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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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유가족, 여섯 끼니의 죄책감 지난 6월11일 김용균재단에서 주최한 포럼에서 유가족 연대 운동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때 토론자로 나온 유가족 어머니는 몇년째 같은 문장과 싸우고 있었다. 2020년 가을,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새벽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스물일곱 살 아들 장덕준을 욕실에서 잃은 박미숙씨다. 1년4개월의 야간 노동으로 아들의 몸무게는 75㎏에서 15㎏이나 빠졌다. 그런데 손해배상 재판에서 회사 측은 그 야윈 몸을 두고 “심한 다이어트 끝의 영양실조”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는 밤마다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세 끼가 아니라 여섯 끼를 차렸다면, 아이가 그렇게 떠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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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제2의 이종욱 총장’은 누구인가 5월20일, 조용히 묻힌 한 기사가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쓴 ‘[기고] 故 이종욱 사무총장의 보건협력 정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제6대 이종욱 사무총장(1945~2006)의 서거 20주기를 기리며 쓴 글로, 그의 신념이었던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총장은 23년간 WHO에서 일하며 백신과 예방접종 사업을 이끌고 소아마비 퇴치에 기여한 인물로, ‘백신의 황제’라 불렸다. 그는 백신을 단순한 의료기술이 아니라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보건 정의의 문제로 바라봤다. 그는 현장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연대는 국경도, 이슈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선택적으로 연대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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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공지능의 메아리, 누구에게 닿을까 지난 3월21일 광화문 BTS 컴백 공연은 전 세계 190여개국에 생중계되며 수천만명을 열광의 공동체로 묶었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말한 ‘리미널리티(Liminality·경계성)’, 즉 일상의 위계에서 벗어나 타자와 연결되는 경계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빛나는 공동체의 바깥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논란이 일었다. 하이브가 7일간 광화문광장을 사용하며 낸 대관료는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경찰, 공무원, 소방 등 1만5000명 이상의 공공 인력이 투입됐다. 무료 공연이었지만 부가가치는 하이브와 넷플릭스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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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공공지능이 BTS의 노래였다면 최근 국내에서 비교적 조용히 지나간 뉴스가 있다. 지난 3월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유엔개발계획(UNDP) 등 유엔 산하 6개 기구와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이 프로젝트의 간사이자 설계자인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찍이 알파고의 등장에서 인류 구원의 가능성을 읽었던 인물이다. 의사가 없는 오지에서 AI 의사가 진료를 대신할 수 있다면 수억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구상, 즉 ‘공공지능’을 향한 그의 오랜 설계가 국가적 정책으로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협약 자리에서 김 총리는 개발도상국과 취약계층을 글로벌 AI 협력을 통해 돕겠다는 한국의 의지를 밝혔고, 각 기구 수장들도 이 구상에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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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AI 시대의 사이버네틱 거식증 최근 영국 가디언지에는 매우 서늘하고 비극적인 사연이 하나 보도되었다. 지속 가능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고자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AI 챗봇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48세의 한 미국 남성이 점차 챗봇을 과다 사용하며 현실과 철저히 격리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현실의 아내나 친구와 대화하는 대신 자신의 고민에 완벽하게 맞장구쳐주는 챗봇에 점점 더 의존했다. 실리콘밸리가 약속한 AI의 무한한 지적, 정서적 풍요 속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고립과 파국을 선택했다. 이는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챗GPT 사용 전후로 심각한 정신건강 위기를 겪은 사례가 거의 50건에 달하고 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오픈AI조차 매주 100만명 이상이 챗봇에 자살 생각을 드러낸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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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강추위보다 살을 에는 ICE 연일 살을 에는 추위가 에워싼다. 그러나 지난 1월24일 보도된 미국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한 또 다른 시민 사망 소식은 마음마저 베이게 한다. 1월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르네 굿이 연방 이민단속 과정 중 사망한 지 보름 만에 그곳에서 또다시 참혹한 죽음이 발생한 것이다. 사망 소식을 접하는 즉시 내 기억 속 한 외침이 떠올랐다. “ICE는 꺼져라!” 작년 11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인류학회의 시작을 알린 제이슨 드 레온(UCLA 인류학 교수)의 일갈이었다. 놀라운 것은 거친 말 자체보다 곧바로 터져 나온 환호였다. 수백명의 인류학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 환호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강제이주와 추방정치가 일상의 윤리를 어떻게 파괴해왔는지에 대한 집단적 체감의 표출이었다. 그 외침은 ICE의 총성에 시민들이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예견된 비극에 대한 응답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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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댓글이 먼저 도착한 사회 최근 논쟁과 감정이 집중되는 기사들의 댓글을 읽다 보면,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먼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다고 할 게 뻔하다.” “저런 스타일은 꼭 저러더라.” 사건의 맥락이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 사람은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되었고, 그 유형에 맞는 반응만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를 미리 짜인 범주 속에 밀어넣고 판단하는 데 더 익숙해졌다. 만약 이 글에서 특정 사건의 이름을 꺼낸다면, 이 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될지 모른다. 언급하지 않으면 비겁하고, 언급하면 편을 가르는 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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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밤의 식민지, 거래되는 수면 새벽,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시간. 누군가는 제주도의 어두운 도로 위에서 배송트럭을 몰고, 누군가는 빵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다. 최근 쿠팡과 SPC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부고는 이 시간의 적막을 깨트린다. 제주에서 고정 야간근무를 하던 30대 배송기사의 사망, 6일 연속 야간근무 후 숨진 SPC 60대 노동자, 그리고 올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고된 복수의 심혈관계 사망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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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AI는 ‘꿈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2025년 7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한 베이글 프랜차이즈에서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유족 측은 주 8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 심야 연장 근무, 제대로 식사조차 못했다는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라며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회사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러 증언들은 이와 다른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세 달 단위의 단기 계약, 잦은 지점 이동, CCTV 감시와 사소한 실수에도 작성해야 했던 사건 보고서 등 과도한 통제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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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태원 3주기, 서로 닮아가는 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3주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3주기는 단순한 기념에 그치지 않는다. 참사 특별법이 지난해 5월2일 국회를 통과한 뒤,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 6월17일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대되는 특조위의 활동과 지난 3년간 이어진 암울한 기억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실천과 책임을 되묻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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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민원 해결, 대통령과 상담사 몫인가 2025년 7월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행정 책임자들은 부재한 채 대통령이 직접 민원을 듣는 기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이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하소연할 마땅한 창구를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즉 민원 해결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민원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혹시 모를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 역시 그들의 모든 하소연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역력한 채, 그 공간을 채웠던 불안감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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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가자지구와 한국, 아이들은 왜 못 먹는가 세상을 이해하는 창은 여러 가지다. 정치, 경제, 문화…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행위인 ‘먹기’를 창으로 삼아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은 직후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가족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임을 자부하면서 “먹는 문제로 애달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소비쿠폰의 가치를 되새겼다. 우리는 주로 ‘먹는 것’의 즐거움과 풍요로움만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먹지 못함’의 고통이 울려 퍼진다. 지구상에는 ‘먹지 못해’ 생긴 두 개의 상반된 비극이 공존한다.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아이들이며, 다른 하나는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것이다. 나는 전자를 ‘사회적 섭식장애’로, 후자를 ‘개인적 섭식장애’로 부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