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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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보의 얼굴 ‘진보’가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근대 초기, 빠른 과학 발전과 부강한 민족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인류가 열등한 과거에서 우월한 미래로 진화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이때 ‘진보’는 역사적인 단계를 의미했으며, 그 주인공은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보는 필연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인류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럴 것이며,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치인가? 이제 진보는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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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삼체, 내면, 독서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SF 드라마 <삼체>의 원작 소설은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나노 연구자 왕먀오는 주위의 가장 유능하고 똑똑한 과학자들이 자살하거나 실종되는 이상한 현상이 외계 행성 때문임을 알게 된다. 이 현상을 수사하는 경찰 스창은 지구의 모든 정부와 군대를 벌벌 떨게 만드는 이 악랄하고 고능한 적이 외계인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지만, 그들의 전략만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적이 두려워하는 것은 뭡니까?” “당신들이지, 과학자들.” 삼체인이라 불리는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자부터 제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초과학은 어떤 문명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그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왕먀오의 걱정에 스창은 조언한다. “출근해서 계속 연구해. 그게 바로 가장 큰 공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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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바벨탑의 약속 작년 출시된 비디오 게임 ‘챈트 오브 세나르’는 어드벤처 게임이자 언어해독 퀴즈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지구라트 모양의 탑에 던져진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이 공간을 돌아다니다보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각 층에는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사는데(1층은 신자들의 수도원, 2층은 전사들의 요새, 3층은 예술가들의 낙원, 4층은 과학자들의 공장, 5층은 은둔자들의 고립구역) 이들의 언어를 하나씩 해독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이곳을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탐험해볼 수 있다. 첫째, 언어학적인 차원이다. 세나르의 각 민족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신자들의 언어에는 복수형을 나타내는 조사가 없고, 예술가들의 언어는 ‘목적어-주어-동사’라는 독특한 어순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정황을 힌트 삼아 상형, 표어, 표음 등 다양한 원리로 조직된 언어의 세계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드벤처 게임의 재미는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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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태준과 좋은 글 고통받지 말라(Don’t suffer). 어느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들은 말이다. 빠르고 세게 연주할 때 거의 피아노 건반을 부술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가기 쉽지만, 그러면 연주자가 괴롭기만 할 뿐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조언이었다. 정확히는 힘을 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영할 때 힘을 빼야 부드럽고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그래야 풍부하고 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마음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망친다. 하지만 글쓰기가 직업이면서도 모니터 앞에서 지나치게 고통받지 않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동시에 궁금했다. 고통받지 않는 게 마음대로 되나? 수영과 피아노 연주가 그렇듯이 글을 잘 쓰려면 힘을 빼고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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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의 올해 첫 책 새해 첫날 듣는 음악이 그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운 미신이지만, 그저 다가올 해를 잘 가꿔보고 싶은 평범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첫 음악은 이미 들어버렸고 은행에서 제공하는 신년 사주도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면? 그래서 새로운 삶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질 좋은 내러티브를 찾는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새해의 첫 책을 고를 차례다. 음악이라면 새해가 가사를 따라간다고 믿듯 소설이라면 줄거리를 따라간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는 없다. 범죄 소설을 읽는다 해서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듯,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삶의 소스는 그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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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헌치백의 욕망 문학상의 계절이다. 올 한 해 동안 출간된 좋은 문학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까지 왔는지를 가늠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책이라면, 2023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양윤옥 옮김, 허블)을 빼놓을 수 없다. 줄거리는 이렇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척추가 조금씩 휘기 시작하여 중학교 2학년 이후 30년째 제 발로 걸어보지 못한 40대 여성 장애인 샤카. 전신의 근육이 약화되어 심폐기능도 정상치의 산소 포화도 유지하지 못한 채 간병인과 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부모의 재력 덕분에 원룸 건물을 개조한 장애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의 핵심은 그다음부터다. 샤카는 아르바이트 삼아 웹 미디어 기사를 쓰는 프리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녀의 주요 업무는 남성의 시점으로 가상의 성매매 업소 체험담을 창작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으로서 성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틈틈이 트위터에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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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상한 것, 중요한 것, 아름다운 것 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시의 길이와 무관하게 서사, 장면, 언어라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말해보자. 