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신기사
-
정동칼럼 돌봄이 절실한 지금, 달라붙는 감정들 연이은 폭염에 온열질환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수일 전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에선 폭염주의보에 에어컨 없이 지내던 91세 남성이 42도까지 체온이 오른 채 사망에 이르렀다. 병원에선 열사병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했다. 그의 죽음에는 세 가지 요인(폭염, 코로나19, 고령)이 중첩되어 있었다. 모두 다 사회가 돌봐야 할 커다란 주제들이며, 단 하나의 요인으로도 치명적이다. 혹시 고령이었기 때문에 폭염도, 코로나19 감염도 피할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위기가 시작된 것일까.
-
정동칼럼 의료, 의로움의 충돌과 덫의 현장 2024년 2월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약 5개월이 지나고 보건복지부는 7월18일에 전공의 7648명(전체 1만3531명 중 56.5%)이 최종 사직처리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두 번의 발표 사이에 시민들이 목격한 것은 서로 다른 얼굴의 의로움의 충돌이었다. 정부 관계자의 단호한 목소리, 대한의사협회의 비장한 목소리, 의대교수의 절규하는 목소리, 전공의의 힘겨운 목소리 등 내용은 달랐지만 모두 의로운 일이라는 확신이 내비쳐졌다. 물론, 시민들이 그 나름의 절실함을 의로움의 충분조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
정동칼럼 잔인한 밥값, 따뜻한 밥 한 그릇 사고가 반복되면 그건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도 있지만, 항상 같은 얼굴은 아니다. 만일 같은 얼굴의 사고가 반복된다면, 그건 시스템이 망가진 결과이며, 누군가에게 그 죄를 물어야 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중국동포 17명, 라오스인 1명, 한국인 5명이었다. 또 이주노동자가 피해의 중심에 있었고, 사망자 중 20명은 사내 하청노동자였다고 한다. 가장 위험한 현장에 또 하청업체 소속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었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 및 대책이 마련되어 ‘있었더라면’이라는 해묵은 가정도 위선처럼 들린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저 그 익명의 대상이 누가 될지 모를 뿐 반드시 산업재해 사망자의 수치는 어김없이 채워질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한국이 왜 3D가 아닌 4D(Death가 추가)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
정동칼럼 대립의 시대, 새로운 은유가 필요하다 은유란 인류의 역사에서 생존의 필살기다.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와 언어철학자인 마크 존슨은 <삶으로서의 은유>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이 은유적 개념들로 가득 차 있음을 일찍이 강조했다. 레이코프는 미국의 전쟁서사에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섬뜩한 현실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은 약자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이슬람 국가는 악마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역사와 정치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은유적 표현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시간은 금이고, 타고난 부는 금수저로, 반대는 흙수저로, 모든 입시와 취업은 소위 전쟁이다.
-
정동칼럼 영국 총리님, 얼마나 아파야 쉴 수 있죠 얼마나 아프면 일을 하지 않고 유급휴가, 병가를 받을 수 있을까. 모든 직장인들의 고민일 게다. 관련해서 지난 4월19일 영국 총리 리시 수낵은 ‘시크 노트 컬처’(sick note culture)를 문제시하며 개혁을 선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서 시크 노트란 의사가 발행하는 일종의 병가진단서를 의미한다. 수낵 총리는 영국에서 ‘일상적인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지나치게 의료화되고 있고, 병가진단서가 일반의사에 의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정신적 질환으로 보기 어려운 평범한 증상을 지나치게 질병으로 인정해줘서 기업의 생산성이 저하되고, 정부의 보건의료 지출이 증가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 대안으로 시크 노트를 일반의사가 아닌 보다 제한된 특수한 전문가에 의해 발급될 수 있도록 개혁하려 한다.
-
정동칼럼 진실의 ‘약’을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가 먹는 약의 효과에 있어 ‘진실’은 무엇일까. 흔히 약물이 가지고 있는 화학적 성분이 몸 안에서 어떤 반응을 유발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진실의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의 영역에서 바라본 약의 ‘총 효과’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영국의 의료인류학자 세실 헬만은 약이 약물 자체의 효과를 포함한 미시적 차원을 넘어 그 약물에 대한 도덕적, 문화적 가치들과 사회경제적 분위기, 그리고 그 약을 사용하는 사회집단과 생산 및 판매하는 경제주체들까지 포함한 거시적 차원까지 포함해 그 효능이 발휘된다고 설명한다.
