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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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굶어 죽은 조선의 천문학자 김영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박물학자라 할 수 있는 이규경의 <기하원본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굶어 죽은 천재 김영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김영은 정조, 순조대의 역관(曆官)으로 조선 천문학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국조역상고>, 천문역법에 관한 책인 <신법중성기> <신법누주통의>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천문기구를 제작하기도 했다. 정조와 순조대에 천문역법을 담당하는 관료이자 학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왜 굶어 죽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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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파리를 조문하는 글 정약용이 남긴 글 중에는 <파리를 조문하는 글>이 있다. 1810년 여름,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해서 술집과 떡가게가 있는 저잣거리는 물론 산골짜기까지 가득 차게 되었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고 하고, 소년들은 파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약을 쳐서 파리들을 전멸시켰는데, 정약용은 탄식을 하며 이 전멸된 파리들을 위해 조문하는 글을 쓴다. 그는 이 파리들이 그 전해 기근 때에 죽은 사람들에서 나온 것으로, 환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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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차별 정당화하는 신문 논설에 대한 시골 부인의 반박 1898년 11월7일, ‘제국신문’에는 여학교 교육에 관한 흥미로운 논설이 실렸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조선의 계급 간의 차별, 남녀 차별이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하는 이 논설이 실제 주장하는 바는 여학생들의 입학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898년 가을에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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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미신 타파하던 조선 정치가들의 미신 누군가가 운명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운명이 흘러가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존재를 굳게 믿고 실패를 막을 구체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때때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 부적이나 굿,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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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영조의 정치 레토릭은 왜 실패했을까 정치 레토릭은 종종 선거철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가들의 거짓말’과 동의어로 이해되고 사용되어 왔다. 대체로 정치 레토릭은 공약과 같은 미래에 대한 약속과 관련되어 있어서 정치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레토릭은 거짓말로 전락하고 정치가는 비판받는다. 따라서 정치 레토릭을 잘 사용하고 싶다면 진부하지 않고 신선한 언어를 찾는 것만큼이나 그 레토릭이 함축하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정치가의 뛰어난 정치 레토릭은 그 정치가가 적어도 이 사회가 바라는 정치적 이상을 잘 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가끔 이러한 언어의 규칙을 벗어나서 정치 레토릭을 구사함으로써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정치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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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정치는 권력투쟁의 동의어가 아니다 1801년 신유사옥은 정조의 죽음으로 “좋은 정치”가 끝나고 정순왕후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신호탄처럼 다뤄지며, 노론 벽파가 천주교 박해를 명분으로 다른 정파들을 제거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묘사된다. 당쟁, 붕당정치 등 조선후기 정치사를 권력투쟁으로 이해해 온 역사관에서는 이러한 묘사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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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억과 반기억의 역사, 그리고 ‘황사영백서’ 조선이 남긴 방대한 국가 기록 중 특히 역모와 같은 중죄인들을 심문한 기록인 <추안급국안>에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1801년 신유사옥의 기록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황사영백서>이다. <황사영백서>는 신유사옥 당시 황사영이라는 27세의 천주교인이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로, 당대 조선의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유럽의 전함을 불러들여 조선의 문호를 열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해야 하며,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반국가적인 언술로 채워져 있는 글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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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회적 비판의 맥락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 소응천이라는, 삼남(三南)에서 이름을 떨쳤던 선비에게는 첩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 그에게 자신을 첩으로 삼아달라고 부탁한 뒤 같이 살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어느 양반집의 종이었는데,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그 집이 권세가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 가족 중 아가씨와 자신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 뒤 검술을 배워 원수를 갚기로 맹세한다. 이 어린 소녀들은 남장을 하고 헤매다가 겨우 자신들을 가르쳐줄 검객을 찾았고, 열일곱이 되자 검술은 물론 공중을 날아다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들은 도시를 다니며 검술공연으로 돈을 벌어 무기를 사고 원수의 집안을 찾아내어 모두 죽인 뒤 멸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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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류큐 왕자 살해설의 전모와 후폭풍 17세기 이후 아시아에서는 조선인들이 제주도에 표류했던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의 왕자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이야기의 전모는 이중환의 <택리지>(1751)에 나온다. 인조대에 일본이 류큐를 공격해서 그 왕을 잡아가자, 류큐의 세자는 물만 넣으면 술로 변하는 돌인 주천석과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거미줄로 짠 만산장으로 아버지를 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게 되었는데, 제주 목사가 이 보물들이 탐이 나 몰수하고 세자를 죽이고 그가 왜구였다고 꾸며 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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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장애인 개혁가’ 유수원의 삶과 우정 1741년 2월8일, 영조는 관제 개혁론을 들고 온 농암(聾菴) 유수원이라는 사람을 조정에서 맞이한다. 그의 <관제서승도설(官制序陞圖說)>을 검토한 영조는 첫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의 개혁론을 따라 제도를 바꾸면 정말로 인재를 공정하게 임용할 수 있는가? 실록은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음을 기록한다. 왕의 질문에 유수원이 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의 침묵 이후, 영조는 눈앞의 사대부가 말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조는 주서(注書)에게 질문을 써서 유수원에게 보여주라고 명하고, 둘은 이윽고 필담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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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옹녀와 변강쇠, 그리고 19세기 하층민의 삶 판소리계 고전소설인 <변강쇠전>은 남녀 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한 면이 있음은 분명 사실이지만, 소설이 집필된 19세기 조선이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조금 다른 읽기도 가능하다. 당시 조선 사회는 계속되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해 피폐해졌다. 재해로 몇십만명씩 사망했던 참혹한 사회상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변강쇠전>은 통계로만은 쉽게 감이 오지 않는, 당대 하층민들 삶의 고통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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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운명이 아픈가, 안 아픈가 조선시대의 서얼이라고 하면 우리는 ‘불평등’이나 ‘억울함’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한다. 인간은 모두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성리학의 전제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리학에 기초한 사회였던 조선은 불평등을 양산했다. 의학, 언어, 수학 등의 전문가로 관직에 올랐으나 양반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중인, 사회적 욕망을 거세당한 여성, 인간이지만 누군가의 소유였던 노비, 그리고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능력이 있어도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한 서얼은 조선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노비도 재산 축적이 가능했던 조선에서 이들을 괴롭힌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기회가 없거나 지극히 적은 선택지만이 주어진 삶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이들에게 깊은 우울감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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