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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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글 지킨 선비처럼 올차게 자란 나무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이 태어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친 곳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내내 이 집을 떠나서 살았다. 오로지 한글을 지키고, 우리 전통 문학장르인 시조를 되살리기 위해서 분주했던 탓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집은 오래도록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 집에 돌아온 것은 1957년 창졸간에 맞이한 뇌출혈로 활동이 어려워진 뒤였다.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온 고향집에서 그는 사랑채에 머물렀다. 사랑채 앞, ‘승운정(勝雲亭)’이라고 이름 붙인 모정(茅亭)은 선생이 하늘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하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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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하늘 아래 첫 감나무 감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가을 기미가 스미면 감이 붉게 익어가면서 단맛이 들기 시작한다. 감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그 가운데에 경북 상주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을 만큼 유명한 감나무 명소다. <세종실록>은 상주의 공물 목록으로 곶감을 지명했고, <예종실록>에는 상주 곶감을 조정에 진상했다고 기록돼 있다. 상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하늘 아래 첫 감나무’라는 별명으로 많이 부르는 상주 소은리 감나무다. 예전에 이 마을에는 ‘할미샘’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었다. 소를 몰고 가던 할머니가 목이 말라서 소 발자국이 찍힌 자리를 호미로 파니 샘물이 솟아올라서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할미샘’이라 불렀다. 할머니는 이 샘물을 마시고 젊어져서 딸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병을 얻자 딸은 어미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늘까지 올라가 곶감을 얻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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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우체부가 싫어하는 마을’의 옻나무 옻나무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나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옻나무가 담고 있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심각한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래도록 정성껏 키운 옻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충북 단양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가에 한 그루의 오래된 옻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5m, 줄기둘레 1m의 이 옻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이 마을에 들어서려면 자동차 한 대가 길섶의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야 할 만큼 비좁고 굴곡이 심한 산길을 지나야 한다. 여간 조심스러운 길이 아니다. 이 길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체부가 제일 싫어하는 마을’이라는 마을 별명을 절로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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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독립투사’ 흔적을 간직한 나무 유관순, 안중근, 김구 등 독립투사들의 빛바랜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부활시킨 영상이 화제였다. 밝은 웃음이 뭉클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김마리아’ 열사가 있어 반가웠다. 김마리아의 독립투쟁을 보좌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김마리아는 1913년부터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때 일제 순사들이 김마리아를 체포할 빌미를 잡으려고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여학교를 급습한 적이 있었다. 순사가 들이닥칠 낌새를 눈치챈 김마리아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비밀 문서들을 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회화나무 줄기의 구멍 안쪽에 숨겼다. 나무줄기가 썩으면서 생긴 큰 구멍이 평소 나무 상태를 세심히 보살피던 김마리아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순사들은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나무줄기의 썩은 구멍 안쪽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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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나무 그늘이 좋은 천상의 나무 나무 그늘이 절실한 계절이다. 너른 그늘을 지으려면 나뭇가지를 넓게 펼쳐야 하고 잎도 무성해야 한다. 자연히 그늘이 좋은 나무는 전체 수형까지 아름다운 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로 가죽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가죽나무는 곧은 줄기가 일정한 높이까지 뻗어오른 뒤 가지를 넓게 펼쳐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가지마다 무성히 돋아나는 잎도 더위를 날려버릴 듯 시원스럽다. 하나의 잎자루에서 13~25장씩 돋아나는 홑잎(단엽)은 제가끔 길이 12㎝까지 자라나서 바람에 살랑이며 최상의 그늘을 지어낸다. 가죽나무 그늘은 분명 여느 나무 그늘 못지않게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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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효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살이의 고통을 치유받을 수 있는 나무가 있다.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의 ‘고창 삼인리 송악’이다. 