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관료제인가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국가공무원법 제1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행정의 민주적이며 능률적인 운영’을 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무원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 믿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공무원이 자기 자신이나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며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더 많다. 왜 그럴까?

한국 관료제의 잘못된 경로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얼마 전까지 여러 사람들과 ‘한국의 관료주의’라는 주제로 공부모임을 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행정조직의 변화와 관료조직의 특징을 다룬 여러 논문과 자료들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공부를 할수록 그동안 선출직 공무원(정치인)에 대한 관심만큼 경력직 공무원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과 선거제도의 개혁이 더디지만 행정의 개혁은 더욱더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관료제의 잘못된 첫 단추는 일제강점기 때 끼워졌다.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운영되었던 계급제식 행정운영과 의법(依法) 전통이 관료제의 골격을 만들었다. 공무원의 전문성에 기초한 직무제와 달리 계급제는 중앙정부가 인사와 행정을 관리하고, 하위 공무원을 신규 채용해서 내부 승진을 통해 고위 공무원을 충원하며, 계급 내의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령과 학력을 제한하고, 정기적인 인사이동과 순환보직을 통해 직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부서 이동과 승진이 위계적인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니 상급자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 중요했고, 개인적인 친밀함이나 학연, 지연 같은 연줄이 직무의 전문성을 앞섰다. 부당한 지시를 따르다 징계를 받아도 나중에 승진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니 윗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에 내부고발은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공무원이 법과 규정에 얽매이는 의법 전통은 중앙집권적인 행정과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사업집행을 정당화시켰다. 법은 식민지 본국에서 제정되기에 식민지의 공무원은 법의 정당성을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때론 공권력을 동원해 집행만 하면 되었다. 그 이상의 역할은 책임을 져야 하니 자신과 조직을 위태롭게 한다고 교육받았다.

이런 의법 전통은 지방자치제도 이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계로 재현되기도 했다. 지방자치제도의 취지는 행정이 사업에 필요한 근거를 스스로 마련하고 시민들과 함께 책임지는 것인데, 지금도 지방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의 법률과 지침만 기다리고 있거나 그것을 핑계로 시민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법이나 지침이 계속 바뀌는데도 예전 관행대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관료에 잠식되는 정치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부패였다. 역대 모든 정부가 정권 초기에 공직자 부패척결과 관료제 개혁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몇몇 부서를 합치거나 없애는 것에 그칠 뿐 그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개방형 직위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관료들의 내부 반발로 제한적으로 시행되었고 기존의 조직문화를 바꾸지 못했다.

공무원의 전문성과 책임성, 민주성을 강화시키는 것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기업식 성과관리와 규제완화, 내부경쟁 논리가 개혁의 탈을 쓰고 등장했다. 성과를 위해 민주주의는 후순위로 밀려났고, 직책을 이용해 기업의 뒤를 봐주고 퇴직 후 그 기업에 취업하는 ‘회전문 인사’가 늘어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조직에서 길러진 공무원들이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계로 계속 진출해 왔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96명 중 관료 출신이 48명으로 절반이나 된다. 중앙선관위의 당선인 직업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단체장 4명, 기초단체장 38명이 관료 출신이다. 이 통계에서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그 이전 선거에서 당선된 관료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관료조직을 어떻게, 얼마나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폭우로 인한 참사도 마찬가지이다. 재난과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책임자 처벌, 대책 마련이 주장되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단순한 사람의 교체가 아니라 관료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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