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아영
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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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주의자들의 나라 “절대로 집권해서는 안 될 세력이 누구의 지지도 받지 않고 정권을 잡았다.” 작년 12월3일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문장이고 어쩌면 인류에 반복되어온 역사다. 그런데 이 문장이 적힌 소설에는 조금 더 맹랑한 구석이 있다. 절대로 집권해서는 안 될 세력이 정부가 되자마자 ‘주의자 소탕령’을 내린 것이다. 그것인즉슨 이 세상 모든 종류의 ‘주의’를 금지한다는 돌발 명령이다. 정부는 이상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여성주의, 현실주의 등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지닌 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지만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주의’를 포기한다. 김홍의 단편소설 ‘조금자 여사 아주 깊이 잠들다’(‘자음과모음’ 2024년 가을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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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살았다’는 문장 다음 잊고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계엄령이 내려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착륙하려던 여객기의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2024년 말은 참으로 잔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이기도 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 기억을 위한 에세이에서 김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죽었다고 끝난 문장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하려는 사람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오늘은 4월17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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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름다운 최애의 아이 만약 좋아하는 아이돌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로 예상되는 시대에 이희주 소설가의 단편소설 ‘최애의 아이’(<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인기 남자 아이돌의 정자가 인공수정 시술용으로 판매되는 사회가 배경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우미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인 유리의 정자가 공여되었다는 소식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냉철하게 결정한다. 아름다운 유리의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이 대담한 선택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첫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왔던 젊은 여성 팬의 사랑은 이희주의 소설에서 더 이상 모호하거나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정서적, 성적, 미학적 취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쾌락의 기술이다. 또한 성숙하고 현실적인 이성애 관계에 돌입하기 전에 거치는 예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관계성을 실험하는 역동적인 장이다. 우미는 외모가 훌륭할 뿐 아니라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유리의 우월한 유전자를 ‘굿즈’로서 보존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우미에게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향한 헌신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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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귀여움의 기술 다이어리, 스마트폰, 가방, 신발까지 각종 스티커나 키링으로 꾸미기를 즐기는 요즘 문화의 핵심은 ‘귀여움’이다. 종이 만화 전성기이자 각종 팬시 제품이 성행한 1990년대 문화의 귀환이라고도 하고, 사회가 각박할수록 무해한 대상에 이끌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하지만, 귀여움은 의외로 오래된 학술적 연구 대상이다. 커다란 눈, 통통한 볼, 넓은 이마, 작은 코 등 포유류 유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귀여운 외모는 상대에게 돌봄 욕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외부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조건이 된다고 보는 진화론적 연구가 대표적이다. 귀여운 외모에 대한 본능적인 편향은 ‘킨첸슈마(Kindchenschema)’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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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눈동자의 사랑 얼마 전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을 보았다. “나는 나의 내면을 보려다 눈동자 하나를 발견한다./ 누구의 눈인가?/ 알 수 없다.” 배시은의 ‘수면의 신’(<창작과비평> 2024년 가을호)이다. 화자는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잠자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거나 무언가를 저울질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깊은 눈동자. 그러자 예상치 못하게 무언가를 보려는 능동적 행위는 곧 스스로가 보이는 수동적 행위가 된다. 이 매력적인 시를 읽고 나면 니체의 유명한 잠언에서 ‘심연’이라는 단어를 ‘눈동자’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눈동자를 오래 바라본다면, 눈동자 또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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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두 단어 사이로 숨쉬기 사라 바트만(Sarah Baartman)은 18세기 말 남아프리카의 코이코이족으로 태어나 서유럽으로 끌려간 뒤 프릭쇼에 전시되었던 흑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백인 사이에선 흔치 않은 커다란 엉덩이의 체형을 가진 그녀는 당시 유럽인들의 인종주의적인 호기심으로 동물과 비교되는 등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사망 후에도 기괴하고 특이한 신체의 표본이라는 명분으로 200년 동안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별명은 식민주의 시대의 아이러니한 멸칭이지만, 이후 여러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성의 이름을 재해석해왔다. 