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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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살이의 안위 지켜온 나무 탱자나무는 예로부터 산울타리로 많이 심어 키웠다. 탱자나무 가지에서 돋아나는 억센 가시가 외부와의 차단에 효과적인 때문이다. 사납게 돋치는 가시가 무성한 까닭에 바깥출입을 엄격히 금지해야 할 죄인을 가두는 데에도 탱자나무는 이용됐다. 이른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탱자나무 가시가 무성한 울타리로 싸인 집 안에 죄인을 가두는 형벌이다. 특히 역모에 해당하는 중죄를 지은 죄인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그렇듯, 옛사람들은 한 가지 쓰임새로만 나무를 심지 않았다. ‘상주 이안리 탱자나무’는 마을 골목 안쪽의 길가 공터에 서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조붓한 골목이라면 탱자나무 가시가 오가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이유에서 베어낼 가능성이 높다. 탱자나무가 살아남기에 유리한 자리는 아니다. 사람살이를 불편하게 하면서 사람의 마을에서 나무가 오래 살아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탱자나무는 그 자리를 220년째 지키며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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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서울 도심의 사람살이 향기 나무가 처한 사정보다 늘 사람의 사정을 앞세우는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살이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 수굿이 살아남은 측백나무가 있다. 강서구 화곡동 마을 쉼터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다. 쉼터는 600㎡가량의 옹색한 공간이지만, ‘측백나무가 반겨주는 지정 보호수 마을 마당’이라는 근사한 표지판이 나무의 존재감을 남다르게 한다. 다닥다닥 이어지는 다세대주택 건물들 사이에 마련한 쉼터로 이어지는 조붓한 골목은 ‘곰달래길’ 구간의 일부로, 예전에 ‘용암길’로 불리던 길이다. 길 이름에 든 ‘용암(龍巖)’은 이곳에서 마을 살림살이를 지혜롭게 이끌어온 선조 김팽수(金彭壽)의 아호다. 영해도호부사를 지낸 그는 성품이 후덕하고 행동거지가 분명하여 ‘도덕군자’로 불렸다. 그는 늙마에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원주김씨의 시조인 김거공(金巨公)의 탄생일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후손의 번창을 기원했다. 바로 ‘서울 화곡동 측백나무’다. 더불어 그는 이때의 사정을 ‘식수기(植樹記)’로 상세히 남겼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록은 임진왜란 때 모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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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봉화 우구치리 철쭉 여느 봄꽃에 비해 긴 시간에 걸쳐 화려한 꽃을 피우는 철쭉은 사람살이 곁에서 살아온 낮은 키의 나무다. 그런 철쭉의 생육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쭉은 뜻밖에도 사람의 마을과 떨어진 숲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자리 잡은 경북 봉화군 우구치리 옥석산 정상 조금 못 미친 숲에 있는 ‘봉화 우구치리 철쭉’이 그 주인공이다. 사람살이를 피해 깊은 숲에서 돌보는 이 없이 긴 세월을 도도하게 살아온 우리나라 최고령 철쭉이다.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은 흔히 ‘오백오십년 철쭉’이라고 부른다. 이례적으로 오래된 철쭉임을 강조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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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배고파 죽은 넋 위로한 이팝나무 이팝나무 꽃이 하르르 피어났다. 하얀 쌀밥을 소복이 담은 ‘고봉밥’을 떠올릴 만한 꽃을 피워서 ‘이팝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토종 나무의 향긋한 꽃이다. 입하 즈음에 피어나 보름 넘게 은은한 향을 피우며 오래 머무르는 꽃이어서 예로부터 선조들이 좋아해 왔다. 이팝나무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중부지방에서는 키우기 어려울 정도로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 나무였으나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심어 키우는 나무가 됐다. 아름다운 꽃에 담긴 기후변화의 신호는 사뭇 이 땅의 참담한 사정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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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홀로 남은 모과나무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모과나무는 여느 큰 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은 편이다. 번식을 위해 일찌감치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이다.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일한 모과나무다.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 둘레는 3m를 넘으며, 500년의 세월은 더 살아온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거수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는 적잖은 상처도 입었지만 여전히 건강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생김새가 수려하다. 조선 세조 집권 초기, 이 나무가 서 있는 마을에는 유윤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유윤은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 마을에 은거했다. 그때 세조는 그를 조정으로 불러내려 했지만 유윤은 번번이 거절했다. 유윤은 자신을 찾아온 세조의 신하에게 모과나무 그림을 그리고, 그 곁에 자신은 ‘이 모과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글을 덧붙여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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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나라의 평화 지킨 벚나무 나무의 수명을 일관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종류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태생에서 사망까지 나무가 살아가는 긴 시간을 살펴볼 도리가 없어서다. 비교적 오래 사는 나무와 일찍 수명을 마치는 나무를 가늠하는 게 고작이다. 일반적으로 꽃이 화려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들은 수명이 짧은 편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생식활동 과정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쇠잔하는 때문이다. 우리의 봄을 찬란하게 밝히는 벚나무는 수명이 짧은 편이다. 