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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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재앙…‘가자의 비극’ 침묵하지 말기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7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가자지구에서 민간인과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뉴스가 됐다. 전쟁이 더욱 참혹해지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에 모두가 익숙해지는 이때부터다. 국제사회의 도움 외에 기댈 곳 없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쳐놓은 ‘탱크의 장막’ 안에 철저히 고립돼 있다. 그 안에 갇혀 완전히 잊힐까 두려운 그들에게 지금 유일한 희망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자지구 안에 들어간 국제 구호 활동가의 존재일 것이다. 구호 활동가들은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외부에 전하는 ‘증언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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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어린이 조준사격 대구경 소총은 직경 10㎜ 이상의 탄환을 사용하는 총기로, 보통 원거리에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사용된다. 원거리 동물을 사격할 때는 한 발에 명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 입은 동물이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구호활동을 한 캐나다 의사 포지아 알비는 중환자실에 실려온 7~8세 어린이 두 명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머리에 정확히 한 발씩 대구경 총알을 명중당한 상태였다. 이는 누군가 아이들을 조준해 원거리에서 저격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대구경 총알은 연약한 아이들의 신체에 더 큰 충격파를 준다. 혈관·신경·뼈·조직 등 모든 것을 파괴하고, 즉사하지 않더라도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일이 아이들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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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산양 잡는 ‘ASF 울타리’ 2019년 9월 경기도 파주의 한 농장에서 어미돼지 5마리가 폐사했다.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었다. 방역당국은 마음이 급해졌다. ‘돼지 흑사병’이라 불리는 ASF의 치사율은 100%. 백신도 없어서 바이러스의 유입을 막는 것만이 최선의 방역이었다. 빨리 뭐라도 해야 했던 방역당국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착수했다. 야생멧돼지가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1831㎞. 2019년 11월부터 2021년까지 환경부가 경기도·강원도 일대에 친 ‘광역 울타리’는 길었다. 서울과 부산을 두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며, 휴전선 철책(238㎞)의 7배에 달한다. 투입된 세금만 1167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험한 산지에 울타리를 빈틈없이 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다른 야생동물의 이동경로만 차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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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쟁 먹고 자라는 IS 이언 매캐리 미 국무부 대테러국 특사가 지난 21일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에서 ‘이슬람국가(IS) 궤멸’ 5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그는 “2019년 3월23일 연합군은 IS의 마지막 영토를 해방했으며, 이는 IS가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공연장에서 IS 내 가장 큰 분파인 호라산(IS-K)의 소행으로 알려진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 130여명의 목숨이 희생된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한때 시리아의 3분의 1, 이라크의 40%를 통제하며 위세가 대단했던 IS가 패퇴한 건 미국 주도 연합군과 이란·러시아가 ‘IS 격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각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IS의 부활은 각자 이익을 위해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는 지금의 갈라진 세계 지형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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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미발표 유작 “친애하는 막스. 나의 마지막 부탁일세. 내가 남긴 모든 공책, 원고는 읽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불태워주게.” 마흔 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소설가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브로트는 그 유언장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카프카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있던 브로트는 그에게 늘 글을 발표하라고 독려했지만, 내성적인 카프카는 항상 자신의 글을 의심하며 부끄러워했다. 브로트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카프카가 “낙서”라고 불렀던 유작들을 모두 출간한 것이다. 그 덕에 세상 빛을 보게 된 작품이 <성> <심판> <아메리카> 같은 초현실주의 걸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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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자영업자로 여기는 의사도, 영리화로만 해법 찾는 정부도 틀렸다” 정부와 의료계의 의사 증원 대치가 4주째를 맞았지만, 해결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외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전공의·전임의를 넘어 의대 교수들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예고한 대로, 18일부터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계 상황의 비상진료체계마저 붕괴되면, 의료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의사 대 정부’의 강 대 강 대치에 “둘 다 틀렸다”고 말하는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을 지난 7일 만났다. 그는 어디까지 악화될지 알 수 없으나 의사와 정부가 환자를 볼모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 이 사회가 “이미 지옥”이라고 했다. 