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신기사
-
정동칼럼 공공지능이 BTS의 노래였다면 최근 국내에서 비교적 조용히 지나간 뉴스가 있다. 지난 3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유엔개발계획(UNDP) 등 유엔 산하 6개 기구와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이 프로젝트의 간사이자 설계자인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찍이 알파고의 등장에서 인류 구원의 가능성을 읽었던 인물이다. 의사가 없는 오지에서 AI 의사가 진료를 대신할 수 있다면 수억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구상, 즉 ‘공공지능’을 향한 그의 오랜 설계가 국가적 정책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협약 자리에서 김 총리는 개발도상국과 취약계층을 글로벌 AI 협력을 통해 돕겠다는 한국의 의지를 밝혔고, 각 기구 수장들도 이 구상에 지지를 표명했다.
-
정동칼럼 AI 시대의 사이버네틱 거식증 최근 영국 가디언지에는 매우 서늘하고 비극적인 사연이 하나 보도되었다. 지속 가능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자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AI 챗봇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48세의 한 미국 남성이 점차 챗봇을 과다 사용하며 현실과 철저히 격리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현실의 아내나 친구와 대화하는 대신 자신의 고민에 완벽하게 맞장구쳐주는 챗봇에 점점 더 의존했다. 실리콘밸리가 약속한 AI의 무한한 지적, 정서적 풍요 속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고립과 파국을 선택했다. 이는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챗GPT 사용 전후로 심각한 정신건강 위기를 겪은 사례가 거의 50건에 달하고 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오픈AI조차 매주 100만명 이상이 챗봇에 자살 생각을 드러낸다고 추정한다.
-
정동칼럼 강추위보다 살을 에는 ICE 연일 살을 에는 추위가 에워싼다. 그러나 지난 1월24일 보도된 미국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한 또 다른 시민 사망 소식은 마음마저 베이게 한다. 1월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르네 굿이 연방 이민단속 과정 중 사망한 지 보름 만에 그곳에서 또다시 참혹한 죽음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 소식을 접하는 즉시 내 기억 속 한 외침이 떠올랐다. “ICE는 꺼져라!” 작년 11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인류학회의 시작을 알린 제이슨 드 레온(UCLA 인류학 교수)의 일갈이었다. 놀라운 것은 거친 말 자체보다 곧바로 터져 나온 환호였다. 수백명의 인류학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환호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강제이주와 추방정치가 일상의 윤리를 어떻게 파괴해왔는지에 대한 집단적 체감의 표출이었다. 그 외침은 ICE의 총성에 시민들이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예견된 비극에 대한 응답이었던 셈이다.
-
정동칼럼 댓글이 먼저 도착한 사회 최근 논쟁과 감정이 집중되는 기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먼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다고 할 게 뻔하다.” “저런 스타일은 꼭 저러더라.” 사건의 맥락이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사람은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었고, 그 유형에 맞는 반응만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를 미리 짜인 범주 속에 밀어넣고 판단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만약 이 글에서 특정 사건의 이름을 꺼낸다면, 이 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될지 모른다. 언급하지 않으면 비겁하고, 언급하면 편을 가르는 글이 된다.
-
정동칼럼 밤의 식민지, 거래되는 수면 새벽,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시간. 누군가는 제주도의 어두운 도로 위에서 배송트럭을 몰고, 누군가는 빵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다. 최근 쿠팡과 SPC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부고는 이 시간의 적막을 깨트린다. 제주에서 고정 야간근무를 하던 30대 배송기사의 사망, 6일 연속 야간근무 후 숨진 SPC 60대 노동자, 그리고 올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고된 복수의 심혈관계 사망 사례들.
-
정동칼럼 AI는 ‘꿈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2025년 7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한 베이글 프랜차이즈에서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유족 측은 주 8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 심야 연장 근무, 제대로 식사조차 못했다는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라며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회사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러 증언들은 이와 다른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세 달 단위의 단기 계약, 잦은 지점 이동, CCTV 감시와 사소한 실수에도 작성해야 했던 사건 보고서 등 과도한 통제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한다.
-
정동칼럼 이태원 3주기, 서로 닮아가는 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3주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3주기는 단순한 기념에 그치지 않는다. 참사 특별법이 지난해 5월2일 국회를 통과한 뒤,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 6월17일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대되는 특조위의 활동과 지난 3년간 이어진 암울한 기억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실천과 책임을 되묻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
정동칼럼 민원 해결, 대통령과 상담사 몫인가 2025년 7월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행정 책임자들은 부재한 채 대통령이 직접 민원을 듣는 기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이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하소연할 마땅한 창구를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즉 민원 해결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민원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혹시 모를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 역시 그들의 모든 하소연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역력한 채, 그 공간을 채웠던 불안감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
정동칼럼 가자지구와 한국, 아이들은 왜 못 먹는가 세상을 이해하는 창은 여러 가지다. 정치, 경제, 문화…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행위인 ‘먹기’를 창으로 삼아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은 직후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가족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임을 자부하면서 “먹는 문제로 애달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소비쿠폰의 가치를 되새겼다. 우리는 주로 ‘먹는 것’의 즐거움과 풍요로움만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먹지 못함’의 고통이 울려 퍼진다. 지구상에는 ‘먹지 못해’ 생긴 두 개의 상반된 비극이 공존한다.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아이들이며, 다른 하나는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것이다. 나는 전자를 ‘사회적 섭식장애’로, 후자를 ‘개인적 섭식장애’로 부르고자 한다.
-
정동칼럼 AI도, 암처럼 단일하지 않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연일 AI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타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인프라를 통해 독자적인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소버린(Sovereign) AI’의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의학과 방역이 국가 안보의 문제로 간주되던 상황과 유사하다. 현 정부가 ‘AI 분야 세계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비 30조원, 지방비 5조원, 민간 투자 유도 65조원 등 총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소버린, 즉 ‘독자적’ AI의 확보는 이제 국가 경제를 넘어 문화적 종속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AI는 거스를 수 없는, 확고한 ‘단일’ 명제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마치 AI를 중심에 두고 각국과 기업들이 전쟁에 돌입한 것처럼 말이다.
-
정동칼럼 노동, 땀의 대가가 이제 꿈이 아니길 2025년 6월2일, 김충현씨(50)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이곳은 2018년 김용균씨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도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김충현씨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그의 책상 위에 <이재명과 기본소득>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꿈꾸던 세상까지 단 이틀이 모자랐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흘려온 땀의 대가는 참으로 가혹하다.
-
정동칼럼 누가 의과대학생을 정치화시켰나 의과대학생은 정치조직일 수 없는가? 아니다. 그러한 법은 없다. 학생은 언제든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대학 역시 정치적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의과대학생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렸다. 2024년 2월, 정권에 의해 의대 정원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갑작스레 확대되면서 이들은 장기간 강의실 밖에 머물게 됐다. 그 결과 2025년 5월9일 교육부는 전체 의과대학생의 42.6%(8305명)가 유급, 0.2%(46명)가 제적 대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처럼 심각한 상황조차 거대 정치 뉴스 속에 묻히고 있다. 그렇게 시작도, 끝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휩쓸렸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는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 국면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