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제민
논설위원
사회부 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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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이민청은 필요…이번 설립안은 껍데기만 있고 내용은 없다” 결혼할 남성에 비해 여성이 적고, 작업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더 필요하고, 학교에 들어갈 학생이 줄어든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은 어디선가 새로운 사람들이 와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사람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집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할 용의가 있다. 이렇게 이주의 수요와 공급이 생겨난다.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국가는 그들의 이동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에 적응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것들이 이민 정책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전통적 이민 수용 국가가 아닌 한국은 체계적인 이민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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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트럼프의 위험한 동맹관 ‘복지의 여왕’은 로널드 레이건이 1976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시절 빈곤층이 복지 제도를 악용한다고 공격하며 악명을 떨친 말이다. 비난의 근거가 된 사례 속 흑인 여성이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표현은 사람들 뇌리에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설 것이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국제관계 복지의 여왕’으로 부른다. 미국은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에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불개입주의가 강화됐다.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는 물론이고 조 바이든 집권기에도 동맹에 대한 이해타산적 접근이 유지됐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지난 9일 “나토 회원국들이 동맹 비용을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게 독려할 것”이라고 한 말은 차원이 다르다.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 대선 후보가 적국에 동맹국 공격을 부추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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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가해자가 된 홀로코스트 피해자 학살(虐殺)은 ‘호랑이가 물어뜯듯이 가혹하게 죽이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도살(屠殺·참혹하게 마구 죽임), 잔살(殘殺·잔인하게 죽임) 등 비슷한 한자어들과 함께 죽이는 방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대학살(massacre), 집단학살(genocide),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집단학살(holocaust) 등 학살과 관련해 다양한 어휘가 발달해 있다. 주로 규모가 강조되는 것 같다. 그것은 상대의 씨를 말려버릴 듯한 기세로 대규모로 죽였던 역사와 관계있을 것이다. 이른바 ‘문명화 과정’ 이후, 학살 대상은 인종적 소수자, 동식물, 자연환경 등으로 옮겨갔지만 근본적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미국 건국 이면에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학살이 있었고, 미국의 세계 제패 과정에 필리핀에서의 학살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말 독일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그 정점이었다. 이대론 안 된다는 공감대 속에 1948년 유엔 집단학살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이 만들어졌다. 그 뒤로 국가가 주도한 집단학살은 냉전의 변방에서 일어났다. 1947~1954년 제주도, 1965~1966년 인도네시아, 1975~1979년 캄보디아, 1994년 르완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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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거꾸로 가는 ‘산림청 숲 가꾸기’ 지난해 말 KBS가 방영한 <시사기획 창>의 ‘녹색 카르텔’ 편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근래 들어 더 빈번해진 대형 산불에는 단지 기후변화만이 아니라 ‘산불이 돈이 되는 시스템’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산불 이후 산림 복구를 이유로 멀쩡한 활엽수까지 집단 벌목해 큰 이익을 남기고, 그 자리에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를 심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건설되는 임도가 대규모 산사태로 이어지는 일도 심각하다. 이런 일이 별다른 제어 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최근 5년간 산림청의 관련 계약 전수조사 결과 확인된 1조원이 넘는 수의계약 규모를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수주 업체들은 산림청 퇴직 관료들이 기관장으로 가는 산림조합과 산림청 산하 특수법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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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 “미국, 한반도 긴장 감소시키고 위험 줄여나갈 것”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67)는 “미국은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한반도 긴장과 충돌 위험성을 줄여나갈 필요성을 밝혔다. 골드버그 대사는 지난 18일 서울 정동 미국대사 관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통일 포기, 전쟁 불사 발언에 대해 “상당히 불행하고 도발적이며 위협적인 발언”이라며 “김 위원장이 통일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남한을 적대국가로 규정한 것은 상당히 슬프고 반역사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핵무기 없이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라는 목표를 원한다”며 “하지만 그것은 북한이 한국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도발적 언행에 강한 성명을 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미국은 주한미군, 정전협정에 따른 유엔사령부 지휘 책임을 통해 긴장을 감소시키고 위험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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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전한’ 트럼프 현상 “Love Trumps Hate.” 2016년 미국 대선 현장에서 이 구호를 접하고 잠시 멈춰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trump’는 명사가 아니라 ‘이기다’라는 동사로 쓰였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이주민·여성 혐오 조장과 대비돼 꽤 근사한 구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해 대선에서 ‘증오가 사랑을 이겼다’. 