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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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밤의 식민지, 거래되는 수면 새벽,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시간. 누군가는 제주도의 어두운 도로 위에서 배송트럭을 몰고, 누군가는 빵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다. 최근 쿠팡과 SPC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부고는 이 시간의 적막을 깨트린다. 제주에서 고정 야간근무를 하던 30대 배송기사의 사망, 6일 연속 야간근무 후 숨진 SPC 60대 노동자, 그리고 올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고된 복수의 심혈관계 사망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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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AI는 ‘꿈의 노동자’가 아니었다 2025년 7월, ‘오픈런’ 열풍을 일으킨 한 베이글 프랜차이즈에서 20대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유족 측은 주 8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 심야 연장 근무, 제대로 식사조차 못했다는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기록이라며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회사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러 증언들은 이와 다른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세 달 단위의 단기 계약, 잦은 지점 이동, CCTV 감시와 사소한 실수에도 작성해야 했던 사건 보고서 등 과도한 통제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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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태원 3주기, 서로 닮아가는 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3주기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3주기는 단순한 기념에 그치지 않는다. 참사 특별법이 지난해 5월2일 국회를 통과한 뒤,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은 올해 6월17일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대되는 특조위의 활동과 지난 3년간 이어진 암울한 기억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실천과 책임을 되묻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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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민원 해결, 대통령과 상담사 몫인가 2025년 7월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행정 책임자들은 부재한 채 대통령이 직접 민원을 듣는 기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이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하소연할 마땅한 창구를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즉 민원 해결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민원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혹시 모를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 역시 그들의 모든 하소연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역력한 채, 그 공간을 채웠던 불안감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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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가자지구와 한국, 아이들은 왜 못 먹는가 세상을 이해하는 창은 여러 가지다. 정치, 경제, 문화…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행위인 ‘먹기’를 창으로 삼아 세상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은 직후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가족과 함께 무엇을 먹을까”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임을 자부하면서 “먹는 문제로 애달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소비쿠폰의 가치를 되새겼다. 우리는 주로 ‘먹는 것’의 즐거움과 풍요로움만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먹지 못함’의 고통이 울려 퍼진다. 지구상에는 ‘먹지 못해’ 생긴 두 개의 상반된 비극이 공존한다.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아이들이며, 다른 하나는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것이다. 나는 전자를 ‘사회적 섭식장애’로, 후자를 ‘개인적 섭식장애’로 부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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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AI도, 암처럼 단일하지 않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연일 AI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타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인프라를 통해 독자적인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소버린(Sovereign) AI’의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의학과 방역이 국가 안보의 문제로 간주되던 상황과 유사하다. 현 정부가 ‘AI 분야 세계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비 30조원, 지방비 5조원, 민간 투자 유도 65조원 등 총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소버린, 즉 ‘독자적’ AI의 확보는 이제 국가 경제를 넘어 문화적 종속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AI는 거스를 수 없는, 확고한 ‘단일’ 명제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마치 AI를 중심에 두고 각국과 기업들이 전쟁에 돌입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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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노동, 땀의 대가가 이제 꿈이 아니길 2025년 6월2일, 김충현씨(50)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이곳은 2018년 김용균씨가 홀로 작업 중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도 ‘김용균 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김충현씨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그의 책상 위에 <이재명과 기본소득>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꿈꾸던 세상까지 단 이틀이 모자랐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흘려온 땀의 대가는 참으로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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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누가 의과대학생을 정치화시켰나 의과대학생은 정치조직일 수 없는가? 아니다. 그러한 법은 없다. 학생은 언제든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대학 역시 정치적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의과대학생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렸다. 2024년 2월, 정권에 의해 의대 정원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갑작스레 확대되면서 이들은 장기간 강의실 밖에 머물게 됐다. 그 결과 2025년 5월9일 교육부는 전체 의과대학생의 42.6%(8305명)가 유급, 0.2%(46명)가 제적 대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처럼 심각한 상황조차 거대 정치 뉴스 속에 묻히고 있다. 그렇게 시작도, 끝도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은 휩쓸렸다. 자의든 타의든, 이제는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 국면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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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싱크홀, 땅 밑에서 울린 질문들 독일의 한 대형 유튜버는 2060년이면 한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그 원인으로 저출생을 지목했다. 충격적인 발언이지만, 낯설지 않다. 이미 도처에 암울한 전망이 넘쳐난다.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만끽할 여유도 없다.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시기다. 법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 집단의 무책임한 대범함(?)이 또 다른 불안을 초래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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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정치적 비겁함, 그 병리적 현상 2024년 12월3일 친위쿠데타 이후 내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질타받는 이들은 오히려 남을 향해 ‘내란을 선동’한다고 공개적으로 대응한다. 가해자가 갑작스레 피해자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떠오르는 단어는 비겁함뿐이다. 비겁함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병적인 현상이며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을 좀먹는 만성적 질환이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며 마치 사회적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정치인, 행정가들이 보여주는 비겁함은 단순한 나약함이나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일종의 병적인 상태이다. 이러한 비겁함이 도를 넘어선 현상을 마주할 때 시민들은 극심한 도덕적 충격과 좌절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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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그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일 수 없다 2025년 1월30일, 워싱턴 인근 공항에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와 미 육군 헬리콥터가 충돌해 67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이 충격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들었다. 그는 사고 직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전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이 항공 안전을 저해했다고 비판했다. 다양성을 우선시해 부적격한 인력이 채용되었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곧장 정확한 사고 원인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발언한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의 답변은 “Because I have common sense(나는 상식을 지녔기 때문이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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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거센 불길 속 지향해야 할 수평선 새해, 어떤 불길이 진짜이고, 어떤 불길이 가상인지 혼란스럽다. 1월6일부터 새빨간 불길로 뒤덮인 캘리포니아의 처참한 모습은 마치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한편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2번째 취임식을 앞두고 성대한 불꽃놀이 행사가 그의 버지니아주 골프클럽에서 진행됐다. 하늘을 수놓은 불꽃들을 바라보는 트럼프 부부의 모습은 4년 전인 2021년 1월7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을 난입하며 폭력시위를 자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