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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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추사의 필법 닮은 순백의 기품 옛 선비들에게 나무를 심는 행위는 단순히 주변을 가꾸는 일을 넘어, 자신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심는 의례였다. 학자가 심은 나무에 학문적 신념이 깃들 듯, 충남 예산 용궁리 추사고택 뒷동산의 ‘예산 용궁리 백송’에는 추사 김정희의 삶에 얽힌 인문학적 서사가 담겨 있다. 중국 원산의 백송은 번식과 자람이 까다로워 우리 땅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나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백송은 중국을 오가던 선비들이 기념비적으로 심은 게 대부분이다. 이 나무 역시 김정희가 24세의 청년 시절,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다녀오며 가져와 심은 것이다. 추사에게 백송은 각별한 나무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사위가 되어 살던 서울 통의동의 월성위궁에서 보냈는데, 바로 그 집 앞에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 있었다. 추사가 백송을 가문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 계기다. 청년이 되어 연경에서 마주한 백송은 추사에게 고향과 학문을 잇는 매개였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적요 속에 피어날 암향을 기원하며 “젊은 것보다 늙은 것을, 살진 것보다 마른 것을, 번거로운 것보다 희귀한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나무가 있다. 화려한 빛깔로 세상을 현혹하기보다 청초한 생김새와 그윽한 향기로 음전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매실나무다. 돌아온 날들을 차분히 되돌아보게 되는 세밑에 문득 떠오르는 나무다. 옛 선비들은 매실나무의 꽃, 매화에서 세속을 떠나 조용히 살아가는 은사(隱士)의 이미지를 보았다. 추위를 견디며 고매한 기품을 잃지 않는 지조를 닮은 때문이지 싶다. 선비들이 매화 향기를 일러 ‘암향(暗香)’, 곧 ‘숨은 채 피어나는 향기’라 칭송한 이유다. 번잡한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고요 속에 침잠할 때 비로소 배어나는 내면의 품격이자 절제의 미학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공존과 존중으로 이룬 명품 풍경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아산 공세리성당 자리는 조선 성종 때인 1478년 부근의 40개 마을에서 농사지은 곡식을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갈무리해두는 창고가 있던 곳이다. ‘공세(貢稅)곶창’이라는 이름의 창고였다. ‘공세리’라는 마을 이름은 거기서 유래했다. 곡식 창고를 더 굳건히 지키기 위해 성곽처럼 방어시설까지 세웠다고 한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경쟁 대신 선택한 ‘아름다운 공존’ 예로부터 탱자나무는 산울타리로 많이 심어 키웠다. 그러나 정원 한가운데에 조경수로 키우는 특별한 경우도 있다. 경북 문경 대하리, 장수황씨 종택 앞마당의 탱자나무가 그런 나무다. 1593년쯤 이 집을 처음 지은 황시간(1558~1642)은 마당 한쪽에 연못을 파고 그 둘레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그로부터 400년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나무들은 모두 스러지고 탱자나무만 홀로 살아남았다. 종택의 후손들은 이 탱자나무를 가문의 상징으로 여기며 대를 이어 정성껏 지켜왔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의병의 함성 깨운 ‘북을 거는 나무’ 의병의 고장, 경남 의령 유곡면 세간리에는 ‘현고수(懸鼓樹)’라는 나무가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고향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자리에서 직각으로 꺾인 독특한 생김새의 줄기를 마주하면 누구라도 뭔가를 걸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 땅을 지키자는 큰 뜻 하나로 선비 곽재우는 붓을 내려놓고 의병을 일으켰다. 전투 경험이 없는 의병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신호가 필요했다. 의병장 곽재우는 그때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 나무에 북을 걸었다. 훈련 집합 신호도, 적군을 향한 출정 신호도 이 나무에 건 북으로 알렸다. ‘북을 거는 나무’라는 뜻의 ‘현고수’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정부인의 기품으로 살아남아 민족의 소나무 ‘정이품송’이 서 있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에서 남쪽으로 고갯길을 넘어 7㎞ 남짓 지나면 장안면 서원리가 나온다. 마을을 감도는 개울을 따라 난 호젓한 도로 곁에는 근사한 기품의 소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인 ‘보은 서원리 소나무’다. 뿌리 근처 둘레 5m, 높이 15.2m로 서 있는 이 나무는 줄기가 둘로 갈라지며 사방으로 넓게 나뭇가지를 펼쳤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고르게 넓게 펼친 나무 생김새가 아름답다는 게 이 나무의 특징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은 나무 농경문화 시절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나무를 심었다. 