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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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부부’처럼 껴안은 소나무 한 쌍 ‘부부송(夫婦松)’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있다. 2005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기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의 소나무 한 쌍이 그 나무다. 두 그루의 소나무가 가까이 붙어 서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듯한 모습이어서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부부송’이라고 불렀다. 두 그루 가운데 한 그루는 300년, 다른 한 그루는 150년쯤으로 수령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멀리 뻗은 나뭇가지를 비탈 언덕 아래로 늘어뜨린 ‘포천 직두리 부부송’은 위로 솟아오르기보다는 가지를 땅으로 내려놓는 처진 소나무 종류여서 대단히 아름다운 생김새를 갖췄다. 얽히고설킨 두 그루의 나뭇가지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서로의 가지가 완전히 하나로 연결된 ‘연리지’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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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공룡 시대의 나무 ‘메타세쿼이아’ 공룡 시대에 번성한 나무 가운데 ‘메타세쿼이아’가 있다. 4000만년 전에 찾아온 빙하기에 멸종한 식물로 알려졌던 이 특별한 나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1941년이다. 그때 양쯔강 상류에서 중국의 산림공무원이 발견한 특별한 나무가 세상에서 이미 사라진 걸로 알려졌던 세쿼이아 종류의 나무임을 밝혀내고, 세쿼이아 이상의 나무라는 뜻에서 ‘메타세쿼이아’라는 학명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쿼이아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처음에는 건축내장재로 이용하기 위해서였고, 가로수로 심은 건 1970년대에 전남 담양군이 시작이었다. 그때 담양군에서는 이름조차 생경했던 3, 4년생의 어린 메타세쿼이아를 국도 가장자리에 줄지어 심었다. 그로부터 50년쯤 지난 지금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이자, 담양의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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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선비의 충절 지킨 천년의 나무 ‘압각수’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는 은행나무가 있다. 충북 청주시 중앙공원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은행나무(사진)다. 압각수는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았다 해서 오리 압(鴨)과 다리 각(脚)을 써서 중국에서 불러온 은행나무의 별명 가운데 하나다. 한자 문화권의 학문을 중시하던 유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나무라는 게 특별한 명명의 시작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꿈을 키우던 때의 일이다. 이성계가 공양왕을 옹립하고 반대파를 차례대로 제거하던 무렵이다. 그때 고려의 무신 이초(李初)는 명나라의 힘을 빌려 이성계의 계획을 막으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이성계는 이색, 권근 등 반대파의 주요 인물 십여명을 감옥에 감금했다. 공양왕 2년인 1390년 5월에 벌어진 ‘이초의 옥사’가 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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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농경문화의 자취를 지켜온 나무 매오로시 나무는 풍요로운 삶의 지표다. 풍년을 기원하며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올리는 건 물론이고, 살림터를 표시하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으로 꼽는 충주 수안보 화천리 은행정 마을에서 500년 가까이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것도 한 그루의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가 상징이어서 마을 이름까지 ‘은행정 마을’이다. 높이 32m에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20m 가까이 펼쳤다. 규모도 장대하지만, 벌판 언덕배기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의 자태는 더없이 아름답다. 이곳에 사람살이의 터를 닦은 건 470년 전이다. 그 무렵 풍수지리에 능한 한 사람이 이 자리가 명당임을 표시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고 그 곁에 정자를 지어 살면서 농사를 지은 게 마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마을 이름은 은행정 마을이 됐다. 마을 들녘 한쪽에서 사람살이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충주 화천리 은행나무’(사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표지이자 마을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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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세상서 가장 작은 집 마당의 큰 나무 은행나무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인 충남 아산의 맹사성 고택에 살던 조선의 청백리 맹사성(孟思誠·1360~1438)도 자신의 집 마당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를 사람들은 ‘맹씨행단’이라고 부른다. ‘행단(杏壇)’은 공자가 학문을 설파하던 자리가 은행나무 그늘이었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은행나무 그늘의 별칭으로 불러온 이름이다. 맹사성이 심어 키운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사람들은 ‘맹씨행단 쌍행수(雙杏樹·사진)’라고 부른다. 600년 동안 나무는 거대한 크기로 솟아올라 앙증맞다 할 정도로 작은 맹사성 고택을 큰 집으로 느끼게 한다. 한창때에 나무는 높이 35m, 줄기 둘레가 9m에 이르는 매우 큰 나무였다. 지금도 나무 앞의 안내판에는 같은 수치를 기록해 놓았지만, 높이와 줄기 둘레 모두 그보다 작다. 특히 줄기는 썩어 부러져 나가서 둘레를 측정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게 됐다. 줄기 자리가 텅 비어 허전한 느낌을 주긴 해도, 원줄기 곁에서 새로 무성하게 돋은 맹아지 때문에 거목의 기품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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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가장 자연스러운 게 가장 아름답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제가끔 다르겠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대상에서 받는 경이로움의 느낌이 일쑤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 십상이다. 또 사람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걸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꼽는 데에 모두 공감하는 나무가 있다. 은행나무 가운데에는 단연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꼽는다. 수령 800년의 이 나무는 높이 32m, 줄기둘레 16m로 무척 크다. 나뭇가지를 펼친 품은 사방으로 30m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경이로움의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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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아름다운 사람살이 품은 단풍나무 들녘의 빛깔이 달라졌다. 길가의 나무들도 초록빛을 내려놓고 가을빛을 머금었다. 은행나무에서 도토리나무까지 숲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물들 채비를 마쳤다. 가을빛의 백미는 단연 단풍나무 붉은빛이다. 정읍 내장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단풍나무 숲의 최고 절경으로 일컬어져왔다. 