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을게요, 아버지

김택근 시인·작가

정동길이 끝나는, 큰길 건너 언덕에 일식집 ‘다미락’이 있었다. 사장은 고씨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원단 그대로 구사했다. 그는 양복을 즐겨 입었고 옷매무새가 야무졌다. 성격도 까칠해서 사투리만 빼면 차가운 도시의 아저씨였다. 점심에는 대구탕, 알탕, 해물뚝배기가 인기 메뉴였다. 국물이 시원해서 속을 풀기에 그만이었다. 자연 단골이 되었고, 나이가 많았지만 그와 술친구, 말동무가 되었다. 고 사장은 취기가 오르면 곧잘 화려한 과거를 풀어놓았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탄광사업을 할 때가 그의 전성시대였다. 연탄이 모든 아궁이를 차지하던 시절, 탄맥을 찾아내 떼돈을 벌었다. 현금을 자루에 담아 운반했다. 생활비를 받아든 아내는 손을 떨었다. 집 사고 외제차 굴리고 아이들을 사립유치원에 보냈다. 식구 생일에는 워커힐식당에서 디너쇼를 보며 스테이크를 잘랐다. 무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석탄의 시대가 가고 석유의 세상이 되자 사업이 곤두박질쳤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서는 마지막 오기마저 꺾였다. 빚더미를 겨우 헤쳐 나와 음식점을 차렸다. ‘다녀본, 먹어본’ 경험이 있어 분위기는 촌스럽지 않았고 맛도 괜찮았다.

일손이 달리자 아내와 아들도 불러들였다. 아들이 만든 음식을 어머니가 날랐다. 고 사장 얘기의 끝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자신 때문에 식구들이 고생한다며 지난날의 헤픈 삶을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방송작가인 딸 자랑은 빠뜨리지 않았다. ‘다미락’에서 그는 행복했다.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에 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일대가 재개발부지로 수용된다고 했다. 소문은 사실이었고 돈의문재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음식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하지만 세입자 고 사장은 ‘다미락’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안에는 17년 동안 숙성시켜온 많은 것들이 있었다. 홀로 마지막까지 버텼다. 그러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철거반원들이 몰려왔다. 고 사장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굴착기가 ‘다미락’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뿌연 먼지가 ‘다미락’의 비명 같았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럴 순 없었다. 고 사장은 잔해더미에서 무너져 내렸다. 벌건 대낮이었다.

통곡할 틈도 주지 않고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았다. 4인용 식탁의 빈 의자에 여전히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이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미안해하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세 사람은 울음 외에는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소리 죽여 울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어머니는 한없이 작아졌다. 자식들이 돌봐야 하는 작은 새가 되어 버렸다. 여전히 아버지만을 찾았다. 그런 엄마를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다. 어떻게든 어머니를 일으켜야 했다. 어느 날 방송작가인 딸이 불현듯 ‘글’을 떠올렸다. 글을 쓰면서 마음근육을 키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글은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해주었다. 어머니와 오빠도 글을 쓰면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딸은 글의 힘을 믿었다. 함께 식탁에서 글을 써보자고 했다.

70대 어머니와 미혼의 40대 남매는 그렇게 식탁 위에서 각자의 글을 썼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니 목에, 가슴에 걸린 것들이 쏟아졌다. 길게 울었다. 글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픔과 슬픔 저편에 사랑이 보였다. 마침내 추억의 숲속으로 아버지의 의자를 옮겼다.

식탁에서 쓰인 글들을 책으로 엮어서 펴냈다. 바로 <삼인용 식탁>(지금이책)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의식이고, 다시는 슬퍼하지 말자는 다짐이다. 진솔하게 쓰여서 글들이 살아있다. 책 속의 글들을 하늘에 올렸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이제 셋이서도 식사를 잘해요.”

어머니와 남매는 제주도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몸무게를 6㎏ 늘린 어머니는 전동킥보드를 타는 데 성공했다. 문장의 근력을 키운 아들은 푸드 칼럼니스트를 꿈꾸고 있다. 딸은 바닷가에서 물질하는 글쟁이로 살고 싶다. 남매는 어머니의 세월이 더디게 흘러가길 소원한다. 오래도록 3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글도 쓰고 싶다.

고 사장도 ‘다미락’도 세상에 없다. 하지만 어찌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 여전히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세파가 거칠고 그래서 두렵지만, 아버지는 가족이 있어 강하다. 그들에게 ‘다미락’에서 우려낸 따끈한 국물을 건네고 싶다.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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