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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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치인의 인증샷 2006년 3월 당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새만금 간척사업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한 인사가 고 전 총리에게 다가와 알은척을 했다. 이 인사는 사진사까지 대동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찍으려 했으나, 고 전 총리는 손사래를 쳤다. 고 전 총리 참모들에게 물으니, 이 인사는 그해 5·31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였다. 자신과 악수하는 사진이 선거용으로 이용될까봐 거부한 것이다. 사진을 찍었다면 그 출마 예정자는 전북이 연고지인 대권 주자 고건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선전했을 게 뻔했다. 정치인들은 유달리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고, 유력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를 만날 때는 인증샷을 남긴다. 모델처럼 우월한 기럭지를 가진 것도, 배우만큼 수려한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내가 이렇게 일을 많이 했다’고 과시하거나, 유력인사 지지를 받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성민 대통령실 정책조정기획관이 지난해 7월 방탄소년단(BTS)을 부산엑스포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행사에서 단체사진 촬영 뒤 BTS 뷔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올리며 사진을 찍은 것도 이런 경우다. 심지어 그는 방역수칙 위반 논란을 감수하고 홀로 마스크까지 벗었다. 잠깐 먹을 욕쯤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선거에 나서면 BTS와 찍은 사진을 사용하리라 지금도 생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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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윤정희, 영화를 살다 영화배우 윤정희씨(본명 손미자·1944~2023)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남정임·문희씨와 함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여성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인기를 얻었다. 한국 영화 황금기였던 1967년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2010년 <시>까지 45년 동안 약 30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전통적·순종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도도하고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고 신상옥 감독은 “파격적 캐릭터의 여주인공은 윤정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윤씨 역시 생전 인터뷰에서 “계산적인 것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연기를 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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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사람됨을 잃은 통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슬픔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하물며 남은 삶이 많은 자식이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겨진다.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백분의 일쯤은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어머니를 잃은 사람으로서 희생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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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세계 영향력 6위 흔히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통계가 매번 현실을 적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취업률이 역대 최고라고 하는데 주변의 백수는 늘어만 간다. 성과에 목마른 정부들이 질 나쁜 일자리를 취업률 통계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물가보다 체감물가가 늘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품목 선정이나 가중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본 경제학자 가도쿠라 다카시는 <통계센스>라는 저서에서 “숫자의 이면을 읽는 것은 현실의 이면을 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순위조사 전문매체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NWR)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가장 강력한(Most Powerful) 국가’(www.usnews.com/news/best-countries/rankings/power)에서 한국이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에 이어 6위에 올랐다. 프랑스(7위)·일본(8위)·아랍에미리트연합(9위)·이스라엘(10위)을 제쳤다. 전년도 조사에서는 일본이 6위, 한국이 8위였는데 순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경제적 영향력, 수출, 정치적 영향력, 국제동맹, 군사력, 지도자 등 6개 지표가 동원됐으며, 전 세계 1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4~7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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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공장 영화, 복붙 정권 그리고 식상한 칼럼 공장 영화라는 말이 있다. 전개와 결말이 비슷비슷한 할리우드 장르영화 등을 일컫는다. 고유의 색깔이나 주제의식이 없으니 자극적 내용과 물량공세로 뒤덮인다. 이런 영화들은 두번 세번 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공장 영화 감독이 떠올랐다. 운 좋게 입봉은 했지만, 경험도 역량도 부족하다. 사람이라도 잘 써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실패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로 주변을 채웠다. 집권 후엔 박근혜 정부 과오들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하며 ‘국정’ 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늘이 낸 사람’을 자처하지만 흥행 실패의 공식을 따라 하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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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통령의 신년회견 역대 대통령은 언론 접촉을 썩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설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때론 불편한 질문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토론을 불사하는 대통령도 있었지만, 다수는 말을 아꼈다.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비서실장이나 수석보좌관 등 참모들을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잦았고, 집권여당 대표의 입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장이 왜곡돼 전달되거나,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중요한 정치일정으로 간주됐다. 대통령의 국정 구상과 현안에 대한 생각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질문을 통해 민심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1968년 박정희 정부가 신년회견을 도입한 이후 역대 대통령이 이를 건너뛰는 일은 드물었다. 