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영
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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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눈동자의 사랑 얼마 전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을 보았다. “나는 나의 내면을 보려다 눈동자 하나를 발견한다./ 누구의 눈인가?/ 알 수 없다.” 배시은의 ‘수면의 신’(<창작과비평> 2024년 가을호)이다. 화자는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잠자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거나 무언가를 저울질하기를 멈추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깊은 눈동자. 그러자 예상치 못하게 무언가를 보려는 능동적 행위는 곧 스스로가 보이는 수동적 행위가 된다. 이 매력적인 시를 읽고 나면 니체의 유명한 잠언에서 ‘심연’이라는 단어를 ‘눈동자’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눈동자를 오래 바라본다면, 눈동자 또한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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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두 단어 사이로 숨쉬기 사라 바트만(Sarah Baartman)은 18세기 말 남아프리카의 코이코이족으로 태어나 서유럽으로 끌려간 뒤 프릭쇼에 전시되었던 흑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백인 사이에선 흔치 않은 커다란 엉덩이의 체형을 가진 그녀는 당시 유럽인들의 인종주의적인 호기심으로 동물과 비교되는 등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사망 후에도 기괴하고 특이한 신체의 표본이라는 명분으로 200년 동안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라는 별명은 식민주의 시대의 아이러니한 멸칭이지만, 이후 여러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성의 이름을 재해석해왔다. 평생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온 시인의 귀에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 목소리처럼. “내 목구멍, 내 장기, 내 뼈를 되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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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 지난 6월18일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65쪽에 달하는 역사적인 판결문의 쟁점 중 하나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의 ‘본질적인 동일성’이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의 다수의견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취급함을 금지”하는 헌법상 평등원칙에 따라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 동성 동반자를 차별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나머지 4명은 현행법상 혼인으로 인정되어 법적인 부양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두 집단의 공통점을 압도할 만큼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점”이라는 별개의견을 제출했다. 치열한 보충의견이 덧붙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질적인 동일성’이 인정된 셈이다. 2012년 워싱턴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 투표를 앞두고 널리 울려 퍼진 매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노래 ‘same love’의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랑을 하고 있어(it’s all the sam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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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AI, 창작에서 감상의 문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지. 내가 맡고 있는 대학교 문학 글쓰기 강의에서는 특히 난감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교재에는 AI에 관해 필수적으로 가르치게 되어 있지만,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가 챗GPT로 쓴 것은 아닌지 검사해야 하고, 어떤 학생들은 AI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한창 변화하는 와중에 무언가를 규정해서 지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대한 안전하고 윤리적인 선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강의를 마친 뒤 당부를 덧붙이게 된다. 이것은 현재 시점의 가이드라인입니다. 언제라도 상황은 바뀔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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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름을 받아들이기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일까. 주변에 여름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은 가운데 나는 예전부터 어쩐지 그러지를 못했다. 여름은 상쾌하고 시원하고 생기 있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무덥고 끈적이고 지치는 계절이니까. 아니, 그보다 모든 것이 빨리 상하고 쉽게 썩고 금방 사라지는 계절이니까. 겨울에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잠들어 시간이 고요하고 느리게 흐른다면 여름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태어나고 자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이 시들고 죽는다고. 금세 지는 꽃잎이나 맥없이 죽는 벌레를 볼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요란하게 태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계절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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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원초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후 2개월에 브라질로 이민 간 여아가 있었다. 10대에 어머니를 잃고 가난한 이민자로 살았지만, 문학을 몹시 사랑했고 1943년 23세에 출간한 첫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로 포르투갈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포르투갈어에 강한 애착이 있었지만, 이국적 이름 탓에 명성을 얻은 후에도 브라질에서 이민자 작가로 여겨졌다. 키 큰 금발에 화려한 외모로도 주목받았지만, 수줍음 많고 예민한 성향으로 세간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평생 브라질의 버지니아 울프라 불렸지만, 울프의 자살을 용서할 수 없다며 작가에게 주어진 끔찍한 의무는 ‘끝까지’ 가는 것이라 믿었다. 