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약’을 선택해야 한다면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우리가 먹는 약의 효과에 있어 ‘진실’은 무엇일까. 흔히 약물이 가지고 있는 화학적 성분이 몸 안에서 어떤 반응을 유발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진실의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의 영역에서 바라본 약의 ‘총 효과’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영국의 의료인류학자 세실 헬만은 약이 약물 자체의 효과를 포함한 미시적 차원을 넘어 그 약물에 대한 도덕적, 문화적 가치들과 사회경제적 분위기, 그리고 그 약을 사용하는 사회집단과 생산 및 판매하는 경제주체들까지 포함한 거시적 차원까지 포함해 그 효능이 발휘된다고 설명한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 예가 바로 ‘위약’ 혹은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 부르는 것이다. ‘실재하는 약이 없이 나타나는 약의 총 효과’가 바로 위약효과이며, 신약의 효과를 공정하게 실험할 때 비교를 위해 많이 활용되고는 한다. 위약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 그것은 바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 생리학적, 심리학적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노시보(nocebo)’ 현상도 존재한다. 즉, 실재하는 약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 신념 때문에 그 효과가 상쇄되는 현상이다. 인류학자 로버트 한은 이를 두고 “믿음은 우리를 아프게도 할 수 있고 건강하게도 만들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약의 효과와 관련된 플라시보 및 노시보 현상은 오로지 약에만 국한된 것인지 반문해 본다. 화학적으로 어떠한 효과도 없는 약을 효과가 있다고 믿는 순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효과가 실제로 있는 약임에도 믿지 않으면 가짜 약처럼 그 효과가 소실될 수도 있다.

만일 이 ‘약’의 자리에 우리가 ‘진실’을 넣는다면 어떠할까. 지금 우리는 이 ‘진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지 모른다. 수년 전부터 논쟁이 되어온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진실’ 공방은 이제 불가피한 것을 넘어 특정 사안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데 있어 진실이 지닌 힘을 잃게 만들고 있다. 인류학자 질리언 테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에 대해 그가 진실을 말해서가 아니라 거짓이라도 지지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라 평가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진실의 ‘총 효과’를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가.

다시 약의 효과로 돌아가 보자. 마고 조이스는 1960년대 영국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영국의 주치의가 처방한 약 ‘5개 중 하나’는 상징적인 위약 기능이 있고, 최소한 매년 50만명이 상징에 의존하는 환자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어떤 약이든 ‘2년 이상’ 복용하게 되면, 환자에게 그 약은 커다란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유명 브랜드의 진통제가 더 큰 효과를 나타냈고, 심지어 약의 크기, 맛, 감촉, 모양도 약 효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진실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듯하다. 진실을 누가,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한 믿음의 방향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잘못된 메신저를 통해 2년 이상 왜곡된 진실을 소비하고 있었다면, 그 이후로는 그 메시지 안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더라도 (혹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더라도) 진실이라 믿고 있지는 않을까?

헬만은 약의 효과는 개인의 심리적 의존 및 육체적 중독과 함께 사회문화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개인은 사회적 가치와 기대치에 기반하여 약의 효과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진실’과 관련하여 가짜를 진짜로 믿는 플라시보 효과, 진짜를 가짜라고 믿는 노시보 효과 중 어떤 것을 더 요구하고 있을까. 이것은 ‘무엇에 대한’ 진실이냐가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될지 모른다. 최근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의 “진실에 투표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있다. 만일 이태원 참사에 관한 이야기가 진실의 무대 위에 올라갔을 때 과연 시민들은 어떤 효과에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분명한 것은 그 결과가 시민 당사자가 그동안(조이스의 의견을 따르자면, 2년여 동안) 어떤 효과에 더욱 의존하며 살아왔는지가 중요할지 모른다. 즉, 진실의 향방은 과거의 자신이 선택한 삶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사회가 ‘병’ 들어 있고, 이것을 치유하기 위한 진실의 ‘약’을 선택할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어떤 약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여러분의 손에 달린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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