자연 상태에서 빽빽이 군락을 이룬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가을 풍경의 진수를 느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표적인 단풍나무 숲이다. 내장산 단풍나무 숲은 예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숲이다. 내장산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를 담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내장산 서래봉 아래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서 어머니가 산길에 나섰는데, 어두워진 숲길을 헤매다가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길이 엇갈린 아들은 느지막이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아, 산신령께 어머니의 무사귀가를 빌며 밤을 지새웠다. 아들의 효심과 어머니의 자식 향한 애정에 감동한 산신령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올 길을 환히 밝히기 위해 온 산의 나뭇잎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고 한다. 모든 아름다움은 사람살이에서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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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하늘을 맑게 지켜주는 느티나무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500만장의 잎이 달린다고 한다. 대략 300년쯤, 큰 가지의 훼손 없이 건강하게 자란 느티나무의 경우다. 이 많은 잎들은 제가끔 기공(氣孔)이라 부르는 숨구멍을 가졌다. 기공은 대기 중의 미세먼지와 매연을 흡착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잎이 많으면 자연히 기공이 많아지고, 기공이 많으면 공기정화 효과가 높아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느티나무를 이야기할라치면 많은 사람들이 199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를 첫손에 꼽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세 그루의 나무가 한 건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가운데 언덕 위쪽에 서 있어 상괴목(上槐木·사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나무가 특히 아름답다. 나무의 높이는 무려 30m에 이르고, 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도 8m나 될 만큼 큰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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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민족의 삶을 지탱해 준 ‘참나무’ 참나무 종류의 하나인 졸참나무 한 그루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예고됐다.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 마을 숲의 중심이 되는 나무다. 졸참나무로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나무는 갈참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상수리나무 등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 중 잎과 열매가 가장 작아서 ‘졸병’을 뜻하는 ‘졸’자를 넣어 졸참나무라고 부른다. 잎과 열매는 작다 해도 전체적으로는 크게 자라는 나무다.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는 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당숲의 중심이 되어 사람살이의 안녕을 지켜온 큰 나무다. 250년쯤 된 이 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줄기 둘레 3.5m이고, 나뭇가지 펼침폭이 사방으로 18m에 이를 만큼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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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도시에 살아남은 자연유산 한때 ‘보물 1호’ ‘천연기념물 1호’를 맞히는 건 퀴즈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지정번호는 문화재 관리를 위한 것이지, 중요도를 가리키는 신호가 아니다. 문화재청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모든 문화재의 지정번호를 없애기로 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국가가 부여하는 최고의 지위’인 천연기념물 가운데 지정번호 제1호를 부여받았던 건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대구 도동의 절벽에서 자라는 여러 그루의 측백나무를 묶어 지정한 것이다. 대구 외에 단양, 영양, 안동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측백나무 숲이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사람살이와 함께해 온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는 증거다. 같은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향나무에 비해 측백나무는 덜 알려진 탓에 일반에게 다소 생경한 게 사실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숲을 이룬 자란 측백나무 외에 홀로 긴 세월을 살아온 노거수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의 측백나무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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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여름을 붉게 태우는 배롱나무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의 계절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짙푸른 초록을 이길 수 없는 시절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여름에도 짙은 녹음을 깨고 붉은빛으로 눈길을 끄는 꽃이 있다. 초여름부터 피어나 초가을까지 무려 백일 넘게 꽃을 피우는 나무여서 ‘백일홍나무’라고 부르다가 ‘배롱나무’라는 예쁜 이름을 갖게 된 나무다. 온난화 영향으로 최근에는 수도권에서도 심어 키울 수 있지만, 배롱나무는 오래도록 따뜻한 기후의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던 나무다. 크고 오래된 배롱나무를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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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당산제와 당산나무 하늘이 베푸는 만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농경문화 시절,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소원을 하늘에 빌었다.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고, 햇살을 더 따스하게 쬐어달라고 또 빌었다. 사람의 생살여탈권이 온전히 하늘에 달렸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저 높은 하늘까지 사람의 소원이 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하릴없이 넋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던 그 순간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큰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였다. 사람들은 나무에 다가서서 소원을 빌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사람의 마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큰 나무는 사람들의 모든 소원을 다 담고도 남을 듯한 몸피를 하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나무를 향해 하늘까지 우리의 소원을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나무에게 소원을 전달하는 예를 정성 들여 치렀다. 해마다 빠짐없었다. 이 땅의 당산제는 그렇게 이어졌다. 사람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하는 이른바 영매 노릇을 하는 나무를 사람들은 ‘당산나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