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조문하는 글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약용이 남긴 글 중에는 <파리를 조문하는 글>이 있다. 1810년 여름,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해서 술집과 떡가게가 있는 저잣거리는 물론 산골짜기까지 가득 차게 되었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고 하고, 소년들은 파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약을 쳐서 파리들을 전멸시켰는데, 정약용은 탄식을 하며 이 전멸된 파리들을 위해 조문하는 글을 쓴다. 그는 이 파리들이 그 전해 기근 때에 죽은 사람들에서 나온 것으로, 환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파리를 조문하는 글>에는 정약용이 목도했던 재해의 참상과 그 재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관료들은 재해에 대처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는 파리를 조문하기 위해 쌀밥에 국, 술, 단술, 국수, 기름진 고깃덩이, 초장, 찐 파, 농어회를 차려놓고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고 “얼굴을 활짝 펴라”고, 원래 누구였는지 모를 파리 떼를 부른다. 정약용이 살았던 18, 19세기는 유달리 재해가 많았다. 재해로 인한 백성들의 죽음이 정치와 무관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 재해를 정치적 실패의 동의어로 이해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한재나 수재와 같은 재해와 기근, 전염병 등의 발생은 통치의 정당성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재해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였다.

재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왕과 관료들은 자신의 정치적 무능으로 문제가 발생했다고 사죄하였고, 어떤 고위 관료들은 사퇴하기도 했다. 일견 자연재해와 정치는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연재해를 국가가 처리하는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항상 재정난에 시달리는 전근대 국가인 조선은, 재해를 예상하더라도 그에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못했고, 또 재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 인구를 파악해서 공정하게 물자를 배분하고 구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늘 행정에는 이런 빈 구멍이 나기 마련인데, 이때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설득하며 재해로 망가진 공동체를 추스르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죽은 자들에 대한 위로였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과 인간 존엄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재해 시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들을 위해 국가가 지내는 제사가 있었다. 이 제사를 ‘여제(厲祭)’라 한다. 국가는 사람들을 동원해 신원이 분명하지 않은 죽은 자들을 묻어주고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을 이 사람들을 기렸다. 여제는 “제사 받아먹지 못한 귀신들”을 위한 제사로 봄철에는 청명, 가을철에는 7월 보름, 겨울에는 10월 초하루에 지냈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제사는 기본적으로 공덕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며, 길례, 즉 즐거운 예인데, 여제는 그런 제사가 아니었다. 누구인지 모를, 이들을 기억할 자손도 없는, 복의 근원이 아닌, 상서롭지 못한 ‘여귀’들에 대한 제사를 국가 의례에 포함시키고 1년에 세 번씩 제사를 올리는 것은, 국가가 환과고독(鰥寡孤獨)인 그들을 구휼하지 못함을 용서받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810년, 정약용이 길게 써내려 간 파리를 위한 조문은 사실 분노를 표현하고 자신을 위로한 글이었을 것이다. 기근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과 해결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보리가 익었다고 구호소를 없애버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연회를 베푸는 자들, 죽은 사람들을 묻어주고 그들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한 조처를 하지 않아 그들을 수많은 파리로 만든 그 관리들이 사람들을 다스리는 상황이야말로 좋은 제도와 행정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왔던 정약용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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