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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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 해 한 번씩 막걸리에 취하는 나무 해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이면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는 나무가 있다. 막걸리 열두 말(216ℓ)에 감로수 열두 말을 섞은 술을 마시는 이 나무는 경북 청도의 고찰 운문사 안마당에 서 있는 처진소나무다. 처진소나무는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여느 소나무와 달리 나뭇가지를 아래로 축축 늘어뜨리는 특별한 생김새의 소나무를 가리키지만, 최근에는 소나무의 단순 변형으로 보고,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66년에는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이 땅의 여름을 상징하는 나무 날씨가 무더워져 공부의 고삐가 풀릴 즈음이면 나뭇가지 끝에서 우윳빛으로 조롱조롱 피어나는 꽃이 있다. 조선시대의 학동들은 이 꽃을 보고 과거시험 채비를 재우쳤다. 회화나무 꽃이다. 조선의 학동들에게 이 꽃은 여름 지나 가을에 열리는 과거 응시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나뭇가지를 거침없이 펼치되, 모난 데 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을 갖춘 회화나무는 성장한 선비의 생김새를 닮았다 해서 ‘선비나무’ 혹은 ‘학자수’라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기며 ‘출세목’이라고 부른다. 옛 선비들은 집을 옮겨갈 때에도 이삿짐 목록에 회화나무를 담았다고 할 정도로 아꼈으며, 일부러 눈에 잘 띄는 안마당에 심어 지체 높은 가문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한국서 가장 오래된 히말라야시다 충북 영동군 영동산업과학고등학교 교정에는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학교의 상징목으로 서 있다. ‘영동농업전수학교’로 1936년 개교한 이 학교가 1944년 4년제 갑종으로 승격한 계기를 기념해 심은 ‘개잎갈나무’다. ‘히말라야시다’로 많이 불리는 개잎갈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도 그즈음이다. 농업이 전공이던 학교였기에 그때로선 낯선 개잎갈나무를 학교 상징목으로 선택하고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으로 나선 것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스승께 예를 갖추고 선 곱향나무 스승과 제자의 예를 증거하며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 딸린 암자, 천자암 경내에 서 있는 한 쌍의 근사한 이 나무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국가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국가자연유산 고유 명칭으로 괄호 속에 표기한 식물 종류인 곱향나무는 잎의 생김새에서 향나무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눈에 띌 만큼의 차이는 아니어서 식물 분류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지리산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 ‘구름도 누워 쉬는 마을’이어서 ‘와운(臥雲)’이라 불리는 지리산 뱀사골 마을 동산 마루에는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을 모두 해야 서른 명 남짓인 이 마을은 2015년에 지리산국립공원 마을 가운데 맨 처음 ‘명품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와운마을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430여년 전에 영광정씨와 김녕김씨 일가가 전란을 피해 찾아와 보금자리를 일구며 시작된 마을이라고 전하는데, 그때 이미 큰 소나무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서당의 어린 학동이 심은 나무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어린 학동이 심고,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지켜온 큰 나무가 있다. ‘서산 송곡서원 향나무’라는 이름의 한 쌍의 향나무다. 미끈한 나무줄기의 생김새에서부터 구불구불한 가지펼침까지 향나무 특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근사한 나무다. ‘서원목’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안쪽에는 ‘송곡서원’이라는 소박한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지만, 나무가 처음 뿌리내리던 시절에는 서원 대신 작은 서당이 있었고, 그 서당에 다니던 학동이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600년쯤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평범한 농촌 마을 ‘자존감 상징’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큰 나무들이 있다. 정이품 벼슬을 받아서 ‘정이품송’이라 불리는 나무를 비롯해 임금이 하사한 한 쌍의 소나무여서 ‘쌍군송’, 밭일하는 어머니의 휴식을 위해 심은 나무여서 ‘효자송’ 등이 그런 경우다. 천년고찰 직지사가 자리 잡은 경북 김천 향천리에는 ‘직지문인송(直指文人松)’이라는 이름의 소나무가 있다. 300년 전에 해주정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마을 뒷동산 언덕 마루에 서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신목(神木)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나무 앞에서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왔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더럽혀진 귀 씻어낸 최치원의 지팡이 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857~?)은 번거로운 속세를 떠나 해인사에 은거했지만, 세상사로부터 귀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해인사에서의 은둔 생활을 접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화개천을 따라 걷던 그는 개울가의 너럭바위에 이르러 계곡 사이로 내다보이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를 은거지로 선택했다. 그러고는 온갖 지저분한 말들에 시달리며 더러워진 귀를 개울물에 깨끗이 씻어냈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경쟁 상대 품는 나무의 협동 전략 얼핏 보아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나무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살 수 있다.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을 잘 받고, 땅에서 물과 양분을 확보하려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곁의 나무보다 높이 올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해야 하고 나뭇가지를 펼칠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승부가 나지 않을 만큼 경쟁이 이어지면 나무는 경쟁의 원리를 내려놓고 ‘협동’을 선택한다. 나무가 보여주는 협동의 결과가 ‘연리(連理)’ 현상이다. 나뭇가지가 서로 붙었다면 연리지, 줄기가 붙었으면 연리목, 땅속의 뿌리가 붙은 경우라면 연리근이라고 부른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오래된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 무늬 소수서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하는 길에서 단산면사무소를 만나게 된다. 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고갯길을 3㎞쯤 넘어가면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 이른다. 마을에 닿았음을 알게 하는 건 마을 어귀의 낮은 언덕에 서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다. ‘영풍’은 영주와 풍기를 합쳐 만든 지명으로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82년에는 공식적으로 쓰이던 행정구역 이름이다. 그러나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로 통폐합되면서 쓰지 않게 됐지만, 천연기념물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다소 낯선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소나무 용의 해, 갑진년 설날이 코앞이다. 전설의 짐승 용은 옛 신화와 전설에 상서로운 짐승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손꼽는 소나무 가운데에도 용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깊은 산골의 나곡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그렇다. ‘합천 화양리 소나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인데, 오래전부터 ‘구룡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나무의 줄기 껍질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규칙적으로 갈라졌다 해서 거북을 뜻하는 ‘구(龜)’와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했다 해서 ‘용(龍)’을 붙여 부른 별명이다. -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폐허 터를 홀로 지켜온 큰 나무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세월이 흐르면 한때 번성했던 절집이라 해도 터만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진다. 홀로 사람살이의 무늬를 지키는 건 오직 큰 나무뿐이다. 문헌 기록조차 따로 남지 않아 내력을 알기 어려운 충북 진천 보련산 자락의 ‘연곡리 절터’도 그렇다. 전각은 물론이고, 절집 이름조차 사라진 폐허의 터다. 그나마 10세기에 세워진 ‘진천 연곡리 석비’가 남아 있어서 고려 전기에 번창했던 절집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이 석비조차 명문이 없는 백비(白碑)여서 절집 내력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