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앞을 보면 ‘기후위기’라고 난리인데, 옆을 보면 석유제품을 빛나게 광고한다. 새 내연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영상이나 석유를 사는 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주유소 홍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광고는 얼른 비행기를 타고 떠나라 유혹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하라며 소비자 가슴을 들쑤신다. 찬물과 더운물 사이에서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뉴스는 기후위기 소식으로 난리인데, 광고 속 세상은 마냥 아름답다. 얼른 내연차를 타고 숲속을 달리란다. 이건 담배가 해롭다는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상업광고가 나오는 꼴이다.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굴뚝 없는 광고·홍보업도 온실가스를 유발할까?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광고·홍보업계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보챈다. 화려한 영상과 소리로 기후위기를 까마득히 잊게 하고, 때때로 불필요한 소비를 부른다. 기후에 해로운 제품을 친환경으로 위장(그린워싱)하는 일도 종종 있다. 오죽하면 올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처음으로 기후위기 속 광고·홍보의 역할을 언급하며, 화석에너지 기업을 위해 일하는 광고·홍보업체가 잘못된 기후정보를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엔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 캠페인 사무국은 지난 6월15일 광고·홍보업계를 향한 새로운 지침을 세웠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광고·홍보업체는 화석연료 관련 제품이나 회사의 광고를 대행하여 올린 매출을 밝혀야 한다. 이는 광고·홍보가 부추겨 추가 발생한 온실가스양을 측정하는 기초가 된다.

광고·홍보업계도 이를 잘 아는 모양이다. 지난 6월20일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국제광고제 개막식이었다. 15년 전, 이 광고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구스타프 마트너가 개막식 무대에 불쑥 올라갔다. 그린피스 액티비스트가 되어 15년 전에 받은 트로피를 들고 행사장을 다시 찾은 남자는 황금사자상을 주최 측에 반납했다. 배출가스 시험성적을 위조한 독일 폭스바겐의 디젤 자동차를 광고해 받은 트로피였다. 마트너는 “광고계는 화석연료 광고 금지조치를 지지해야 한다. 죽은 지구에는 상도 없다”고 외쳤다. 그 순간 행사장에는 적지 않은 박수와 환호가 퍼졌다.

공교롭게도 마트너가 트로피를 반납한 올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현대자동차가 지면과 옥외광고 부문 은사자상을 받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태풍 제비로 인해 자동차가 뒤집힌 모습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며 ‘미래 세대를 위해 친환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광고다. 그러나 광고와 달리 현대자동차는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혐의로 지난 6월28일 독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불법 배기가스 조작장치를 부착한 디젤차 21만대 이상을 2020년까지 유통한 혐의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와 장면이 겹친다.

‘한순간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마트너가 트로피를 반납하는 순간 칸 국제광고제 무대 배경에 커다랗게 적힌 문구였다. 그들이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광고·홍보의 영향은 이토록 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담배 광고가 사라진 것처럼 화석연료 관련 제품 광고도 사라질 때다. 광고·홍보업에도 윤리가 있지 않은가. 기후위기에 기름 붓는 광고를 당장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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