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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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신동진쌀’이 처한 슬픈 운명? ‘취반식미검정’은 밥을 먹어보고 맛·색·향 등을 품평하는 과정으로 평가단에 들어가 온갖 밥맛을 본 적이 있다. 기준이 되는 ‘표준품종’ 쌀을 두고 다양한 품종의 밥을 먹어보니 누구는 씹힘성에, 누구는 윤기에, 또 누구는 부드러움에 제각각 가점을 줄 뿐 못난 쌀은 없었다. 쌀의 민족답게 한국은 쌀 품종 개발도 잘하고 쌀농사 기술도 세계 최고이다. 1980년대까지 ‘정부미’라 불리며 맛은 없어도 양은 많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농사와 일반미 농사를 따로 짓기도 했다. 통일벼는 국가가 수매하는 지정품종이었으므로 소득의 기반이긴 해도 밥맛은 끝내 좋은 점수 주기 어려워 ‘영세민’이나 군인들이 먹는 싸구려 취급을 할 때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나락을 싣고 와 경기도에서 방아를 찧어 ‘경기미’로 속여 파는 ‘쌀세탁’도 감행했으나 이젠 “그땐 그랬지”의 추억담이다. 지금은 경기미가 아니어도 지역마다 맛있는 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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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LMO 주키니 호박, 악마의 유혹이었나 짜장면과 짬뽕에 들어가는 설겅설겅한 푸른 호박이 ‘돼지 호박’이라고 부르는 ‘주키니 호박’이다. 애호박과 달리 과육 중심부까지 단단하고 씨앗이 없어 짜장밥이나 볶음밥에 넣는 용도로 알맞아서다. 어릴 때 엄마가 짜장밥을 해줄 때 넣던 호박이어서 시장에서 주키니 호박을 집어들면 별식인 짜장밥을 해준다는 신호여서 내겐 추억의 ‘짜장 호박’이다. 주키니 호박은 가정용으론 소비가 많지 않아도 식당이나 급식시설, 가공식품업체 같은 곳에서 대량 구매가 많은 채소다. 이런 주키니 호박이 지금 사람 속도 썩이고 저도 썩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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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산불과 농촌쓰레기 실화 추위와 가스비에 시달렸던 겨울이 끝나간다. 봄은 반가워도 미세먼지와 산불은 무섭다. 산불은 더 자주, 더 크게 나는 추세다. 지난 주말에는 하동의 지리산 산불을 끄던 60대의 진화대원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독한 가뭄에다 기후위기도 산불 규모를 더 키운다. 산림과학원의 보고서를 보니 고온화 현상으로 병해충 활동도 승해 나무가 말라죽고, 고사목이 강력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2년 드물게 벼락이 쳐 산불이 난 적은 있지만 한국의 산불은 사람에게서 온다. 방화도 있지만 대체로 실화(失火)다. 산을 찾은 사람들이 내는 불이 40% 이상, 18% 정도는 영농철에 밭둑을 태우다 불이 난다. 12% 정도는 쓰레기를 태우다 불티가 산으로 날아가는 경우다. 하여 봄철이 다가오면 둑을 태우지 말라 안팎으로 신신당부해도 관행을 끊지 못한다. 대체로 마을의 터주들인 고령의 노인들에게 밭둑을 태우면 안 된다 말려보지만 막무가내인 경우도 많다. 좁은 동네에서 서로 얼굴 붉히기 전에 강력한 단속과 행정지도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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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서울의 도농살생 사라져가는 말들은 사라져가는 관계다. ‘시골 할머니댁’이 그렇다. 지금 어린이들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 세대도 농촌 출신이 드물다. 농사짓는 친척도 거의 없고 농촌은 멀다. 그래도 농촌경제연구원의 ‘2022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추가 세금 부담 의향에 도시민 65.7%가 찬성했다. 희한하게도 부담 의향은 2020년 이후 증가 추세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농업농촌의 위기는 삶의 위기라는 것을 도시민들도 알았다는 뜻이다. 농민들에게 농업은 생계지만 도시민들에게 농업은 ‘생존’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외국에서 농산물을 들여오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보았다. 농업은 시장에만 맡기기에는 워낙 불안정한 산업이라 사회가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속수무책 무너진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의지해야 살 수 있고 이를 ‘도농상생’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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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계란 수입과 천원짜리 농민 불황 속에서 맞는 명절이 달갑지 않아도 대목장 구경은 재밌다. 무엇을 사고파는지 보자니 누구나 계란 한 판은 들여간다. 평소에도 쟁여놓고 먹지만 명절엔 전도 부치고, 떡국 고명으로 얹으려면 계란은 필수. 평소엔 떡국 국물에 계란을 풀어도 명절 티를 내자면 특별히 지단을 부쳐 떡국에 올리면 비로소 명절 같다. 