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얼마 전 ‘챗GPT와 노동’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현장에는 콜센터 상담사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인공지능(AI)이란 먼 미래가 아니었다. 이미 통신사 콜센터(KT고객센터의 AI챗봇, 보이스봇 등)에서 시작된 AI 도입은 최근 금융업계로도 확산(KB증권 챗봇, 우리카드 AI음성봇 서비스 등)된 상황이다.

2018년 LG경제연구원의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에서 AI 도입 이후 자동화로 대체될 확률(99%)이 가장 높은 직군은 바로 콜센터 상담사였다.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 광범위한 일자리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같은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최근의 언론 소식만 본다면, 이런 걱정이 기우인 듯 느껴진다. 소위 “일자리 뺏는다”라던 AI상담원이 오히려 콜센터 상담사의 퇴직률을 줄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KT고객센터의 경우 2021년 AI기반 음성 상담을 도입한 이래 퇴직률이 30%(2.6%에서 1.8%)나 감소했다고 한다. AI서비스로 단순·반복 상담의 짐을 덜게 된 것은 물론, 고객과의 대화를 듣고 필요한 답변을 추천해주는 도우미 역할까지 톡톡히 수행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모든 콜센터가 위 사례와 같다면 AI상담원의 출현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추석이 끝나고 국민은행·하나은행·현대해상 콜센터 노동조합은 사상 첫 공동파업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휴게시간 보장, 임금 정상화, 직접고용 등’ 안타깝게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AI서비스 도입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우선, 다른 고객센터에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던 AI챗봇이 현재는 은행 영업점 직원만 사용할 수 있고, 콜센터 상담사는 시범운영 기간 이후 자격이 박탈됐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AI음성서비스 개발을 위해 상담사의 실제 고객 응대 내용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STT/TA(STT·Speech To Text·음성인식기술/TA·Text Analysis·텍스트 분석)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사의 실시간 통화 내용을 기록 및 분석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상담 품질까지 평가하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르는 AI의 교육에 상담사 개개인이 수년간 경험을 통해 습득한 기술을 어떤 대가도 없이 빼앗는 것이었다.

나아가 콜센터 업체는 해당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할수록 월말 평점에 가산점을 반영하면서 상담사 간 경쟁까지 유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AI 도입 후 가장 먼저 실직될 위험에 처한 한국 상담사의 현실이다.

2017년 1월 독일 정부는 ‘노동 4.0 백서’를 발표했다. 독일 정부가 백서 제작을 위해 시민들에게 던졌던 질문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였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AI의 도입이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내 기억 속 정부는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을 외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 국민 인공지능 일상화’를 천명했을 뿐이다.

<AI 지도책>의 저자 케이트 크로퍼드는 AI에 대한 이 같은 주된 담론들이 마치 ‘주술적’ 믿음과 같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정부/기관/기업들이 혹시 ‘전략적 기억상실증’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까지 제기한다. 크로퍼드는 그동안의 발달과정을 돌이켜 볼 때 AI는 전혀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은 기술이었으며,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과 차별을 악화시킬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렇지만 한국은 상실할 부정적 기억조차 없다는 듯 AI 찬양 일변도의 세상이다.

우리는 AI시대를 앞두고 무엇을 함께 논의해야 할까. 에든버러 대학 섀넌 발러 철학 교수는 20세기 자동화에 따른 노동자의 ‘기술적 탈숙련화’ 현상과 유사하게 디지털 사회는 ‘도덕적 탈숙련화(moral deskilling)’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해 주는 사회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도덕적 기술이란 정말로 쓸모없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만 편하다면, 디지털 플랫폼 너머 누구의 희생이 있든 상관하지 않는 사회가 정녕 우리가 꿈꾸는 미래라 부를 수 있을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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