아기의 탄생을 축원할 때도, 선비의 입신출세를 축하할 때도, 가문의 화평을 기원할 때도 나무를 심었다. 또 병마에 시달리며 쓰러져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도 나무를 심었다. 경북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 낙동강이 굽어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송당정사(松堂精舍)’에는 병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심어 키운 한 그루의 모과나무가 있다. 뿌리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줄기로 나뉘며 아름다운 생김새를 이룬 나무는 나무 높이 10m의 큰 나무가 됐다. 이 모과나무에는 의술을 펼친 실천성리학자, 박영(朴英·1471~1540)의 실천과 철학이 담겨 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부부의 연을 맺은 1300년 옛사람들은 나무와 사람의 생명을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사람에게 어미가 있으면 아비가 있어야 하듯, 나무에도 할배나무가 있으면 할매나무가 있어야 했다. 인천 영종도의 용궁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도 그처럼 사람의 뜻에 따라 ‘할배·할매’의 인연으로 1300년을 해로했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백운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하는 이 절집은 조선 철종 5년(1854)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며 ‘용궁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원군이 손수 남긴 것으로 전하는 편액이 걸린 요사채 곁에 선 느티나무가 할배나무이고, 큰법당 마당에 서 있는 나무가 할매나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라진 조선의 옛 정자를 지키다 유난히 늦은 듯해도 계절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가장 먼저 가을의 기미를 드러낸 건 나무들이다. 뜨거운 햇살 받으며 지상의 양식을 짓던 나뭇잎에는 붉고 노란 기운이 올라앉았다. 또 하나의 계절에 담긴 사람살이의 자취를 품고 나무는 세월의 지붕이 된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주민센터 앞 작은 공원에는 700년 세월의 자취를 지켜온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 높이 28m, 가슴높이 줄기 둘레 7.5m에 이르는 이 느티나무는 서울의 느티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규모도 가장 큰 나무다. 게다가 기품을 잃지 않은 오래된 나무의 생김새는 감동을 일으킨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소나무가 품은 겸허의 미 소나무는 우리 겨레가 가장 사랑하는 나무다. 사철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푸른 빛은 선비들의 시와 그림에 지조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소나무 가운데 나뭇가지를 땅을 향해 축 늘어뜨리며 자라는 특징 때문에 ‘처진소나무’라고 부르는 종류가 있다. 경북 청도군 동산리 동창천 곁에 서 있는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는 처진소나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나무다. 나무 나이 200년쯤 된 이 나무는 나무 높이 13.6m 정도로 여느 소나무 노거수와 견주면 그리 큰 편이 아니다. 하지만 땅에 닿을 듯 늘어뜨린 가지, 특히 서쪽으로 뻗으며 땅으로 처진 나뭇가지의 생김새는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시인 묵객의 숨결 스민 소나무 물러갈 듯했던 무더위가 다시 기승이다. 개울가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천렵하던 개구쟁이 시절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큰 나무가 있다. 경남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개울가의 반송이다. 부챗살처럼 갈라져 솟아오른 줄기가 아홉 개로 나뉘어서 ‘구송(九松)’이라고 부르는 ‘함양 목현리 반송’이다. 이 나무는 나무 높이 15m, 나뭇가지가 펼쳐나간 폭은 사방으로 15m 정도 되며, 나무 나이는 300년 정도로 짐작된다. 여느 소나무에 비하면 큰 나무라 할 수 없어도 반송 중에서는 큰 편인 데다 나뭇가지 펼침이 더없이 아름답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독립군 나무’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 충북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 마을 어귀에는 ‘독립군 나무’라는 비장한 이름으로 불리는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 거점이었던 역사를 간직한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 나무 나이 370년, 나무 높이 20m의 이 나무는 생물학적 잣대로만 보면 평범한 느티나무 노거수일 뿐이다. 뿌리에서 올라온 줄기가 둘로 갈라진 생김새가 조금 별나게 보일 뿐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