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은 지금, 불덩이 바다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북극 유빙 위에 오른 틸 와그너 박사는 드릴로 발아래 얼음에 구멍을 내며 설명했다.

“이렇게 두툼한 얼음 밑은 어두워서 미세조류가 잘 자라요. 동물성 플랑크톤이 이 미세조류를 먹고, 이 플랑크톤은 물고기와 오징어, 일부 고래의 먹이가 되고, 다시 육식 고래가 이 물고기와 오징어를 먹는 게 북극 먹이사슬이에요.”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와그너 박사는 드릴 끝에 달린 원통을 바닥에 놓고 안에 있는 얼음을 꺼냈다.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이었다.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얼음이 옅은 갈색빛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박사는 미세조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얼음을 밀봉해 실험실로 보냈다.

“미세조류는 얼음 밑 어두운 곳에서만 자라는 음서 생물이에요. 북극 얼음이 사라지면 이 미세조류도 사라지겠죠. 그러면 동물성 플랑크톤도 사라지고, 결국 고래는 먹이를 잃죠. 북극 먹이사슬이 기초부터 무너지는 겁니다.”

2019년이었고, 그린피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그린란드 북동쪽 연안 프람 해협을 탐사했다. 북극해와 대서양 사이에서 양방향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해협은 두 가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첫째, 얼음이 감소하면서 먹이사슬의 기초인 미세조류 역시 줄어든다. 둘째, 얼음이 사라진 바다는 태양 빛을 흡수해 표층이 따뜻해지고, 그 결과 영양염류가 위아래로 섞이지 않는다. 바다가 척박해지는 셈이다. 여전히 바람은 차고 얼음은 많아 보이지만, 지금 북극 바다는 열병을 앓고 있다. 세계기상기구의 자료를 보면 북극 연평균 바닷물 표면 온도는 1971년부터 2019년 사이 3.1도가 올랐다.

어디 북극만의 이야기인가.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측정한 우리 연근해 바닷물 표면 온도는 1968년 이래 1.5도나 올랐다. 전 세계 평균이 100년 사이 0.67도 상승한 것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두 배 넘게 오른 셈이다. 그 결과, 우리 바다에 사람을 공격하는 열대 어종 청상아리가 나타나고, 한류성 어종 명태는 씨가 말랐다. 지난해 남해안에서는 고수온에 약한 우럭 470만마리가 폐사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사실 북극 바닷물 온도가 3.1도, 우리 바닷물 온도가 1.5도 올랐다는 수치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3.1도면 찻잔에 담긴 물을 ‘후후’ 불면 식는 정도일까? 아니다. 이건 사람으로 치면 열병이다. 정상 체온 36.5도에서 1.5도 오르면 38도. 이쯤이면 부모는 ‘아이가 불덩이가 되었다’ 아우성치고, 의사들은 ‘고열’로 진단해 해열제를 처방한다. 땀범벅이 되어 응앙응앙 우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가슴이 조마조마 움츠러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이를 살핀다. 북극처럼 3.1도가 올라 체온이 39.6도가 되면 어떨까? 이건 불덩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응급실로 달려갈 일이다.

문제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다. 체온 변화에는 해열제를 먹어가며 가슴 졸이면서 바다의 1.5도니 3.1도에는 무심하지 않은가. 저기 우리 바다가 열병을 앓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온도계를 대면 불덩이다. 바다도 해열제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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