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최신기사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지리산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 ‘구름도 누워 쉬는 마을’이어서 ‘와운(臥雲)’이라 불리는 지리산 뱀사골 마을 동산 마루에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을 모두 해야 서른 명 남짓인 이 마을은 2015년에 지리산국립공원 마을 가운데 맨 처음 ‘명품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와운마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430여년 전에 영광정씨와 김녕김씨 일가가 전란을 피해 찾아와 보금자리를 일구며 시작된 마을이라고 전하는데, 그때 이미 큰 소나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해발 800m에 자리잡은 명품마을의 기품을 지켜주는 것은 단연 이 명품 소나무다.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위에서 마을을 거느리고 서 있는 이 소나무는 2000년에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의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서당의 어린 학동이 심은 나무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린 학동이 심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지켜온 큰 나무가 있다.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라는 이름의 한 쌍의 향나무다. 미끈한 나무줄기의 생김새에서부터 구불구불한 가지펼침까지 향나무 특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근사한 나무다. ‘서원목’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안쪽에는 ‘송곡서원’이라는 소박한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지만, 나무가 처음 뿌리내리던 시절에는 서원 대신 작은 서당이 있었고, 그 서당에 다니던 학동이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600년쯤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평범한 농촌 마을 ‘자존감 상징’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큰 나무들이 있다. 정이품 벼슬을 받아서 ‘정이품송’이라 불리는 나무를 비롯해 임금이 하사한 한 쌍의 소나무여서 ‘쌍군송’, 밭일하는 어머니의 휴식을 위해 심은 나무여서 ‘효자송’ 등이 그런 경우다. 천년고찰 직지사가 자리 잡은 경북 김천 향천리에는 ‘직지문인송(直指文人松)’이라는 이름의 소나무가 있다. 300년 전에 해주정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뒷동산 언덕 마루에 서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신목(神木)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왔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더럽혀진 귀 씻어낸 최치원의 지팡이 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857~?)은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 해인사에 은거했지만, 세상사로부터 귀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해인사에서의 은둔 생활을 접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화개천을 따라 걷던 그는 개울가의 너럭바위에 이르러 계곡 사이로 내다보이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은거지로 선택했다. 그러고는 온갖 지저분한 말들에 시달리며 더러워진 귀를 개울물에 깨끗이 씻어냈다. 따르던 시종들을 물리치며 그는 짚고 온 지팡이를 개울가에 꽂으며 “이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라나면 나도 살아 있는 것이고,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은 것으로 알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얼핏 보아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나무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살 수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물과 양분을 확보하려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곁의 나무보다 높이 올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고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경쟁이 이어지면 나무는 경쟁의 원리를 내려놓고 ‘협동’을 선택한다. 나무가 보여주는 협동의 결과가 ‘연리(連理)’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 줄기가 붙었으면 연리목, 땅속의 뿌리가 붙은 경우라면 연리근이라고 부른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오래된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 무늬 소수서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하는 길에서 단산면사무소를 만나게 된다. 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고갯길을 3㎞쯤 넘어가면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 이른다. 마을에 닿았음을 알게 하는 건 마을 어귀의 낮은 언덕에 서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다. ‘영풍’은 영주와 풍기를 합쳐 만든 지명으로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82년에는 공식적으로 쓰이던 행정구역 이름이다. 그러나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로 통폐합되면서 쓰지 않게 됐지만, 천연기념물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다소 낯선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소나무 용의 해, 갑진년 설날이 코앞이다. 전설의 짐승 용은 옛 신화와 전설에 상서로운 짐승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손꼽는 소나무 가운데에도 용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깊은 산골의 나곡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그렇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인데, 오래전부터 ‘구룡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나무의 줄기 껍질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규칙적으로 갈라졌다 해서 거북을 뜻하는 ‘구(龜)’와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했다 해서 ‘용(龍)’을 붙여 부른 별명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폐허 터를 홀로 지켜온 큰 나무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세월이 흐르면 한때 번성했던 절집이라 해도 터만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진다. 홀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지키는 건 오직 큰 나무뿐이다. 문헌 기록조차 따로 남지 않아 내력을 알기 어려운 충북 진천 보련산 자락의 ‘연곡리 절터’도 그렇다. 전각은 물론이고, 절집 이름조차 사라진 폐허의 터다. 그나마 10세기에 세워진 ‘진천 연곡리 석비’가 남아 있어서 고려 전기에 번창했던 절집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이 석비조차 명문이 없는 백비(白碑)여서 절집 내력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고려청자 도요지 지켜온 푸조나무 이름만 듣고 외래종으로 짐작하게 되는 나무 중 ‘푸조나무’가 있다. 하지만 푸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저절로 자라온 토종 나무다. 남부지방에서는 중부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뭇가지를 넓게 펼치는 특징 때문에 바닷가 마을에서 정자나무나 방풍림으로도 심어 키운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당전마을 어귀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푸조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다. 고려청자 가마터로 유명한 이 마을은 전국의 도공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품을 빚어내던 곳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장군 형제의 넋 기억하는 나무 스무 가구가 채 안 되는 전남 장성 단전리 마을의 어른들께 모두 마을 당산나무 앞으로 나오시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씀드렸다. 공영방송 인기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한 자리였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는데, 한 어르신은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며 “갈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비린 것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에서 이처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에서 줄기둘레가 가장 굵은 것으로 알려진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다.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의 높이는 20m인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10.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느티나무라 할 수 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꽃향기로 존재감 드러내는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남부지방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중부지방에는 다소 생경한 나무다. 하지만 따뜻한 기후의 제주에는 매우 익숙한 나무로, 제주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가 말의 목에 매다는 구슬을 닮았다는 이유에서 ‘멀쿠실낭’이라 부르다가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중에 ‘전가만춘(田家晩春)’이라는 시에 “비 갠 방죽에 청량한 기운 일고/ 멀구슬나무 꽃에 바람 잦아들자 해 길어지네”라며 늦은 봄에 피어난 멀구슬나무 꽃을 노래했던 걸 보면 남부지방에서는 친근한 나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의 마을서 제 이름 지킨 고욤나무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제 존재감을 내려놓아야 하는 얄궂은 운명의 나무가 있다. 고욤나무다. 고욤나무도 분명히 감을 닮은 열매를 맺기는 하지만, 크기가 작은 데다 떫은맛이 커서 환영받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감나무를 키우려면 고욤나무가 필요하다. 씨앗으로 키우면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감나무는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접붙여 키워야 맛난 감을 맺는다. 고욤나무는 결국 감나무를 사람에게 환영받는 나무로 키워내는 뿌리이자 바탕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감나무 그늘에 묻히는 바람에 제 이름을 내려놓고 그저 감나무로 불리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