평생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온 시인의 귀에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 목소리처럼. “내 목구멍, 내 장기, 내 뼈를 되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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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 지난 6월18일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65쪽에 달하는 역사적인 판결문의 쟁점 중 하나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의 ‘본질적인 동일성’이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의 다수의견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취급함을 금지”하는 헌법상 평등원칙에 따라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동반자를 차별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나머지 4명은 현행법상 혼인으로 인정되어 법적인 부양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두 집단의 공통점을 압도할 만큼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점”이라는 별개의견을 제출했다. 치열한 보충의견이 덧붙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질적인 동일성’이 인정된 셈이다. 2012년 워싱턴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 투표를 앞두고 널리 울려 퍼진 매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노래 ‘same love’의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it’s all the sam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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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AI, 창작에서 감상의 문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지. 내가 맡고 있는 대학교 문학 글쓰기 강의에서는 특히 난감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교재에는 AI에 관해 필수적으로 가르치게 되어 있지만,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가 챗GPT로 쓴 것은 아닌지 검사해야 하고, 어떤 학생들은 AI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한창 변화하는 와중에 무언가를 규정해서 지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대한 안전하고 윤리적인 선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강의를 마친 뒤 당부를 덧붙이게 된다. 이것은 현재 시점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언제라도 상황은 바뀔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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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름을 받아들이기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일까. 주변에 여름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은 가운데 나는 예전부터 어쩐지 그러지를 못했다. 여름은 상쾌하고 시원하고 생기 있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무덥고 끈적이고 지치는 계절이니까. 아니, 그보다 모든 것이 빨리 상하고 쉽게 썩고 금방 사라지는 계절이니까. 겨울에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잠들어 시간이 고요하고 느리게 흐른다면 여름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태어나고 자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이 시들고 죽는다고. 금세 지는 꽃잎이나 맥없이 죽는 벌레를 볼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요란하게 태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계절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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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원초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후 2개월에 브라질로 이민 간 여아가 있었다. 10대에 어머니를 잃고 가난한 이민자로 살았지만, 문학을 몹시 사랑했고 1943년 23세에 출간한 첫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로 포르투갈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포르투갈어에 강한 애착이 있었지만, 이국적 이름 탓에 명성을 얻은 후에도 브라질에서 이민자 작가로 여겨졌다. 키 큰 금발에 화려한 외모로도 주목받았지만, 수줍음 많고 예민한 성향으로 세간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평생 브라질의 버지니아 울프라 불렸지만, 울프의 자살을 용서할 수 없다며 작가에게 주어진 끔찍한 의무는 ‘끝까지’ 가는 것이라 믿었다. 난해한 언어와 추상적 서사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문학의 쓸모를 집요하게 고민했던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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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보의 얼굴 ‘진보’가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근대 초기, 빠른 과학 발전과 부강한 민족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인류가 열등한 과거에서 우월한 미래로 진화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이때 ‘진보’는 역사적인 단계를 의미했으며, 그 주인공은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보는 필연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인류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럴 것이며,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치인가? 이제 진보는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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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삼체, 내면, 독서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SF 드라마 <삼체>의 원작 소설은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나노 연구자 왕먀오는 주위의 가장 유능하고 똑똑한 과학자들이 자살하거나 실종되는 이상한 현상이 외계 행성 때문임을 알게 된다. 이 현상을 수사하는 경찰 스창은 지구의 모든 정부와 군대를 벌벌 떨게 만드는 이 악랄하고 고능한 적이 외계인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지만, 그들의 전략만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적이 두려워하는 것은 뭡니까?” “당신들이지, 과학자들.” 삼체인이라 불리는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자부터 제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초과학은 어떤 문명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그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왕먀오의 걱정에 스창은 조언한다. “출근해서 계속 연구해. 그게 바로 가장 큰 공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