밥상이 너무 헐하다 싶어 계란 한 알 부치면 그럭저럭 밥상도 들어차는 고마운 계란. 2021년 농촌진흥청이 낸 <축산물소비트렌드>에서 보면 소고기는 소득 300만원 이하의 가구와 6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의 취식빈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계란만큼은 형편에 따라 너무 크게 벌어지지 않고 골고루 먹을 수 있는 평등한 단백질이자 민중의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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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트가 아니라 사람이 쉬었다 ‘국룰’은 아녀도 웬만하면 지키자는 문화가 있다. 일요일에 결혼식 날짜를 잡지 않는 것, 업무 전화나 메시지도 가급적 피한다는 것. 주말에 급한 용건으로 연락을 하면 “주말에 쉬시는데 죄송합니다”라고 당연히 양해를 구한다. 그래서 ‘주말장사’에 매달리는 자영업이 괴로운 것이다. 남들 쉴 때 일을 한다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된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도 근래 일요일에 문을 닫는 식당과 소매점들도 속속 늘어난다. 단골 식당 사장님도 일요일 손님도 적고, 운영비 부담만 커서 차라리 휴무를 갖기로 하셨다. 그리고 교회도 다시 나가신다며. 일요일에는 다음날 출근에 대비해 웬만하면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던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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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농업 문제라 쓰고 농협 문제라 읽는다 “농협계좌로 부탁합니다.” 농업 단체에 강의비나 고료를 받을 때 받는 부탁이다. 농촌 구석까지 있는 금융기관이 농협이기 때문에 이체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스쿨뱅킹 계좌도 대부분 농협이다. 다른 은행으로 금융업무를 처리하려면 학교에서 수수료를 내야 해서 가급적 농협으로 한다. 농민들은 농산물 출하대금과 농업정책자금을 수령하려면 농협계좌 보유는 필수다. 금융사고도 많은 금융기관이지만 ‘곧 죽어도 농협’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농협계좌 하나씩 트게 되어 농협은 금융정보의 핵을 거저 쥔다. 정부의 주요 금융파트너이자 ‘민족은행’이라는 명분을 내건 농협의 정식명칭은 ‘농업협동조합’.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조와 복지 증진이 설립 목적이다. 농민조합원의 농산물 생산과 수매를 돕고,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홍보, 판매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이를 ‘경제사업’이라 한다. 하지만 농협이 비판받아온 것은 ‘돈놀이’, 즉 돈을 대출하고 이자 받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신용사업’에 몰두해서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농업 문제는 곧 농협 문제라고 말할까. 농협만 제정신 차리면 이렇게까지 한국 농업이 구석으로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올해처럼 쌀값이 폭락하면 정부에 적극적으로 쌀값을 보장하라고 농민 조합원의 민의를 전하는 것이 본령이건만, 정부가 터준 계좌를 유지하고 점점 더 늘어나는 횡령과 금융사고 수습조차 못해 정부한테 찍소리 못하는 신세라며 핏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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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존재로서의 쌀 식구들 모이는 날은 콩이나 보리를 넣어 잡곡밥을 주로 하지만 이맘때는 ‘쌀밥주간’이다. 햅쌀밥에 명란을 얹어 먹는 건 나의 호사, 햄구이 한 조각 얹는 것은 아이들의 호사지만 햅쌀의 차진 밥맛에 바치는 헌사로 잠시나마 세대 통일을 이룬다. 수확철을 맞아 자못 다복한 식사 풍경이 연출되었으나 우리 쌀의 처지는 몰릴 대로 몰렸다. 여느 해와 달리 ‘쌀’ 하나로 모든 정치인들과 대통령까지 한마디씩 보태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국민적 관심도 높은 편이 아닌 데다 농어촌에 정치적 기반을 둔 여야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곤 해서, 대체로 순둥순둥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는 쌀값을 놓고 여야가 상임위원장의 의사봉을 낚아채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상정해서다. 초과 생산된 쌀의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정부매입을 의무화 조항에 넣자는 것이 골자다. 기준은 딱 정해져 있다. 수요예측량보다 생산량이 3% 이상 높거나, 쌀 가격이 과거 5개년 평균보다 5% 이상 떨어졌을 때 의무 매입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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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어제보다 나은 농사 9월24일 곳곳에서 오롯이 기후위기 문제 하나로 사람들이 모였다.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기후의 문제가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은 피할 길이 없다. 살림하는 입장에서는 농산물값과 품위 문제로 다가온다. 올해 흔한 여름 반찬이던 오이와 가지를 들었다 놓았다 한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친환경농산물 소비의 요체인 생활협동조합에서도 농산물 갖추기가 어려워 툭하면 ‘품절’ 표시가 내도록 뜨곤 했다. 