송악은 스스로 양분을 지어내기는 하지만 홀로 설 수 없어 다른 나무나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아이비와 같은 종류의 덩굴식물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송악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해서 ‘담장나무’ 혹은 잎을 소가 잘 먹는다 해서 ‘소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15m 높이의 바위 절벽을 온통 휘감으며 뻗은 ‘고창 삼인리 송악’의 가지가 지어낸 풍광은 장엄하다. 바위 절벽에 단단하게 붙은 채 솟아오른 줄기에서 뻗어나온 무성한 가지가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에는 그가 살아온 수백년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묻어 있다. 볼수록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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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곱게 늙은, 고찰의 배롱나무 한 쌍 여름,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주로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었지만, 변화하는 기후 탓에 요즘은 중부지방에서도 너끈히 키우는 나무다. 여름의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변성된 ‘배롱나무’라는 우리말 이름도 살갑다. 주름투성이로 피어나는 꽃송이가 화려하지만, 갈색 바탕에 곱게 번진 얼룩무늬의 매끈한 줄기 또한 아름답다. 그리 높게 자라지 않고 나뭇가지를 수평으로 넓게 펼치는 나무여서 정원 조경수로 적당하다. 특히 꽃이나 줄기 표면에 드러나는 화려함은 한옥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래전부터 선비의 정원이나 절집 마당에서 많이 심어 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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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 해 한 번씩 막걸리에 취하는 나무 해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이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는 나무가 있다. 막걸리 열두 말(216ℓ)에 감로수 열두 말을 섞은 술을 마시는 이 나무는 경북 청도의 고찰 운문사 안마당에 서 있는 처진소나무다.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여느 소나무와 달리 나뭇가지를 아래로 축축 늘어뜨리는 특별한 생김새의 소나무를 가리키지만, 최근에는 소나무의 단순 변형으로 보고,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66년에는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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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이 땅의 여름을 상징하는 나무 날씨가 무더워져 공부의 고삐가 풀릴 즈음이면 나뭇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조롱조롱 피어나는 꽃이 있다. 조선시대의 학동들은 이 꽃을 보고 과거시험 채비를 재우쳤다. 회화나무 꽃이다. 조선의 학동들에게 이 꽃은 여름 지나 가을에 열리는 과거 응시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나뭇가지를 거침없이 펼치되, 모난 데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을 갖춘 회화나무는 성장한 선비의 생김새를 닮았다 해서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라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기며 ‘출세목’이라고 부른다. 옛 선비들은 집을 옮겨갈 때에도 이삿짐 목록에 회화나무를 담았다고 할 정도로 아꼈으며, 일부러 눈에 잘 띄는 안마당에 심어 지체 높은 가문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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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국서 가장 오래된 히말라야시다 충북 영동군 영동산업과학고등학교 교정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학교의 상징목으로 서 있다. ‘영동농업전수학교’로 1936년 개교한 이 학교가 1944년 4년제 갑종으로 승격한 계기를 기념해 심은 ‘개잎갈나무’다. ‘히말라야시다’로 많이 불리는 개잎갈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도 그즈음이다. 농업이 전공이던 학교였기에 그때로선 낯선 개잎갈나무를 학교 상징목으로 선택하고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으로 나선 것이다. 히말라야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여서 히말라야시다라고 부르지만,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정한 우리말 이름은 ‘개잎갈나무’다. 잎갈나무와 생김새는 닮았어도 분류학적으로 다른 나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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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스승께 예를 갖추고 선 곱향나무 스승과 제자의 예를 증거하며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딸린 암자, 천자암 경내에 서 있는 한 쌍의 근사한 이 나무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국가자연유산 고유 명칭으로 괄호 속에 표기한 식물 종류인 곱향나무는 잎의 생김새에서 향나무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눈에 띌 만큼의 차이는 아니어서 식물 분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70㎝의 간격을 두고 닮은꼴로 자라난 한 쌍의 곱향나무는 얼핏 한 그루로 보인다. 나무 높이 12m의 크기도 생김새도 꼭 닮아 쌍둥이 향나무라는 뜻에서 오랫동안 쌍향수라고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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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지리산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 ‘구름도 누워 쉬는 마을’이어서 ‘와운(臥雲)’이라 불리는 지리산 뱀사골 마을 동산 마루에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을 모두 해야 서른 명 남짓인 이 마을은 2015년에 지리산국립공원 마을 가운데 맨 처음 ‘명품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와운마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430여년 전에 영광정씨와 김녕김씨 일가가 전란을 피해 찾아와 보금자리를 일구며 시작된 마을이라고 전하는데, 그때 이미 큰 소나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해발 800m에 자리잡은 명품마을의 기품을 지켜주는 것은 단연 이 명품 소나무다.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위에서 마을을 거느리고 서 있는 이 소나무는 2000년에 ‘지리산 천년송’이라는 이름의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