언론 접촉에 인색했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국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2017년을 빼곤 신년회견을 꼬박꼬박 했다. 질문자와 내용이 정해져 짜맞춘 연극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때 등 각본 없이 진행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도 마지막 신년회견과 퇴임회견을 생략해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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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석열산성과 명박산성, 그리고 윤석열 매직 수많은 부정적 사건과 일화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를 말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명박산성’이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중순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행진을 막기 위해 광화문 한복판에 설치했던 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를 일컫는다. 시위대가 오르는 것을 막는다며 컨테이너 표면에 칠한 윤활유는 미끈미끈, 뺀질거리는 이명박 이미지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 가림막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명박산성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사 1층 현관에서 기자들과 진행하던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면서 취한 조치였다. 가림막으로 인해 로비에서 출입구 쪽 시야가 차단됐고, 기자들은 윤 대통령이나 참모들의 출입을 파악할 수 없게 됐다. 거대한 흉물 명박산성과 가로 6m, 세로 4m의 대통령실 가림막을 물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심에 눈감고 귀막은 권력자의 불통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명박산성과 대통령실 가림막은 다를 바 없다. 가림막은 ‘석열산성’의 징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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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윤핵관 경쟁 박근혜 정부 몰락을 재촉한 것 중 하나는 친박(친박근혜)들의 충성경쟁이었다. 처음에는 친박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였던 사람들은 정권을 장악한 이후 분화에 분화를 거듭했다. 최고 권력자가 ‘진실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 후 ‘진박’(진실한 친박)이 등장했고, 최경환 전 의원 등 여권 핵심들은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며 2016년 4월 총선 공천에 관여했다. 총선에서 패배한 후인 그해 8월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전 의원을 두고는 ‘옹박’(박근혜 옹위)이란 말이 나왔다. 반면 유승민 전 의원 등 쓴소리하는 인사들은 ‘탈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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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훈이의 만화 게슴츠레한 눈, 땜통이 있을 것 같은 상고머리, D라인 체형의 백수 남기남. 예수머리를 한 저예산 영화감독 씨네박. 씨네박은 남기남의 멘토를 자처하지만, 둘은 모두 어설프다.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1996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된 작가 정훈이(본명 정훈)의 ‘정훈이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그의 만화들은 기발한 상상력, 유쾌한 입담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활자매체의 시대, 씨네21 구독자들은 새 잡지를 받자마자 맨 뒤쪽의 정훈이 만화를 먼저 읽었다. 연재가 잠시 중단됐을 때 독자 항의가 빗발치자 씨네21 편집부에서 급히 작가를 불러왔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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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 정부, 자유만 있고 책임은 없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죽음을 정쟁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당분간 애도기간을 갖자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없이 생을 마감한 희생자와 가족들의 상실감, 사회를 짓누르는 슬픔의 공기를 생각하면 조용히 명복을 비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다.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는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나, 세월호 사태에 빗대려는 일각의 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치유되지 않은 세월호를 정치적 의도로 헤집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난잡한 정치판에도 금도는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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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도어스테핑 유감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는 것 말고도 여느 대통령과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갖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회견)’이다. 특정 행사나 기념일 외에 대통령의 육성을 듣기 어려웠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 소통 의지는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처음 했을 때 ‘우리보다 잘하면 어떡하지’ 그런 부러움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일본 등에서 최고지도자의 도어스테핑은 일상이다. 미국 대통령은 집무실(오벌 오피스)과 브리핑룸이 백악관 웨스트 윙(서관) 1층에 같이 위치한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기자들과 마주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중 “(북한은) 전례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후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로 불리는 도어스테핑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이런 점에서 국제 흐름을 반영한 진일보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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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 이준석, 윤핵관, 누가 배신자인가 정치권에선 매일 크고 작은 도원결의가 맺어지고, 그만큼의 배신행위가 발생한다. 어제의 동지가 다음날 원수가 된 풍경은 낯설지 않다. 정치연합의 붕괴, 정치인들의 결별, 탈당 등이 이런 사례들이다. 큰 배신에 가려진 작은 배신들은 더 많다. 당내 선거나 국회의원 예비 경선 때 특정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가 경쟁 캠프로 옮겨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경우를 봤다. 형, 동생 하던 사이가 같은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면서 어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못 믿을 인간들만 정치권에 모여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리지어 권력을 다투고, 이기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판의 속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