이 국장은 “의사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비급여 진료로 큰 수익을 내는 개원의를 선망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영업자’로 여기고 있는 의사들도, ‘2000명’이라는 숫자만 내건 채 영리화된 의료체계의 문제를 다시 영리화로 해결하려는 윤석열 정부도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사에게서도, 정부에서도 공공의료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숫자 싸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진짜 대안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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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아카데미 물들인 ‘빨간 배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단순히 영화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한 모든 것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레드카펫 위의 패션쇼장이기도 하다. 10일(현지시간)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빨간 배지였다. <가여운 것들>에 출연한 배우 라미 유세프, <바비> 주제곡을 부른 가수 빌리 아일리시,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의 가슴팍에 하나같이 동전만 한 크기의 그 배지가 달렸다. 빨간 배지엔 검은 하트를 품고 있는 손바닥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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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일요일의 막내딸 “전국~노래자랑!” 매주 일요일 낮 12시10분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 소리로 우리는 주말 오후의 한가로움을 확인했다. ‘일요일의 남자’가 ‘일요일의 막내딸’로 바뀌었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도대체가 경쟁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참가자들의 노래와 춤은 지난 한 주의 팽팽함을 이완해줬고, 새 MC는 곧 다시 오랜 익숙함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예상은 빗나갔다. 박민 KBS 사장 취임 후 잇따르는 프로그램 폐지와 진행자 교체의 칼날을 <전국노래자랑>마저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김신영은 KBS로부터 돌연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불명예 하차하게 됐다. 고 송해 후임으로 발탁돼 전국을 누빈 지 불과 1년6개월 만이다. 후임은 이미 개그맨 남희석으로 결정됐다. 하루아침에 MC가 잘려나가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속도의 시대에 느림의 콘텐츠로 사랑받아온 이 장수 프로그램의 전통도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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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죽음의 단풍 한반도에 뿌리내린 모든 것이 이 땅의 주인이라면, 한민족보다 먼저 한반도에 터 잡은 소나무야말로 그러하다.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건 100만년 전이지만, 소나무는 최소 200만년 전부터 이 땅에 살고 있었다. 고조선의 건국과 조선의 멸망, 6·25의 비극을 모두 지켜본 소나무. 한반도 역사와 함께 숨 쉬고 애국가에도 나오는 그 소나무가 지금, 절멸 위기에 놓여 있다. 동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산이 단풍 든 것처럼 울긋불긋하다. 한번 걸리면 고사율이 100%인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잎이 붉게 타들어가는 ‘죽음의 단풍’이 든 것이다. 2007년과 2017년에 이어 7년 만에 재선충병 3차 대확산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절멸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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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치인의 신발 운동화는 젊은층에게는 패션이지만, 정치인에게는 소탈함과 친근감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공식 선거운동 출정식 날이면 정장 차림의 후보들이 하나같이 운동화를 신고 시장에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종종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자선 행사장 등에 모습을 드러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가끔 뉴발란스 스니커즈를 신고 순방에 나섰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운동화를 이용한 이미지메이킹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값비싼 취향의 명품 구두 애호가로 유명하다. 그가 즐겨 신는 신발은 구찌와 존롭(John Lobb)의 럭셔리 구두이며, 190㎝의 거구이면서도 더 크게 보이고 싶은 것인지 때로는 안창을 두껍게 깐 ‘엘리베이터 구두’를 신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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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당은 정당일 뿐이다 오는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미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다.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미국인에게 우리 정당이 지는 것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정책이 반영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인종, 사회적 지위와 도덕적 기준 등 자신의 모든 정체성이 그 ‘한 표’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에 승복 따위는 할 수 없다. 우리 정당의 패배는 곧 나의 실존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인 릴리아나 메이슨은 이를 두고 정당이 그 사람의 “메가 아이덴티티”, 즉 ‘거대 정체성’이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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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2월 CPI 3.4%…예상치 상회 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다고 미 노동부가 1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3.2%)를 웃도는 수치다. 전월 대비로는 0.3% 상승해 전문가 예상치(0.2%)를 역시 상회했다. 블룸버그는 “전기와 휘발유 모두 상승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오른 것이 CPI가 예상치를 뛰어넘은 주요 요인인 것 같다”면서 “전문가들은 휘발유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분석했다. 항공요금과 주택 가격 등도 모두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9% 올라 전문가 예상치(3.8%)를 웃돌았다. 전월 대비로는 0.3% 올라 전문가 예상치에 부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