점점 더 험해지는 기후에 친환경 농산물은 때깔은커녕 가격 맞추기가 더 어렵다. 그래도 소수의 농민들이 꾸역꾸역 농약, 제초제 안 쓰면서 풀을 뽑아 농사를 지어왔고, 사 먹는 사람들은 내 건강, 가족 건강 생각하느라 웃돈 주고 사 먹어 왔다. 그런데 그 웃돈이라는 것이 사람 마음 묘하게 만든다. 본전생각을 자꾸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 ‘친환경농산물’이라는 말도 없고, ‘무공해농산물’이라 부르던 1980년대, 농약중독으로 소비자가 아니라 농민들이 쓰러져갔다. 농약과 비료사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1960년대부터 쌓여온 후과를 농촌의 주민들이 먼저 치렀다. 농약중독은 사람과 가축을 가리지 않았다. 1973년 6월28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경북 의성군에서 20마리의 소가 갑자기 죽었고, 그 원인은 농약중독이었다. 이미 80년대 초 한국 농민들의 머리카락에 수은 잔존치가 미국 농민들보다 3배가 높다는 결과에다 농약중독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흔했다. 물론 폭락하는 농산물에 빚 갚을 일 막막해 농약을 마셔버리는 일도 흔했다. 농약의 안전성이나 규준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던 때 땅과 물,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하여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는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의들이 모여 한국의 유기농업과 친환경농업의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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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컨트리클럽에 농촌이 없다 80년대 ‘공일(휴일)’ 특유의 풍경이 있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땡!’ 소리에 박장대소를 한다든가 권투와 씨름 생중계를 보는 풍경이 아련하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화면에 대고 “잽잽! 어퍼컷!”을 외치며 훈수를 두곤 했지만, 이제 권투경기는 올림픽 때나 볼까 말까다. 대체로 소득이 올라가면 스포츠도 큰 자본이 얽힌 종목이 인기를 끌고, 골프도 그중 하나여서 생중계도 이루어진다. 스타 골프선수들도 많은 데다 특권층만의 스포츠가 아닌 대중스포츠의 면모를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골프 치는 예능프로그램도 많아지면서 더욱 친근해졌고, 이제 회식 뒤에 노래방 코스 대신에 ‘스크린골프’ 문화도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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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늘꽃도 못 보고 짓는 마늘농사 하루종일 밭을 매고 와서도 꽃에 물을 주는 농촌의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여성농민에게 식물 기르는 일이 지겹지도 않냐 물었더니 “이쁘잖아. 촌에서 꽃을 볼 일이 없어”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건네신다. 기실 농사라는 것은 꽃과의 싸움이다. 굵고 단단한 소출을 내기 위해서 꽃은 적절하게 쳐내거나 아예 꽃 볼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농사다. 과수농사에서 꽃을 솎는 적화작업이 일 년의 농사를 결정하듯, 마늘은 아예 꽃대가 올라오지 못하게 끊어버리는 농사다. 봄 한철 맛있게 볶아먹고 장아찌도 담그는 그 마늘종이 마늘 꽃대다. 영양을 마늘로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꽃을 길러내는 마늘종은 그냥 둘 수가 없다. 마늘종을 그대로 두면 마늘꽃이 피는데 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꽃이 보랏빛으로 피어 퍽 예쁜 꽃이다. 고급 꽃품종인 ‘알리움’이 마늘꽃이지만 꽃 보자고 짓는 농사가 아닌지라 농촌에서 보기 힘든 꽃도 마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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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창의 의로운 닭싸움 부안의 고등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왔다. 1년 전 본지에 ‘고창의 외로운 닭싸움’이라는 글에서 부안에 있는 동우팜테이블 자회사 ‘참프레’ 도계장에서 날아오는 악취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해도 지역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는 인연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2020년 4월, 부안군과 갯벌을 나누고 있는 인근 고창군에도 같은 회사의 닭, 오리 가공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으로 고창군은 발칵 뒤집혔다. 고창일반산업단지에 입주 계획을 밝힌 동우팜테이블 도축장은 부안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하루에 84만 마리의 닭, 오리를 잡을 수 있는 규모였고, 만약에 세워졌다면 아시아 최대의 가금류 도축시설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