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식
그린피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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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친환경으로 여는 새해 설이 코앞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저런 선물이 택배 트럭을 타고 전국을 누빈다. 내 집 문 앞에도 배달 상자가 잔뜩 쌓였다. 풍요의 시대에 이런 선물, 솔직히 반갑지 않다. 명절에 받은 택배를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주방 수납장에는 이태 전에 받은 햄이 아직도 있다. 욕실에는 지난 설에 받은 샴푸와 비누가 그대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식용유를 선반에 쌓는 것도 일이다. 냉장고를 차지하는 멸치와 과일은 어째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늘 설이 지나면 중고거래 장터에는 스팸과 참치, 식용유 같은 명절 선물이 반값에 올라온다. 보낸 마음을 헤아리면 두고두고 고맙지만, 격식 맞추려 쓸모없는 물건을 이리 한꺼번에 나누는 것은 사회적 낭비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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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전 국민 환경운동 만세 환경운동가라는 말은 어쩐지 낯간지럽다. 예술가, 전문가, 대가 같은 단어와 나란한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아무렴 환경운동가도 남다른 전문성이 있으니 ‘-가’자를 붙인들 과하지 않다. 다만 활동가라는 말에 담긴 울타리가 영 거슬린다. 마치 환경운동이 저만의 것, 전문성을 가진 일부만 나설 수 있다고 선을 긋는 것 같다. 사회운동은 뛰어난 소수의 활약보다 널리 여러 시민이 참여하는 저변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메시나 호날두 같은 영웅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 운동장을 찾는 성실한 조기축구회원 같은 수천만 실천 시민이 필요하지 않은가. 내 어휘 감각으로는 환경운동가보다는 ‘환경인’ 정도가 적당하다. 환경운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모두 함께하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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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플라스틱과 이별 시간이 온다 북태평양 플라스틱 섬에서 우연히 한글이 적힌 쓰레기를 발견한 건 2018년 9월이었다. 그린피스 팀은 물 위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어 올려 국적과 제조사를 확인했다. 누가 이 쓰레기를 만들었고 어디서 흘러들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이다. 형체가 온전한 쓰레기가 많지 않아 작업은 더뎠지만, 빨간 병뚜껑에 새겨진 하얀 코카콜라 로고나 푸른 바구니 옆에 적힌 한자는 선명했다. 그러다 손에 잡힌 게 우리나라 식품기업의 하얀색 플라스틱 통이었다. 마요네즈를 담는 통이 분명했다. 하필이면 한글이 볼록하게 각인되어 지워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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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자가용 덜 타도록 유도하라 월 9유로, 한화 1만2500원이면 기차와 버스 자유 이용. 지난 6~8월 3개월 동안 독일 정부가 시행한 근거리 대중교통 할인 정책이다. 물가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시민들의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도 줄이려는 의도였다. 정책의 결과는 놀랍다. 무려 5200만여명이 9유로 티켓을 샀다. 이 나라 성인 모두 한 차례씩 구매한 셈이다. 티켓을 이용한 사람 중 20%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다른 27%는 버스나 전철을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게 전부였다. 이용객 절반이 자가용을 놔두고 대중교통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독일 통계청은 이 정책 첫 달인 6월 철도 운송 이동량이 코로나19 이전 같은 시기보다 평균 42%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기 중거리 도로 교통량은 6%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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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삼겹살 1인분은 왜 180그램? 이건 아마 전 국민 궁금증일 테다. 고깃집에서 삼겹살 1인분을 주문하면 ‘애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거 먹고 배가 찰까 싶다. 그러니 1인분에 그치는 일이 없다. 단언컨대, 건국 이래 건장한 남성 넷이 고깃집에 모여 4인분에 만족하는 사건은 일어난 적 없다. 고깃집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어지간한 사내 넷이면 적게는 6인분, 많게는 12인분도 주문한다. 어느 전직 운동선수 가족은 방송에서 소고기 16인분을 셋이 해치우기도 했다. 덩치 큰 넷이 나오는 다른 방송에서는 1인분만 먹는 걸 불명예로 여긴다. 아무렴 삼겹살 1인분 180g은 도무지 성에 안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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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상처받은 지구 쉽게 만나는 법 종종 사람들은 내게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을 타고 전 세계 환경문제 현장에 다닌 이야기를 묻는다. 백번 묻기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나는 구글 지도를 켜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화면 한가운데 놓는다. 흔히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남미 대륙이 한눈에 잡힌다. 구석에 있는 위성사진 버튼을 누르면 천연색 지도가 나온다. 푸른 화면을 천천히 확대하면 대륙 한가운데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나스카 지상화 이야기일까? 아니다. 남미 대륙은 요즘 군인 전투복에 쓰는 디지털 무늬처럼 초록색과 갈색, 황토색 사각형으로 얼룩덜룩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인터넷 통신 속도가 느려 픽셀이 깨졌다 추측한다. 아니다. 조금 더 확대해보자. 집과 자동차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확대하면 알게 된다. 픽셀이 깨진 게 아니라 커다란 사각형 경작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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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위기 서울의 자화상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선라이즈호를 타고 2018년 남극에 다녀왔다. 