나라 안의 유명한 벚꽃길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이라고 해 봐야 겨우 150년 안팎의 세월을 거친 나무다. 1000년을 넘게 사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수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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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퇴계 이황의 매실나무 이 땅의 봄을 불러온 매화가 막 절정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최고의 매화라고 일컬어지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를 비롯해 남녘 마을 매화는 이제 서서히 낙화를 채비하는 중이다. 팬데믹 사태로 발길은 붙잡혔지만, 찬란한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남녘의 매화는 절정을 넘어서고 있지만, 한 주일쯤 뒤 절정을 맞이하는 매화가 있다.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나무여서, 남녘에 비해 조금 늦게 피어나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퇴계매다. 도산매라고 부르기도 하는 매화다. 지금은 지폐 도안이 바뀌었지만, 한때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던 퇴계매는 우리 국민이 좋든 싫든 가장 많이 바라보았던 매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우리 마음 깊이 각인된 나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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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개혁의 미래 향한 결의의 상징 동백나무 꽃봉오리가 꿈틀거린다. 겨울에 피는 꽃이어서 겨울 동(冬)을 써서 동백이라고 했지만, 중부지방에서 동백꽃은 이달 중순이 되어야 볼 수 있다. 일부 남부 지방에서는 12월부터 개화와 낙화를 거쳤으나 선운사 동백을 비롯한 중부 지방의 동백나무들은 아직 꽃망울을 꼬무락거릴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된 동백나무 한 그루인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도 좀 지나야 꽃을 보여주리라. 고요한 농촌 마을 안에 자리한 정자, 금사정 앞에 서 있는 이 나무는 독립노거수 동백나무로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이다. 나무 나이 500년, 높이 6m, 줄기 둘레 2.4m로 우리나라에 살아 있는 동백나무를 통틀어 크기나 연륜에서 단연 최고다. 게다가 사방으로 7m 넘게 펼친 나뭇가지는 가히 동백나무로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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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날씨 예측하고 전쟁 예견하는 나무 나뭇잎은 초록의 상징이다. 단풍 들 때까지 모든 나뭇잎은 선명한 초록빛이다. 햇살에 담긴 빛 에너지를 받아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초록빛이어서다. 엽록소를 품은 나뭇잎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나 초록을 거부하는 나뭇잎도 있다. 이를테면 조경수로 많이 심어 키우는 ‘홍단풍’의 잎은 선명한 붉은빛을 띠고 가을까지 보낸다. 홍단풍은 새로운 품종으로 선발한 경우지만 자연 상태에서도 초록이 아닌 빛깔로 잎을 틔우는 나무도 있다. 황금빛의 솔잎이 도드라지는 ‘황금소나무’라는 특별한 나무가 대표적인 경우다. 소나무의 한 품종인 황금소나무는 희귀한 나무로, 소나무의 변이 연구에 자료로 활용된다. 경상북도 울진 주인리에는 지방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황금소나무가 있다. 곁에 있는 다른 나무들과 잎의 빛깔이 뚜렷하게 달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무다. ‘울진 주인리 황금소나무’는 날씨가 가물면 잎이 갈색으로 바뀌고, 장마가 다가오면 초록색이 된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기후 관측에 요긴한 ‘천기목(天氣木)’이라고 불려왔다. 또 가지가 휘어지면 흉년이 들거나 마을 사람이 죽는 등 불상사가 벌어지고, 나라에 전쟁 징후가 있을 때에는 난데없이 잎에 붉은빛이 도는 ‘신목(神木)’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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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시간을 멈추게 한 느티나무 설 쇠고, 나이 혹은 세월의 흐름을 돌아보게 되는 즈음이다. 나이 드는 걸 심드렁하게 느끼는 축이 있는가 하면, 활기차게 받아들이는 축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 됐든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은 세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는 건 분명하다.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묶어두는 데에 이용했던 나무가 있다. 땅끝 해남의 고찰 대흥사가 깃든 두륜산 마루에 서 있는 ‘천년수(千年樹)’라는 이름의 느티나무다. 산내 암자 ‘만일암’이 있던 폐사지여서 ‘만일암터 천년수’라고도 부른다. 폐사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천년수는 무려 1100년이나 된 큰 나무다. 산림청 보호수로 등록된 느티나무 가운데 수령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래된 나무다. 대숲 우거진 한가운데 서 있는 탓에 나무 우듬지를 바라보려면 고개를 한껏 젖혀 올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바라보는 사람을 한눈에 압도하는 융륭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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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백성 구해낸 정치인이 찾은 나무 마흔다섯 살의 사내 이약동(李約東·1416~1493)이 사람살이를 보살필 사명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한 건 500년쯤 전이다. 재임 내내 백성의 삶을 평안하게 지키기 위해 헌신한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말 채찍조차 남기고 떠난 청렴한 삶을 실천한 그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청백리의 본보기로 기록돼 있다. 제주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약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한라산신제였다. 한라산신의 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 제주 사람들은 음력 정월이면 제수용품을 이고 진 채 백록담에 올라 제를 올렸다. 그러나 사나운 날씨를 무릅쓰고 산길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지쳐 쓰러지고, 일쑤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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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는 나무 소원을 떠올리게 되는 새해다. 사람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는 나무라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사람의 마을에서 살아온 영험한 나무가 있다. 이야기 못지않게 신비로운 생김새를 간직한 이 나무는 199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천 도립리 반룡송’이다. ‘하늘로 오르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용’이라는 뜻의 ‘반룡(蟠龍)’이라는 이름의 이 소나무는 무엇보다 생김새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을 압도하는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생김새가 특이하다는 점이다. 이른바 ‘기형목’으로의 보존가치가 인정된 때문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