난해한 언어와 추상적 서사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문학의 쓸모를 집요하게 고민했던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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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진보의 얼굴 ‘진보’가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근대 초기, 빠른 과학 발전과 부강한 민족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인류가 열등한 과거에서 우월한 미래로 진화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이때 ‘진보’는 역사적인 단계를 의미했으며, 그 주인공은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보는 필연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인류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럴 것이며,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치인가? 이제 진보는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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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삼체, 내면, 독서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SF 드라마 <삼체>의 원작 소설은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나노 연구자 왕먀오는 주위의 가장 유능하고 똑똑한 과학자들이 자살하거나 실종되는 이상한 현상이 외계 행성 때문임을 알게 된다. 이 현상을 수사하는 경찰 스창은 지구의 모든 정부와 군대를 벌벌 떨게 만드는 이 악랄하고 고능한 적이 외계인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지만, 그들의 전략만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적이 두려워하는 것은 뭡니까?” “당신들이지, 과학자들.” 삼체인이라 불리는 외계인이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과학자들,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자부터 제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초과학은 어떤 문명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그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왕먀오의 걱정에 스창은 조언한다. “출근해서 계속 연구해. 그게 바로 가장 큰 공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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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바벨탑의 약속 작년 출시된 비디오 게임 ‘챈트 오브 세나르’는 어드벤처 게임이자 언어해독 퀴즈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지구라트 모양의 탑에 던져진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이 공간을 돌아다니다보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다. 각 층에는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사는데(1층은 신자들의 수도원, 2층은 전사들의 요새, 3층은 예술가들의 낙원, 4층은 과학자들의 공장, 5층은 은둔자들의 고립구역) 이들의 언어를 하나씩 해독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이곳을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탐험해볼 수 있다. 첫째, 언어학적인 차원이다. 세나르의 각 민족은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신자들의 언어에는 복수형을 나타내는 조사가 없고, 예술가들의 언어는 ‘목적어-주어-동사’라는 독특한 어순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정황을 힌트 삼아 상형, 표어, 표음 등 다양한 원리로 조직된 언어의 세계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드벤처 게임의 재미는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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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태준과 좋은 글 고통받지 말라(Don’t suffer). 어느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들은 말이다. 빠르고 세게 연주할 때 거의 피아노 건반을 부술 만큼 힘이 잔뜩 들어가기 쉽지만, 그러면 연주자가 괴롭기만 할 뿐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조언이었다. 정확히는 힘을 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영할 때 힘을 빼야 부드럽고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그래야 풍부하고 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마음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망친다. 하지만 글쓰기가 직업이면서도 모니터 앞에서 지나치게 고통받지 않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는 동시에 궁금했다. 고통받지 않는 게 마음대로 되나? 수영과 피아노 연주가 그렇듯이 글을 잘 쓰려면 힘을 빼고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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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의 올해 첫 책 새해 첫날 듣는 음악이 그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운 미신이지만, 그저 다가올 해를 잘 가꿔보고 싶은 평범한 소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첫 음악은 이미 들어버렸고 은행에서 제공하는 신년 사주도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면? 그래서 새로운 삶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질 좋은 내러티브를 찾는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새해의 첫 책을 고를 차례다. 음악이라면 새해가 가사를 따라간다고 믿듯 소설이라면 줄거리를 따라간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는 없다. 범죄 소설을 읽는다 해서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듯,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삶의 소스는 그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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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헌치백의 욕망 문학상의 계절이다. 올 한 해 동안 출간된 좋은 문학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까지 왔는지를 가늠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책이라면, 2023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양윤옥 옮김, 허블)을 빼놓을 수 없다. 줄거리는 이렇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척추가 조금씩 휘기 시작하여 중학교 2학년 이후 30년째 제 발로 걸어보지 못한 40대 여성 장애인 샤카. 전신의 근육이 약화되어 심폐기능도 정상치의 산소 포화도 유지하지 못한 채 간병인과 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부모의 재력 덕분에 원룸 건물을 개조한 장애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의 핵심은 그다음부터다. 샤카는 아르바이트 삼아 웹 미디어 기사를 쓰는 프리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녀의 주요 업무는 남성의 시점으로 가상의 성매매 업소 체험담을 창작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면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으로서 성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틈틈이 트위터에 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