시에서는 일련의 사건이 흘러가기도(서사), 하나의 풍경이 드러나기도(장면), 말 자체가 서술되기도 한다(언어). 한 편의 시에는 세 요소가 혼합되어 있을 테고, 세 가지 모두 시가 꽤나 잘 다루는 영역이지만, 장면에 관해서라면 시라는 장르와 유독 각별하다. 물론 소설처럼 이야기에 육박하는 시도 있고, 사진처럼 순간으로 압축되는 시도 있으며, 철학처럼 명제로 승화되는 시도 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머물게 하는 일이라면 시만큼 잘하는 장르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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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코로나 사망자 애도하지 않는 사회 이래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사망자라는 단어에 어떤 숫자가 붙어도 잘 놀라지 않는다. 지난해 사망자는 37만명으로 통계 사상 최고치였고, 그중에서 3만명은 사망 원인 3위인 코로나19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별다른 화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놀라운 뉴스는 이런 것 아닐까. 우리는 3만명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있다. 대신 백신 면역체계에 투자한 금액을 따지고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경기 부양책을 궁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수많은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걸까. 지금도 하루 확진자가 3만명이 넘는 상황에 분명한 것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첫째, 의료학적인 차원이다. 전체 사망자의 95%를 넘는 고령층에 대한 공공 보건에 힘쓰고,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의료적인 복지 조건을 확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질병이 영어 표현 ‘in the air’ 그대로 ‘공기 중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 피해가 공기처럼 동등하게 퍼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보다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뼈아프게 배운 교훈은 없다. 바이러스는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집단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된다. 죽음에 관해 우리는 의료학적인 차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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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버섯과 바다의 낙관 언제나 책상을 깨끗하게 치워두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올여름 유독 책상 위에 오래 머물렀던 책이 있다. 김금희 소설가의 산문집 <식물적 낙관>(문학동네, 2023)이다. 식물에 과문한 내가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다양한 식물을 소개받을 수 있는 것도, 오랫동안 수십 가지 식물을 길러온 저자의 다정한 생각의 결을 따라가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내 곁에 두고 싶을 만큼 이 책의 특별했던 점은 각종 실패의 경험, 그리고 그것을 신중하게 품고 있는 따뜻한 기운이었다. 여느 식물 서적과 달리 이 책에는 집에 식물을 들여와 기르고 있다는 기쁨 못지않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식물이 마르거나 죽어버리곤 한다는 상심이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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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개인과 개인 “연수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과 충고를,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30대를 보냈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마주치면 똑같은 글씨인데도 굵게 도드라져 보인다. 별일 아니라는 듯 문체는 덤덤하지만 조언과 충고보다 비난과 조롱을 받는 것이 별일 아닌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일까. 안보윤의 ‘너머의 세계’(<현대문학> 2023년 5월호)에 나오는 연수라면 그렇게 말하는 일도 어색하지는 않다. 한때 중학교 교사인 연수는 도를 넘게 장난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학생 한모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한모가 자신이 교실에 들어가려는 찰나마다 앞문을 닫아버리거나, 다른 학생들 앞에서 놀리듯이 햄스터 같아서 귀엽다고 말하거나, 여교사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리적으로 위협할 때마다 연수는 교사로서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거나 혼자서 괴로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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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세계관이 내리는 시집 걸그룹 뉴진스를 프로듀싱한 민희진 대표가 아트디렉터로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이 (‘아티스트’와) ‘세계관’이었다는 점은 새삼스럽지 않다. K팝, 예능, 장르문학을 가리지 않고 최근 콘텐츠에서 결정적 셀링포인트인 세계관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사건과 요소로 만들어진 가상세계’(이지향, <세계관 만드는 법>)라는 뜻으로 통용되며 무엇보다 연속성·개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에서 어떤 세계관으로 돌입하기 위해선 대뜸 던지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있잖아, 지금부터 내가 지어낼 세상에는”…. 문보영의 시집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문학동네, 2023)에 실린 첫 시의 첫 구절처럼 말이다. 혹은 이런 시작도 좋다. “이런 상상을 해봤어.” “나 방금 영감이 떠올랐어.” 마침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냥한 애인도 있으니까 아무려나 좋은 것이다. 이 시집은 시 한 편마다 이상하거나 웃기거나 무서운 세계관이 하나씩 설정된, 무수한 세계관의 방으로 이뤄진 건축물이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노크하면 이런 세계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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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할리우드 배우들이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연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연기에는 한계가 없으니까요. 연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연기가 아니었다면 체포되었을 만한 행동을 해볼 수 있거든요. 솔직하고 재치 있지만 익숙한 답변이 이어지는 와중에 순서를 기다리던 짐 캐리의 대답은 현장의 공기를 단숨에 바꾼다. “저는 부서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I act because I’m broken).”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저는 수많은 조각들로 부서진 사람이고, 연기는 수많은 조각들을 1000개의 다른 모양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