-
정동칼럼 노동자에겐 재충전 시간이 곧 황금알 지난 2월29일 ‘주 4일제 네트워크’ 출범식이 있었다. “일이 삶을 압도한 사회를 벗어나, 일과 삶의 조화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 선언문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정부에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현행 52시간) ‘유연하게’ 확대 운용하려 했던 시도와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물론, 주 69시간 노동만큼 주 4일제 노동도 터무니없게 들릴지 모른다. 당장, 4일만 일하면 경제는 어떻게 지탱하고, 줄어든 가계수입은 어떻게 하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 한국은 지나친 노동시간에 위태롭게 기대고 있다.
-
정동칼럼 역겨운 것은 바퀴벌레가 아니다 엉뚱한 질문 같지만 던져본다. 바퀴벌레에 대한 역겨움은 본능적인 것인가 학습된 것인가. 갑론을박하며 결론이 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질문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바퀴벌레는 역겹다’라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바퀴벌레가 역겨울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아마도 역겨움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각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영국 페미니스트 연구자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가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는 특정한 대상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책에는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흑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나오는 일화이다. 로드가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탔을 때 옆에 앉은 여성이 로드의 옷에 자신의 옷이 닿을까 신경질적으로 옷을 잡아챘다. 로드는 그와 여성 사이에 ‘바퀴벌레’와 같이 끔찍한 게 있다고 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의 ‘크게 뜬 눈’ ‘벌름거리는 코’를 목격하며 이내 알아챘다. 그가 바로 바퀴벌레였다는 것을 말이다.
-
정동칼럼 아픔을 ‘듣고 → 말하는’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해를 넘으며 가장 많이 오고 갔을 표현이다. 하지만 단지 해가 바뀌었다고 사회의 모든 영역이 일순간 ‘해피’하게 전환될 수는 없다. 오히려 각종 지표는 그 반대로 향하는 듯하다. 실제로 5년 사이(2018~2022년) 정신질환자가 37% 증가했고, 2022년에는 처음으로 연간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 시대에 진입했다. 즉, 이제 50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꼴로 우울증 진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것과 더불어 지난 5년 사이 초중고 학생의 우울증이 60.1%가 증가했다는 점, 2022년 10대·20대·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 역시 눈을 뗄 수 없는 지표들이다.
-
정동칼럼 연말, 제일 먼저 전하고 싶은 소식 나는 연말, 모두가 ‘제일 먼저 전하고 싶은 소식’이 가득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분들이 진상규명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촉구하며 한파 속 오체투지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고대했던 소식이 아닌 12월21일 임시국회에서마저 결국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디 실망스러운 소식이 이것뿐이었을까. 12월 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방송 3법’이 거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외에서는 11월20일까지 도쿄전력이 방사성 오염수 3차 방류를 완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월13일 마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는 결국 화석연료에 대한 명확한 ‘퇴출’ 합의에 실패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것뿐인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속 가자 지구 주민 절반이 굶주림에 떨고 있다는 소식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마을을 공격했다는 소식 또한 끊이질 않는다.
-
정동칼럼 11월, 정답은 좋은 삶을 보장하는가 11월은 온갖 시험의 연속이다. 중심에는 당연히 대학입학이 차지하고 있다. 올해는 1996년 이후 역대 최대로 n수생 비율(35.3%)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재직 중인 대학의 신입생 중에도 수능 당일 결석이 평소보다 많았다. 수능시험 이후 모든 대학에서 일제히 다양한 수시모집을 시작했다. 나 역시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 수시모집 전형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학교 관계자분들은 10여분의 면접 시간이 한 학생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모두가 크고 작은 틈을 메우느라 바빴다. 11월은 그렇게 날씨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통과의례의 절기다.
-
정동칼럼 인간보다 더 ‘사람’다운 이태원 인간은 과연 사람인가? 바보 같은 질문 같지만, 지구상의 다양한 인간들을 만날 수 없던 시절 피부색과 외모가 다르며, 언어가 다른 종족을 만나면, 사람의 자격을 묻고는 했다. 비서구 지역을 탐방한 인류학자의 기록 속에는 ‘사람’의 의미가 ‘인간’을 초월한 사례가 많다. 실제로 바위, 나무, 곰, 그리고 번개마저도 ‘사람’이라 불리기도 했다. 즉, 사람이 되기 위해 인간과 꼭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태철학자 유기쁨 박사(<애니미즘과 현대세계>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아닌 것에 사람을 애써 발견하려는” 자세가 사람의 중요한 특성이다. 상호작용하며 자극을 받고 관계를 맺은 대상을 ‘사람’이라 상상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곧 사람으로 여겨졌다. 즉, 사람의 조건은 스스로가 사람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이외의 다른 대상을 사람으로 상상하고 대우할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음식도, 옷도, 집도, 그리고 다른 인간 모두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며 관계를 맺을 때, 나 역시 비로소 사람의 자격을 얻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