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지구 쉽게 만나는 법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종종 사람들은 내게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을 타고 전 세계 환경문제 현장에 다닌 이야기를 묻는다. 백번 묻기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 나는 구글 지도를 켜고 남아메리카 대륙을 화면 한가운데 놓는다. 흔히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남미 대륙이 한눈에 잡힌다. 구석에 있는 위성사진 버튼을 누르면 천연색 지도가 나온다. 푸른 화면을 천천히 확대하면 대륙 한가운데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나스카 지상화 이야기일까? 아니다. 남미 대륙은 요즘 군인 전투복에 쓰는 디지털 무늬처럼 초록색과 갈색, 황토색 사각형으로 얼룩덜룩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인터넷 통신 속도가 느려 픽셀이 깨졌다 추측한다. 아니다. 조금 더 확대해보자. 집과 자동차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확대하면 알게 된다. 픽셀이 깨진 게 아니라 커다란 사각형 경작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화면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물체 크기를 줄이고 동서남북 멀리 움직여도 온통 밭이다. 우리가 울창한 숲이라고 믿는 남미 대륙은 지금 유전자변형작물을 기르는 경작지가 되었다. 통계를 찾을 필요 없다. 구글 지도를 보면 남미 땅 절반이 밭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길이를 재어보니 가로, 세로 둘 다 3000㎞가 넘는다. 서울에서 미얀마에 닿는 거리다. 그 사이에 있는 서해와 중국 땅 전체가 콩밭, 옥수수밭이라면 피부에 와닿을까.

여기에서 난 곡물은 상당량이 소나 돼지, 양 같은 가축의 사료가 된다. 전 세계인에게 갖가지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남미의 숲이 사라진 셈이다. 어디 숲뿐이랴. 남미 숲은 지구의 허파이자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거기 살던 꽃과 풀, 개구리와 도마뱀, 너구리와 늑대, 인류가 아직 대면하지 못한 이름 없는 생명들, 그리고 원주민 역시 살 곳을 잃었다. 지구 표면에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한 직선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이런 장면을 살피고 다시 남미 대륙 전체를 보면, 그제야 누더기가 된 지구 표면이 눈에 들어온다.

구글 지도를 보여준 다음에는 내가 2016년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원주민 사진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정부에서 보낸 급수 트럭에서 물을 받는 장면이다. 곡물 회사들은 밭에 심은 유전자변형작물에 농약 글리포세이트를 비행기로 퍼부었다. 그 바람에 지하수가 농약에 오염되었고, 물을 마신 주민들은 가려움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원주민 마을 여기저기서 기형으로 태어나는 아기와 암에 걸리는 주민이 폭증했다. 가만히 앉아서 살 곳을 잃은 원주민들이 급수차 앞에서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은 서글프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고기는 남미 대륙의 숲을 밀어내고 농약으로 오염시킨 결과다. 기후위기 앞에 우리는 같은 열차를 탔지만, 머리 칸과 꼬리 칸의 거리는 남미와 우리나라만큼 멀다.

구글 지도를 켠 김에 둘러볼 환경문제 현장이 많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보면 폐허가 된 마을에 오염토를 쌓는 장면이 보인다. 우리 수도권 주민들이 쌓아 올리고 있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의 쓰레기산도 볼 수 있다. 남극에 가면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이 선명하다. 자, 의지만 있다면 지구의 기후위기 현장을 구석구석 볼 수 있다. 어서 지도를 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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