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것은 바퀴벌레가 아니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엉뚱한 질문 같지만 던져본다. 바퀴벌레에 대한 역겨움은 본능적인 것인가 학습된 것인가. 갑론을박하며 결론이 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 질문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바퀴벌레는 역겹다’라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바퀴벌레가 역겨울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아마도 역겨움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각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영국 페미니스트 연구자 사라 아메드의 <감정의 문화정치>가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는 특정한 대상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책에는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흑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나오는 일화이다. 로드가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탔을 때 옆에 앉은 여성이 로드의 옷에 자신의 옷이 닿을까 신경질적으로 옷을 잡아챘다. 로드는 그와 여성 사이에 ‘바퀴벌레’와 같이 끔찍한 게 있다고 순간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의 ‘크게 뜬 눈’ ‘벌름거리는 코’를 목격하며 이내 알아챘다. 그가 바로 바퀴벌레였다는 것을 말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며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문구들이 자주 목격된다. OO보다는 국민을 먼저 챙겨야 한다, OOO의 민낯이 드러난다는 식의 표어들이 다시금 온·오프라인에서 굵은 글씨로 등장한다. 아메드의 지적처럼 모든 대상과 기호에는 특정한 방향성을 지닌 감정이 접착제처럼 끈적하게 붙어 있다. 그것과 마주칠 때 몸은 그 감정 접착제의 방향으로 이끌린다. 그런데 그 강도가 즉각적이고 강할수록(마치 바퀴벌레와 마주쳤을 때처럼) ‘감정의 역사성’이 소실될 수 있다. 즉, 구체적 역사적 흐름에 의해 OO에 들어갈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방향성이 정해졌다는 사실 말이다.

지난 1월30일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결국 대통령에 의해 거부권이 행사되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유가족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지원대책안까지 발표했다는 점이다. 유가족협의회는 2월3일 “특별법 거부권, 거부한다”를 외치며 집회와 행진을 이어갔다. 그 현장에서 어느 유가족은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특별법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저희를 댓글부대의 먹잇감으로 내던졌다”고 항변했다. 정부는 그간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방지대책을 마련하며, 유가족과 피해자를 지원해왔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제는 ‘피해자 지원금, 의료·간병비 확대’를 앞장서 발표했다. 이 모든 말들에는 특정한 방향으로 감정을 이끄는 접착제가 묻어 있다. 그 접착제에 이끌린 익명의 시민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패륜적 발언들로 유가족과 희생자를 참담하게 만든 것이다.

아메드는 감정은 경제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이를 ‘정동경제’라 칭한다. 즉, 특정한 감정이 대상이나 기호에 실제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즉, 바퀴벌레가 태초에 역겨운 존재가 아니라) 여러 대상과 기호 사이에서 순환하면서 마치 하나의 상품처럼 그 가치가 생산된다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왔다’ ‘지원금 확대하겠다’라는 말들은 댓글 속에서 순환되면서 어느새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예, 불순세력·불온집단 등)이 부풀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감정 접착제를 통한 문화정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유가족과 같은 피해자들이 왜 그처럼 항변하며 집회를 여는지 그 ‘역사성’을 삭제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원래부터 불순한 집단이라는 혐오의 감정이름표가 붙어버린다. 아메드의 표현처럼, 이들은 바퀴벌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감정을 통한 문화정치의 또 다른 무서움이다. 즉, 피해자를 어느 순간 사회에 해로움을 주는 가해자로 전환시켜 버린다는 점 말이다. 그렇게 양지로 나오지를 못하고 음지에서 침묵하며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겨운 것은 바퀴벌레가 아니다. 바퀴벌레를 역겨운 존재로 만들어간 오랜 역사 그 자체이다. 혐오의 정치가 일상까지 파고든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아메드의 지적처럼, 우리는 특정한 감정을 대상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간주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망각된 오랜 역사 속에는 부정적 감정뿐만 아니라 ‘경이로운’ 긍정적 감정들도 채워져 있다.

이제 선거철을 앞두고 감정 접착제가 붙은 수많은 구호들이 난무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환멸과 외면보다는 그 속에 담긴 부정적 감정의 오래된 계보를 찾으려 하는 노력일 테다. 그리고 긍정적 감정들을 만들어낼 우연한 마주침과 그 결과 도래할 경이로운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며 행동하는 것일 게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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