거친 파도로 악명 높은 드레이크 해협은 ‘천로역정’처럼 괴로웠지만, 일주일쯤 견디며 항해한 끝에 만난 남극은 상상 속 천국처럼 아름다웠다. 사방 맑은 하늘 아래 새하얀 빙산이 두둥실 떠다니고, 저만치 앞에서 펭귄과 고래, 물범이 노닐었다. 낭만적인 첫 장면이 전부는 아니었다. 남극은 금세 얼굴을 바꿔 강풍 블리자드를 뿜었고, 바다에는 크릴을 낚는 대형 어선들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진을 치고 있었다. 크릴을 어선에 빼앗긴 펭귄과 고래는 힘겹게 먹이를 찾아 헤매야 했다. 두 얼굴의 남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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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 앞을 보면 ‘기후위기’라고 난리인데, 옆을 보면 석유제품을 빛나게 광고한다. 새 내연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영상이나 석유를 사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주유소 홍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광고는 얼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라 유혹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하라며 소비자 가슴을 들쑤신다. 찬물과 더운물 사이에서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뉴스는 기후위기 소식으로 난리인데, 광고 속 세상은 마냥 아름답다. 얼른 내연차를 타고 숲속을 달리란다. 이건 담배가 해롭다는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상업광고가 나오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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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북극은 지금, 불덩이 바다 북극 유빙 위에 오른 틸 와그너 박사는 드릴로 발아래 얼음에 구멍을 내며 설명했다. “이렇게 두툼한 얼음 밑은 어두워서 미세조류가 잘 자라요. 동물성 플랑크톤이 이 미세조류를 먹고, 이 플랑크톤은 물고기와 오징어, 일부 고래의 먹이가 되고, 다시 육식 고래가 이 물고기와 오징어를 먹는 게 북극 먹이사슬이에요.” 와그너 박사는 드릴 끝에 달린 원통을 바닥에 놓고 안에 있는 얼음을 꺼냈다.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이었다.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얼음이 옅은 갈색빛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박사는 미세조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얼음을 밀봉해 실험실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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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차 매연에 겸연쩍은 날이 온다 나는 전 세계 도시를 달린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이 항구에 머물 때면 운동 삼아 근처 마을을 뛴다. 오전 일과시간을 맞추려 채비를 서두르면 이른 햇살이 비추는 코펜하겐 인어공주 동상이나 관광객의 수다가 잠잠해진 고즈넉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을 홀로 누릴 수 있다. 그 맛이 좋아 달리기를 오래 즐기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 남아공 케이프타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인도양 세이셸에서 달렸고, 심지어 떠다니는 커다란 북극 얼음 위를 뛰기도 했다. 뛰다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를 달리는데, 작은 오토바이가 뒤에서 앞지르지 않고 따라왔다. 내리막이 나오자 오토바이는 엔진을 끄더니 비탈면 가속을 이용해 뛰는 무리를 천천히 앞질러 갔다. 숨이 가뿐 내게 매연을 뿜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비탈이라 봐야 조금 아래로 기운 게 전부인 편평한 나라이다 보니 오토바이와 나는 한동안 비슷한 속도로 나아갔다. 훈련하는 선수와 감독처럼 우리는 나란히 달렸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자 운전자는 찡긋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도 종종 뜀박질하는 게 분명하다. 제가 뿜는 매연이 담배 연기만큼이나 뛰는 이에게 불쾌하다는 걸 아는 게다. 딱 한 번 일어난 흔치 않은 일이지만 기분 좋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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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바다에 폭탄이 터지고 있다 지난 2월20일 지중해와 맞닿은 그리스 서부 코르푸섬 해안에 몸길이 6m, 무게 3t에 달하는 민부리고래 두 마리가 떠밀려왔다. 이튿날 같은 종 한 마리가 근처 해변에서 발견됐다. 모두 건장한 성체였다. 수심 3000m 가까이 잠수하는 고래 세 마리가 동시에 해안에 좌초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마침, 섬 근처 이오니아해에서는 석유기업의 조사선이 탄성파를 쏘며 해저 지질을 조사하고 있었다. 탄성파 조사는 해저 유전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배에서 10초마다 쏜 음파가 최대 3000m 해저에 부딪혀 돌아오면 신호를 분석해 지층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멀리 퍼지는 낮고 강한 음파를 만들기 위해 3000기압에 달하는 초고압으로 공기를 압축하는데, 이렇게 쏘는 음파의 크기는 250㏈에 달하고 5㎞ 밖에서도 들린다. 제트기 소음이 130㏈이란다. 250㏈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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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 과잉 소비와 환경은 같은 배를 탈 수 없다 “캠페인을 마치고 떠날 때는 남은 치약이나 비누를 배에 두고 오세요. 그게 미덕이에요.”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직원이 환경감시선 승선을 앞두고 배에서 지내는 요령을 내게 물었다. 나는 배의 일과시간이나 멀미 대처요령, 식당 청소 당번 같은 걸 설명하다가 ‘소모품을 배에 두고 오라’고 조언했다. 그 말에 내 것 네 것이 또렷한 젊은 직원은 난처한 기색이었다. 불현듯 적선을 강요받기라도 한 표정이랄까. 그 반응에 나 역시 난처했다.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는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환경운동가들이 섞여 있으니 독특한 장면이 많다. 그중 하나는 한번 배에 가져온 물자는 집으로 되가져가지 않고 어떻게든 여기서 소진한다는 암묵적 합의다. 비누나 치약을 쓰다 남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 가방에 넣지 않고, 동료들이 두루 쓸 수 있게 공동 세면장에 두고 온다. 옷이나 신발도 특별한 까닭이 없으면 공유 물품 창고에 두고 간다. 단순히 배에 물자가 귀해 생긴 문화는 아니다. 비행기에 실을 짐을 줄여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물자를 낭비 없이 알뜰하게 쓰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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