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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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팔려나간 나무를 지켜낸 사람들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힘만으로 지켜낸 감동의 사연을 품고 살아남은 나무가 있다. 경북 상주 용포리 평오마을 들녘 가장자리에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다. 사건은 2009년 초여름에 시작됐다. 마을 어귀에 다정하게 서 있는 한 쌍의 느티나무가 나무 수집상에게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의 땅 주인이 급하게 돈이 필요해 땅을 내놓는 바람에 나무도 함께 팔린 것이다. 창졸간에 300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가 사라지게 됐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성전환하면서 사람 곁에 살아온 나무 조선 초에 세운 최고의 유학 기관인 서울 문묘 명륜당 마당에는 특별한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26m, 가슴높이 줄기둘레 12m의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무너앉은 문묘 일원을 복원한 1602년에 새로 심은 나무로, 명실상부한 문묘 일원의 랜드마크다. 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나무에 담긴 전설은 더 특별하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성을 전환한 은행나무’로 널리 알려졌다. 400년 전부터 이 나무는 오랫동안 씨앗을 풍성하게 맺는 암나무였다.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던 그 시절에 큰 나무에서 풍성하게 맺는 은행은 더없이 훌륭한 먹을거리였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너럭바위와 한 몸 되어 살아온 1100년 충북 괴산 청천면 낙영산 자락에 터잡은 천년 고찰 공림사에는 ‘천년 느티나무’로 불리는 큰 나무가 있다. 1100년 전인 신라 시대에 경문왕의 지시로 절집을 지은 자정 스님이 심은 나무라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대로라면 느티나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 나무는 높이 12m, 줄기둘레 8m이며, 나뭇가지는 동서로 11.6m, 남북으로 14m까지 펼쳤다. 이 정도 규모라면 비슷한 기후에서 자라는 여느 느티나무와 견주었을 때 1000년 넘은 나무로 보기에 무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나무를 심어 키운 기록이 남지 않아 나무나이를 비롯한 나무를 키워온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죽음의 고비 넘긴 특별한 나무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우리나라의 아주 특별한 나무가 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깊은 산골 마을인 용계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사진)다. 나무높이 31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의 큰 나무인데,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건 규모가 아니라, 기적처럼 살아남은 생존 내력 때문이다. 700년 전에 뿌리 내리고 마을 당산나무로 살던 이 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건 1987년이었다. 임하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나무도 물을 피해 오랫동안 살아온 보금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나무는 옮겨갈 수 없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글 지킨 선비처럼 올차게 자란 나무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람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생가가 있다. 선생이 태어나고, 고단했던 삶을 마친 곳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는 내내 이 집을 떠나서 살았다. 오로지 한글을 지키고, 우리 전통 문학장르인 시조를 되살리기 위해서 분주했던 탓에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집은 오래도록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하늘 아래 첫 감나무 감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가을 기미가 스미면 감이 붉게 익어가면서 단맛이 들기 시작한다. 감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그 가운데에 경북 상주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을 만큼 유명한 감나무 명소다. <세종실록>은 상주의 공물 목록으로 곶감을 지명했고, <예종실록>에는 상주 곶감을 조정에 진상했다고 기록돼 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우체부가 싫어하는 마을’의 옻나무 옻나무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나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옻나무가 담고 있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가려움증과 심각한 발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오래도록 정성껏 키운 옻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충북 단양 가곡면 보발리 말금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물가에 한 그루의 오래된 옻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5m, 줄기둘레 1m의 이 옻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독립투사’ 흔적을 간직한 나무 유관순, 안중근, 김구 등 독립투사들의 빛바랜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환하게 웃는 장면으로 부활시킨 영상이 화제였다. 밝은 웃음이 뭉클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김마리아’ 열사가 있어 반가웠다. 김마리아의 독립투쟁을 보좌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다. 이화학당과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김마리아는 1913년부터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나무 그늘이 좋은 천상의 나무 나무 그늘이 절실한 계절이다. 너른 그늘을 지으려면 나뭇가지를 넓게 펼쳐야 하고 잎도 무성해야 한다. 자연히 그늘이 좋은 나무는 전체 수형까지 아름다운 나무일 수밖에 없다. 그런 나무로 가죽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가죽나무는 곧은 줄기가 일정한 높이까지 뻗어오른 뒤 가지를 넓게 펼쳐서 장엄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가지마다 무성히 돋아나는 잎도 더위를 날려버릴 듯 시원스럽다. 하나의 잎자루에서 13~25장씩 돋아나는 홑잎(단엽)은 제가끔 길이 12㎝까지 자라나서 바람에 살랑이며 최상의 그늘을 지어낸다. 가죽나무 그늘은 분명 여느 나무 그늘 못지않게 훌륭하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효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살이의 고통을 치유받을 수 있는 나무가 있다. 199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의 ‘고창 삼인리 송악’이다. 송악은 스스로 양분을 지어내기는 하지만 홀로 설 수 없어 다른 나무나 바위를 타고 오르는 아이비와 같은 종류의 덩굴식물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송악은 담장을 타고 오른다 해서 ‘담장나무’ 혹은 잎을 소가 잘 먹는다 해서 ‘소밥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곱게 늙은, 고찰의 배롱나무 한 쌍 여름, 배롱나무의 계절이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주로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었지만, 변화하는 기후 탓에 요즘은 중부지방에서도 너끈히 키우는 나무다. 여름의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변성된 ‘배롱나무’라는 우리말 이름도 살갑다. 주름투성이로 피어나는 꽃송이가 화려하지만, 갈색 바탕에 곱게 번진 얼룩무늬의 매끈한 줄기 또한 아름답다. 그리 높게 자라지 않고 나뭇가지를 수평으로 넓게 펼치는 나무여서 정원 조경수로 적당하다. 특히 꽃이나 줄기 표면에 드러나는 화려함은 한옥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래전부터 선비의 정원이나 절집 마당에서 많이 심어 키운 이유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 해 한 번씩 막걸리에 취하는 나무 해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이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는 나무가 있다. 막걸리 열두 말(216ℓ)에 감로수 열두 말을 섞은 술을 마시는 이 나무는 경북 청도의 고찰 운문사 안마당에 서 있는 처진소나무다.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여느 소나무와 달리 나뭇가지를 아래로 축축 늘어뜨리는 특별한 생김새의 소나무를 가리키지만, 최근에는 소나무의 단순 변형으로 보고,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66년에는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