8년이 흘러, 트럼프는 다시 아이오와주 공화당 경선에서부터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그의 대선 가도에 90가지 이상 법 위반 혐의가 장애물로 버티고 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는 ‘패배주의’가 팽배하다. 8년 전 언론들이 결과 예측에 실패한 악몽 때문일까. 하지만 솔직히, 화면으로 본 트럼프는 예전같지 않다. 8년 새 얼굴 탄력이 줄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재대결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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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미군정, 선별한 우익에 벼락권력 불하…한국 민의와 어긋났다” 내년이면 해방 80년이 된다.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바라볼 때도 됐지만, 해방 직후 역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기본적 질문들이 명쾌하게 답변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가령 패전국이 아니었던 조선은 왜 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되어야 했을까, 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식민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넘어갈 수 있었을까 같은 것들이다.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58)는 최근 <1945년 해방 직후사>에서 그 답의 일단을 제시했다. 그는 해방 직후 미군정하에 이뤄진 “중대한 결정”이 현대 한국의 원형(原型)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1945년 8월부터 그해 말까지 미군정이 친미·반공·기독교·서북 출신·연희전문학교 등의 기준으로 선별한 우익 인사들에게 불하(拂下)한 ‘벼락 권력’이 핵심이다. 권력이 대의성이나 합법성, 민주주의 원칙이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불하됐고, 이에 따라 구축된 미군정-이승만-한민당 동맹이 나라의 앞날을 규정했다는 것이다. 신생 국가의 출발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 나라의 향후 80년을 좌우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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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엡스타인 명단 미국 정·관·재계에서 ‘엡스타인 명단’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금융투기업자로 미국 주류사회 마당발이었던 제프리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 조직을 운용했고, 2019년 감옥에서 자살했다. 이 사건으로 처벌된 사람은 엡스타인의 조력자 기슬레인 맥스웰이 유일하다. 지난달 뉴욕 연방법원 로레타 프레스카 판사는 한 피해자가 맥스웰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언급된 관련자 실명을 모두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앤드루 영국 왕자, 사업가 빌 게이츠, 노엄 촘스키 교수 등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상태다. 명단이 약 150명에 달할 것이라고 하니 큰 파장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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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김정은의 ‘통일 불가’ 신년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남한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공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3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역대 최악의 남북관계, 불안한 2024년 한반도 정세를 예고한 것이어서 유감스럽다. 김 위원장 신년사는 올해도 연말 당 전원회의 결과 발표로 갈음한 듯하다. 주목할 점은 그가 선대 유훈인 통일 정책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구실로 남측이 정권에 관계없이 흡수 통일을 추구해왔고 헌법의 영토 조항을 유지하는 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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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동료 시민 미국 대통령들이 연설에서 즐겨 쓰는 ‘나의 동료 시민들(my fellow citizens)’은 한국에 건너오면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번역됐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도, 존 F 케네디의 연설도 그랬다. 버락 오바마에 와서야 이따금 ‘동료 시민’이 함께 쓰였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들 입에서는 동료 시민이라는 말이 잘 안 나온다. 대통령이 그 국가 내에서 가장 윗사람이고 왕과 같은 존재라는 인식, 그 공동체 성원들을 자율적 주체로 보기보다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시민운동의 맥락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가리킬 때 시민으로 부르기를 꺼렸다. 은연중에 이 공동체를 그저 국가와 그에 종속된 구성원으로 보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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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주노동자들의 ‘존재선언’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제는 나를 죽게 해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에 수록된 러메스 사연의 시 ‘고용’)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의 이 시구절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2003년 겨울 이 땅에 유난히 ‘외국인 전태일’이 많았다. ‘노예노동’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농노노동’ 고용허가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주하다 숨지고 자살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 선언을 했다. 2003년 11월15일부터 380일 동안 명동성당 들머리는 그렇게 해방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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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집 앞 눈은 내가 치워야죠…농촌에 산업폐기물 떠넘기는 건 차별” 시골길을 질주하는 대형 덤프트럭, 소각로 연기에 묻어 오는 매캐한 냄새, 여기에 10분 간격으로 귀를 찢는 전투기 굉음까지. 이곳이 과연 아이를 키우고, 어르신들이 살 만한 곳일까. 충북 청주시 북이면의 첫인상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반경 3㎞ 내에 공군비행장이 있고, 산업폐기물 소각장이 3개나 몰려 있다. 20년 전만 해도 “그래도 살 만한,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이 마을은 어느새 갈가리 나눠졌고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하며 살기 쉽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 6500명이던 면 인구는 4500명으로 줄었다. 인근 증평·진천 장터에서 북이면 작물이라고 하면 잘 팔리지도 않는다. 주민들 모르게 야금야금 농지를 먹어 들어온 소각장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