이란 얘길 익히 들어서 두렵다. 환경부는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환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실내 라돈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준다. 비록 문 열면 미세먼지가 그득하지만.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지하수에서 유입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로 화강암 지대에 많이 발생하여 한반도도 취약한 편이다. 건축자재나 건물의 틈새로 유입되어 정부도 국제기준에 준해 ‘실내공기질관리법’으로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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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농할쿠폰’으로 사과값이 잡힐까 비 그치자 눈이 내린다. 추워도 볕 좋은 겨울 날씨를 만나기가 어렵다. 농가는 일조량이 너무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른다. 딸기가 한창 쏟아져 나올 때인데 모종 농사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습해로 딸기에 곰팡이가 슬고 아주심기가 끝난 브로콜리는 햇빛을 못 봐 누렇게 떠버렸다. 농사는 햇빛, 바람, 흙, 물, 사람 손길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건만 거저 주어지던 햇빛이 속을 썩인다. 이런 기후재난 시대에 고물가까지 겹쳐 사과 한 알 먹기가 어렵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농식품 물가 이슈, 진단과 과제’를 보면 물가 중에 농축산물이 차지하는 가중치는 낮은 편이다. 다만 외식비와 해외 원재료 수급에 영향을 받는 가공식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 통계보다는 체감이 즉각적이어서 농산물이 물가가중치가 낮다는 말은 거짓말 같다. 다만 농축산물은 자주 사고, 가격 정보가 많아 체감도가 높으며 사과는 대표적인 민감품목이다. 10년에 한 번 들이는 세탁기로는 물가 가늠이 어려워도 사과값에는 촉이 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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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누구를 위한 농업안전보건센터 폐업인가 대학생 때 농활에서 간호대생 인기는 최고였다. 혈압과 혈당체크를 하고 관절을 풀어주는 맨손체조를 알려주는 정도였어도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줄을 섰다. 당시에도 전자 혈압계 정도는 갖추고 있는 집이 있었지만 간호대생들이 수동식 혈압계로 척척 팔에 감고 청진기를 대는 것만으로도 전문 의료인을 만난 것처럼 좋아하였다. 평생 농사지은 농민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으로 깔고 속병 한두 가지는 안고 산다. 농업은 재해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쪼그리고 구부리는 자세가 많아 근골격계 질환이 심각하다. 농기계가 엎어지거나 몸이 빨려 들어가 신체가 손상되는 재해도 잦다. 여기에 온열질환과 안질환이 많으며, 농약중독을 비롯해 먼지, 축산 가스 흡입 등으로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비율도 높다. 아예 진폐증처럼 ‘농부폐증’이라는 병명이 있을 정도다. 근래 농민들이 우려하는 질병은 정신질환으로, 형편이 안 풀리니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심한데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이 여전해서 적극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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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체육관 공청회와 ‘찐 농촌다움’ 새해엔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농촌공간계획법’이 시행된다. 농촌을 농촌답게 하기 위해 농촌 난개발과 지역 불균형을 막겠다는 취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이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주목하고 주민 주도의 농촌공간을 계획하면 정부는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 송미령 박사의 전문분야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국토교통부가 버티는데 농식품부가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 해도 잘 추진되길 바란다. 12월26일, 경기 남양주시에 겨우 남아 있는 농촌지역이자 청정지역인 수동면 주민 체육관에 다녀왔다. 물이 도는 곳이어서 수동이며 축령산 자연휴양림과 수동계곡이 유명하고 요양시설도 많다. 상수원 지역의 운명이 그렇듯 주민들은 개발 제한으로 불편을 겪었으나 덕분에 반딧불이도 살아가고, 우물을 여전히 쓰는 마을이 있을 정도의 자연환경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무려 62만평짜리 골프장이 들어서려 한다.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가 산다는 축령산 일대에 기습적인 벌목이 이루어졌고 몇 그루나 베었는지, 베어낸 나무가 잣나무인지 소나무인지조차 모르겠다 대답하는 허술한 그런 주민 공청회였다. 기왕지사 나무도 잘려 나간 판에 골프장이나 넣어 지역발전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료 한 장 주지 않고 치러진 ‘체육관 공청회’에서 업체는 환경 보전에 힘쓸 것이며 ‘회사가 매입한 땅이니 맘대로 해도 된다’ 정도의 대답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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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수경재배 농산물에 유기농 인증, 굳이 왜 주려 하는가 딸기 철에 접어들었다. 모든 농사가 힘들지만 딸기는 열세 달 농사라 할 정도로 고되다. 쪼그린 자세로 하는 작업도 많고 매일 따야 해서 과채류는 농민들 근골격을 틀어놓는 대표작물이다. 버스는 저상이 편하지만 농작업은 고상이 훨씬 편하다. 하여 근래에 수경재배를 기본으로 하는 고설재배가 많아지고 있다. 무나 고구마를 잘라 물통에 담아 놓고 이파리가 얼마나 올라오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을 텐데 이것이 수경재배다. 수경재배는 흙 대신 배지에 작물을 꽂은 뒤 물을 공급해 기르는 ‘무토양농법’이다. 다만 취미용 아닌 다음에야 맹물로만 길러 수확을 얻기란 만무하다. 그래서 비료(양분)를 녹인 ‘양액’을 주어 기르는 ‘양액재배’이고 스마트팜도 대체로 양액재배를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