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제민
사회에디터
사회부 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최신기사
-
에디터의 창 병든 사회와 지구에서 건강한 삶은 불가능하다 밭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고단한 몸을 뉘였다가, 요양원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을 맞다가, 어디론가 이동하던 중 자동차 안에서… 난데없이 들이닥친 뜨거운 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느꼈을 고통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룻밤 사이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 산골에서 영덕 바닷가까지 100㎞ 가까이 이동한 산불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화를 당한 사람이 많았다.
-
에디터의 창 아이들을 실험용 쥐로 만드는 교육당국의 무책임함 3월 한 초등학교 교실. 교사는 각자 지급된 태블릿 PC로 학생들에게 영어 학습을 시켰다. 아이들은 각자 아는 만큼 자기 속도에 맞게 답을 누르고 기기가 알려주는 점수에 기뻐하거나 실망했다. 한 아이는 스마트폰 게임하듯 수업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다음 수업은 자신의 수준에 맞게 난이도가 조절된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 학급의 풍경이다.
-
여적 남태령을 넘어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의 자식이었다. 부모가 농민이 아니어도 조부모가 농민이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농촌·농민과의 연결이 옅어졌거나 끊어졌다. 밥과 채소를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식재료가 농촌에서 온다는 실감을 잃어버린 이들이 많다. 경향신문이 지난 한 달간 ‘남태령을 넘어’ 기획 기사를 8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 기사들은 20~30대 여성 기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농촌에서 한달살이 등 현장 취재를 통해 기록한, 포괄적이고 사실적인 2025년 농촌 보고서이다.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더 심각하며, 의료와 교육 같은 공공재를 누리기도 더 힘들어졌다. 농민들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농산물값 폭등·폭락이 심해지며 유통업자에게 주도권을 점점 더 내줬으며, 외국인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도시민의 안락한 삶을 위해 송전선과 쓰레기 매립장·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을 떠안으며 농촌 환경과 공동체가 파괴됐다.
-
여적 트럼프의 허황된 “가자지구 차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 등 이웃 나라로 “재배치”하고, 미국이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파괴된 잿더미”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TV쇼가 아니라 지난 4일 2기 행정부 첫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차지할 법적 권한은 없다. 무력으로 차지하겠다면 미군 주둔이 필요한데 중동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이웃국이 200만 팔레스타인인을 수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가 봐도 허황된 발언이 나오는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씩 웃으며 트럼프를 바라봤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싹 다 정리해버리겠다는 건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조차 차마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꿈이니까.
-
여적 극우 방화벽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요즘 잘나가는 민주주의 연구자들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공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 판별법으로 극단적 정치세력, 그리고 폭력과 선을 긋는지를 보면 된다고 했다. 2020년 1월6일 미국 연방의회 건물 난입 사건과 선을 긋지 못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한 공화당 지도부를 사이비 민주주의자 사례로 들었다.
-
여적 트럼프 취임식 ‘극우 사절단’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 정치는 국제 연대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한 국가나 민족의 경계 안에 있는 특정 인종 등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존재를 배제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념이 협력을 위해 때론 양보도 해야 하는 국제 연대로 나아간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도 극우 이념은 대체로 그 나라 안의 움직임으로 그쳤다.
-
여적 트럼프의 영토팽창주의 한 나라의 영토를 빼앗는 행위는 국제법으로 금지돼 있다. 시작은 1648년 유럽의 30년 종교전쟁 후 체결된 웨스트팔리아 조약이다. 주권국가를 유일한 행위자로 인정한 이 조약의 토대 위에 근대 국제질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자본주의 산업화가 진행되며 근대 국민국가는 영토 확장이라는 원시적 욕구를 향해 질주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지배한 우승열패·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영국·독일·프랑스가 해외 영토 확장에 나선 결과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잿더미였다. 조선 역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했다. 그러니 유엔헌장의 영토 불가침 조항은 인류가 3세기에 걸쳐 겪은 희생 위에 만든 결과물이다.
-
경향의 눈 윤석열 체포가 출발점이다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반복하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여겨진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12·3 친위쿠데타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으로 정치학자들이 연구할 만한 과제이다. 한 달여 지켜본 입장에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법 제도와 정치 환경의 문제 이전에 망상에 사로잡힌 지도자 개인의 독특한 성격 탓이 크다.
-
여적 경호와 권력 경호는 권력이나 지위의 상징이다. 사설 경호든 공적 경호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보호막이다. 대통령 경호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전문적이다. 대통령경호처는 법률에 따라 대통령과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국가기관이다. 직원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일하기 때문에 직급에 비해 좋은 처우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경호처는 지극히 기능적 업무를 수행하기에 정치 과정에서 독립적 변수가 아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을 아우라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그 권력을 더 위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권력에 근접해 있어 스스로 권력화하기도 한다. 군부독재 시절인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경호실장 차지철과 장세동, 12·3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용현이 그랬다. 김용현은 경호처장 시절 대통령 경호구역 내 군경 지휘권을 경호처가 갖겠다는 초법적 시행령을 입법 시도해 군과 경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호처의 위력이 일반 시민들을 짓누르기도 한다. 지난해 2월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사례가 대표적이다.
-
여적 희망의 을사년 ‘을씨년스럽다’는 뭔가 어감부터 스산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도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이다. ‘을사(乙巳)년’에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그 뒤로 사람들이 ‘을사년스럽다’고 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은 결국 민중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좋지 않은 일이 외침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든, 위정자의 실정으로 벌어졌든 그 고통과 치욕은 대부분 민중의 몫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여적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24~2024)이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2011년 4월, 세계 원로들의 모임 ‘디엘더스’의 대표단장으로서였다. 평양에 이어 서울을 찾은 그는 남북한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 지도자로부터 모두 외면받았다. 카터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번에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 정부 정책에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권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권리인데,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북한에 갈 식량 지원을 억제하고 있다. 이는 군사·정치적으로 볼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본다.”
-
여적 희년 희년(禧年)은 ‘복된 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이사야 61장 1-2절을 인용하며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7년마다 가진 안식년을 일곱 번 맞은 뒤 50년째 되는 해에는 나팔을 크게 불어 희년을 선포했다고 한다. 희년에는 “모든 노예들이 자동으로 해방되었으며, 모든 빚이 조건 없이 탕감되었고, 모든 땅이 값 없이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졌다”(장진광 <희년과 복음>). 그 의미를 새긴다면 희년은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해방의 해’로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