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투쟁의 동의어가 아니다

1801년 신유사옥은 정조의 죽음으로 “좋은 정치”가 끝나고 정순왕후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신호탄처럼 다뤄지며, 노론 벽파가 천주교 박해를 명분으로 다른 정파들을 제거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묘사된다. 당쟁, 붕당정치 등 조선후기 정치사를 권력투쟁으로 이해해 온 역사관에서는 이러한 묘사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런데 정말 신유사옥을 일으켰던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권력투쟁과 정치탄압만을 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일까? 분명히 벽파에 의한 시파의 정치배제와 신유사옥이 동시기에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그 목적을 정쟁이라고만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은 정치사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실제 정치는 권력투쟁 이상의 무엇을 요구한다. 즉 설득, 협의, 절차, 정당화와 같은 정치 기술이 필요하며, 신유사옥은 특히나 그런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규모의 사건이다.

신유사옥의 복잡성은 관련 자료를 검토해볼 때 잘 드러난다. 신유사옥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할 때 가장 문제적인 것은 자료의 불균형이다. 정순왕후나 벽파가 남긴 개인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신유사옥의 의미는 그 과정을 권력투쟁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노론 시파와 천주교의 자료를 중심으로 설명되었다. 이 기록들을 다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려운 이유는 이 자료들이 주관적 판단과 신념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중록>은 정순왕후가 천주교 신자가 아닌 혜경궁 홍씨의 동생인 홍낙임을 정치탄압으로 제거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홍낙임은 루카라는 세례명을 받은 천주교 신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순왕후는 홍낙임을 살리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를 죽이라는 신하들에게 그녀는 정조를 언급하며 “내가 선왕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경들보다 훨씬 친절하셨다”라고 말하며 탄압의 극단화를 막고자 노력한다. 정순왕후와 천주교도들을 심문한 벽파들이 사태를 극단적으로 가져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정약용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자찬묘지명’에서 이병모, 심환지, 그리고 정순왕후의 인척인 김관주가 그에 대한 심문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정순왕후 역시 정약용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정순왕후와 벽파는 신유사옥 과정에서 강경론자들을 설득하려는 나름의 노력을 한다. 천주교인들에 대한 극단적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정순왕후는 법적 근거 없음을 들어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말하는가 하면, 그녀의 정치적 온건성을 무능으로 비난하는 입장들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유사옥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입장들을 비판한다.

이럼에도 왜 정순왕후와 벽파는 권력투쟁의 화신처럼 묘사되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의 단초는 바로 신유사옥을 주관적으로 설명하는 시파와 천주교인들의 자료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자료들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정치 사건을 해석하는 데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필터들이 개입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순왕후와 벽파는 사법적 결정 과정에서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합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들이 정치에서 배제한 정파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가의 결정과 사법적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굳이 설득이나 협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행방과 정치 투쟁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었던 조선인들을 생각해 보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그들의 한계였으며, 정치적 결정과 판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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