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정답은 좋은 삶을 보장하는가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1월은 온갖 시험의 연속이다. 중심에는 당연히 대학입학이 차지하고 있다. 올해는 1996년 이후 역대 최대로 n수생 비율(35.3%)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재직 중인 대학의 신입생 중에도 수능 당일 결석이 평소보다 많았다. 수능시험 이후 모든 대학에서 일제히 다양한 수시모집을 시작했다. 나 역시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 수시모집 전형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학교 관계자분들은 10여분의 면접 시간이 한 학생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모두가 크고 작은 틈을 메우느라 바빴다. 11월은 그렇게 날씨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통과의례의 절기다.

장애인 면접 장소에 참여한 경험은 특별했다. 여러 학생을 마주하며 그들의 정성스러운 답변 속에서 이들이 살아온 삶을 엿보고자 했다. 절실한 떨림이 느껴질 때마다 모두에게 입학의 기회를 줄 수 없음에 조금씩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희망 고문이 아니길 바랐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 사회에서 왜 대학입학이 희망(혹은 고문)이 되어버렸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11월 각종 시험은 ‘정답’을 맞히길 요구하지만, 과연 그것이 ‘좋은 삶’을 보장하는 것일까? 좋은 삶에 정답이 있을 수 없겠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좋은 시험성적이 좋은 삶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신입생들 사이에 ‘반수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통념의 확산이 그 증거가 아닐까.

문제는 그것이 필수조건을 넘어 충분조건으로 여겨질 것인가이다. 수능 한 번으로 미래가 결정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면, 생존을 위해 시험 과정에서 그 어떤 불이익과 손해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자신이 원활하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과정에 어떤 ‘배리어’(barrier·장벽)도 참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문제는 그 배리어에 도덕적 선택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몇년 전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 사이에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인 ‘애더럴’(Adderall) 처방이 10월에 2배가량 증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소위 ‘공부 잘하는 약’의 오남용 문제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Take Your Pills>(2018년 작)에는 미국 대학생들의 무분별한 애더럴 오남용 실태가 잘 드러나 있다. 한 대학 2학년생은 이렇게 반문한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고 약을 먹는 게 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야?” 그에게 이러한 통념을 비판하는 성인군자의 지적은 또 다른 배리어일 뿐이다.

최신 과학기술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체 능력을 ‘증강’하는 것은 이제 장애인만의 트랜스휴머니즘적 꿈이 아닌 듯하다. 아니, 그렇지 않은 삶 자체가 ‘잘못된 삶’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은, 아니 현대인은 무엇이 ‘좋은 삶’인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배우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 민속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조지 데브뢰는 정상을 비정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규정하고 난 후 규정될 수 있는 “잔여적 범주”라 지적한다. 이 말처럼 시험에서는 정답을 먼저 배우지만, 삶에서는 오답을 먼저 배우는 것은 아닐까.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현대인에게 “도덕적 경력”이 중요함을 지적한다. 사회가 옳지 못한 것으로 낙인찍은 특징을 만들지 않기 위해 혹은 들키지 않기 위해 꾸준히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1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은 성인을 준비하는 첫 번째 가장 큰 도덕적 경력일 테다. 최근 입학 시험장에서는 아날로그 시계만 허락된다. 시간만 나오는 전자시계도 안 되며, 소음방지 귀마개도 꼭 눌러보고 검사해야 한다. 그 볼품없는 전자시계 속에도, 스펀지 같은 귀마개 안에도 문자와 음성을 전달할 수 있는 무선 장치가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 누구의 도덕적 경력을 방해할 누군가의 반칙은 제거해야 마땅한 배리어인 셈이다.

그렇지만, 사회는 좋은 성적 이전에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에 얼마나 철저히 대비해 왔는가. 미국 인류학자 셰릴 매팅리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일종의 ‘도덕 실험실’이라 비유한다. 시험 한 번으로 도덕적 오명을 얻을 잠재적 불명예자인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는 진심 거대한 도덕 실험실일 테다. 그들은 오답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기에 정답만을 좇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똑같은 실험만을 반복해야 할 것인가. 알지 않는가. 좋은 삶에 오답이란 없다는 것을.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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